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향해 진군하던 김유신의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계백이 이끄는 백제의 5천 결사대에 가로막힌다. 평소 계백을 두려워하던 김유신은 함부로 총공격을 하지 못한 채 첩자를 보내 계백의 작전을 염탐케 한다. 계백 진영에서 돌아온 첩자가 이르길 계백의 작전은 “뭐시기할 때까정 갑옷을 거시기한다”는 것. 암호해독관을 동원하지만 김유신은 ‘뭐시기’와 ‘거시기’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하고 결국 거시기의 정체를 알 때까지 공격하지 않겠다고 결정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거시기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고, 바다를 통해 기벌포에 도착한 당나라 군대는 신라군이 당나라 군대를 먹일 군량을 갖고 7월10일까지 기벌포에 도착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진퇴양난에 처한 김유신은 마침내 계백과 장기 한판을 두자고 제안, 거시기의 비밀을 알게 된다.
■ Review바야흐로 퓨전사극의 시대다. 브라운관에서도, 스크린에서도 시대극은 예전의 고리타분한 옷가지와 지루한 말투를 던져버리고 영토와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새로운 표현을 섭취하고 있다. TV에서 <다모>와 <대장금>이 그 예라면 영화로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황산벌>이 대표주자일 터, 역사는 예전에 없던 풍요를 낳고 있는 중이다. 앞선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유교사회를 발칵 뒤집는 불경스런 상상력을 보여준 반면 <황산벌>은 1500여년 전 삼국통일을 위한 전쟁과 오늘날 정치상황이 하등 다를 바 없다는 급진적 상상을 펼쳐 보인다. 당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의 황제와 왕이 모인 4자 회담에서 막말이 오가는 도입부의 설정은 ‘그래, 다 까놓고 얘기하자’는 <황산벌>의 기치를 선명히 제시한다. 이 영화가 역사에 덧붙인 가장 큰 가정은 정치가들의 말이 밀실의 언어가 아니라면, 인 것이다.
기실 <황산벌>의 코미디는 언어의 차이와 그 해석을 물고늘어지는 데 있다. 연개소문, 의자왕, 김춘추 등 역사책의 상전에 박제된 인물들이 저잣거리의 말로 정치적 속내를 투명하게 보여주는가 하면 백제는 전라도와 충청도 사투리를, 신라는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해 역사책에 기록될 수 없었던 희극성을 들춰낸다. 신라는 백제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암호해독관을 동원하며 백제의 보성, 벌교 출신 군인들의 욕설이 신라군의 백제에 대한 비방을 단숨에 제압하는 식이다. 이런 사투리의 쓰임새 가운데 백미는 ‘거시기’다. 그 자체로 아무 뜻도 가질 수 없는 ‘거시기’라는 단어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거시기’는 <황산벌>에서 또 다른 주인공처럼 기승전결을 갖는다. 의자왕이 계백에게 “니가 거시기해야겄다”고 말하면서 시작되는 거시기의 일대기는 계백이 “뭐시기할 때까정 갑옷을 거시기한다”고 말할 때 중요한 복선으로 제시되며, 김유신과 계백이 장기를 두는 대목에서 “거시기할 때까정 못 벗제” 할 때 정체를 드러낸다. 전쟁과 정치가 얼마나 부질없고 웃기는 짓인가를 폭로하는 ‘거시기’의 활약은 황산벌 전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평민의 이름이 ‘거시기’라는 사실에 이르면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마저 갖는다. <황산벌>에 따르면 역사란 결국 ‘거시기’에 대한 해석으로 귀결된다.
그러니까 <황산벌>은 삼국통일의 가장 중요한 기점이었던 백제군과 신라군의 황산벌 전투가 ‘거시기’에 불과하다는 불온한 관점을 지닌 영화다. 신라군을 이끈 김유신과 백제의 결사대를 이끈 계백, 영화는 두 인물 가운데 어느 편을 선택하는 대신 두 사람 다 부조리한 상황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내였다고 말한다. 김유신은 계백에게 “전쟁만 알고 정치는 모른다”고 탓하지만 그 역시 정치논리 앞에 분루를 삼킨다. 그러나 두 사내가 똑같은 딜레마에 빠지는 상황을 그리면서 무게중심이 계백쪽에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각색을 하더라도 황산벌 전투는 백제의 결사대의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인 것이다. 여기서 핏발이 선 계백의 눈에 이글거리는 전의는 <황산벌>의 뜨거운 심장이다. 그것은 후대의 역사가 아무리 어리석은 행위로 단정해도 당대의 믿음을 저버릴 수 없었던 사람의 진심을 보여준다. 아마 많은 관객이 박중훈의 코믹연기를 기대하며 극장을 찾고 박중훈의 진지한 연기에 어리둥절하겠지만 <황산벌>에서 그는 코미디의 틀 안에서 실존의 무게를 표현하는 놀라운 경지를 보여준다. 오래전 <게임의 법칙>에서 봤던 그 눈빛이 <황산벌>을 근자에 유행하는 코미디와 다른 차원의 영화로 만들어낸다.
