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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하고 고집 있는, <누룩> 감독 장동윤 인터뷰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백종헌 2025-07-10

- <누룩>의 각본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하다.

처음에 구상했던 아이디어는 코미디에 가까웠다. 시골 가면 할머니들이 막걸리를 많이 드시지 않나. 근데 할머니들이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약이야 약. 몸에 좋아”라고 하신다. 한 양조장에서 코로나19를 종식시킬 수 있는 만병통치 막걸리가 개발되면서 벌어지는 블랙코미디였다. 작업 여건상 스케일을 크게 갈 수가 없어서 지금 방향으로 바꾸었다. 예전에 시를 써서 그런지 상징적으로 글 쓰는 습성이 지금 영화에 좀 반영된 것 같다. 누룩을 소재로 이야기를 발전시키다 보니 한 사람의 상징적인 신념, 주변에서 믿어주지 않아도 끝까지 관철하는 그런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 단편 <내 귀가 되어줘>를 연출할 때에는 출연도 했다. 이번에는 출연하지 않았는데 이유가 있나.

단편 찍을 때 느낀 고충 때문에 출연을 안 하게 됐다. 직접 출연하면서 연출을 하면 모니터링이 안되니 같은 과정을 두번 거쳐야 하더라. 온전하게 모든 장면을 다 연출하고 싶었는데, 출연까지 하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독립영화다 보니 여러 부분에서 힘들었는데, (박)명훈이 형이 선뜻 출연해주셨다. 정말 고마웠다.

- 배경이 시골인데, 서로 집안 사정을 다 아는 지역색 강한 느낌을 잘 살렸더라.

로케이션도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단 시골집과 고등학교를 섭외해야 했는데, 아버지가 경북 영덕쪽에서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하셨었다. 영화에 나오는 학교 중 하나가 아버지가 근무하셨던 곳이다. 그리고 아버지 동료분이 포항에 사시는데 거기서 촬영감독님과 편집기사님의 숙식을 도움받고. 그 선생님이 본인 아버님 집을 빌려주셔서 거기서 촬영도 했다.

- 현장에서 장동윤은 어떤 감독인가.

배우들에게 명확하게 요구하는 편인 것 같다. 현장에서 배우로서 경험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됐다. 감독 입장에서 배우를 바라볼 때 조금 더 배려도 할 수 있고, 또 더 가혹해지는 부분도 있더라. 현장에서 배우가 수행해야 하는 선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배우들에게도 명확하게 디렉팅하는 편이었다. 배우들도 ‘감독님이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할 틈을 안 준다’고 하더라. 예를 들어서, 사람이 화를 낼 때 ‘내가 화를 내야지!’라고 결심하고 화를 내는 건 아니잖나. 내 감정이 아니라 상황에 집중해서 화가 나는 거니까. 그래서 배우들에게 상황에 더 집중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 각본을 쓰고 감독에 도전하는 것이 배우로선 용감한 선택이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문제가 될 수 있는 시사적인 부분을 다루는 영화도 아니었고, 개인의 추상적인 신념을 다루는 영화였기 때문에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켄 로치 감독처럼 사회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감독을 굉장히 좋아한다. 얼마 전에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봤는데, 완전히 사로잡혀서 봤다. 기회가 되면 그런 영화도 하고 싶다. 언젠가 휴머니즘이 담긴 사회적 이슈도 영화로 다루고 싶다.

- 어릴 때부터 시인, 영화감독이 꿈이었다고. 그럼 꿈을 이룬 거겠다.

와, 그러네. 맞다. 꿈을 이룬 거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누룩>

- <누룩>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장동윤이 생각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영화에서 누룩이 진짜냐 아니냐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다. 이 영화는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믿음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한가가 의미 있다. 믿음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으면 좋은 거고 내가 그 믿음을 어떻게 지켜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 어떤 기준으로 출연작을 고르나.

