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오승훈의 이 칸 저 칸] (16) 국민배우 송강호, 칸 최우수남자배우상 수상…한국 남자배우 최초, ‘괴물’ ‘변호인’ ‘기생충’ 등 천만영화 주연, “좋은 작품 끊임없이 도전하다 수상 영광”
배우 송강호가 28일(현지시각) 막을 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브로커>로 최우수남자배우상을 수상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씨제이 이엔엠(CJ ENM) 제공
모든 것을 가진 칸의 남자.
배우 송강호가 영화 인생 최고 정점을 맞았다. 정상을 모르는 이 불세출의 배우는, 거장들의 페르소나(분신)에서 나아가 자신만의 연기로 한국 남자 배우 최초 칸국제영화제 최우수남자배우상 수상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한국의 ‘국민배우’에서 글로벌 스타 반열에 오른 것이다.
28일 저녁(현지시각),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진행된 75회 칸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송강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경쟁 부문 진출작 <브로커>로 최우수남자배우상을 수상했다. 한국 남자 배우가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네치아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송강호는 올해 칸영화제 시작과 함께 유력한 최우수남자배우상 수상 후보 중 한명으로 거론돼 왔다. 현지 취재기자들은 황금종려상에 대해선 이견이 분분했지만, 이른바 남우주연상 격인 최우수남자배우상 수상자로 송강호를 꼽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브로커>를 포함해 <괴물>(감독 주간), <밀양>(경쟁 부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비경쟁 부문), <박쥐>(경쟁 부문), <기생충>(경쟁 부문), <비상선언>(비경쟁 부문)으로 이미 일곱차례나 칸 무대를 밟은 이력의 소유자인데다, 지난해 칸 심사위원까지 역임한 점도 이런 예측의 한 배경이었다. 지난 2019년 <기생충> 당시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이냐리투가 송강호를 강력한 최우수남자배우상 후보로 꼽았으나 황금종려상과 최우수남자배우상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영화제 원칙에 따라 수상이 불발된 사실도 이번 수상 예감에 무게를 더했다.
28일 저녁(현지시각),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왼쪽)과 최우수남자배우상을 수상한 송강호가 칸 ‘팔레 드 페스티발’ 프레스센터에서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칸/오승훈 기자
시상식이 끝난 뒤 프레스센터에서 한국 기자들과 한 인터뷰에서 송강호는 “상 받기 위해서 연기를 할 수도 없고 상을 위해 연기하는 배우도 없다”며 “좋은 작품에 끊임없이 도전하다 최고 영화제에 초청받아 격려받고 수상도 하게 되는 과정 자체가 있을 뿐이지, 상이 절대적인 가치라 생각 안 한다. 매우 행복하고 영광스럽지만 이게 목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수상을 두고 배우 출신 심사위원들이 많은 것이 한 이유가 됐을지 모르겠다고 겸손해했다. “배우들이 심사위원단으로 많이 구성돼 있는 게 의미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곰곰이 시간을 두고 복기를 해봐야 할 거 같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브로커>에 출연한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이주영 등을 비롯해 수많은 보석 같은 배우들의 열연과 앙상블을 대표해서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은 정말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요.”
가족의 범주를 확장해온 고레에다 감독의 순하고도 착한 로드무비인 <브로커>에서 송강호는 불법 입양 브로커이지만 선의를 가진 인물인 상현 역을 인상적으로 소화해냈다. 서민적이면서 해학적인 인물을 주로 맡아온 전작 캐릭터의 연장선에 있으면서 가족의 결핍으로 쓸쓸히 버려진 가장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배우 송강호가 28일(현지시각) 막을 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브로커>로 최우수남자배우상을 수상하고 있다. 칸국제영화제 인스타그램 갈무리
이날 칸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이창동, 봉준호, 김지운 같은 거장들의 페르소나인 송강호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리스트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명실상부한 ‘국민 배우’다. 1991년 극단 연우무대에 입단해 배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연극 <동승> <여성반란> <지젤> <비언소> 등 무대에 올라 연기 경력을 쌓았다. 이때 그의 연기를 인상 깊게 본 이창동 감독이 영화 <초록물고기>(1997)의 깡패 판수 역을 맡기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특히 불사파 두목 조필로 등장한 <넘버 3>(1997)는 오늘날의 송강호를 만들어준 잊지 못할 작품. 그해 대종상영화제 신인남우상,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주목받는 배우로 부상한 그는 <쉬리>(1999),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2000), <살인의 추억>(2003) 등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잡은 영화에 잇따라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 대표 배우가 됐다. 코믹함과 진지함을 섞어놓은 특유의 연기로 호평받으며 ‘믿고 보는 배우’의 아이콘이 됐다.
이후에도 <괴물>(2006), <밀양>(2007),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박쥐>(2009), <설국열차>(2013), <관상>(2013), <변호인>(2013), <밀정.>(2016), <택시 운전사>(2017) 등 히트작을 이어가며 정상을 모르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2016년 <밀정> 개봉 당시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주연작 누적 관객수 1억명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9년에는 <기생충>이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으면서 아시아 배우 최초로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액설런스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선정한 ‘21세기 최고 배우 25인’에 뽑히기도 했다. 이날 송강호는 한국 콘텐츠가 전세계적인 각광을 받는 것에 대해 “한국 국민들이 항상 다이나믹하게 변화하고 열심히 도전하는 노력들이 문화 콘텐츠에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며 “여러분들의 뜨거운 성원, 격려가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결과를 낳지 않았나 싶어서 이 자리를 빌어 한국 영화팬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한겨레 오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