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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감독 8인 (2) - <중독>의 박영훈 감독
2002-06-08

영혼의 당신과 몸의 당신, 누가 진짜?

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

턱선이 조금만 더 단정했어도 그는 감독이 되지 않았을 거다. 어떻게 생겼냐고? 윤종찬 감독의 <소름>에서, 이발소에 걸린 가족사진의 아버지를 기억하는지. 김명민-장진영, 배다른 남매의 아버지로 모든 비극의 출발이 되는 이 개망나니 같은 인간은 사진으로만 모습을 보일 뿐이다. 그 얼굴의 주인공이 박영훈이다. 원래 그의 꿈은 배우였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연기전공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선배 학생들의 단편영화들에 출연했다. 화면을 보니 정면은 그런대로 볼 만했지만, 측면이 너무 안 좋았다. “이 얼굴로는 한계가 있겠다, 게다가 나는 발음까지 샌다.” 3학년 때 연기에서 연출로 바꿨다. 그때도 영화감독을 꿈꾸진 않았다. 졸업작품으로 내놓은 것도 연극이다. 영화는, “가정사정이 썩 넉넉한 것도 아닌” 그에게 돈이 많이 들었다.

취직시험을 조금만 더 잘 봤어도 그는 감독이 되지 않았을 거다. 방송사 PD 시험을 봤다. 1년 동안 공부했는데, 떨어졌다. 서울텔레콤에 들어가 <신한국기행> 같은 다큐멘터리에 AD로 6개월 따라다녔다. 따라가다보니 이 길이 아닌 것 같았다. ‘감독이 되자’는 뜻을 세운 게 92년, 우리 나이로 29살. 박광우 감독의 <사랑의 종합병원>, 김호선 감독의 <사랑하고 싶은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거쳐 박철수 감독 밑에서 <산부인과> 등 세편을 찍고 데뷔를 결심했다. 92∼97년까지 5년간 연출부 일하면서 번 돈이 2500만원. 그래도 혼자여서 괜찮았다. 98년에 결혼했는데, 시나리오 다 쓴 뒤 영화가 엎어지기를 두 차례. 40살 전에는 데뷔해야 하는데 시간은 가고, 돈 벌어오는 부인에게 그래도 큰소리쳤다. “한방에 갚겠다.” 39살, 스스로 정한 데드라인의 문턱에서 기회가 왔다.

그는 왜 <중독>을 연출하는가

<중독>은 ‘빙의’(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것)를 키워드로 내세운 멜로다. 박 감독이 데뷔를 마음먹고 썼던 두편의 시나리오도 멜로다. 첫 번째 ‘정인’은 명성황후를 남몰래 사랑했던 무사의 이야기이고, 두 번째 ‘디셈버’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복고풍의 멜로다. ‘정인’은 펀딩이 안 됐고, ‘디셈버’는 같은 컨셉의 <선물>이 먼저 개봉하는 바람에 엎어졌다. <중독>은 제작사 씨네2000이 아이템을 개발해서 박 감독에게 제안한 전형적인 기획영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사랑이라는 걸 배제할 수 없지 않냐”고 짧게 말하는 그가 멜로를 크게 선호하는 것 같진 않다. 아무래도 멜로와 전생의 인연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얼핏 고결한 사랑에 대한 찬가 같지만, <중독>에는 섬뜩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다. 그 안의 사랑은 만장일치로 지지받을 사랑이 아니다. 여느 기획영화처럼 플롯 구성을 중시하는 탓에, 분위기가 초반의 팬시상품처럼 예쁜 멜로에서 교통사고 뒤 은수의 갈등으로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고 이게 마지막에 또 바뀐다. 결코 연출이 쉬워 보이는 영화가 아니다. “연기자의 감정선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으로 영화를 이어가야 한다. 대사도 적어서 특히 이병헌씨의 대진 역은 연기하기 쉽지 않을 것같다. 또 연기로만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다른 멜로 같으면 인물을 크게 비추면 될 텐데, 이 영화에선 카메라가 적절히 떨어져 큰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집안 풍경과 인물의 움직임 같은 걸로 느낌을 줘야할 것 같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는

묻자마자 답이 나왔다. ‘이소룡 선생’께서 출연하신 <용쟁호투>. 초등학교 6학년 때 도봉동 집에서 의정부의 시민회관까지 가서 이 영화를 봤다. 극장료가 쌌기 때문. 너무 근사하고 멋있었다. 그건 배우였다. 배우가 되자! 그뒤부터 장래 희망란의 답은 무조건 배우였다. 감독의 길로 들어선 뒤, 자신이 조감독하는 영화의 조단역으로 출연했다. 앞으로도 출연 교섭이 온다면, 자기가 감독하는 영화 빼고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용쟁호투>의 세례를 받은 감독답게 선이 굵은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비주얼이 강조되는 액션영화라기보다 사람의 감정이 보이고, 그 감정의 충돌로 액션이 일어나는 영화.” 임범 isman@hani.co.kr

Synopsis

대진(이병헌)은 형 호진(이얼), 형수 은수(이미연) 부부와 셋이 함께 산다. 카레이서인 대진은 경기에서 사고로 의식을 잃는다. 공교롭게 호진도 같은 시간에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다. 1년 뒤, 기적적으로 깨어난 대진은 자신이 호진이라고 주장하는 데 더해 말투와 습관까지 호진과 똑같이 행동한다. 혼란 속에 갈등하던 은수는 급기야 호진과 둘만 아는 과거사를 대진이 기억해내자 남편의 영혼이 시동생에게 빙의됐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신인감독 8인 (1) - <이중간첩>의 김현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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