작품에 들어가기 전, 사실 여러 상황이 있지 않나. 촬영 시기도 중요하고 내가 하고 싶다고 전부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타협을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할 때도 있었다. 요즘은 콘텐츠가 워낙 다양하고 OTT라는 선택도 있고, 어떤 작품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지 알기 어렵다. 지금은 기준을 ‘사람들이 좋아할까?’에 두고 싶다. 물론 내가 연기했을 때 정말 잘 어울리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에 했던 <모래꽃>이 내겐 그런 작품이었다. 대본이 정말 좋았고, 끝까지 사랑한 작품이었다. 그동안 낯선 도전도 했었는데, 지금 바람은 많은 분들이 사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 오죽하면 <찰스엔터>에서 찰스님이 “이제 장르 그만! 제발 로코 좀 해달라”고 하지 않나. 로맨스를 하긴 했지만 <롱디> 같은 작품에선 남녀 주인공이 영상통화만 할 정도로 특이한 선택을 해왔다.

하하, <모래꽃>도 장르는 로맨스였다. 많이들 씨름으로 기억하시는 것 같다. 특이하지 않은 정통 로코를 하기 원하시는 걸까?

- 찰스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도 같다. 아마도 장동윤 배우의 멋짐을 더 많이 알리고픈 팬심 때문일 거다. ‘이렇게 멋진데 나만 알다니 아까워!’ 하는 마음.

물론 그렇게 전형적으로 멋있는 로맨스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어떤 특이점이 없는 노멀한 로맨스는 내가 했을 때 매력을 발산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떤 포인트가 있어야 내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 흔한 재벌집 대표님 이런 걸 하면 글쎄, 나와 잘 맞아서 매력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워낙 친숙한 생활 연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특징이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씨름을 한다거나, 여자들 사이에서 댄스스포츠를 한다거나(<땐뽀걸즈>), 사극에서 여장을 한다거나(<녹두전>) 하는. 대기업 이사님이 막 무게 잡고 여자주인공을 리드하는 그런 건… 글쎄. 아무튼 이제 나도 대중들이 원하는 걸 하려고 하기 때문에 내 의견을 내세우진 않으려 하지만 앞으로 좋은 로코가 들어오면 꼭 하고 싶다.

- <모래꽃>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다. 계속 실패하면서도 자기만의 속도로 늦게 피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였다. 드라마에서 마음에 품은 장면이 있나.

아빠한테 자기는 이제 씨름을 포기하려고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백두의 형들도 다 장사고, 아빠도 장사 출신인데, “아빠, 내가 미안타, 나도 이렇게 못나게 끝내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끝내게 돼서 아빠한테 창피하고 미안타”라고 한 그 장면이 뭉클했다. 보는 분들과 공감대가 있을 것 같았다. 가족에게 미안할 때가 다들 있지 않나. 내가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시간도 같이 보내고 더 챙겨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항상 미안하다.

-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나 <모래꽃> <땐뽀걸즈> 등. 출연작에서 주로 정의를 추구하지만 결핍이 있는 역할을 맡아왔다.

스스로도 결핍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인물이 무탈하고 행복한 것보단 애환이 있고 마음 한쪽에 슬픔이 있는 것이 좋다. 작품에서 중요한 신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촬영이 있는 날은 더 신경 쓴다. 감정이 들어가는 신은 완벽하게 동선과 대사와 눈빛까지 계산하려고 한다. 어디서 터트리고 어떻게 대사를 조율하는지 그런 계산을 해야 안심이 된다.

- 출연작에서 사투리를 많이 썼다. 고향이 대구인데, <오아시스>에서는 전라도 사투리까지 했다.

<뷰티풀 데이즈>에선 연변 사투리도 했고. 낯선 언어를 체화하는 걸 힘들어하지 않는 편인가. 우리나라의 방언이 정말 매력 있다고 생각한다. 사투리에는 표준어에 담을 수 없는 정서가 다 담긴다. 한국의 풍부한 언어 자원이 사투리인데, 언어적인 면에서 사투리를 표현하는 걸 재미있어 하는 편이다. 같은 경상도 사투리도 대구, 부산 사투리가 다르다. 그 지역 방언을 연기할 일이 있으면 평소에도 그 말을 쓰고 다녔다.

