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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신인감독 10인의 출사표 - 이시명
2001-02-17

<2009로스트> - 빼앗긴 기억, 나는 누구인가

▒감독이 되기까지

이시명 감독은 일명 ‘한양대 필름 르네상스’를 주도한 영화학도 중 하나였다. 정지우, 김용균, 김영준 등 88학번 동기들은 모두 70∼80편에 달하는 작품을 만들었고, 애니메이션, 액션, 코미디 등 장르도 전례없이 다양했다. 그중에는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일상에 법칙처럼 적용되는 해프닝을 다룬 코미디 <말이 씨가 되면>도 있었다. 80년대 학생 작품으로는 드물게 대중성과 감각을 갖췄다고 평가받은 이 작품으로, 이시명 감독은 상도 타고 후배들 사이에 ‘스타’가 됐다. 중학교 때 비디오카메라로 도둑 잡는 액션영화를 찍은 이래, 이시명 감독은 재학 시절 거의 모든 장르 영화를 직접 만들었다. 하고 싶은 영화, 할 수 있는 영화를 찾고, 착실히 공부하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장길수 감독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연출부로 시작, 강우석 감독의 <마누라 죽이기> <투캅스2>의 조연출을 거쳤고, 98년 <여고괴담>의 연출 의뢰를 받았다. 그러나 공포물을 보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그에겐 무리였다. 이시명 감독이 꿈꾸던 프로젝트는 단군과 고주몽을 이어주는 해모수의 설화와 시간 여행을 다룬 SF물이었지만, IMF가 닥치고 영화판에 돈이 마르면서, 그 기획들이 현실이 될 길은 요원해졌다. 그러던 중 김익상 프로듀서로부터 ‘시간여행에 관한 대체 역사물’ 아이템을 건네받았다. 운명처럼, 그가 준비해온 두 이야기를 한데 버무려놓은 듯한 영화였다. 그렇게 시작된 는 가시화되기까지, 투자사가 삼부엔터테인먼트에서 튜브엔터테인먼트로, 프로듀서가 김익상씨에서 김윤영씨로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3년 가까이 지연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소문도 많았지만, 그 사이 이시명 감독은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3개국 헌팅과 프로덕션 디자인 작업을 꼼꼼히 진행했다. 튼실한 드라마는 기본이고, 그 위에 볼거리를 얹겠다며, 연출의 ‘정석’을 이야기하는 이시명 감독 앞에, “신인으로서 50억원짜리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부담이 크지 않느냐”는 우려는 무색해진다.

▒어떤 영화를 만들것인가

이시명 감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늘 바뀐다고 한다. 앨런 파커, 우디 앨런, 스탠리 큐브릭, 오우삼, 틴토 브라스 등 그가 좋아하는 감독 명단을 보면, 도무지 어떤 영화를 만들려는지 그 취향을 종잡을 수가 없다. 꼭 하고 싶은 일이 ‘해모수’ 설화를 <엑스칼리버> 분위기로 영화화하는 것이라니, 역사물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도 같지만 그런 것만도 아니라고 한다. 도 ‘조선독립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가정, 그 소재보다는 “지금 다루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집어넣을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이끌렸다.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홀린 듯이 봤던 오우삼의 영화들, 그런 정서를 담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조선계 일본인 경찰 사카모토는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절친한 일본인 친구 사이고와 대립해야 하고, 다른 역사 속에서 연인 사이였던 오혜린을 알아보지 못하는 비운의 인물. 그를 통해 우정과 사랑, 운명과 역사를 이야기하려 한다. 2009년이라는 가까운 미래에 벌어지는 이야기인 만큼 SF적인 요소가 있지만, 비주얼에만 힘을 쏟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미술의 컨셉은 3∼4년 정도 앞선 디자인에, 밤신과 비내리는 낮신이 주를 이뤄 전반적인 톤을 어둡게 잡았다. 현재 양수리 제1스튜디오에 후레이센진의 테러가 벌어질 이토 회관의 세트를 짓고 있으며, 테스트 촬영과 인서트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특수효과 촬영을 포함하면 100회를 훌쩍 넘길, 머나먼 여정을 이제 막 떠난 것이다.

▒은 어떤 영화

2009년 광화문엔 조선총독부 건물이 버티고 있고, 이순신 장군 대신 이토 히로부미의 동상이 서 있다. 동아시아 일대는 100년 전에 ‘일본제국’으로 통합됐고, 조선도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조선독립군의 후예들인 반정부 레지스탕스 후레이센진들이 간간이 굵직한 테러를 벌일 뿐. 일본의 경제와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노우에 재단의 파티장에 후레이센진들이 침투하자, 사카모토(장동건)와 사이고(나카무라 도오루)를 비롯한 특수수사요원들이 이들을 진압한다. 사카모토는 후레이센진들의 테러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데 의문을 품고 나름의 조사를 벌이지만,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상층부는 그에게 정직 처분을 내리고, 선배 경관 살해 누명까지 씌운다. 절친한 동료 사이고는 사카모토의 탈출을 돕고, 다신 돌아오지 말라고 경고한다. 도피하던 사카모토는 후레이센진의 아지트에 흘러들고, 이노우에 재단을 둘러싼 음모를 접하고, 자신의 기억과 민족의 역사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박은영 기자 cine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