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영화는 다시 태어났다. 한때 침체된 독일영화는 2000년대에 와서 또 다른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최근 5,6년간 수많은 국제 영화제에 출품되어 수상한 것은 물론이고, 볼프강 베커의 <굿바이 레닌>을 필두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지녔을 뿐만 아니라 해외 판매에서도 성공하는 작품들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부흥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3년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된 영화가 무려 59편이나 된다는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 이는 비단 자국의 영화제란 이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독일 영화는 과거를 돌아보는 거울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왔다. 제3제국, 분단과 통일 등 파란만장했던 독일 현대사를 재조명하는 영화와 TV방송극이 대량 제작되었고 현재도 제작 중이다. 히틀러의 인간적 고뇌를 그렸다는 이유로 논란을 일으키며 흥행에도 성공했던 <몰락>과 같은 영화는 예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웠을 작품이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이제 독일인들에게 나치 과거사를 재조명할 시간적, 심리적 거리가 생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2005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던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도 나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백장미라는 반나치 단체를 조직하고 활동하던 한 여대생의 삶과 죽음을 그려 호평을 받았다. 현재 제작 중인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도 과거를 바라보려는 독일영화계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1977년 ‘독일의 가을’로 온 독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적군파 테러리스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한편, 통독 이후 동독인들이 분단 시절을 그리워하는 정서인 ‘오스탈기’(동쪽을 뜻하는 오스트와 노스탤지어를 합한 말)를 자극하는 영화들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굿바이 레닌>, <타인의 삶>을 비롯해 과거 동독의 일상을 그린 <노이루핀 영원히>, <존넨알레>와 동독 군대 생활을 다룬 코미디 <NVA>가 그러한 오스탈기의 정서를 간직한 영화들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의 독일을 발빠르게 누비는 영화들도 있다. 최근 독일영화계에는 다큐멘터리 제작이 활발한 것이 특징이다. 재독 한인 감독 조성형의 <풀 메탈 빌리지>가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최초로 막스 오퓔스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으며,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다룬 <독일 여름 동화>, <위대한 침묵>도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우범 지역인 베를린 크로이츠 베르크로 카메라를 가져가 그곳 소녀들의 첫사랑, 성관계, 마약 등 평범하지 않은 사춘기를 다룬 다큐영화 <프린체신바트>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 즉 독일 내부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이를 파고드는 독일영화계의 태도는 지금의 르네상스를 낳았다. 하지만 통일 이후의 베를린이 영화 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른 것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특히 2003년 프랑스 비평가들이 독일의 누벨바그라 지칭한 크리스티안 펫촐트, 토마스 아르셀란 감독은 현재 독일영화계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기대주다. 비슷한 시기에 베를린 영화학교에서 수학한 이들을 독일에서는 ‘베를린파’라고 부른다. 이들 영화는 사회적 약자를 주인공으로, 그들의 일상을 다루며 사회적 비판 시각을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크리스티안 펫졸트의 <옐라>는 2007년 비평가들에게 가장 호평을 받았던 영화이기도 하다. 새로운 영화작가의 등장 뿐만 아니라 독일이 다른 나라에 비해 영화진흥재단의 막강한 후원을 받는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영화진흥재단(DFFF)은 2007년에만 99개의 프로젝트에 무려 3억 9천유로를 지원했다. 다른 문화 영역은 지원액이 축소되고 있지만 영화 만은 예외다. 이러한 후원금은 제작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영화 프로그램, 영화제 등 영화와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에 지원되며 흥행성 뿐만 아니라 예술성을 고려한 영화에도 전폭적으로 지원된다. 아직 기대할 것도, 보여줄 것도 많은 독일영화의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