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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예술과 기술의 경계와 관계를 묻다, 부천영화제 AI 섹션 경향 및 추천작

올해로 28회를 맞이하는 부천영화제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AI다. AI 국제 콘퍼런스와 AI 필름 메이킹 워크숍 등 부대 행사가 마련된 가운데, AI로 제작된 15편의 흥미로운 영화들 또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 부천영화제는 우리나라 국제영화제 최초로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을 신설해 생성형 AI를 통해 제작된 단편영화들을 선보인다. 해당 영화들은 챗지피티(ChatGPT)부터 미드저니(Midjourney),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등의 이미지 AI, 피카랩(Pika Lab), 런웨이(Runway) 등의 영상 AI, 수노(Suno), 일레븐랩스(Elevenlabs) 등의 사운드 AI 등 다양한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됐다.

창작의 지평을 넓히는 영화들

원 모어 펌킨

AI 국제 콘퍼런스의 연사이자 뉴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이진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창작의 다양성’과 감상에서의 ‘감각적 확장’이라는 점에서 AI 예술이 무조건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는 볼 수 없다”(<덴 매거진>)고 말했다. 그의 답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창작의 다양성(상상력), 감각의 확장 그리고 메타-AI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이번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는 오늘날 창작자와 관객이 마주하고 있는 예술과 기술의 경계와 관계에 대한 물음과도 연결된다.

우선, 상상력을 통해 창작의 지평을 넓히는 5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권한슬 감독의 <원 모어 펌킨>은 호박 농장을 운영하는 노부부의 비밀을 그려내는 미스터리 호러다. 저승사자와 핼러윈 펌킨이라는 동서양의 이미지를 절묘하게 결합한 이 영화는 올해 제1회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AIFF)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기괴한 이미지의 현현은 프란세스코 시로 브리지아노 감독의 <트레타>에서도 만날 수 있다. 서커스와 광대를 중심으로 고딕 호러 테마의 이미지와 사운드가 조화를 이룬다. 앞선 두 영화가 장르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견우와 직녀 설화를 재해석한 박성원 감독의 <언더 더 사인 오브 더 문>과 의인화된 대도시의 풍경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는 나이스앤티스 감독의 <만사형통>은 자연과 동물이라는 인간 외적인 요소를 통해 사랑과 연대의 감정을 표현한다. 한편 AI로 미래 세계를 상상해보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이 또 있을까? 야마구치 히로키 감독의 <발전의 주기>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주제로 하는 SF 드라마로, 다종다양한 생명체들로 구성된 미래 세계의 이미지가 반복되는 가운데 성찰적 질문을 던진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의 발전이 그 해답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제너레이션

다음으로 관객의 감각을 확장할 6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우선, 리카르도 푸세티 감독의 <제너레이션>은 한 여성의 춤과 강렬한 시각효과, 내레이션만으로 이루어진 영화로, 탈서사라는 질문에 대한 일종의 대답인 체험과 감각으로서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다소 범상해 보이는 소재를 실감나게 형상화한 두편의 영화, 먼저 도플갱어 소재의 이브 클락 감독의 <어나더>는 호러영화로서의 시청각적 컨벤션을 능숙하게 구현한다. 에테리얼 귈, 르 문 감독의 <이상한 서커스의 소동>은 서커스 단원 뱀 킹스턴의 오만이 불러일으킨 불화에 대한 이야기로, 특수촬영물을 떠올리게 하는 조악하고 키치한 질감이 독선과 고립이라는 주제와 어우러진다. 생성형 AI로 제작되는 이미지가 풍기는 특유의 이질감을 영리하게 활용한 영화다. 다음 세편의 영화들은 AI를 활용해 ‘접촉’이라는 감각을 추체험시킨다. 욕망의 구현에 대한 흥미로운 우화인 애덤 콜 감독의 <키스/크래시>는 자동차 충돌과 연인의 키스를 한몸처럼 이어붙이며, 라텍스 피부를 가진 록스타 이야기를 그린 프란 가스 감독의 <라텍스 키드>는 라텍스라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압각과 통각 등 피부 감각을 극대화한다. 이 두 영화들에서 접촉의 감각이 욕망과 파멸, 고통을 상징한다면 구르칸 아타칸 감독의 <코끼리가 들려주는 말>은 인간의 탐욕과 대비되는 코끼리가 인간과 포옹하는 순간을 클라이맥스에 위치시키며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부드러운 접촉의 감각으로 상기시킨다.

마지막으로 창작에 대한 두편의 메타-AI 영화도 만날 수 있다. 버려진 이야기들이 일종의 빌런이 되어 등장하는 차세환 감독의 <파이널 씬>은 펜으로 상징되는 인간 크리에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마인드 웬크 감독의 <안타깝지만 넌 AI 아티스트인걸>은 도구를 이용하는 지위에 있으나 결국 도구 없인 의미 없는 인간 크리에이터의 무용성을 자조한다.

인간적인 답을 찾아서

안타깝지만 넌 AI 아티스트인걸

<안타깝지만 넌 AI 아티스트인걸>이 남기는 ‘도구 없이 넌 무엇이지?’라는 질문은 2023년 할리우드를 뒤흔든 작가조합 및 배우조합 파업을 떠올리게 만든다. 해당 파업은 합의로 마무리됐지만 이는 문제의 궁극적 해결이라기보단 AI 기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야기할 무궁무진한 혼돈과 갈등의 예고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AI가 영화산업에 부정적인 측면만을 야기한다고 단언할 순 없다. 요컨대 AI 기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영화가 감독들에 의해 부단히 만들어지고 있으며 관객은 그 영화를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얄궂고도 섬뜩한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이번 초청작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두편의 영화를 이야기하며 글을 끝마치고자 한다. 배준원 감독의 <폭설>과 레오 캐논 감독의 <할머니들은 어디로 떠난 걸까?>다. 두 영화는 제작 과정에 AI 기술을 적극 활용했으나 전통적인 방법대로 시나리오가 작성됐다는 점과 화자가 사라진 인물(들)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익숙했던 세상을 벗어난 두 인물, 그러니까 재난 이후 유코의 메시지를 곱씹는 <폭설>의 소요와 사라져버린 할머니들의 발자취를 상상해보는 <할머니들은 어디로 떠난 걸까?>의 아이에게서, 인간-기술-세계간의 팽팽한 긴장과 막대한 변화를 마주하고 있는 오늘날의 창작자와 관객이 보였다. 그리고 인공지능이라는 매혹적 도구이자 미지의 무기 앞에서 결국, 여전히 중요한 것은 사색과 탐구와 통찰하는 인간으로서의 의지와 노력이라는 것을, 역설적이게도 두편의 AI 영화가 지극히 인간적인 답을 궁리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지금 부천에서 15편의 AI 영화가 관객을, 관객 각자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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