1993년 <키드캅> 이후 10년 만에 연출자의 자리에 선 이준익 감독은 좋은 코미디는 진지한 연기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상황이 충분히 희극적이라면 연기자가 코믹한 표현에 매달릴 이유는 없다는 믿음으로 <황산벌>의 주인공들은 따로 개인기를 구사하지 않는다. 코믹연기의 비중을 조연들로 옮기면서 무게중심이 탄탄한 드라마를 벗어나지 않는 영화가 된 것이다. <황산벌>은 경제적인 사극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시대극의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방식은 얼마나 많은 물량을 투입했느냐와 무관하다. 몇몇 장면에선 적지 않은 배우를 동원했지만 <황산벌>의 스펙터클은 영리하게 위장된 것이다. <황산벌>은 시대극이 SF영화 못지않게 빛나는 아이디어로 스펙터클을 가장할 수 있는 장르임을 보여준다.
<황산벌>은 일간신문의 정치풍자만화 같은 영화다. 오늘의 현실을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의 한 장면에 빗대는 기술이 웃음과 쾌감을 불러오는 만화. 유려한 형식이나 세련된 표현의 미를 찾는 이들에겐 거칠고 투박해 보여도 여기엔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촌철살인의 미학이 있다. 그것은 계백의 머리를 칼로 내리칠 때, 그의 뇌리를 스쳤던 아내의 울부짖음 같은 것이다. 사내들의 대의명분과 비장함을 깔아뭉개는 그녀의 항변은 잊지 못할 잔영을 남기진 않지만 그 공명은 오래 깊이 울려퍼진다. 별안간 뒤통수를 치는 그런 공감이 <황산벌>을 좋은 코미디로 기억하게 만드는 강력한 이유다.
:: 이준익 감독이 말하는 베스트 장면 5김선아 눈물연기 감동의 물결
계백의 회상으로 보여지는 이 장면은 <황산벌>이 반전영화라는 것을 증명하는 신이다. “호랭이는 가죽 땜시 디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디지는 거여”라는 대사로 인해 앞서 계백의 영웅적 모습까지 다 잊어먹게 만든다. 처음엔 김선아가 코믹연기를 할 마음으로 촬영장에 왔기에 이 장면은 진짜 진지하고 강렬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아가 진짜 눈물을 흘리며 연기를 했는데 그렇게 훌륭하게 해내는 여배우를 본 적이 없다.
연출자로서 이 장면에 두 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하나는 김유신과 계백이 직접 만나는 두 장면 가운데 하나로 두 인물의 팽팽한 심리전을 그린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희극과 비극의 접점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장기는 전쟁을 양식화한 놀이 가운데 하나로 인간을 말로 세워 계백과 김유신의 심리를 드러내는 한편 드라마의 긴장을 고조시킨다. 이 대목에서 김유신은 거시기의 비밀을 알게 되고 계백에게 수수께끼를 낸다. 김유신이 계백을 이길 수 있게 된 기점이기도 하다.
지역감정을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역사를 다루면서 역사 전체를 저속하게 다뤄서는 안 된다고 봤다. 그렇지만 욕도 인간사회의 한 부분이라면 욕설로 싸우는 장면을 하나의 장으로 독립시키자고 생각했다.
국제정치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장면이다. 강대국 앞에 무릎 꿇어야 하는, 강대국은 선이고 약소국은 악이 되는 아픈 현실을 드러내고 싶었다. 뚜렷한 선악구조를 만드는 미국영화의 문법에 저항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황산벌>은 선도 없고 악도 없다, 모두가 매순간 자기 입장에 충실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고방식에 입각해 있다.
김유신이 계백을 죽일 때 무슨 말이 오갔을까? 김유신이 “와 이리 덥노” 하고 말하면 계백은 “겁나게 덥구만 잉”이라고 말하고 만다. 그들은 그저 뜨거운 열기만 느꼈을 것 같다. 그건 아마 전쟁의 광기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