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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언덕' 어린 시절 자식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후 딸과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조현나 2020-04-21

5년 동안 윤식과 함께한 영분(정은경)은 그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다시 혼자가 된다. 영분은 새롭게 시작하고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고향 태백으로 돌아간다. 햇빛 모텔에서 청소 직원으로 일하며 새 삶을 이어가던 영분은 자신이 버린 딸 한희(장선)가 여전히 태백에 거주하고 있으며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한희는 태백에서 필라테스 강사로 일하고 있다. 딸이 그리웠던 영분은 결국 한희의 필라테스 학원으로 찾아가는데 정작 한희는 그런 영분을 알아보지 못한다. 얼떨결에 영분은 한희의 권유로 수업을 수강하기 시작한다. 수업이 진행되며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영분은 한희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기도 하고, 한희 몰래 밤늦게 필라테스 학원 홍보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기도 한다. 어느새 둘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속이야기를 내보일 수 있는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그러던 중 한희는 자신이 붙이지 않은 지역에까지 학원 홍보 전단지가 붙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단지를 수거하던 한희는 그것을 일일이 붙이고 있는 영분을 목격하고, 그 순간 그간 영분의 다정함이 단순한 호의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들꽃> <스틸 플라워> <재꽃>에 이르는 ‘꽃 3부작’을 연출한 박석영 감독이 3년 만에 신작을 들고 찾아왔다. <바람의 언덕>은 어린 시절 자식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후 딸과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소통과 거짓말>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장선 배우가 딸 한희 역을, <재꽃>에서 삼순 역을 맡았던 정은경 배우가 엄마 영분 역을 맡았다. <재꽃>에 출연한 장해금 배우가 잠시 반가운 얼굴을 비추기도 한다. 정은경, 장선 배우는 각자 연기한 인물의 이름을 직접 짓기도 했는데 특히 한희는 극중 한희가 자주 웃는다는 점, 또 엄마에게 선물받은 이름이라는 설정 등을 고려해 커다란 기쁨이라는 의미를 담아 지어졌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인물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낸 두 배우는 강사와 수강생으로 먼저 연을 맺는 독특한 모녀 관계를 연기한다. 한희, 영분, 용진(김태희)은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혹은 찾기 위해 태백으로 모여든 인물들이다. 이들은 서로 전혀 다른 궤도를 그리다가도 어느새 마주앉아 상대방의 사연에 기꺼이 귀를 기울인다. 택시기사인 윤식(김준배)의 차를 타고 가던 영분이 갑자기 그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식이다. 네 사람 모두 각자의 외로움을 지니고 있지만 그에 매몰되지 않고 함께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황량하고 추운 태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소 어두운 이야기임에도 이들의 서사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연유는 이러한 인물들의 노력에서 기인한다. 영화는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되 인물들의 심리를 촘촘히 쌓는 데 주력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영분과 한희의 관계다. 특히 영분의 심리변화가 눈에 띄는데, 영분은 온 힘을 다해 한희를 살뜰하게 챙기다가도 자신이 엄마임이 밝혀지자마자 냉담하게 돌아서버린다. 영분은 자신을 붙잡는 딸을 앞에 두고도 날선 말들을 퍼부으며 그를 떠나려는 인물이다. 하지만 한희는 그런 엄마를 이해하고 담담하게 품으려 한다. 앞서 말했듯 이러한 인물들의 노력이 영화에 희망을 불어넣는 원동력이며, 감독의 전작에 비해 <바람의 언덕>이 더 밝고 희망차게 느껴지게끔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바람의 언덕>은 자기 세대도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라는 감독의 어머니의 제안에서 출발한 영화다. 아무 연고 없는 태백으로 떠난 감독은 골목길을 보며 그곳에 전단지를 붙이는 이의 모습을 상상했고, 그 상상이 한희를 위해 전단지를 붙이는 영분의 뒷모습으로 이어졌다. ‘꽃 3부작’에 이어 다시 한번 가족의 서사를 다룬 박석영 감독은 <바람의 언덕>을 통해 가족의 관계에 대해, 그중에서도 재회한 두 모녀의 화해 가능성에 관해 보다 다방면으로 접근하고자한다.

CHECK POINT

태백에서 시작된 이야기

<바람의 언덕> 이야기는 감독이 태백으로 여행을 떠난 이후 시작되었다. 감독은 실제로 햇빛 모텔에 묵으며 영화에 등장한 로케이션들을 직접 돌아다녔고,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태백에서 재회하게 된 두 모녀의 이야기를 구상했다.

날씨의 기적

지난해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오지 않았고 태백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희가 언덕을 오르는 신을 찍기 전날 다행히 눈이 내렸고, 촬영 당일엔 거짓말처럼 날이 개었다. 한희가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덮인 새하얀 언덕을 오르는 신은 그렇게 탄생했다.

모녀의 합창

엔딩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노래는 가수 보엠의 <항해>라는 곡이다. 촬영 내내 장선 배우가 듣던 곡인데, 서로를 믿고 함께 하겠다는 가사가 영화의 주제와 이어진다는 점에서 엔딩곡으로 선택되었다. 모녀 역의 정은경 배우와 장선 배우가 함께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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