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촬영은 카메라의 존재가 관객의 눈에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거장 허우샤오시엔의 파트너인 마크 리 촬영감독이 10월12일 오후2시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다. <동년왕사>(1985)로 촬영감독 데뷔한 그는 <남국재견>(1996) <밀레니엄맘보>(2001)등, 허우샤오시엔의 주요 작품들을 촬영해왔다. “형식에 얽매이지 마라” “자유롭게 생각하라”가 이번 마스터클래스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인 만큼, 행사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자유로웠다.
몇년 전, 한 영화제에서 촬영감독상을 수상했던 적이 있다. 시상대에 오르기 전에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때 한 줄기 바람이 이마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영화미학이 그런 것 같다. 어디에도 존재한다! 아름다움은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내 영화철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카메라 조수 시절, 대상을 관찰하고, 인식하고, 나만의 영화미학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전시회에 가서 건축, 사진, 회화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기를 즐겼다. 물론 그 작품들이 의미하는 바를 온전히 이해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많은 감독들과 작업하는 지금, 어릴 때 받은 영감들이 알게 모르게 촬영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영화미학은 누군가가 정해놓은 것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만의 촬영철학을 찾기 위해서는 시각훈련을 꾸준히 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사물과 풍경에 관심을 가지고, 추리해야 한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봐야 어떤 요리가 좋은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함께 호흡을 맞췄던 동료 영화감독 중 몇몇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자신 만의 스타일이 없는 촬영감독이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작품처럼 작은 규모의 영화와 상업영화를 두루 작업하고 있는 상황에 빗대어 한 말이다. 하지만 촬영감독으로서 스타일이라는 것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태도 덕분인지 많은 감독들이 자유롭게 내게 이런저런 요구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자유롭게 사고하는 방식은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작업하면서 길러진 것도 있다. 촬영감독 데뷔작인 <동년왕사>로 허우샤오시엔과 첫 인연을 맺었다. 현장에서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배우 및 카메라 리허설을 하지 않는다. 정해진 게 없다보니 촬영감독인 나를 비롯해 모든 스탭들이 자유롭게 여러 가능성을 찾아야한다. 스스로 카메라 위치를 잡고, 감독님과 상의하고, 상의한 것들을 통해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나가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
자연광을 선호하게 된 것도 그때 익힌 것 중 하나다. 자연광을 사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자연광은 공간을 진실하게 표현한다. 둘째,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공간이 더 크게 확보해준다. 조명을 쓰더라도 최대한 자연광에 가깝게 세팅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동년왕사> <밀레니엄 맘보> 등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함께 한 대부분의 영화에서 40W, 200W짜리 백열등을 주로 조명으로 활용했다. 이것만은 알아두자. 조명을 쓰는 이유는 그 공간의 빛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팅할 때 가장 생명력 있는 빛을 찾아내 기억한 뒤, 현장에서 그 빛에 가장 근접한 밝기와 느낌의 조명을 구현하면 된다.
흔히 좋은 촬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숏의 목적이 분명한 촬영이 좋은 촬영이라고 말하고 싶다. 웬만하면 ‘줌(Zomm)’기능을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촬영감독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편견 아닌가. ‘줌’이 이야기에 어울리는 형식이라면 써야지. 이처럼 촬영감독은 자신의 테두리에 갇혀서는 안 된다. 모든 형식을 자유롭게 받아들일 줄 알고 적절하게 선택할 줄 알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