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서울여성영화제 15~22일까지
여자 프로레슬링 선수, 여자 페더급 권투선수….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여성영화제에는 공교롭게도 격투기 종목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여성을 다룬 영화 세 편이 초청됐다.
위부터 <걸파이트>,<가이아걸즈>,<섀도박서>영국의 킴 론지노트와 제이노 윌리엄스가 연출한 <가이아 걸즈>는 일본의 여성 레슬링 선수 그룹 `가이아 걸즈'에 카메라를 들이댄 106분짜리 다큐멘타리다. `가이아 걸즈' 합숙훈련소의 혹독한 훈련은 거의 해병대 수준이다.
영화는 한 아마추어가 프로레슬러로 데뷔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좇는다. 그는 어눌한 말투로 “사회에서 적응하기가 힘들다, 나를 표현하기도 어렵고… 그러나 링에서는 다르다”라며 레슬링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스파링에서는 상대방을 공격적으로 후려 패지 못하고, 울기가 일쑤다. 책임 코치인 여자 프로레슬러가 훈련생들에게 “여기서 지면 넌 쓰레기다, 사회에 나가봤자 아무 것도 못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대목에서, 프로가 되려면 무엇이든 죽을 각오로 해야 한다는 신념이 유독 강한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이 읽히기도 한다. 훈련과정이 잔혹해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지만, `저게 남자였다면 잔혹하게 느껴질까'는 생각이 뒤따라 붙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미국 캐린 쿠사마 감독의 <걸파이트>는 지난해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빌리 엘리어트>와 자주 비교됐던 극영화다. <빌리 엘리어트>가 소년이 발레를 하기까지의 과정인 반면, <걸파이트>는 소녀가 권투선수가 되는 얘기다. 브루클린에 살면서 가족과 사회에 대해 불만으로 가득찬 채, 외부와 문을 닫고 사는 한 소녀가 남동생의 권투 강습료를 주기 위해 권투도장에 갔다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페더급 선수가 된다. 남자가 전혀 배제되고, 여자 프로레슬링 자체에 대해서도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가이아 걸즈>와 달리 이 영화는 동료 남자선수에 대한 애정이 등장하고 권투는 스스로의 연약한 부분을 극복하고 용기를 얻는 장치로 그려진다.
이 두편에 더해 카티아 밴코우스키의 <섀도우 박서>도 여성권투계를 다룬 다큐멘타리다. 격투기는 하나의 스포츠일 수도 있고, 자기 성취감을 확인하는 직업 또는 사회적 활동일 수도 있고, <파이트 클럽>같은 영화처럼 몸에 대한 학대를 통해 정신을 맑게 하는 수단일 수도 있다. 여성이 거기에 나선다고 해서 굳이 다른 이유가 없겠지만 막상 이들 영화는 남녀의 성차와, 그것과 연관된 고정관념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올해 여성영화제는 이들 `격투기' 영화 외에도 상차림이 푸짐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김소영 교수가 한반도 남쪽 지방 여성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타리 <거류>가 개막작이고, 뉴 커런츠 등 8개 부문에 70여편을 상영한다. 한때 잉마르 베리만과 함께 살았던 리브 울만이 베리만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감독한 <부정한 관계>, 페미니스트 비디오작가 바바라 해머가 역사속에 그려진 레즈비언의 이미지를 탐색해가는 <역사수업>, 제인 오스틴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패트리샤 로제마의 <맨스필드 파크> 등을 볼 수 있다. 또 비비안 챙, 챈 루어페이, 황 유샨 등 대만 여성감독의 세명의 영화를 트는 `대만현대여성감독전', `누벨바그의 어머니'로 불리는 프랑스 아네스 바르다 특별전, <팝의 여전사>로 지난해 여성영화제에서 인기가 높았던 프라티바 파마의 특별전 등이 마련돼 있다. 오는 15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과 하이퍼텍 나다에서 상영된다.(02)54103917~9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