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적 환상이 개입할 여지없는 폭력적이고도 메마른 그들의 현대사는 민중들의 일상적 삶을 비극적으로 만들어 왔다. 국토가 눈물방울처럼 생겼다 하여 “인도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스리랑카는 식민 경험의 과거와 내전의 현재로 인해 그 모양처럼 슬픈 역사를 품고 있으며, 그 슬픔의 두께만큼 농밀한 작품들을 만들어 온 영화의 변방이다. 그동안 쿠바, 마그렙, 구소련, 터키 등 비서구권 영화를 발굴·소개해온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올해는 실론의 섬나라로 알려진 스리랑카 영화 특별전을 마련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타밀 반군과의 내전으로 인해 일상적 삶이 심각하게 훼손된 현대사 속에서도 독특한 영상 미학을 발전시켜온 스리랑카의 감독 5인의 12작품이 선별되었다.
감각적 사회영화를 만들어온 스리랑카의 숨은 거장 달마세나 파티라자의 영화는 <머나먼 하늘>(1974), <폰마니>(1978), <질주>(1980) 등 6편이 소개되어 주목을 끈다. 1974년 인상적 데뷔작 <머나먼 하늘>을 선보인 이래 그는 전통과 과감히 결별하고 모던한 영상, 급진적 감각, 사회적 이슈에 대한 민감한 관심을 보여 왔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그의 영화들은 과감한 앵글과 인상적 음영을 통해 매혹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영상 미학을 창조해 냈다. 초기작에서 선보이는 ‘도시 청춘 영화’는 냉혹한 도시를 배경으로 나른한 낙관성과 폐쇄적 파괴성을 보여준다. 특히 <질주>의 마지막 장면에서 찬다레와 스와르나를 번잡한 도로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 방향 상실 감각은 스리랑카 당대에 대한 비관적 증언이 된다. 농촌 및 어촌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서는 전통적 삶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이방인의 이질감이 사회를 파탄 내는 불균형한 근대화의 과정이 앙상히 드러난다. 특히나 <머나먼 하늘>, <그들이 왔다>, <폰마니>에서는 결말을 군중신으로 마감하면서 당대적 사회문제에 대한 연설적이고도 계몽적 의지를 노출시키지만, 그것이 영화 내내 전개되는 시적 아우라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실업문제와 결혼제도, 낙태와 신구 갈등 등 사회문제를 담았던 그의 영화는 대개 죽음이라는 비극적 파토스로 종결되지만 그 기저에는 지적이며 온정적인 휴머니즘이 깔려 있다.
역사가 낳은 영화적 색채
이번 영화제에서는 파티라자의 영상미학을 계승한 동시대 작가 프라시나 비타나게의 <영혼의 어두운 밤>(1996)과 <팔월의 태양>(2003), 아소카 한다가마의 <이것은 나의 달>(2000), <한쪽 날개로 날다>(2002)도 소개된다. 이들 영화들에서는 스리랑카의 오랜 내전과 정치 갈등이 일상의 삶을 우울한 악몽으로 만들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것은 나의 달>은 남장하는 여성을 통해 스리랑카 여성들의 낮은 위치와 은밀한 욕망을 묘하게 드러내는 인상적 작품이다. 이외에도 린톤 세마게의 도시비극 <소매치기>(2002)와 2005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오랜 무명의 스리랑카 영화를 세계에 알린 비묵티 자야순다라 감독이 시적 영상을 펼친 <버려진 땅>(2005)도 선보인다.
오랜 근현대사의 비극은 스리랑카의 젊은 감독들에게 내전에서 카메라를 뗄 수 없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이들의 지배적 미학은 시적이고도 비극적인 리얼리즘이 되었다. 오리엔탈 아이덴터티를 과시하거나 전통의 시각적 비주얼을 강조하는 범아시아권 영화들과는 이례적으로 현실과 일상의 문제에 집요한 관심을 보인다는 점도 스리랑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다. 여타의 비주류 아시아권 영화와 달리 익조틱한 거리감 없이 현실의 핍진성이 감각적으로 육박해온다. 그들이 겪는 폭력의 극한적 경험은 이해의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었으며 결국 시적으로 표상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비극적 우화처럼 보이는 동시대 스리랑카 영화들 등장하는 인물들의 눌변과 느린 삶의 태도를 보아도 그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