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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더 자유로운 몸짓으로 - <경주기행> 배우 공효진
이자연 2026-08-27

새벽길을 달리는 노란 봉고차. 트렁크엔 막내를 살해한 범인이 기절해 있다. 기이한 분위기를 띤 이 여행의 핸들은 첫째 딸 장주(공효진)가 쥐었다. 법대 출신의 영주(박소담)와 프로레슬러 출신의 동주(이연) 사이에서 유일하게 자기 가족을 일구고 살아가는 장주가 가장 무난해 보인다. 그런 장주가 가족여행의 운전대를 잡게 된 속사정을 한국의 장녀라면 모두가 이해할 것이다. 드라마 <유부녀 킬러>에서 사적 복수를 꾀하던 배우 공효진이 또 다른 복수를 꿈꾸는 <경주기행>의 장주로 돌아왔다. 전문 킬러 보나(<유부녀 킬러>)보다 어설프게나마 목표를 이루려는 장주의 노력을 배우 공효진이 친한 친구의 일처럼 상세히 들려주었다.

- 처음엔 일정이 맞지 않아 <경주기행> 출연을 고사했다. 와중에도 대본이 좋아 계속 내용을 상기했다던데, 어떤 부분이 그렇게 좋았나.

누가 봐도 흥미로운 작품이었을 것이다. 김미조 감독님 자체가 매력적인 분인데 말솜씨도 좋고 유머도 있고 무엇보다 글을 탁월하게 잘 쓴다. 그동안 수많은 대본을 읽어왔는데 이번 작품이 유독 좋았다. 장르가 뭘까 싶게 복합적이면서도 잔상이 강했다. 모든 대사가 현실적이고 캐릭터를 표현해주는 방식이 재밌었다.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대본이었다. 과거 회상 신을 읽다 울었고 씁쓸한 마음이 2~3일간 지속됐다. 스케줄 때문에 출연이 어렵겠다고 전한 뒤로도 <경주기행>만큼 솔깃한 대본이 없었고 결국 누가 장주를 하기로 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 한편으론 공효진 배우가 장주를 택한 게 의외였다. 그간 개성 강하고 돋보이는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는데 장주는 분량도 적고 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범하단 인상을 준다.

처음 대본상 분량은 더 적었고 나중에 지금과 같이 늘어났다. 이렇게 좋은 대본에서 할 게 많지 않다는 게 배우로선 아쉽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경주기행>출연을 결정한 건 이정은 배우의 캐스팅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엄마 역으로 끝장내는 걸 보고 싶었다. 아마 모두가 그러지 않았을까. 장주가 엄마를 서포트하는 격이라 엄마 역 배우와 호흡이 잘 맞아야 했는데, 이정은 배우와 내가 같은 그림을 그리는 배우란 걸 이미 알아서 별 걱정이 없었다.

- 옥실(이정은)과 장주의 관계는 어떻게 받아들였나. 장녀라고 해서 모두가 엄마한테 그렇게 헌신적이진 않다.

나도 그런 딸이 아니다. 그런데 사안이 사안인 만큼 엄마의 슬픔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형제보다 자식 잃은 슬픔이 10배 이상이라고들 말하니까. 딸 중 장주가 유일하게 아이가 있으니 그래도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늠하지 않았을까. 동생이 셋이나 되는 장녀이니 엄마의 뜻을 쉽게 저버릴 수 없었을 거고. 원을 제대로 풀어주지 않으면 엄마마저 보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배우들끼리 이 가족은 ‘복수를 해야 해, 말아야 해’라는 말을 꺼내본 적이 없을 거라고 상상했다. 막내를 그렇게 보낸 게 너무 큰 상처라 쉽게 이야기할 수 없었고 금기시된 주제가 여러 가지 있었을 것이다. 8년간 엄마가 상실을 받아들이길 바랐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했기에 엄마가 복수를 하자고 했을 때 모두가 따라나섰을 테다. 촬영하면서 배우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다. 개인적으로 처음 대본을 봤을 때의 그 느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관객으로서 이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내가 무엇이 궁금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고, 어떤 일이 펼쳐지길 기대했는지 기억했다가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끌고 가야 관객 역시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볼 것이라 생각했다.

- 옥실과 장주의 연관성을 보여주기 위해 똑같은 눈썹 문신을 한 것처럼 표현했다.

