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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료를 만날 수 있는 영화제를 지향한다”
씨네21 취재팀 2009-04-30

올해 10회 맞은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정수완·유운성·조지훈 대담

축제는 언제든 특별하지만 올해 전주에서 벌어질 잔치는 더더욱 각별하지 않을까. 1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관객과 함께 꾸준히 성장해온 스스로를 치하하고, 앞으로의 각오를 다지는 아주 중요한 자리일 테니 말이다. 열번째 잔치가 막을 올리기 직전, 프로그래머 3인을 한데 모아 대담을 가진 것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올해 전주영화제는 어떤 생경하고 아름다운 작품들로 우리를 기쁘게 할까. 전주영화제는 지금껏 어떤 길을 걸어왔고, 또 어떻게 발전해갈 것인가. 호기심을 품은 채 전주영화제의 상차림을 책임지고 있는 3인, 정수완 수석 프로그래머와 유운성·조지훈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그들의 대화에서 전주영화제가 10회를 맞아 준비한 기념 상영 프로그램, 각종 회고전과 특별전은 물론, 마스터클래스에 쏟은 정성과 기대까지, 고스란히 엿볼 수 있었다.

<씨네21>=10주년을 맞아 특별히 준비한 행사가 있을 텐데.

정수완=다른 영화제들과 달리 우리는 우리 것에서 찾자. (웃음) 발표된 대로 우리가 발굴한 감독들의 작품, 다른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돌아온 감독들의 작품, 관객들이 진짜로 보고 싶어 하는 작품들. 우리 나름대로 성과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앞으로 끄집어내는 작업을 했다.

조지훈=책자도 만들고, 3인3색 DVD도 낸다.

유운성=책자는 역대 만들었던 것 중에 최고다. 놀랄 거다. 너무 두꺼워서. (웃음) 3년간 낸 책자 합친 것과 비슷한 두께다.

조지훈=스리랑카영화들과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와 페레 포르타베야의 야심작들이 다 들어있다.

<씨네21>=올해 행사 중 특히 주목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조지훈=마스터클래스를 꼽고 싶다. 국내에서 우리가 사실상 처음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는 창작자들 중심이었던 데 반해 올해는 처음으로 영화평론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유운성=평론가들도 영화가 만들어지고 이야기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 않나. 한국이 영어권이 아니다 보니까 비평적으로 외부의 담론에 대해서 폐쇄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씨네21>=10회를 맞은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정수완=나이를 생각 안 하고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웃음) 10회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다. 그래도 어떤 의미가 있다면, 사람이 앞으로만 쭉 달려가다 보면 넘어질 수도 있을 텐데, 한번쯤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계속 이렇게 가도 되는 건지. 방향을 조금 틀어야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니 10년이라는 세월이 짧은 기간은 아니더라. 프로그래머로 일한 건 4회 때부터지만. 전주영화제 처음 왔을 때를 돌이켜보면 세월이 정말 빠르구나 싶다. (웃음)

유운성=글쎄, 감회라. 영화 보는 데 어느 정도 불편함이 남아 있는 건 사실이지만 보고 나서 불만을 제시하는 관객은 줄어들고 있다. (웃음) 몇개 섹션들, 가령 특별전, 회고전 말고도 잘 안 됐던 ‘영화보다 낯선’ 섹션 같은 경우는 확실히 팬층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생겼다. GV나 씨네토크,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해보면 분위기도 좋다. 가끔 의욕이 과한 분들이 통역 불가능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웃음) 매년 찾아오는 관객들 걸 보면 기분 좋다. 이전에 초청받았던 감독들도 자기 영화가 완성되면 계속 보내준다. 3인3색했던 인연도 있겠지만, 페드로 코스타 같은 감독도 1월쯤에 연락이 와서 자기 영화가 이번에 칸에 갈 것 같다며 다음에 전주에서 상영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우리도 이제 해볼 만한 영화제가 됐나 보다 싶었다.

조지훈=자원봉사로 1회때부터 참여했다. 안 그래도 엊그제 사진을 찾아서 즐겁게 봤는데,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이 하나하나 생각났다. 그분들의 노력과 땀이 모여서 이런 결과를 낳지 않았나 싶다. 그런 점에서 10회는 그냥 열번 중 한번이고, 내년이 오히려 더 중요하지 않을까.

유운성=감독들이 좋아하는 건 그런 거다. 특급게스트와 A, B급 게스트의 구분이 없다. 비슷한 호텔에서 다 같이 계셔야 한다. (웃음) 특히 젊은 감독들이 좋아하더라. 다른 영화제에선 만날 수조차 없는데 아침 먹으면서 같이 이야기할 수도 있고. 자유로워서 좋다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라고.

조지훈=국제적인 동네영화제라고 해야 할까. (웃음) 동네 마실 나오듯이 하나둘 나와서 함께 어우러져서 영화 이야기하고.

정수완=큰 영화제 가면 먹을 게 훨씬 많을지 모르겠지만 한정된 이야기만 하는데, 우리는 막걸리 먹으러 가서 밤새도록 이야기하거든. 사실 전주는 오기 힘든 영화제다. 비행기 타고 와서 인천에 내려서 다시 네시간 내려와야 한다. 또 오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존 토레스 감독이 다시 오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 육체적인 힘듦이 전주 도착하면 없어진다. 편안한 상황에서 일하는 게 아닌데도 늘 보람차다.

