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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영화광 김봉석, 스포츠 영화 보며 인생을 깨닫다 (2)
2002-05-31

세상사 희노애락이 그 혼돈의 그라운드에 있더라

야구-베이스 사이의 삶

스포츠영화 중에서 ‘야구’가 가장 많은 것은, 혹시 영화로 옮기기에 가장 적당하기 때문이 아닐까? 야구는 움직임과 멈춤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축구는 끊임없이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야구는 탁탁 끊어진다. 점에서 점으로 이어진다. 야구영화는 슬로모션이나 스톱장면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실제 경기에서도 그런 상황들의 연속이다. 경기를 하던 도중에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 선수를 격려한다. 결정적인 찬스가 오면, 대타를 내보낸다. 거기에 맞춰 상대팀이 다시 투수를 바꾸기도 한다. 야구는 그 멈춤의 시간이 오히려 매력적이다(그러다 경기 시간이 4시간이 넘어가면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샘 레이미의 <케빈 코스트너의 사랑을 위하여>(For Love of the Game, 1999)는 한때 최고의 투수였지만, 이제는 전성기가 지난 노장의 사랑과 게임을 그린다. 그는 마운드에 서서 결정적인 순간, 공을 던지기 직전 자신의 삶을, 사랑을 회고한다. 로버트 레드퍼드 주연의 <내츄럴>이 <케빈 코스트너의 사랑을 위하여>와 비슷하게 게임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야구영화라면, <메이저리그>는 야구라는 상황을 적절하게 활용한 코미디영화다. 야구는 일본에서도 국민적 사랑을 받는 스포츠로 꼽힌다. 미국 야구선수가 일본 프로야구에 가서 문화적 갈등을 겪는 <미스터 베이스볼>도 볼 만하다. 톰 셀릭이 양키스 출신의 미국선수를 연기하고, <철도원>의 다카쿠라 겐이 지금과 별 차이없는 중년의 얼굴로 감독 역을 맡았다.

농구-날자, 날자꾸나

농구는 축구와 함께,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골대만 만들어놓으면, 어디에서든 가능하다. 농구에서 유난히 흑인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은, 신체적 장점 이외에도 농구의 그런 특성이 작용했다. 1986년에 만들어진 <후지어>는 전형적인 인간승리의 이야기다. 보잘것없던 작은 마을의 고등학교 농구팀이 주대회 최종전까지 올라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나도 뻔하고 지겹지만, 이상하게도 보기 시작하면 곧 빨려들고 만다. 초라한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무엇인가를 깨닫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광경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세계의 진실이다. 그러나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인간승리와는 달리, 현실은 단절적이고 또 우연적이다. 비디오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서울 다큐멘터리영상제에서 소개되었던 <후프 드림스>(Hoop Dreams, 1994)는 중학교의 흑인 농구선수 두명의 고등학교 과정을 그리고 있다. 돈이 없어 명문고를 가지 못하고 농구를 포기했던 아이는 고생 끝에 조금씩 프로의 꿈을 키우고, 일찌감치 스타가 되었던 아이는 부상과 함께 나락으로 빠져든다. 무엇도 보장되지 않고, 무엇도 약속되지 않는다. 시합에서 하나의 골이 승부를 가르듯이, 때로는 아주 작은 실수나 잘못 하나가 인생의 막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NBA의 슈퍼스타들은, 어쩌면 바늘 끝을 통과한 기적 같은 존재다. 이런 현실이 너무 막막하다면 장신 선수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 대학 농구팀 코치의 이야기 <에어>(The Air Up There, 1994)나 졸지에 뉴욕 닉스의 명예코치가 된 우피 골드버그의 활약을 그린 <에디>(Eddie, 1995) 같은 코미디를 보는 것도 좋다. 아니면 ‘에어’ 개의 활약을 볼 수 있는 <에어버드>나.

축구-난투하고 질주하는 남자들

툭하면 치고받는 난투극이 벌어지는 아이스하키는 남성적, 아니 마초적이다. 로브 로와 패트릭 스웨이지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영블러드>(Youngblood, 1986)는 남성라이벌의 전형적인 경쟁을 그린 영화다. 조그마한 퍽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아이스하키의 아기자기한 맛을 보려면 아이들의 하키팀이 등장하는 <마이티 덕>(The Mighty Ducks) 시리즈를 보는 것이 좋다. 미국에서 이제야 인기를 얻고 있는 축구는 종주국인 영국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더 많다. 81년 존 휴스턴이 연출한 <승리의 탈출>(Victory)은 실베스터 스탤론과 막스 폰 시도우, 마이클 케인에 축구황제 펠레까지 특별출연하며 2차대전 중 독일군 수용소의 포로들이 벌이는 축구 시합을 그리고 있다. 주성치의 <소림축구>가 요즘 인기를 끌고 있지만, 과거에도 홍콩에서 만든 독특한 축구영화가 있었다. 할리우드로 간 원화평이 연출하고, 원표가 주연을 맡은 <파우>(波牛, 1983)가 바로 그것. 보통 사람들이 쉽게 배울 수는 없겠지만, 무술과 축구를 접목시킨 실험은 <파우>가 먼저였다.

