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성선설이든, 성악설이든 좋다. 하지만 ‘친절한 <ME>씨’는 자신에게 쓰라린 변을 겪게 한 이에게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경험케 해주겠다는 삶을 철학을 지닌 당신들을 사랑한다. 너무너무 착한 사람은 너무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생에 첫 복수를 준비 중인 당신, 너무 떨지 마라. 괜히 ‘친절한 <ME>씨’가 아니다. 첫 복수 혹은 마지막 복수를 하려는 당신을 위해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으나 유용한 고문도구가 될 수 있는 생활소품들의 목록을 마련했다. 단, 친절한 <ME>씨라도 당신 복수의 결과로 일어나는 사건·사고까지 책임져주진 않는다. 그러니 주의사항까지 꼼꼼히 읽고 행동에 옮겨라.
아, 착하게 포장된 인생을 바라는 당신이라면, 다소 소름 돋고 짜증스러워도 당신에게만 있는 착한 유전자를 충분히 활용해 무시하고 넘어가시길.
초급_ ‘손 안 대고 코풀기’ 시추에이션참고서 목록: <나홀로 집에>, <톰과 제리>, <왕의 남자>
본 용도: 장난감 권총. 공기 압축식으로 한번씩 장전해 사용한다. 가격은 9천원에서 1만원 안팎. 남자아이들 놀이 발달사의 필수 코스인 전쟁놀이시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하지만 맞으면 꽤 아파서 집 안에서 가지고 놀았다간 부모님한테 혼나기 쉽다. 물론 부모 말을 제대로 듣는 아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고문용: 별로 어려운 미션은 아니다. 맞추고 싶은 곳을 정조준해서 발사하기만 하면 된다. 작은 총알의 힘은 실로 세니. 문제는 급변하는 상황에서 빠르게 사용할 수 없다는 것(총을 찾아 한발 쏘고 한발 장전하고, 다시 쏘고 또 장전하고 하다보면 상대는 어느새 사라져 있을 터). 그러니 딱총은 상대의 동선을 고려한 계획을 미리 세워 사용하는 편이 좋다. 밤 9시에 집을 방문하겠다는 도둑을 골탕먹이기 위해 오후 5시부터 세팅에 열심이었던 <나홀로 집에>의 8살 꼬마 케빈의 준비성은 당연히 칭찬할 만하다. 케빈의 딱총에 제대로 맞아 나뒹굴던 대머리 남자, 거 참 고소하다.
주의사항: 그곳을 정조준해 불능으로 만들면 그 남자 인생 전체를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곳 없다. 아무 데다 쏘아도 된다. 그러니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려면 그곳은 피해라. 뭐, 평생 책임져주고 싶은 사람이라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
본 용도: 사람이나 짐승 모양으로 만든 그림자 인형에 등불을 비추어 벽 같은 곳에 그림자가 나타나게 하는 놀이. 그림자 인형의 본고장은 타이, 자바, 터키, 중국이다.
고문용: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갈이 연산 앞에서 한 그림자놀이는 압박의 정수다. 그림자놀이를 통해 어머니에 얽힌 비화를 보게 된 연산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라. 그림자놀이는 상대를 잘 아는 경우 사용하면 효과가 두배다. 당연히 극의 내용은 상대의 구린 부분이나 약한 고리를 철저하게 건드려야 한다. 친한 사람에게 뒤통수 맞았을 때 사용하면 특히 좋다.
주의사항: 평면적이라 자칫 따분하고 지루한 형태로 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충분한 사전연습이 필요하다. 연습 없이 했다간 극이 다 끝나기도 전에 상대에게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본 용도: 성숙한 인간의 중요한 부위에 남. 주로 피부를 보호하는 구실을 한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뽑았다간 두배의 포스를 지닌(더 굵고, 더 새카만!) 털들을 지니게 될지도 모르니 각별히 주의 요망.
고문용: 어떤 털이든 뽑히면 아프다. 잠자는 사이, 멍하니 딴 생각하고 있을 때 등 무방비 상태에서 뽑혔을 경우엔 어디 하나가 부러진 것보다 아플 수도 있다. 만날 잡아먹으려고 자신을 쫓아다니는 고양이 톰에게 한 제리의 깜찍한 복수가 바로 그 예. 잠시 한눈팔던 사이 코털을 홀라당 다 뽑히고 아파하던 우스꽝스러운 톰이라니! <톰과 제리>는 상대에게 큰 타격은 주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인 복수를 돕는 아주 훌륭한 교과서다.
