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서울 시내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 한구가 발견된다. 시체 위에는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심판한다’는 의미를 가진 타로카드가 놓여 있다. 곧이어 여성을 성추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연행됐다가 불구속된 재력가의 아들의 싸늘한 주검이 타로카드와 함께 발견된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본능과 주먹을 앞세우는 강력반 봉 형사(임원희), 하 형사(장항선)와 과학적 방법론을 중시하는 특수부의 표 형사(김민종), 강 형사(신은경)는 사사건건 충돌한다. 이들 사건이 ‘닥터 큐’라는 인터넷 사이트와 관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력반과 특수부는 사이트 운영자를 추적하지만 허탕만 친다. 곧 특수부의 조반장이 살해되고, 이 사건에 전직 경찰인 박 형사(김갑수)가 관련돼 있다는 단서를 잡은 이들은 박 형사를 맹렬히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일심회’라는 경찰 내 조직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져든다.■ Review <이것이 법이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더티 하리>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사법제도에 의지하지 않고 범인을 자신의 기준에 따라 처단하는 캘러핸 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Magnum Force>가 과거 한국에서 <이것이 법이다>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같은 연상작용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두 작품 모두 ‘불합리한’ 사법제도를 이용해 무죄 방면되는 범죄자들을 총알로 응징하는 경찰 내 집단과 이들을 쫓는 경찰의 이야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판 <이것이 법이다>는 한국판 더티 하리 시리즈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물론 할리우드판이 히피문화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자에 대한 보수주의자의 반작용이었다면, 한국판의 맥락은 좀 다르다. <이것이 법이다>에서 희생되는 자들은 주택조합 사기범, 정경유착의 주범인 전직 국회의원, 막강한 부친을 둔 망나니 아들 등이다. 이런 특권층이 사법제도를 우습게 뛰어넘어왔던 한국에서 이런 ‘처단’은 꽤 짜릿한 대리만족을 선사할 수도 있다. 봉 형사와 하 형사는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대화를 주고 받는다. “난 총을 쏘고 싶어 경찰이 됐어” “더 강한 법이 있어야 돼”(봉 형사). “법이란 앞을 보지 못하는 봉사 같은 거야” “경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내 자식이 마음 편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지”(하 형사). 백전노장 하 형사의 이 발언은 영화 전체의 키워드일 뿐 아니라, 연쇄살인의 미스터리를 푸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범인들이 ‘이것이 우리의 법이다’라며 사법제도를 빠져나간 특권층을 응징하는 것은 ‘아버지와 같은 마음’을 거꾸로 뒤집은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법이다>의 이같은 ‘마음’은 지나치게 앞서 나간다. 그게 흠이다. 애써 잡은 범인이 불구속으로 풀려난 뒤 강력반과 특수반 형사들이 하나가 돼 빗속에서 물장난을 칠 때 그 마음은 너무 잘 전해지지만, 정작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주된 축이 돼야 할 미스터리 드라마는 갈팡질팡거린다. 전개과정의 비약이 심하고 설명이 불충분한 탓에 줄거리를 따라가기가 버거운 것이다. 마침내 닥터 큐의 정체를 알아냈지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음 장면으로 건너뛰어버리는 것이 대표적 예. 주인공인 형사들은 조그마한 단서들을 통해 큰 그림을 그려내거나 주변인에 대한 탐문수사를 통해 실마리를 찾기보다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컴퓨터 시스템이나 우연한 기회에 얻은 확증을 통해 뚝딱 범인을 알아낸다.
조리있는 전개 대신 영화가 주력하는 것은 자동차, 오토바이 등을 동원한 화려한 액션이지만, 특수효과의 완성도는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 영화가 숨을 죽이며 관객을 향해 준비했던 막판 반전이라는 회심의 펀치가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 지는 미지수다. 코미디와 멜로 에피소드도 범죄 스릴러에 잘 녹아들지 못하는 편. 진지하고 흥미로운 주제와 탄탄하고 두터운 조역진의 연기가 돋보이는 <이것이 법이다>는 그동안 한국영화에 없었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제 풀에 지친 듯한 느낌을 준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거나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한 탓이 아닐까. 문석 ssoony@hani.co.kr
<이것이 법이다>의 배우들
임원희가 진짜 주인공
꽤나 알려진 이야기인데도, 아직도 <이것이 법이다>의 주인공이 임원희가 아니라 김민종, 신은경이라고 생각하는 관객은 의외로 많다. 이 영화가 당대의 스타들을 조연으로 기용하면서까지 주연으로 임원희를 기용한 것은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등을 통해 선보였던 그의 개성 강한 연기 탓도 있겠지만 8, 9할은 인터넷영화 <다찌마와 리>의 폭발적인 인기 덕분이다. 조회수 150만회를 넘길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이 인터넷영화에서 정의의 사도 다찌마와 리를 연기했던 그의 탄탄한 연기력과 뛰어난 순발력을 높이 산 제작사의 결정은 적절했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전통적’ 형사 봉수철을 연기한 그는 극중에서 마구리라는 별명의 폭력배가 “너 누구냐?”고 묻자 예의 짙은 눈썹을 들썩거리며 “너구린디요”라며 너스레를 떠는 등, 스릴러의 차갑고 음습한 분위기를 편안하게 바꿔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것이 법이다>가 나름의 안정감을 갖추고 있다면, 그것은 주연 외에도 노련미 넘치는 중년의 조역들이 일제히 등장해 기초를 단단하게 세워줬기 때문일 것. 봉형사의 파트너 하 형사로 나오는 장항선은 “누군가 죄를 졌다 해도 한번쯤은 믿어주는 것이 인간사”라고 믿는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다. 그의 특기는 젊은 형사들을 앞으로 내보낸 뒤, 도망치는 범인의 길목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범인을 쫓아 지붕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등 위험한(?)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강력반장에서 특수부 반장을 맡게 되는 김 반장 역의 주현은 전직 동료 박 형사에게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온몸을 던져 그의 아들을 보호하는 믿음직한 인물이다. ‘일심회’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기도 하다. 송태문이라는 악덕 증권사장의 약점을 쥐고 있는 전직 형사 박시종 역으로는 김갑수가 출연한다. 그는 특수부 조반장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동료들의 추적을 교묘히 피해나간다. TV에서 주로 활동했고 <어린 연인> 등에 출연했던 윤승원은 단순해보이지만, 어딘가 의심스런 구석이 있는 나도철 형사 역을 연기한다. 경상도 사나이답지 않게 쫀쫀한 구석도 있고 나이 때문에 몸을 사리기도 하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