축구나 야구, 농구 같은 단체경기와는 달리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개인종목들도 있다. 날것의 육체로 겨루는 육상이나 마라톤 혹은 권투부터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기교를 겨루는 골프, 테니스, 볼링 등등. 집단이 조화를 이루며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서로 의지하며 달려가는 단체경기와 달리 개인경기는 홀로 모든 것과 싸워야 한다. 개인경기는 다른 개인과 경쟁을 하지만, 그 이전에 싸워 이겨야 하는 상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타인과의 승부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얼마 전 개봉했던 마이클 만의 <알리>(Ali, 2001)는 세계와 홀로 맞서 싸웠던 영웅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두려움을 날려버리기 위해 쉴새없이 떠벌리던 알리는, 누구나 불가능이라 여겼던 포먼과의 대결을 승리로 이끈다. 말이 아니라, 의지와 신념으로. 홀홀단신으로 링 위에 서서, 상대방을 눕히지 않고는 빠져나갈 수 없는 권투경기는 종종 인생의 은유로 쓰인다. 마틴 스코시즈가 제이크 라모타의 황소 같은 삶을 그려낸 <분노의 주먹>이나 실베스터 스탤론의 출세작 <록키> 1편(나머지는 쓰레기)이 그렇다. 세상과 싸우는 인간의 형상을 ‘복서’로 그린 영화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출연한 <더 복서>나 쓰카모토 신야 감독의 <동경 피스트>, <파워 오브 원> 등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한때 프로 복서로 링에 오르기도 했던(전적은 형편없었다) 미키 루크가 출연한 <홈보이>는 ‘싸우는 남자의 매력’을 퇴폐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이 간다.

권투-그림자와 겨루기삶-불공정한 경기

주제곡이 인상적인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 1981)나 힌두 경전을 골프에 비유했다는 <베가 번스의 전설>(The Legend of Bagger Vance, 2000) 같은 영화를 보면, 스포츠가 인생의 단면임을 느낄 수 있다. 희로애락이 뒤엉켜 있는, 자신의 진심과 위선이 무엇인지조차 헤아릴 수 없는 복마전. 유령의 집에서 헤매는 것 같은 기분으로 살다보면, 이상하게도 <킹 핀>(Kingpin, 1996) 같은 엉망진창의 스포츠영화가 눈에 들어온다. 잘 나가던 신예 보울러 로이가 라이벌한테 속아 손을 잘린다. 비참한 생활을 하던 로이는 마침내 재기에 나선다. 여느 스포츠영화와 다름없는 인간승리의 여정이지만, 감독인 패럴리 형제는 로이를 ‘엽기의 나라’로 밀어넣는다. 그리고 끝내 살아남게 한다. 로이가 손을 잘리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코미디영화가 이래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코미디의 주인공이 지나치게 비참하면, 웃을 수가 없다. <킹핀>의 로이는 한순간의 실수로 끔찍한 삶을 살아간다. 비탄의 한숨이 나오면서도, 결국 로이를 보며 웃게 되는 것은, 나의 삶 역시 그렇게 우습고도 슬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그렇게 달콤씁쓸하다. 아니 구역질이 나면서도, 눈이 반짝거린다. 스포츠영화는 그런 인생과 아주 닮아 있으면서도, 그래도 ‘규칙’이란 것이 존재한다. 어떻게든 규칙을 뛰어넘으려 하고, 끊임없이 야비한 수작을 벌이지만 적어도 축구의 한골이 1점이라는 사실만은 영원불멸이다. 스포츠영화를 보는 마음에는 그런 갈망도 있다. 공정한 룰이 존재하는 세상에 대한, 헛된 욕망 같은 것. 그래서 스포츠는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영원히, 언제 어디서나.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게으른 영화광 김봉석, 스포츠 영화 보며 인생을 깨닫다 (1)

▶ 게으른 영화광 김봉석, 스포츠 영화 보며 인생을 깨닫다 (2)

▶ 인생은 스포츠처럼, 스포츠는 인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