주의사항: 남의 엄한 곳 털을 뽑으려 들다간 변태로 몰릴 수도 있다.
중급_ ‘작게 먹고 가는 똥 누는’ 시추에이션참고서 목록: <지구를 지켜라>, <69 식스티 나인>, <라비린스>, <핑크 팬더>, <볼륨을 높여라>,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본 용도: 보통 모기나 벌레에 물렸을 때 사용한다. 하지만 온 국민의 지식거래소 <스펀지>는 물파스로 매니큐어도 지울 수 있음을 알려줬다. 이는 물파스에 에탄올이라는 알코올 성분이 물파스에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물론 인체에는 전혀 해롭지 않다. 지독한 냄새를 참아낼 수 있는 강인한 체력만 갖췄다면.
고문용: 물파스를 바르긴 바르되 모기 물린 곳이 아니라 상처나 피가 난 곳에 집중적으로 쏟으면 인두 못지않은 고문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서 상처 난 발등에 물파스가 닿자 오만상을 찌푸리던 (외계인으로 의심받는) 강민식의 표정과 비명이 이 방법의 효능을 증명한다.
주의사항: 물파스 바르기 전 단계(상처 내기)에 너무 힘을 쏟진 말 것. 피부가 살짝만 벗겨져도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음.
본 용도: 먹은 음식물이 잘 소화됐다는 증거품. 옛부터 황금빛을 최상품으로 여겼다.
고문용: 배설되기 이전 단계(일명 방귀)에서 효과를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중급편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에 맞는 고문법은, 세상에 그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다. <69 식스티나인>에서 학교를 억압의 공간으로 몰아세운 교장선생님을 응징하기 위해 우리의 혁명단들이 사용한 방법은 바로 책상에 ‘응아’ 누기. 응아의 힘은 실로 막강하여 주변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 <라비린스>에서도 이 응아 냄새 풍기기는 고문으로 활용됐다. 이것이 바로 원 소스 멀티 유즈!
주의사항: 아무리 미운 놈이라도 먹이지는 맙시다.
본 용도: 흑색이나 녹색의 판으로, 분필을 이용하면 글씨를 쓸 수 있다. 요즘에는 화이트보드가 등장해 분필가루 날리는 흑(녹)색 칠판은 사라지는 추세.
고문용: 먼저 손에 철로 된 장갑을 끼워라. 그 손으로 칠판을 긁게 하자. 손가락에서 온몸으로 전해지는 느낌도 안 좋지만, 끼~익 하는 그 소리, 거참 듣기 싫다. <핑크 팬더>에서 탐정 클루소가 용의자를 고문할 때 쓴 방법이다.
주의사항: 상대에게 칠판을 긁게 하기 전에, 자신은 귀마개를 해주는 센스. 안 그랬다간 누가 고문을 하는지, 당하는지 헷갈릴 수 있음.
본 용도: 말소리를 전파나 전류로 바꾸어 다른 곳으로 보내고, 다른 곳에서 온 전파나 전류를 다시 말소리로 바꾸어 통화하게 해줌. 전화 없는 현대인의 삶이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오죽하면 전화 생활백서까지 등장했겠나.
고문용: 전화는 여러 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가장 소심한 방법으로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더즐리네 가족이 사용한 것을 들 수 있다. 매우 단순하고 간단하다. 전화를 바꿔주지 않기만 하면 되니. 중요한 전화를 기다리는 상대에게 사용하면, 상대는 미칠 것이고 당신은 즐거워 미칠 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 이에게 장난전화를 위장한 협박전화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볼륨을 높여라>에서 불법 라디오 방송을 운영 중인 하드 해리가 학생주임에게 전화해 다짜고짜 따졌던 일화가 그것. 이 장난전화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은 당당함이다.
영화 <스크림>이 알려준 전화고문은 사실 응용편이다. 전화받는 행위 자체가 무시무시해질 수 있게 하다니. 요즘에는 이를 악용해 스토킹시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주의사항: 요즘 웬만한 전화기는 착신번호가 뜬다는 점을 잊지 말자. 익명으로 남긴 리플까지 추적해내는 세상이다.
