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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프로그래머의 추천 한국영화 7편 (+영문)
2006-10-14

서사로 무장한 저예산 한국영화의 힘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저예산이기 때문에 더 잘 봐줘야 한다는 동정론이 아니다. 이 영화들은 하이프(hype)가 육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오늘의 영화세상에서 TV 쇼와 광고와 게임이 아니라 서사영화라는 양식이 어떻게 우리를 긴장시키고 마침내 흥분으로 이끌어 가는지를 웅변한다. 이들은 영화의 존재의의를 질문하고 결국 자신의 답을 찾아낸다. 올해 부산에서 신설된 섹션인 비전에 소개되는 7편의 영화들이 그 우선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포도나무를 베어라>는 <벌이 날다>, <괜찮아 울지마>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민병훈의 세 번째 영화다. 이 영화는 현대 영화의 자기 유희적 요소를 버리고, 고전기 영화가 그러하듯 자기가 택한 인물과 주제에 몰두한다. 그 몰두는 극히 자연스럽고 투명한 것이어서, 경건하기까지 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구원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학생이지만, 당신이 무신론자라 해도 구원의 신호가 사라진 황량한 겨울 들판을 헤매는 저 가난한 청년의 영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란 힘들 것이다.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여자, 정혜>로 뉴 커런츠 상을 받은 이윤기의 신작 <아주 특별한 손님>은, <여자, 정혜>에서 시도된 그의 고립된 여성에 대한 탐구의 또 다른 결실이다. 이번에는 텅빈 무기력이 아니라, 무언가 역동적인 상황이 한 여인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그녀를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 상황을 수용하거나 저항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본다. 상황의 역동성과 주체의 미스테리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이윤기 특유의 섬세한 카메라워크는 이 긴장을 절묘한 균형감각으로 유지한다. 시퀀스가 아니라 숏 단위의 화법에 이윤기처럼 예민하고 능숙한 감독은 흔치 않다.

<마이 제너레이션>의 노동석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돌아왔다. 그의 젊은 주인공들은 여전히 깊은 무기력의 수렁에 빠져있다. 결코 징징거리지 않는 그들은 성공이 아니라 좋은 사람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결국 실패한다. 장르적 요소를 일부 끌어들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뛰어난 장면은, <마이 제너레이션>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건이 벌어지고 있을 때라기보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서 인물들이 서성일 때 등장한다. 서로가 서로의 함정이 돼버린 두 남자 주인공이 눈밭을 뒹구는 장면은 심금을 울린다. 그의 영화적 주제가 변치 않는 한, 노동석의 작품들은 21세기 한국 청년의 지워질 수 없는 영화적 초상이 될 것이다.

<방문자>로 작년에 부산을 찾았던 신동일의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놀라운 영화다. 신동일은 우리 시대의 젊은 감독 중에 드물게 한국사회의 ‘포스트 80년대’를 사유하는 감독이다. 그는 1990년대의 한국사회가 80년대의 정치적 이상주의를 비웃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상은 어디로 갔을까, 정치는 왜 구정물과 동의어로만 사용될까, 라고 오히려 질문한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그 외설적인 제목과는 달리, 실패한 정치, 실패한 관계, 빗나간 욕망에 관한 영화다. 욕망하지 않는 것 때문에 욕망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이 기괴하고 음산한 미스터리는 <방문자>를 뛰어넘는 성취다.

<후회하지 않아>

이송희일의 장편데뷔작 <후회하지 않아>는 게이 영화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영화다. 내가 아는 한 한국의 게이영화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멜로드라마다. 이송희일은 형식에 대한 고민을 뒤로 하고 게이가 사랑과 배신, 계급적 좌절과 분노를 평이한 톤으로 담아낸다. 게이의 감수성과 평이한 형식의 결합은, 그 자체만으로 게이 문화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성지혜의 장편데뷔작 <후회하지 않아>는 정박지 없는 여인의 초라한 욕망과 그로 인한 피로를 나지막한 톤과 세련된 필치로 그려낸 뛰어난 여성영화다. 여인은 까다로우나 매력적인 남자와 며칠을 보내기 위해 무거운 짐 가방을 끌고 거리를 오간다. 혹은 그가 먹을 물통을 들고 번듯하나 매정한 비탈길을 힘겹게 오른다. 작고 구질구질한데 버릴 수는 없는 것. 이 영화는 여인의 욕망에 관한 예리하고 창의적인 보고서다.