- 워낙 특별한 데뷔 스토리를 갖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를 하게 됐는데, 아카데믹하게 배우지 않은 것에 대한 갈급함은 없었나.

대학원을 연기로 가야 하나 고민도 했다.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에 던져졌으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다 부딪치며 배울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나에게 맞았던 것 같다. 요즘 복싱을 배우는데 복싱은 실전성을 염두에 두고 하는 스포츠다. 백날 혼자서 샌드백 치고 섀도 해봤자 실전을 안 하면 늘지 않는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부딪쳤을 때 현장에서 완성된다. 연기 고민을 많이 했지만, 쉴 틈 없이 링 위에 올라 규칙을 배웠다. 나 역시 부족하지만 후배가 조언을 구하면 실전 연기에 대해서 주로 말해준다. 아, 오디션 전에 팁을 물어본 후배가 붙었다고 연락이 왔더라. 정말 기뻤다. 연기보다 가르치는 걸 잘하는 것 같다. (웃음)

- 도파민 중독이 싫어서 쇼츠도 안 보고, 금주도 하고, 평소 SNS도 잘 하지 않는다. 인터뷰에선 외모지상주의나 배금주의에 대한 경계심도 드러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들 존재 자체로 아름답고 귀한데 천편일률적인 미를 찬양하는 게 별로 안 좋지 않을까. 그리고 SNS를 통해서 작품을 홍보하고 배우로서 해야 할 역할은 얼마든지 하려고 한다. 하지만 내 현실의 건강한 삶이 나에게 가장 소중해서 평소에는 잘 안 본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경치 좋은 곳에 가면 눈에 담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런 게 좋다. 아, 요즘 사진을 공부하고 있어서 사진으로는 많이 찍는다.

- 사진은 왜 배우나.

옛날부터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다. 연출을 하려면 사진도 잘해야 할 것 같았다. 박찬욱 감독님도 사진을 잘 찍으시지 않나. 사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스페인에서 공부를 하셨는데, 처음에 나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영화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지금도 그렇게 아신다. (웃음) 선생님이 좋아하는 영화의 장면들을 뽑아오라고 하셔서 가져간 영화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었다.

-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티저가 공개됐는데 살짝 귀띔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나.

근래 보기 힘든 파격적인 장르물이다. SBS에서 방영 예정인데 이런 장르물을 TV에서 접하는 게 참신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고현정 선배님의 연기 변신을 정말 기대해주셔도 좋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이 내게는 감정적으로 힘든 작품이었다. 원래 캐릭터를 한번에 만들기보다 현장에서 겹겹이 쌓아가는 편인데, 엄마가 살인자라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모습이 있어서 마냥 어둡게 연기할 수 없었다. 명도를 조절하는 게 어려웠다.

-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장동윤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결핍이 있고 아픔이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결핍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걸 표현하고 싶고 그 안에 인류애와 사랑이 있으면 좋겠다. 그게 가족간의 사랑일 수도 있고, 고양이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남녀간의 사랑일 수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결국 사랑이 사람을 구원한다고 믿는다.

장동윤 감독이 영향받은 영화 베스트3

1.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전부 봤다. 최근작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사회의 어두운 곳, 빈 곳을 담는 그의 뿌리가 이 영화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어서 더 집중해서 봤다.

2. <액트 오브 킬링>

감독님들은 결국 진짜 같은 것을 담고 싶어서 영화를 하는 것이 아닐까. 현실을 담아내는 게 바로 다큐이고. 이 영화를 보고 그런 충격을 받았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였고 언젠가 다큐멘터리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3.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을 사랑한다. 감히 21세기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저런 장면을 찍을 수 있을까. 설명도 말도 없이 어떻게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을까. 근데 꼭 세편만 얘기해야 하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과 에릭 로메르 감독님의 영화들도 넣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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