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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인 미국도 존재한다”

<Z> <의문의 실종>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

코스타 가브라스는 정치 영화의 거장이다. 그리스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정치 스릴러 <Z>(1969)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고백>(1970)과 <계엄령>(1973)으로 각각 체코슬로바키아와 우루과이 독재 정권을, <의문의 실종>(1982)으로 칠레 피노체트 정권과 미국 CIA의 범죄를 폭로했다. 물론 잊어서는 안될 일은 그가 정치 영화의 거장인 동시에 놀랍도록 오락적인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라는 거다. 현재 파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위원장이기도 한 가브라스는 “오기전에는 작은 지역 영화제라고 생각했는데 와봤더니 규모도 크고 굉장히 활기찬 영화제인 것 같다”는 첫 인상을 말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의문의 실종>은 가장 사랑하는 영화 중 한편이다. 어린 시절 그 영화를 보고 정치적 이면에 눈을 뜨게 됐으니까 말이다. 근데 보수적인 80년대 CIA의 추악한 음모를 다루는 영화를 어떻게 소신대로 만든 건가. =나에게도 소중한 영화다. 미국 유니버셜 영화사에서 주문이 들어와서 만든 영화였고 좋은 경험이었다. 사실 미국은 하나가 아니다. 여러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보수적이고 파시스트적인 미국도 있지만 민주적인 미국도 있다. 유니버설은 후자였고 100% 창작의 자유를 줬다. 민주적인 미국은 여전히 존재한다. 보수적인 미국에 진절머리난 미국이 오바마를 선택했잖나.

-그저께 오바마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데…. =오바마는 현재 가장 모던한 정치인이고 세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지만 현재 오바마는 아직 워싱턴이라는 극복해야 할 존재를 뛰어넘진 못한 상태다.

-당신은 정치적 탄압으로 한동안 모국 그리스에 가지 못했다. 그리스에서 현재 당신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일반적으로 좌파라고 불리는 감독들은 상황이 다 비슷하다. 나는 좌파 중에서도 비판적인 좌파에 속하므로 더더욱. 그리고 그리스 영화 상황에 대해서 말하자면…그리스 영화는 가난한 산업이다. 정부 지원이 거의 없다. 평소 그리스 동료들과 ‘한국처럼 해야한다’고 말하곤 한다. 스크린 쿼터 제도와 정부 지원이 있기 때문에 한국 영화가 이렇게 성장하게 된 거니까.

-2005년작인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를 박찬욱 감독이 리메이크 한다는 걸 알고 있나. =하고 싶은대로 하시라고 했다. 시나리오도 보지 않겠다. 오로지 완성본만 보겠노라 했다. 사실 젊은 감독이 만들기에 쉬운 주제가 아닌데 그걸 리메이크한다는 게 흥미롭다. 주제가 보편성이 있으므로 뛰어든 게 아닐까.

-과거에는 보다 직접적인 전 세계의 독재 정치를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최근작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와 <낙원은 서쪽이다>을 보면, 지금 세계를 위협하는 것이 정치가 아니라 자본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근데 자본 역시 정치다. 늘 정치였다. 그리고 세상이 변했다.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아무도 독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다. 내가 모든 영화를 통해 관심을 기울이는 건 개인이다. 개인이 시스템 내부에서 행복한가 아닌가의 문제다.

-불법 이민자를 다루는 <낙원은 서쪽이다>는 통합 유럽의 현재에 대한 지도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하고자 했던 주제는 유럽인 자신이 이민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것이다. 이민자들은 영화 속에서 곧잘 위험한 존재, 드라마틱한 존재, 비극을 품은 존재로 그려진다. 그렇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 이민자를 보통의 인간, 타인에게 공포를 주지 않는 인간으로 그리고 싶었다.

-지금 현재 유럽의 시네마는 어디에 위치한다고 생각하나. 유럽 역시 할리우드 같은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점점 각국의 영화적 아이덴티티가 상실하고 있다는 기분도 든다. =각국의 영화적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이유는 미국 영화가 전세계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항도 분명히 있다. 유럽에서는 굉장히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고, 그건 프랑스가 주도하고 있다. 여기서 개인적이라는 건 상업적이지 않은 영화를 말한다. 제작여건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국가적 지원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아주 좋은 예다.

-당신이 영화 속에서 바라는 것처럼, 언젠가는 인간들이 바라는 이상적 사회에 도달할 날이 있을 거라고 믿는가. =각자 개인들의 이상을 완전히 달성하기는 불가능하다. 여러 이상들은 충돌하게 마련이고 모두가 동의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점점 긍정적으로 보이는 측면은,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투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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