고급_ ‘너 죽고 나도 죽자’ 시추에이션참고서 목록: <쏘우>, <쏘우2>, <엑스페리먼트>,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 <혈의 누>, <스나이퍼>
본 용도: 사람이나 물건, 풍경을 기록한다. ‘얼짱각도’를 활용한 ‘셀카’를 찍어 원판불변의 법칙을 흐트러뜨리는 이들도 있다.
고문용: 고문을 위해 사용하는 카메라는 주로 ‘감시용’이다. 이는 특히 <쏘우>에서 심한데, 희대의 인질극을 벌인 직쏘의 감시카메라는 그야말로 살인마의 눈이다. 직쏘의 눈을 대신하는 카메라는 몸을 묵은 사슬보다 더 당하는 이를 속박한다. 그 때문에 아담과 닥터 고든은 ‘백지장도 맞들’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카메라의 존재를 눈치 못한 <쏘우2>의 인질들은 그래서 편하다. <쏘우2>의 카메라가 정말 고문하려는 이는, 밀폐된 공간 밖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형사 외 관계자들이다. 하나 둘 씩 죽어가는 모습을 손 하나 못 쓰고 바라봐야 하다니, 이 얼마나 잔인한 복수극인가.
생체실험극 <엑스페리먼트>에서도 카메라는 갖은 용도로 사용된다. 고문당하는 쪽에서 보면, 작은 꼼수도 쓸 수 없는 완벽한 통제의 순간만큼 끔찍한 게 또 있을까.
주의사항: 한눈팔지 말 것. <엑스페리먼트> 속 죄수들이 탈출해 자유를 꿈꾸는 순간이 카메라가 감시자의 손에서 벗어난 시점부터라는 것은 의미하는 것이 매우 크다.
본 용도: 흰 빨래를 더욱 희게, 색깔 있는 빨래를 더욱 선명하게 해줌. 무언가를 깨끗하게 만들고 싶을 때 많이 사용한다.
고문용: ‘친절한’ 금자씨는 아픈 동료를 결코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동료가 평소 금자씨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인물이라면, 그가 좋아라 하는 음식들에 락스로 만든 소스가 뿌려진 것일 수도 있다.
주의사항: 웬만한 코를 가진 사람이라면, 냄새로 먼저 눈치챌 수 있다. 냄새 없애는 방법을 생각하고 사용해라. 금자씨처럼 치사량을 먹인다면 그건 이미 고문이 아니다.
본 용도: 환자의 몸속에 치료제를 주입하는 도구. 마약이나 히로뽕을 투입에도 주사바늘은 필요하다.
고문용: 이 방법은 다소 많은 준비를 필요로 한다. 돈이 좀 들지도 모르겠다(운이 좋으면 병원에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주사바늘은 하나만으로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지만, 몇 백개가 모이면 상대에게 엄청난 고통을 줄 수 있다. 한꺼번에 수많은 바늘들에 찔린다고 생각해보라. <쏘우2>에는 엄청난 양의 주사기가 담긴 구덩이가 등장한다. 우리의 살인마 직쏘는 그 속에 있는 작은 열쇠를 찾으라고 주문한다. 온몸에 주사기를 꽂은 채(물론 피도 흘리고, 멍도 든 채) 구덩이에서 나온 마약쟁이의 몰골은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돋는다.
주의사항: 조심해서 다룰 것.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우스운 꼴 안 당하려면.
본 용도: 주로 식물성 섬유로 얇고 판판하게 만든 물건으로 서화·인쇄·포장 및 내장재 등 용도가 매우 많다. 최근에는 한지를 이용한 옷까지 등장했다.
고문용: <혈의 누>를 기억한다면, 한지가 얼마나 무서운 고문도구인지 잘 알 것이다. 일명 도모지라 불리는 이것은 죄인의 팔을 묶은 뒤, 얼굴에 젖은 종이를 몇 겹씩 쌓아 숨을 못 쉬게 해 결국 죽음에 이르는 아주 잔인하면서도 품은 별로 안 드는 방법이다.
주의사항: 종이가 좀 덜 젖었거나, 손을 묶은 것이 헐거워지면 말짱 황임을 명심해라. 시간을 정확히 재라. 지나친 시간 초과는 재앙을 부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