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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새로운 욕망, 꿈틀대다

올해 상영작에서 드러나는 한국영화의 경향, ‘한국영화의 오늘’ 초청작 20편 중 6편이 여성감독 영화

2000년도 이후 한국영화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것은 ‘장르’였다.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등으로 대표되는 장르의 연금술사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장르와 접속한다. 류승완의 영화가 액션 장르에 다양한 변주를 가하고 있다면, 김지운은 코미디와 호러를 거쳐 누아르(<달콤한 인생>)와 웨스턴(<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장르 사이를 갈아탄다. 봉준호의 접근은 김지운과 엇비슷해 보이지만 아파트, 화성, 한강이라는 사회적, 역사적 공간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장르 안에서 진동을 일으킨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지난 십 년간의 주요한 모델을 보여준다.

올해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영화의 오늘’을 통해 소개되는 스무 편의 작품 중 여섯 편의 작품이 여성감독의 영화이다. 임순례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 이외에 다섯 편의 작품은 새롭게 선보이는 영화들이다. 이들 작품의 주인공은 대부분이 ‘여성’이다. 1990년대 이후 여러 여성감독들이 등퇴장을 하였지만 어느새 극장에서 만나기가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임순례의 등장은 오랜만의 일이었고, 상업적인 접점을 찾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흥미로운 것은 <우생순>의 주인공들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전작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모두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였다. 그런데 <우생순>은 임순례를 유명하게 만든 단편 <우중산책>처럼 다시금 여성의 욕망을 스크린 앞에 세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여성 대 남성의 구도가 아니다. 임순례의 영화가 대중들과 소통한 시점에 새로운 후배 혹은 동료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늘 있는 듯 하면서도 실제로 일어나기는 어려운 현상이다. 각각의 작품은 스타일의 차이가 뚜렷하지만(그것이야말로 영화적 본질이지만), <우생순>의 새로운 해석자가 된다. <미쓰 홍당무>는 선생과 제자가 연대를 하는 코믹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아버지가 다른 자매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로드무비이다. 연대를 향한 갈망은 <우생순>이 다루었던 주제의 또 다른 해석이다.

대중적 스타일을 지닌 세 편의 영화가 연대의 희망을 드러낸다면, 고태정의 <그녀들의 방>은 마지막 순간에서 희망을 멈춰버린다. 자기만의 방을 꿈꾸는 언주(정유미)는 최후의 순간에 현실의 침입에 의해 무너져 내린다. 김소영의 <민둥산>은 처음부터 희망을 꿈꾸지 않는 영화이다. 전작 <방황의 날들>과 마찬가지로 희망을 꿈꾸는 대신 삶의 조용한 응시를 선택한다. 그것은 애초부터 희망을 꿈꾸지 않으려는 지독한 열정이다. 여기에 다소 예외적인 지점으로 보이는 영화가 연변에서 촬영된 <푸른강은 흘러라>가 될 것이다. 6편의 영화의 지형도는 그 자체로 여성적 삶 속에 놓인 연대와 응시의 파노라마이다.

한국영화의 변화는 다른 곳에서도 넘쳐난다. 철학도인 손영성의 <약탈자들>과 백승빈의 <장례식의 멤버>는 매우 비슷하면서도 다른 영화이다. 두 작품은 이야기의 인과율적인 전개를 거부한다.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낳고, 그 안에는 풍부한 캐릭터와 사라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우리는 홍상수의 근작들을 통해 이러한 접근방식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손영성과 백승빈은 서사의 새로운 접근 가능성을 좀 더 과감하게 시도한다. 영화 속의 소설이 겹쳐지고, 역사적 허구가 겹쳐지면서 가상의 이야기들은 두꺼운 결을 이룬다. 여기에 마녀를 전면에 내건 박진성의 <마녀의 관>은 마녀를 둘러싼 에피소드의 연대기이다. 그 연결고리는 느슨한 듯 하면서도 심리적인 조임을 만든다. 젊은 감독들의 영화는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말하기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노경태의 두 번째 영화 <허수아비들의 땅>은 서사를 지워버리길 희망한다. 이것은 앞으로 만들어질 한국영화의 새로운 연대기이자 욕망들이다.

이러한 흐름과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는 영화가 양익준의 <똥파리>이다. 연기자 양익준은 주인공과 연출을 겸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토로한다. 그가 선택한 고전적인 접근은 김태곤의 <>과 더불어 관객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상처와 폭력의 배경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폭력을 망각한 채 폭력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자 괴물의 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