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검무공연을 위해 서울을 찾은 평양예술단의 수석무용수 지은(김현수). 북한 최고 권력자의 숨겨진 딸이기도 한 그녀는 주체 못할 호기심의 소유자다. 하지만 철통 같은 경호로 둘러싸인 호텔을 빠져나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 기회를 엿보던 그녀는, 공연이 성황리에 끝난 뒤 경호가 느슨해진 틈을 타 결국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의 ‘서울구경’이 순탄할 리 없다. 차를 얻어타지만 성폭행을 당할 뻔하는 등 험난일로다. 밴드를 조직해 밤무대에서 활동하는 준호(지성) 패거리를 만나 기거할 곳을 얻긴 하지만, 곧이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의 테러 위협이 가해지면서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인다.
■ Review
정치적 긴장의 해빙은 영화로선 소재 발굴을 위한 더없는 기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자유분방한 딸이 서울 시내를 휘젓고 다니며 소동을 일으킨다는 <휘파람공주>의 착상 또한 남북 화해 무드가 아니었다면 배양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정일 위원장의 딸이 남한의 카바레에서 골든벨을 울리고, 우연히 만난 치들과 어울려 옥탑방에서 술에 곯아떨어지는 광경을 어디 상상이나 했을까. <로마의 휴일>을 빌려오되, 그 안에 남남북녀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대입한 과감한 설정은 뒤이어 ‘휘파람공주’와 준호 무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소 억지스런 에피소드들을 눈감게 만든다.
그러나 애틋한 로맨스의 여운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남북 화해 분위기가 결코 자국을 이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 정보기관의 판단 아래 테러리스트가 투입되고, 이들로부터 ‘휘파람공주’를 구하기 위해 남과 북의 정보요원들이 함께 경호하게 되면서 대결구도가 전면에 펼쳐지기 때문. 총격전의 난사 끝에 휘파람공주와 준호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지만, 아쉽게도 로맨스는 ‘그들만의’ 것이다. 휘파람공주의 준호에 대한 관심이 유년 시절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공동의 결핍 때문이라지만, 정작 공연을 앞두고 휘파람공주를 껴안는 준호가 이를 깨달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와 비교하면 거칠게 묘사됐지만, 남북 정보요원들 사이의 우정이 오히려 설득력 있어 보인다. 연출을 맡은 이는 광고계 출신의 이정황 감독. 명품으로 치장한 김정남(김정일 위원장의 장남)의 가족 사진을 보고서 이 영화를 기획했다. 시나리오는 <돈을 갖고 튀어라> <행복한 장의사> 등의 박계옥 작가가 썼다. 이영진 ant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