분장실에 내가 이정은 배우랑 나란히 앉아 있을 때였다. 엄마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말했다. 헤어스타일 진짜 이렇게 가냐고, <올드보이> 아니냐고. 엄마가 그렇게 컨셉을 잡는다면 장주는 어떤 설정을 가져가면 좋을지 생각하다 눈썹 문신을 떠올렸다. 엄마가 하면 나도 한다는 장주의 성격, 엄마의 충실한 딸이자 오른팔이라는 걸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분장팀이 청록색의 아이브로펜슬을 구해 약간 푸르스름한, 말 그대로 망한 눈썹 문신을 만들어줬다. 깨알 재미까지 챙길 수 있는 기회였는데 옥실의 헤어스타일이 은근 눈썹이 잘 안 보인다.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으니 많이들 알아봐주시면 좋겠다. (웃음)

- 네 가족이 봉고차에 함께 오른 숏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운전대를 잡은 장주의 표정이 의미심장하던데.

어떤 영화는 초반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기도 한다. 우리 영화도 어떤 관객에겐 그런 영화가 될 수 있겠지만, 이 초반부가 기억에 남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독님, 다른 배우들과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경주기행>의 예고편이나 시놉시스를 봤다면 가족여행을 가장한 채 가해자에게 복수하러 떠나는 여정이라는 걸 알 것이다. 이 가족이 계획한 살인이 정말 실현 가능한가 의심하며 관객들이 긴장감을 갖고 보길 바랐다. 논의 끝에 뒷자리의 동주는 세상 걱정 없이 잠들어 있고, 옥실은 옆에서 기도하듯 염주를 돌리고, 영주는 계획서를 보고 있는 장면이 완성됐다. 서로 다른 가족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장주가 영주, 동주에게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다르다. 동주에게 좀더 거칠던데, 장주는 동생들을 각각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형제가 많으면 다 똑같이 대하기가 어렵다더라. 장주도 동생들과 그런 부분이 있었을 텐데 사실 제일 얄미운 자매는 장주였을 것 같다. 엄마한테 딱 붙어서 “엄마가 하라잖아!” 외치면 동생들이 어떻게 거부했겠나. 동생들에게 가차 없이 권력을 행사하는, 말이 안 통한다 싶은 언니였을 것이다. 인기가 별로 없었겠지. (웃음) 그럼 네 자매 중 누가 인기가 좋았을까. 영주는 공부 좀 한다고 잘난 척하고, 동주도 성격이 만만치 않고, 영화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막내딸 경주가 가장 성격 좋고 예쁨 받는 딸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결이 비슷한 자매가 하나도 없어서 편가름 없이 매일 시끌시끌하게 지냈을 듯하다. 사실 배우들도 진짜 자매는 아니니 그렇게 상상만 해봤을 뿐이다. 그만큼 다양하게 생각하고 다르게 연기해볼 여지가 많아 재밌었다. 배우들마다 연기적인 성장이 뒤따랐을 작품이다.

- 그런 장면이 본인에겐 어떤 부분인가.

장주가 옥실에게 “이제 좀 그만해!”라고 소리치는 장면. 극의 분위기와 흐름이 달라지는 신이다. 복수라는 공동의 목표가 분명하게 있는데도 이들이 계속 갈등하고 불안해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영화에서 내가 가장 정확하게 전달을 잘해야 하는 장면이었다. 그날 촬영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장주가 옥실에게 영원히 내뱉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말을 꺼내고, 옥실이 장주의 마음을 비로소 알게 되는 순간이라 기억에 오래 남는다.

- “배우라면 누구나 옥실 캐릭터가 탐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극 중 옥실의 나이대가 된다면 그런 거친 엄마 역에도 도전해보고 싶나.

특정 나이가 되면 자신이 맡는 역할의 스펙트럼이 좁아지지 않을까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엔 생각이 달라졌다. 선배들을 보며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게 전보다 많아졌다는 것을 체감한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 더 큰 희망이 생겼다. 내가 지나온 10대, 20대에선 해볼 만큼 다 해본 것 같다. <미씽: 사라진 여자>의 한매도 분량은 작았지만 그 역할이 줄 수 있는 이상을 만들고자 했고 <품행제로>, 3일 촬영한 <행복>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분량에 관계없이 영화 안에선 드라마보다 더 유연하게 임해왔다. 앞으로도 움직임이 자유로운 배우이고 싶다. 그래서 내게 더 다양한 제안을 주셨으면 좋겠다. <경주기행>을 촬영하며 내가 그랬던 것처럼 후배들이 아직 저 나이가 아니라 못한다고 부러워할 만큼의 역할과 작품을 만나고 싶다. <경주기행>을 기점으로 내게 훨씬 다양한 역할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 기다릴 거고, 기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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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