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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꼽은 2019년 최고의 영화는?

북미 매체 인디와이어가 '영화감독 35인의 2019 베스트'를 공개했다. 그중 유일한 한국 감독으로 자리를 빛낸 봉준호 감독의 리스트가 눈길을 끈다. 봉준호의 리스트에는 지난 한 해 국내 영화광들의 지지를 받았던 낯익은 작품들과 함께, 아직 미개봉 상태지만 기대를 부르는 작품들이 들어서 있다. 총 8편의 작품을 무순으로 정리했다.

퍼스트 카우

First Cowㅣ켈리 레이차트ㅣ존 마가로

​높은 안목 자랑하는 제작사 A24의 작품. 전작 <믹의 지름길> <어떤 여자들>을 통해 여성 시점으로 미국이라는 국가를 조명해온 감독 켈리 레이차트는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현대 작가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서부극 <퍼스트 카우>는 사람과 동물 사이의 독특한 연결성을 부드럽게 관찰하던 레이차트의 영화들을 잇는 작품이다. 한 젊은 여성의 개가 두 개의 해골을 발견하는 시점에서부터 영화는 1820년대의 과거로 이동한다. 모피 사냥꾼 무리와 오리건 주를 횡단하는 요리사, 친구의 복수를 하고 도주 중인 중국인 이민자 사이에 모종의 유대감이 싹튼다. 대부분의 2시간짜리 영화에 비한다면 <퍼스트 카우>의 시간은 더디게 흐르며, 많은 일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대신 극도로 섬세한 감성과 절제력으로 다듬은 켈리 레이차트의 세공술을 읽을 수 있다.

아이리시맨

The Irishmanㅣ마틴 스코시즈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세계 각지의 많은 예측이 오스카 트로피를 두고 <아이리시맨>을 최고의 영화로 점치고 있다. 유력한 경쟁 상대인 <기생충>의 봉준호 역시 <아이리시맨>을 올해의 영화 대열에서 빠뜨리지 않았다. <아이리시맨>에는 마틴 스코시즈의 필모그래피에서 큰 파이를 차지해 온 갱스터 무비의 최종장을 보는 듯한 비장함이 깔려 있다. <비열한 거리> <카지노> <좋은 친구들> 등 그간 스코시즈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가책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노동자가 손에 피를 묻히게 되고, 점차 갱단과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가 되며, 끝내 이 모든 생을 반추하는 자리에서 시작과 끝을 맺는다. 스코시즈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까지 느껴지는 이 서사를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하비 케이틀의 존재감으로 새겨 넣었다.

아사코

Asako I&IIㅣ하마구치 류스케히가시데 마사히로, 카라타 에리카

전작 <해피 아워>로 평단을 경탄에 빠뜨린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똑같이 닮은 얼굴의 두 남자(히가시데 마사히로)를 사랑한 여자 아사코(카라타 에리카)의 혼란한 사랑의 궤적을 그렸다. 그러나 해외 영화제서 먼저 공개된 <아사코>를 두고, 통속적인 러브스토리에 난감함을 표한 평자들이 적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평가는 변하기 시작했고, <아사코>에서 불안을 읽어내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졌다. 통속 서사의 외피를 두른 스토리지만 사랑 이외의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더 폭넓은 현실의 은유를 볼 수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현 세대가 떠안게 된 불안감. 그리고 전작 <해피 아워>에서 관계의 균열 앞에 균형을 잃고 쓰러지던 인물들의 변형이라고 일컫을만한 오토바이 사고, 지진, 루게릭병 등의 모습도 포착됐다.

결혼 이야기

Marrige Storyㅣ노아 바움백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아이리시맨>과 더불어 넷플릭스 작품 중 지난 한 해 손에 꼽는 주목을 받았다. 다소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펼칠 것만 같은 제목과는 달리 <결혼 이야기>가 꺼내 놓은 화두는 다름 아닌 이혼. 배우 아내인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연극 연출가 남편 찰리(아담 드라이버)가 이룬 예술가 부부일지라도 언제나 서로에게 영감만 주지는 못한다. 원만한 합의를 원했던 초반 결심과는 달리 법적 공방으로 변모된 이혼의 과정은 두 사람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새긴다. 특히 복잡한 사건들을 자로 잰 듯 평평하게 골라 겨루는 변호사들의 입씨름 앞에 침묵 이외에 달리할 수 있는 행동이 없는 둘의 난감한 표정이나, 극도로 치달아 저주를 퍼붓는 지경까지 이른 싸움의 현장이 무거운 인상을 남긴다.

