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과 함께 광화문에 개관했던 예술영화관 씨네큐브가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했다. 수많은 관객과 울고 웃으며 우직하게 자리를 지킨 지도 어느덧 사반세기가 흘렀다. 25주년을 맞아 씨네큐브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3일간 스페셜 토크 세션을 준비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부터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까지 6편의 작품을 수입·배급했던 티캐스트와 고레에다 감독의 특별한 인연으로 성사된 자리다. 행사 첫날이었던 4월29일의 행사는 “우리가 극장을 사랑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극장의 가치를 되짚는 시간이었다. 그해의 화제작을 소개하는 연간 기획전을 개최하고, 엄선된 프로그램을 상영하며, 영화의 가치를 존중하는 관람 문화를 선도했던 씨네큐브의 기치에 걸맞은 주제였다. 씨네큐브의 오랜 관객이자 <브로커>로 함께 호흡을 맞췄던 배우 이동휘도 게스트로 참석했다. <씨네21> 김소미 기자가 진행을 맡은 행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한국어 인사에 이동휘 배우가 일본어로 답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씨네큐브와 맺은 오랜 인연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곳에서 신작을 상영할 때마다 관객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오늘 이동휘 배우와 재회한 것처럼 전에는 배두나 배우와 대담을 진행한 기억도 난다. 씨네큐브는 내게 얼굴이 기억나는 누군가와 재회하는 장소다.” 이동휘 배우도 대학 시절부터 다녔던 씨네큐브와의 기억을 공유했다. “2016년에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여기서 봤다. 인물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참 좋았다.” 씨네큐브를 둘러싼 두 게스트의 추억은 곧장 극장과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뻗어갔다. 고레에다 감독은 대학 시절 “이제는 사라진 캠퍼스 옆 시네 클럽에서” 경험한 영화적 체험을 떠올렸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주전부리를 쥐여주던 곳이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 <카비리아의 밤>을 동시상영하던 날이었는데, 보는 내내 카메라 옆에 감독의 존재를 느끼는 경험을 했다. 이런 체험이 창작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동휘 배우도 “학창 시절부터 고독하고 외로울 때마다 유일하게 기다려주는 곳이 극장과 영화”였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애정하는 일본의 극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레에다 감독은 자신의 대학 시절부터 존재한 유일한 미니시어터인 ‘와세다 쇼치쿠’를 꼽았다. 그는 멀티플렉스가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면, 미니시어터는 “대대로 계승된 동네의 맛집”이라고 비유하면서, “개인의 기억들이 축적된 문화적 발산 기지로서” 미니시어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스트리밍 시대를 거치며 관람 방식이 다각화됐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오롯한 시간을 들여 영화를 보는 극장의 존재가 창작자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관객이 멈추지 않고 영화를 보는 공간이 있기에 창작자는 관객의 이탈을 걱정하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어느 가족> 속 시바타(안도 사쿠라)의 취조 장면을 예로 든 그는 “뤼미에르 대극장 상영 당시 2천명의 관객이 일제히 적막을 유지했다. 모두가 스크린에 집중해 무음의 시간을 공유했는데 이것이 바로 영화가 힘을 얻는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휘 배우도 해당 장면을 언급하며 “나의 배우 인생에서 본 모든 연기 중 단연 최고의 장면”이었다며 안도 사쿠라의 연기가 큰 영감을 주었다고 고백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디지털영화 시대에도 여전히 필름 촬영을 고수하는 연출자다. 이는 “효율을 중시하고 낭비를 억제하려는 시대”의 관점에선 “수고스럽고 번거로운 일”처럼 여겨지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아날로그적인 번거로움”의 가치를 강조한다. “지금 극장에서 여러분과 내가 대면하는 일도 번거로운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순간을 언제나 원하고 있지 않나.” 그의 맺음말처럼 창작자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공간. 그것이 우리가 극장으로 향하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