유운성=존 토레스 같은 경우가 재미있었다. 작년에 있다가 가기 싫어서 울면서 갔다. 올해는 초청 안하냐는 메일이 와서 당신은 신작이 없어서 안 되지 않냐고 했더니,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고 4월초까지 완성을 한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된 것 같더라. (웃음) 다음해는 반드시 오겠다고. 사실 그 작품이 작년에 신설한 ‘워크 인 프로그레스’ 수상한 영화다. 그 돈으로 영화 찍었다고 하더라.

<씨네21>=앞으로 전주영화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정수완=크게 변할 것 같진 않다. 소재든, 주제든, 스타일이든 어떤 면에서든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고자 하는데 그게 지금은 독립영화, 예술영화인 거다. 영화제는 오락이나 산업적인 면이 아닌 다른 면을 분명히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점은 그런 영화들을 찾는 관객은 점점 늘어가고 있는데, 여전히 저널쪽에선 스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

조지훈=큰 욕심은 없다. 전주가 영화제를 크게 할 수 있는 공간도 아니고. 정작 영화제의 중요한 순간은 극장 안에서 이뤄지지 않나. 그런 점에서 관객과 감독, 창작자가 만나는 시간을 얼마나 잘 가져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가가 중요하다. 이때까지 프로그래머들이 두번 정도 크게 바뀌었는데, 전주영화제의 색깔은 거의 변하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다. 컴팩트하게. 하지만 즐겁고 내실 있게.

정수완=자랑처럼 들리겠지만, 다들 작지만 알차게 잘 하는 영화제라고 그런다. (웃음) 이번에 마켓을 신설해서 고생도 많이 했는데 적은 돈으로 알차게 준비했다. 독립, 예술영화들을 어떤 식으로 산업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식의 방향을 정확하게 정하고 가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올해 전시장과 영화관이 갖춰진 전주영화제작소라는 공간이 생겼다. 1년 내내 예술,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장소가 생긴 셈이다. 전주는 작은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매순간마다 착실하게 중요한 포인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조지훈=십주년을 맞아서 마켓을 연다. 우리가 지지하는 영화들, 저예산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지원하자는 컨셉이다.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프로듀서 피칭 같은 경우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과 공동으로 진행하는데, 프로듀서 발굴의 의미도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워크 인 프로그레스 같은 것들과 묶어서 생산적인 역할도 좀 해보자 싶더라. 의미 있으니까 지켜봐줬으면 좋겠다.

유운성=영화감독들에게 도움이 되는 영화제면 좋겠다. 우리에게 한번도 영화를 준 적은 없지만 전주영화제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씀하시는 노경태 감독님한테도. 오시면 진짜 영화 부지런히 보신다. (웃음)

정수완=레드카펫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같이 일할 동료를 만날 수 있는, 그런 영화제를 지향하고 싶다.

필리핀 영화와 특별전에 주목하시길- 프로그래머 3인의 추천작 15편 소개

1. 정수완 프로그래머 추천작

<밀랍> 언어적인 유희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가는 주목할 만한 영화다. <토니 마네로> 개인적인 취향이나 행동을 따라가면서 남미의 사회 문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남미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버마 VJ> 감독이 현장에 직접 들어가서 찍은 게 아니라 버마 내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이 찍어서 밖으로 보낸 영화들을 편집해서 만든 다큐멘터리다. <뱀파이어> 페레 포르타베야의 이전 작품 중 하나다. <뱀파이어>라는 실제 영화의 메이킹 장면에 사운드를 새롭게 입혀서 만들었다. <분노>(복원판) 원래 영화도 굉장히 좋지만 쥬세페 베르톨루치 감독이 이렇게 만들어졌으리라고 예측해서 새롭게 덧붙인 부분과의 조합이, 굉장히 좋다.

2. 유운성 프로그래머 추천작

<멜랑콜리아> 라브 디아즈는 긴 영화들을 만드는데,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왜 러닝타임이 길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2,3시간이 지나면 보는 사람을 조금씩 잡아들여서 끝날 때쯤이면 망연자실할 정도다. <상영 중> 기존의 라야 마틴 영화와는 다른 영화다. 2시간 정도의 분량을 아마추어 홈비디오 방식으로 밀어붙이는데,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역사, 사회적인 것과 한 개인이 단절될 때 이만큼의 공허감을 느끼겠구나 싶다. <다크 하버> 프레임이나 프리임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의 액션을 관장하는 능력이 무척 뛰어난 영화다. <그들이 왔다> 스리랑카영화를 처음 보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전통적인 공동체에 외부자가 들어오면서 생기는 갈등을 담는데, 그 과정에서 내부 공동체 역시 착취 관계로 연결돼 있다는 게 동시에 드러난다. <호텔 다이어리> 돈이 없지만 영화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감독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존 스미스 감독이 이런저런 영화제에 강연을 가거나 혹은 초청받았을 때 그 호텔방에서만 찍은 영화다.

3. 조지훈 프로그래머 추천작

<파르케 비아> 평생을 한 집에서 살아온 노인을 그리는 영화다. 호흡은 느리지만 충격적인 결말로 나아가는 세세한 감정들을 굉장히 잘 잡아냈다. <소년> 한 소년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통해 아주 기묘하게 필리핀 사회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다. <페라리 디노 걸> 올해 로테르담영화제에서 70편의 영화를 봤는데, 그중 베스트다. 소련의 체코 침공 당시 감독의 경험담 등을 내레이션으로 계속 보여주는데, 큰 감동을 준다. <안나와의 나흘 밤>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의 17년만의 신작이다. 패기 넘치는 영화는 아니지만 여전히 묵직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영화세계를 보여준다. <악의 화신> 2회 때 심야에서 틀었던 주제 모지카 마린스의 신작이다. 코핀조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굉장히 웃기면서도 잔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