미드소마

Midsommarㅣ아리 애스터플로렌스 퓨, 잭 레이너, 윌 폴터

날카롭고도 새로운 시선이 돋보인 공포영화 <유전>으로 아리 애스터 감독은 주목받는 영화감독으로 급부상했다. 따라서 그의 차기작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백주의 공포극을 예고한 <미드소마>가 공개된 후 평단의 반응은 엇갈렸다. 총천연색 꽃들과 춤과 노래로 위장한 민속 축제 미드소마의 겉모양새와는 달리, 납득하기 어려운 이곳의 질서는 고어스럽고, 역겹기까지 한 충격을 안긴다. 하지만 이 기이한 모험의 끝에 다다르면 그 판단이 바뀔지도 모른다. 플로렌스 퓨가 연기한 주인공 대니가 오랜 연인 크리스티안(잭 레이너)과의 관계에서 억눌러온 비통함이 낯선 세계를 만나 치유의 단계를 거친다. 아리 애스터는 실제로 연인과의 이별을 계기로 <미드소마>를 구상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언컷 젬스

Uncut Gemsㅣ사프디 형제ㅣ아담 샌들러

아담 샌들러에게 무슨 일이. 영화를 본 비평가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경력의 최고치에 달성했다는 찬사는 그동안 아담 샌들러라는 배우에게서 예술적 야심을 읽어낸 바 없던 세간의 편견에서 비롯됐다.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의 꾸준한 부름을 받았던 아담 샌들러이니 부정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에게도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나 <펀치 드렁크 러브> 같은 드문 걸작이 존재했다. 여기에 <언컷 젬스>가 추가됐다. 전작 <굿 타임>으로 형제 감독의 계보에 새 이름을 올린 사프디 형제의 신작이다. 주연을 한 아담 샌들러는 도박에 중독된 보석상을 연기했다.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쉽게 판별할 수 없는 주인공과 더불어 불쾌하고도 종잡을 수 없는 인물들로 가득하다. 전작에서 보여준 특유의 스피디한 편집 감각과 분출하는 에너지가 이번에도 <언컷 젬스>를 추동하는 동력이 된다.

강변호텔

Hotel by the Riverㅣ홍상수기주봉, 김민희, 송선미, 권해효, 유준상

전작 <그 후> <풀잎들>과 마찬가지로 홍상수 감독의 차기작 <강변호텔>은 흑백 화면 위에서 펼쳐진다. 그의 영화에서 최다 조연으로 등장했던 배우 기주봉이 이번 작품에서는 주연을 맡았다. 죽음을 직감한 시인 영환(기주봉)이 두 아들 경수(권해효)와 병수(유준상)를 자신이 머문 강변의 호텔로 부른다. 강변호텔의 다른 한편에서는 남자에게 배신 당한 상희(김민희)가 선배 연주(송선미)와 묵으며 서로를 다독이고 있다. 두 가지 이질적인 이야기는 마주침과 엇갈림 속에 별개로 존재한다. 홍상수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 죽음에 관한 테마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인 작품. <강변호텔>로 기주봉은 로카르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마인드헌터 시즌2

Mindhunterㅣ데이빗 핀처 외ㅣ조너선 그로프, 홀트 맥칼라니

8편의 리스트에서 유일하게 영화가 아닌 드라마다. 2017년 넷플릭스에서 첫 시즌을 발표한 뒤 2년 만에 새 시즌으로 돌아온 <마인드헌터>는 프로파일러 존 더글라스의 동명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기획됐다. 수년 전 이 책에 매료된 배우 샤를리즈 테론이 판권을 사들였고, 당연히 관심을 가질 것이라 예상한 데이빗 핀처에게 추천했다. 제작 및 연출(일부 에피소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데이빗 핀처. 그의 완벽주의 성향은 시즌 2에 대한 팬들의 갈망을 2년의 오랜 기다림 끝에 손색없는 결과물로 보상했다. 실제 인물에서 기반한 살인마에 관한 연구가 핀처의 밀도 높은 연출력을 입고 태어났다. 더 깊고 풍부해진 두 번째 시즌이 결론적으로 더 유의미한 파장을 이끌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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