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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려낸 1990년대 상하이는 ‘되어가는 도시’였습니다” - 첫 드라마 <번화> 연출한 왕가위 감독 단독 인터뷰
김성훈 2025-07-24

- 진위청 작가의 동명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요. 이야기의 어떤 면에서 영상화를 해야겠다고 판단했나요.

이 소설의 힘은 얽히고설킨 내러티브와 일상의 디테일에 대한 섬세한 묘사에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영화적인 요소들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제 형제자매 세대가 상하이의 변화를 헤쳐나가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제가 멀리서 바라보던 변화의 물결을 직접 살아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각색하는 일은 제가 직접 체험하지 못했던 그 시대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 되었고, 홍콩에 사는 저의 현실과 그들의 상하이 경험 사이의 지리적 간극을 잇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 <번화>는 현대 상하이의 출발점인 199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30부작 드라마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의도했던 바는 상하이가 스스로를 재정의하던 바로 그 시기의 생동감을 포착하는 것이었습니다. 요동치던 1990년대는 연속성과 단절이 공존하던 시기로, 전통적인 상하이의 감성과 새로운 경제 현실이 충돌하던 시대였죠. 원작 소설의 31개 장은 하나의 모자이크처럼 느슨하고 단편적이면서도, 일상의 사소한 충돌을 통해 점차 의미를 쌓아가는 구조였습니다. 만약 영화로 만든다면 이야기를 응축시켜야 했겠지만 드라마로 각색하면 인물간의 관계가 삶의 리듬에 따라 천천히 달아오르고 식어갈 수 있습니다. 30개의 에피소드는 단순한 분량의 문제가 아니라, 이야기가 울림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구조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충분히 펼쳐질 공간이 필요했으니까요.

- 잘 알려진 대로 감독님은 상하이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겠지만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상하이 풍경은 무엇인가요.

상하이는 제 감각 속에 살아 있습니다. 여름 오후 플라타너스 아래서 울리던 매미 소리, 자갈길 위에서 딸깍거리던 자전거 종소리, 그리고 생애 처음 맛본 아이스크림 맛까지. 이 조각 같은 기억들은 제가 다섯살에 홍콩으로 건너온 이후에도 남아 있었고, 저는 수십년 동안 이 감각적 기억들을 되찾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 <번화> 속 상하이는 화려하고 활기가 넘치는 데다 역동적인 풍경을 가진 도시입니다. <번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감독님이 당시 상하이와 상하이 문화를 조사하는 데 많은 공과 시간을 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상하이의 모습 중에서 이번 작품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그려낸 1990년대 상하이는 ‘되어가는 도시’였습니다. 역사가 가속화되고, 사람들이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그 순간에는 보편적인 변신의 시와도 같은 감정이 있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단순히 네온사인과 주식 시세판이 아닌, 그 아래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마찰, 전환의 질감을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구체적인 사회경제적 맥락은 다를지라도 욕망, 사랑, 후회 같은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은 문화와 국경을 넘어 전달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해외 시청자들이 이 작품이 지닌 구체성과 동시에 공유된 인간성을 느끼길 바랍니다.

- <번화>는 외로움, 욕망, 기억, 상실 같은 온갖 감정들이 도시 풍경과 얽혀 있습니다. 감독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킨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바오와 쉬에즈(두쥐안)의 1970년대 에피소드입니다. 그들의 순수함은 제가 1978년에 처음 상하이로 돌아갔던 기억과 겹칩니다. 홍콩에서 이틀간 기차를 타고 새벽녘에 상하이 플랫폼에 내렸을 때, 사람들이 저를 바라봤죠. 나팔바지와 긴 머리는 외부 세계가 이제 막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상징이었습니다. 쉬에즈처럼, 그 도시는 무한한 가능성을 믿으며 호기심으로 떨고 있었습니다.

- 후거 배우가 연기한 아바오 캐릭터가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휩쓸리기 쉬운 환경 속에서도 정직하고, 의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후거 배우의 어떤 면모가 아바오 캐릭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나요.