김동현의 <상어>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12월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소개됐지만, 지적이고 명상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유머러스한 이 영화의 가치는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주변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신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이 영화는 깊은 교양과 맹렬한 도전정신의 산물이다.

비전을 소개하는 지면이어서 생략했지만 전통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대변해온 뉴 커런츠 섹션에 소개되는 한국영화도 당연히 놓치지 마시길 권한다. <경의선>은 주류코미디로 데뷔했던 박흥식의, 그가 결국 영화라는 매체를 택한 이유를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진정한 데뷔작이다. 김태식의 장편 데뷔작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사라진 충만함의 상태를 갈망하는 향수의 영화다. 뛰어난 시각적 표현, 누추한 인물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기묘한 흥겨움과 리듬은 첫 영화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뛰어난 장인의 것이다.

The Power of Low-Budget Korean Cinema

It’s not a low-budget alone that gives a film more compassion. There must be an eloquent narrative that raises our tension and then leads to a powerful resolution. Such movies question their own existence and search for the answer. The seven films in the newly created Vision category are perfect examples.

Min Boung-hun’s <Pruning the Grapevine> abandons modern cinema’s demand to amuse, taking a classic approach, immersing itself within its own subject and characters. Natural and lucid, this absorption reaches unto piety. Though the protagonist is a seminary student, even atheists will have trouble not being captivated as he wanders the desolate autumn plains.

Lee Yoonki’s new film, <Ad Lib Night>, examines the topic of isolated women, as he did in <This Charming Girl>. A woman is faced with an enigmatic choice. Impenetrable to our understanding, her appearance is all we have to measure her. The tension between the dynamism of her situation and the mystery of its subject is the power driving this film. Lee’s camerawork maintains this tension with a perfectly balanced sensibility. Directors with his skill are few and far between. <My Generation> director Noh Dong-seok returns with a new work, <Boys of Tomorrow>. Though they never succeed, his protagonists never whine, simply wanting to be good people. The sight of the two leads languishing in the snow, sunk by their own pitfalls, tugs at the heartstrings. Noh’s films provide an enduring portrait of 21st century Korean youth.

Shin Dongil’s <My Friend and His Wife> is a surprise. Among our generation’s young directors, the depth of Shin’s thought is rare. He asks where our ideals have gone and why the word ‘politics’ is now synonymous with ‘cesspool’. Dealing with failed politics, failed relationships, and misdirected desire, this mystery surpasses his earlier work <Host and Guest>. Leesong Hee-il’s feature debut <No Regret>, is a departure for gay cinema. Of the Korean gay films, this is the most emotional melodrama. Leesong uses a simple tone to present love and betrayal, class frustration and rage. Sung Ji-hae’s feature debut <Before the Summer Passes Away>, is an exceptional film, using a reserved tone and exquisite touch to portray the ragged desire and weariness of an untethered woman.

Kim Dong-hyun’s <Shark> really sticks in your gut. The merits of this movie have not been sufficiently recognized. The product of a defiance to refinement, this movie uses its mythical imaginative power to reconstruct the appearances of those around us.

I urge you not to miss the movies introduced in the New Currents section, as well. Kim Tai-sik’s feature debut, <Driving with my Wife’s Lover> is a nostalgic film of longing and Park Heung-sik, who debuted with a mainstream comedy, shows precisely why he became a filmmaker with his second feature, <The Railroad>. Indeed, this seems to be his true debut.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