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연쇄살인범을 쫓던 FBI 요원 윌 그래엄(에드워드 노튼)은 법의학자이자 최고의 심리학자인 한니발 렉터(앤소니 홉킨스)에게 자문을 구한다. 희생자들의 사라진 신체 부위가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식인을 위해서임을 알게 된 그래엄은 렉터에게 보고하러 갔다가 렉터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발견한다. 그래엄은 중상을 당하면서 겨우 렉터를 체포하지만, 그 여파로 FBI를 퇴직한다. 7년뒤 플로리다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그래엄에게 FBI가 도움을 청한다. 버밍햄과 애틀란타에서 두 가족이 연쇄살인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조언을 부탁한 것이다. 아이들까지 살해한 잔인함에 분노한 그래엄은 새로운 범행을 막기 위해 수사에 합류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렉터 박사에게 조언을 구하러 간다.
■ Review
영화 사상 가장 매력적인 악당으로 손꼽히는 한니발 렉터의 모습은 <레드 드래곤>에서 조금 다르게 비친다. <양들의 침묵>과 <한니발>의 렉터는 클라리스의 스승이자 아버지 그리고 연인 같은 존재였다. 괴물이라는 사실은 전혀 변하지 않지만 렉터는 클라리스가 악몽에서 깨어나게 만들어주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헌신한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의 렉터와 그래엄은 친구이자 경쟁자다. 렉터의 마음 속에는, 자신을 잡은 그래엄에 대한 질투와 분노가 담겨 있다. 렉터는 자신과 닮은 그래엄에게 최악의 공포를 안겨주고 싶어한다. 상상력을 가진 인간이라면 당연히 공포를 느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머니 토크>와 <러시 아워>로 탁월한 액션 코미디 감각을 선보였던 브랫 래트너는 범죄 스릴러물인 <레드 드래곤>을 안전하게 운행한다. <레드 드래곤>은 ‘모든 인간 본능 속에 내재되어 있는 악마적인 성향’이 어떻게 드러나고, 혹은 잦아드는지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렉터와 그래엄의 팽팽한 대결을 한축으로 세우고, 어린 시절 학대의 상처 때문에 전지전능한 레드 드래곤으로 변신하려는 돌하이드와 눈먼 여인 리바의 애절한 사랑을 다른 한축으로 밀고나간다. 잔혹한 연쇄살인범의 폭주에 끼어든 사랑 이야기는 <레드 드래곤>을 한층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제작자나 감독의 말처럼 <레드 드래곤>은 이야기가 끌어가는 영화다. 사건의 흐름을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할말이 너무 많다. 많은 사건들이 연이어 펼쳐지고, 사소한 증거와 대화가 끌어가는 치밀한 심리 게임이 몰아치는 <레드 드래곤>은 흥미롭게 흘러간다. <레드 드래곤>의 매 순간들이 힘을 얻는 또 하나의 이유는 탁월한, 아니 위대한 배우들의 협연이다. 홉킨스와 노튼의 대결에 에밀리 왓슨, 랄프 파인즈, 하비 카이틀이 쉬지 않고 스크린을 채우는 덕에 잠시도 눈을 돌릴 수가 없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