실케 슈미클 M+ 샤넬 무빙 이미지 리드 큐레이터. 촬영 Winnie Yeung @Visual Voices. 사진제공 M+
홍콩의 M+는 홍콩과 중화권,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의 시각 미술, 디자인과 건축 및 무빙 이미지를 포괄하는 복합미술박물관이다. 이처럼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M+의 무빙 이미지 센터에 M+ 시네마가 있다. 이곳의 3개 상영관에선 시대, 국가, 장르, 형식을 불문하고 수많은 영화, 비디오 아트가 방문객들을 만나는 중이다. 또 M+ 시네마는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기원’ 콘퍼런스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했으며 박찬욱 감독의 전작 특별전을 진행하는 등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도 놓지 않고 있다. 이에 M+ 시네마의 중추로 활동 중인 실케 슈미클(Silke Schmickl) 샤넬(CHANEL) 무빙 이미지 리드 큐레이터를 만났다. 싱가포르 국립미술관과 싱가포르 현대미술학회 큐레이터, 파리 독일미술사센터 연구원 등을 역임했던 그는 아시아영화의 가능성을 역설하며 미래 세대의 영화인들을 전폭적으로 돕고자 한다.
히토 슈타이얼, <사랑스러운 안드레아> 사진제공 sixpackfilm
- M+ 시네마의 프로그래밍 방향성은.
= 20세기 홍콩뿐 아니라 한국, 일본, 필리핀 등 근현대 아시아영화 전반을 다루고 있다. 홍콩 감독을 말하더라도 시선을 확장하여 아시아나 세계 단위의 맥락을 말하려 한다. 예를 들어 허안화 감독이 만든 베트남 3부작을 통해 아시아영화의 맥락을 짚었던 적이 있다. 또 단순 상영뿐 아니라 마스터 클래스 등 여러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지난해엔 홍콩 알리앙스 프랑세즈와 협력해 프랑스의 클레어 드니 감독 회고전을 열었다. 최근엔 박찬욱 감독 특별전을 진행 중이고, 12월엔 감독이 직접 방문해 마스터 클래스를 맡아주기로 했다. M+ 시네마에서 처음으로 아시아 감독을 조명하는 기획전이다. 박찬욱 감독을 다룬다는 선택엔 팀원 모두가 이견 없이 찬성했다. 그의 작품도 훌륭하지만, 그가 필름메이커이기 이전에 평론가였다는 사실도 중요했다. 특히 홍콩영화에 대한 비평을 많이 쓰기도 했던 점이 흥미로웠다. 그 평론들을 중국어, 영어로 번역하여 M+ 매거진에도 실었다.
- 홍콩 필름 아카이브, 브로드웨이 시네마테크 등의 여타 극장과 M+ 시네마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 아주 다르다. M+ 시네마의 가장 큰 차이점은 큐레이션에 있다. 최신 개봉작이나 특정 시대의 고전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수많은 범주에서 새로운 콘텐츠들을 발굴한다. 상업 극장에선 개봉하지 않았던 새로운 예술가들의 영화, 지금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다큐멘터리도 다수 구성돼 있다. 기본적인 가치관은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 큐레이션해 구성한 섹션을 소개해준다면.
= ‘애프터이미지’에서는 실험적인 에세이 필름이나 독창적인 비디오 아트에 주목하고 있다. 지금은 크리스 마커의 <태양 없이>, 히토 슈타이얼의 <11월> <사랑스러운 안드레아>를 틀고 있다. 또 ‘리디스커버리’에선 잊혀선 안될 불멸의 고전들을 꾸준히 소개한다. 최근 상영작 중엔 서극의 <영웅본색3>, 일본 쇼치쿠사의 걸작인 시노다 마사히로의 <마른 꽃> 등이 있다. 한편 M+가 복합적인 시각 문화 박물관이다 보니 기존 시네필뿐 아니라 젊은 방문객이나 가족 단위의 관객도 많이들 찾는다. 이들을 위한 맞춤용 어린이영화 프로그램 ‘프레시 아이즈’ 등도 준비하고 있다. 1년의 계절 변화에 맞춰 세달 간격으로 프로그램 배치와 상영작 구성을 바꾼다.
- 상영 프로그램과 연계한 ‘아시아 아방가르드 필름 서큘레이션 라이브러리’ (Asian Avant-garde Film Circulation Library)도 있다.
= 꼭 설명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온갖 전쟁을 치르고, 식민 제국주의에 침탈됐던 아시아 국가들엔 급진적이고 뜨거운 역사적 변화들이 있었다. 이런 변화들이 실험영화, 다큐멘터리영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프랑스,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20세기 영화에도 관심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앞으로 몇년 동안 아시아영화가 매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M+ 시네마 카탈로그. <아가씨> 사진제공 CJ ENM
- 최근 홍콩 극장가는 어떤가. 한국은 꽤 어려운 상황이다.
= 긍정적으로 본다. 물론 80~90년대에 비해선 산업이 주춤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쿵후영화 말고 더 다양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려는 젊은 세대가 등장하고 있는 것도 맞다. 상당히 희망적이다. M+는 그런 젊은 필름메이커들이 만드는 다큐멘터리나 비상업영화에도 꾸준히 주목할 예정이다. 한국영화계가 힘들다는데, 영화산업의 역사도 늘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했지 않나. 다소 시간이 걸릴 순 있겠으나 다음 세대의 등장을 우직하게 기다려야 할 것 같다.
- M+ 시네마의 차후 목표는.
= 집에서 온라인으로 영화를 보는 시대이지만, 극장 문화의 경험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의제다. 8mm, 16mm, 35mm 프로젝터를 모두 갖고 있기에 예전 영화들을 좋은 환경에서 틀 수 있다. 얼마 전엔 독일의 필름메이커 헬가 판덜을 초청하여 상영 및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슈퍼 8mm 포맷의 영화로 거장 반열에 오른 시네아스트다. 이처럼 젊은 관객들에게 과거의 걸작들을 선보이고 젊은 예술가들과 M+의 창작 협업을 진행하는 것이 M+의 중요한 목표인 셈이다. 영화매체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지원하고, 그들의 작업을 돕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