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클로저 데이>의 외계 능력을 보며 많은 이들이 떠올릴 고전은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1953)이다. 클라크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를 발표하기 15년 전 작품이다. 세계 주요 도시 상공에 외계 우주선이 뜨고, 지구를 지배한 외계인들은 평화적인 방식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한다. 오버로드(Overlords)라 불리는 지배자들은 전세계에 기아와 전쟁을 없애고 풍요를 가져다준다. 인류는 차별도 폭력도 없는 세상을 누리는데, 과학 연구와 예술 창작으로부터는 멀어진다. 이어 다음 세대 어린이들에게서 변화가 나타난다. 텔레파시와 초감각 능력이 생겨나고 서로 연결된 존재처럼 행동한다. 결국 아이들은 개별성을 잃은 채 단일 정신체로 통합된다. 오버로드는 이를 “진화의 끝”이라고 설명한다. 곧이어 반전이 이어진다…. 빈스 길리건 작가의 Apple TV 시리즈 <플루리부스: 행복의 시대>(2025)의 직접적인 모태가 된 이야기이자, 연상호 감독 영화 <군체>(2026)의 간접적 모티프로 보이기도 한다.
AI 시대 인류의 연결
인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으로 초연결될 것이란 예측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인 컴퓨터 과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쓴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 2005)를 보자. 출간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2016년 알파고와 2022년 챗GPT 등장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2010년대 그들(인공지능)은 자연어 이해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 다양한 작업을 도와주는 개인 비서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라는 등 20여년 전 예측이 하나둘 실현 중이다. 다소간의 시기적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스마트폰 등장 이전에 나온 그의 전망을 읽어보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전작의 업데이트 해설판이라 할 수 있는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 된다>(The Singularity Is Nearer, 2024)로 그 논리 전개를 거칠게나마 정리해보자. 지구의 역사는 정보 진화의 역사다. 제1기는 지구 탄생 직후 원자구조의 형성, 제2기 생명 탄생과 DNA의 정보 저장, 제3기 동물의 뇌 탄생, 제4기 영장류의 엄지 사용과 기술 발전, 제5기 뇌와 디지털의 결합, 제6기 지능이 우주 전체로 확산하는 단계를 거친다는 게 이 책의 근거 있는 전제다. 하필이면 현생 인류는 약 45억년 지구 역사 가운데 제5기의 코앞을 살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30년대에 인간의 뇌가 클라우드와 연결되기 시작하고,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과 만난 우리 뇌의 능력은 수백만배 확장할 것이란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모래알 크기의 나노봇을 몸에 주입하면 모세혈관을 따라 대뇌피질에 인트라넷을 형성하고 이것이 클라우드는 물론 타인의 뇌와 무선통신하는 방식이란다. 커즈와일이 말한 ‘특이점’의 시기는 2045년. 19년 남았다.
기술적 방식이나 실현 시기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 거대한 방향에 이견을 다는 전문가는 이제 드물다. 당신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막을 수도 없다(나는 스마트폰 사용을 원치 않지만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가 없다). 문명사회가 인터넷으로 본격 연결된 지 약 30년, 그사이 우리는 타인의 얼굴보다 스마트폰을 더 많이 보게 됐다. 같은 편끼리만 대화할 일이 늘어난 사람들은 챗GPT 출시 3년여 만에 자신하고만 대화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여기에다 2025년을 문명사의 일대 전환점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더하고 싶다. 지난해부터 AI 에이전트는 스스로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모든 기술은 양날의 검이다. 그 칼자루를 인공지능이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비인간 존재가 기술의 손잡이를 쥐었다. 칼 사용자는 요리사도 될 수 있고 살인자도 될 수 있다. 도구는 이용자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인류는 고민에 빠졌다. 우리의 일, 능력, 판단, 지혜, 증오, 그리고 사랑을 어디까지 인공지능에 맡길 것인가? 인공지능과 결합 중인 인간의 뇌는 신의 영역으로 진입할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내 안에서 찾으라
스필버그가 가만히 있기도 어렵다는 말을 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그는 9·11을 겪은 이들의 자화상을 <우주전쟁>(2005)으로, 미국의 보복 전쟁에 대해서는 <뮌헨>(2005)으로 진정 어린 논평을 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언론 자유를 대놓고 침해하는 꼴을 보며 <더 포스트>(2017)를 대놓고 제작했다. <레디 플레이어 원>(2018)에서는 메타버스에 빠진 인간 사회의 살풍경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021)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준동한 이방인 혐오에 일종의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우주 전쟁>이 테러 이후 인간에 대한 질문이고 <더 포스트>가 진실 공개와 은폐 사이에서의 대답이라면, 얼핏 <더 포스트> 쪽에 가까워 보이는 <디스클로저 데이>는 오히려 질문을 향해 질주하는 영화다(스필버그가 <우주전쟁> 이후 처음 내놓은 현재 배경 작품이다). 유튜브의 드문 장점 중 하나 덕에, 우리는 그의 최신 인터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외계인은 실재하며 이미 지구에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표면적인 언급만 늘어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영화는 “우리 자신에 대한”, “정치적인 이야기”이며 “스마트폰 시대 갈라진 공동체”의 “공감”에 대한 서사임을 말하고 있다. 신의 영역을 탐하는 인류에게 스필버그가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
놀랍도록 발전한 인류 문명은 지금 이 시간에도 야만의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영화에서는 제3차 세계대전이 눈앞이다. 초월적 존재인 외계인들은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는 듯 보인다. 이를 위해 마거릿(에밀리 블런트)을 메신저로, 다니엘(조시 오코너)을 번역자로 기용했다. 그렇게 공개된 진실 앞에서 시민들은 물론 전 투태세에 돌입한 병사들마저 각성한다. “지금 전쟁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 스필버그는 세계대전조차 압도할 만한 강한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걸까. “세계 모든 질서를 뒤집고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이 필요하다는 뜻일까. 인류는 (인류가 자초한, 초국적 협력이 필요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약 2천만명의 목숨을 잃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생태계를 파괴하고 국가·진영·정파·부족간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팬데믹 정도의 경고로는 저 관성을 제어하기엔 어림도 없다는 걸 우리는 깨닫는 중이다.
아서 클라크는 핵무기와 냉전의 공포를 선취적으로 감지하고 초월적 존재를 지구에 불러들였다. 소설 후반부, 오버로드의 대표자가 인류의 과학을 통제해온 진짜 이유를 밝힌다. “물리학자들은 기껏해야 지구나 파멸시킬 수 있지만, 초심리 과학자들은 다른 별들에도 재난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개발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커즈와일의 예측 중 지구 진화 제6기를 보라). 현재 인류는 디지털과 바이오 기술을 통해 새로운 정신을 창조하려는 참이다. 이 질문을 품고 <디스클로저 데이>의 심층으로 내려가면 더 많은 문항이 고개를 내민다. 이에 대해 스필버그가 강조하는 답안은, 마거릿이 “당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얼른 달려가 그 마음부터 살피라”고 조언하는 장면들이다. 일각에서 외계인을 신격화한다는 등 억측이 나오는 지금, 내 생각은 이렇다. 이 영화는 외계 SF를 빙자한 우리 정신에 대한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