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감독이 된 까닭은
김종현 어린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만화광이었다. 극장에선 <로보트 태권V>에 열광했고, TV에선 <마징가Z>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미친 정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심했다. 이게 싹수였다. 명동의 외국서적 파는 곳을 두리번거리며 ‘로봇 백과사전’처럼 비싼 책을 사모으는 남다른 짓을 했다. 그는 이 책들을 통해 마징가Z나 그레이트 마징가 같은 캐릭터가 일본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불현듯 애국심이 불끈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한국만화는 한국 사람이 만들어야 한다!” 그는 결심했다, 만화영화 감독이 되겠고. 그래서 스케치북이나 공책에 그림을 그리면서 미래를 준비했다.
그런데 6학년 때 ‘미성년자 관람불가’ 표지판을 뚫고 극장에서 본 <엑스칼리버>는 그의 삶에 새로운 동기를 불어넣었다. 그때야 ‘아, 칼싸움이 어찌 저리 멋있단 말인가’라고 감탄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 즈음부터 만화의 세계를 넘어 신화적인 세계를 동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심을 바꾸었다.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개그맨 백재현과 대본을 써서 연기를 하며 감독의 꿈을 키웠다. 비교적 공부를 잘했던 그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드디어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2학년 때 단편영화 <족쇄>로 금관영화제 편집상과 신영영화제에서 2등상을 수상했던 그는 졸업과 동시에 정지영 감독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연출부로 뛰었고,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 김본 감독의 <베이비 세일>, 김태균 감독의 <키스할까요>의 조감독 생활을 했다. “대박의 꿈이나 걸작에 대한 욕망은 없고, 내 영화를 보고 극장 밖으로 나온 관객으로 하여금 10분 정도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영화관.
그가 <동정없는 세상>을 연출하는 이유는
1998년부터 데뷔를 준비한 그는 자작 시나리오를 들고 여러 제작사를 돌아다녔다. 피그말리온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레알 로망스>라는 시나리오가 ‘여러 메이저 제작사’로부터 퇴짜맞은 뒤, 그는 대학 동기이기도 한 튜브픽처스의 황우현 대표로부터 <동정없는 세상>의 감독 제의를 받는다. 제6회 문학동네 신인문학상 수상작인 원작소설을 읽어본 그는 동정(童貞)을 떼기 위한 한 소년의 분투기 그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열려 있는 탓에 자신이 영화에 붓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기에도 괜찮을 듯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즉, 사람이 바라는 행복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해서 말이다. 김 감독은 극중 주인공 준호가 대학 진학을 놓고 벌이는 고민이나 서울대 법대 졸업생인 명호가 ‘특권’없는 삶을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주며 행복에 관한 질문을 던질 참이다. 또 하나 원작이 그의 관심을 끈 부분은 라비린토스에 갇힌 미노타우로스 이야기 같은 신화가 인용된다는 점이었다. 언제부턴가 그의 머릿속은 신화적인 세계로 그득하다. 그는 아예 이 영화에서 신화의 세계를 한축으로 놓아 준호의 현실세계와 관계를 맺도록 할 생각. 그는 이 영화가 “큰 사건 대신 자잘한 일상을 통해 표현되는 성장영화”가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는
<엑스칼리버>도 좋지만, 아무래도 <아라비아의 로렌스>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이를 달리하면서 여러 번 봤다. 처음에야 엄청난 규모의 스펙터클 액션이 눈을 사로잡았지만,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진다. 이집트로 한달 일정으로 여행갔던 것도 이 영화 때문이었다. 인간들의 이야기지만, 신화적인 느낌이 배어 있는 작품을 소망하는 것도 <아라비아의 로렌스> 때문인 듯하다.
문석 ssoony@hani.co.kr · 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P>
Synopsis
나, 준호는 고등학교 3학년생의 혈기방장한 청년이다. 우리 가족은 수경씨와 명호씨, 아니 엄마와 외삼촌과 나, 이렇게 셋이다. 나의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섹스를 해보는 것이다. 여자친구인 서영이와 ‘한번 하자’고 제안했다가 숱하게 퇴짜를 맡아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윤락가도 기웃거려봤지만, 귀하디 귀한 동정을 이런 곳에서 바친다는 것이 억울해 포기하곤 했다. 수능시험을 끝내자 시간도 많아졌고, 섹스에 대한 갈망도 더욱 깊어졌다. 시험을 개판쳐놓았지만, 수경씨와 명호씨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아무튼 이젠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나가야 할 시기. 서영이는 좋은 대학에 특차로 합격했고, 단짝 친구들은 각자의 길을 향해 갈 것이다. 나, 준호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그리고 ‘동정없는 세상’은 맞이하게 될 것인가.▶ 신인감독 8인 (1) - <이중간첩>의 김현정 감독
▶ 신인감독 8인 (2) - <중독>의 박영훈 감독
▶ 신인감독 8인 (3) -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의 모지은 감독
▶ 신인감독 8인 (4) -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 신인감독 8인 (5) - <빙우>의 김은숙 감독
▶ 신인감독 8인 (6) - <동정없는 세상>의 김종현 감독
▶ 신인감독 8인 (7) - <첫눈>의 이혜영 감독
▶ 신인감독 8인 (8) - <크랙>의 김태균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