후거는 상하이를 뼛속까지 간직한 배우입니다. 단지 방언뿐만 아니라, 절제와 욕망 사이의 중력처럼 작용하는 상하이의 정서를 몸으로 알고 있죠. 그는 상하이 남자들이 혼란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맞춤 양복으로 떨림을 감추고, 충성을 갑옷처럼 걸치는 방식 말이죠. 그의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체험입니다.

- 언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봤을 때 아바오라는 캐릭터를 꼭 상하이 출신 배우가 연기해야 했던 본질적인 이유가 있었나요.

물론입니다. 이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세대의 여정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오직 의지 하나로 기회를 움켜쥐며 나아가는 이야기죠. 작가는 상하이의 생태계를 언어의 리듬을 통해 되살려냈고, 후거는 아바오가 자란 동네에서 성장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바로 그 시대를 살았죠. 그런 친밀함과 문화적 DNA가 대사 하나하나에 진실을 불어넣었고, 그의 연기를 흠잡을 데 없이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만든 겁니다.

- 아바오를 둘러싼 여성 캐릭터들도 흥미로웠습니다. 링쯔(마이리), 미스 왕(탕옌), 리리 세 여성과의 관계 덕분에 아바오 캐릭터가 더 입체적으로 묘사됩니다. 얽히고설킨 관계가 서사에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여성 캐릭터를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요.

링쯔, 미스 왕, 그리고 리리는 아바오 세계의 세 기둥입니다. 링쯔는 상하이 여성 특유의 강인함을 상징합니다. 결코 부러지지 않는,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여성 기업가입니다. 그녀의 강인함은 철심을 감싼 비단과 같습니다. 평범했던 아바오에게 자신의 행운을 나누어 주었고, 아바오는 그녀의 꿈에 자금을 대며 보답하죠. 둘의 유대는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섭니다. 시장 붕괴와 위기 속에서도 골목길에서 쌓은 그녀의 충성심은 두 사람을 단단히 묶는 닻이 되었습니다. 아바오에게 그녀는 폭풍 속의 항구와 같습니다. 미스 왕은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품은 강렬한 인물입니다. 생기 넘치는 대학 졸업생에서 상하이 외무무역국의 엘리트 공무원으로 성장했으며, 프로페셔널한 외면 뒤에는 뜨거운 열정이 숨어 있습니다. 아바오와 함께일 때 그녀는 거래 전쟁터에서 전혀 물러섬이 없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그를 향해 불타오르지만 아바오는 그녀를 단지 자신의 뛰어난 파트너로만 여깁니다. 그 짝사랑의 열망이 그녀를 강하게 만들죠. 그녀의 진정한 승리는 시장 정복이 아니라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리리는 개혁 시대 최전선에서 등장한 미스터리한 존재입니다. 금융 전투에서는 대가처럼 움직이며, 그녀의 레스토랑은 경쟁자들에게는 부드럽지만 치명적인 덫입니다. 그녀와 아바오는 냉혹한 공생관계를 유지합니다. 채권 수익률과 시장 흐름을 통해 서로의 다음 수를 읽으며 움직이죠. 경쟁 속에서 쌓인 상호 존중은 날카롭고 정교합니다. 식사를 함께하면서 나누는 묵직한 눈빛. 두 사람은 사랑을 감행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생존자들입니다. 그들 사이에는 깊고, 건널 수 없는 황푸강이 흐릅니다. 이 세 여성이 함께 아바오 세계의 별자리 지도를 그려나갑니다.

- 인물간 대화 장면이 많고 대사량도 많습니다. 서사의 정보와 인물의 감정을 관객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신경 쓴 것은 무엇인가요.

서사의 명확성과 감정의 미묘함은 나란히 가야 합니다. 왜 그 둘 중 하나를 우선시해야 하나요?

- 피터 파우 촬영감독(<와호장룡>(감독 리안, 2000), <퍼햅스 러브>(감독 진가신, 2005), <무극>(감독 첸카이거, 2006) 등 촬영. <와호장룡>으로 오스카 촬영상을 수상했다. 홍콩 촬영감독으로선 최초다.-편집자)과는 <동성서취>(감독 유진위, 1993)(<동사서독>(1994) 촬영기간이 길어지면서 제작비를 충당하고 지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만든 영화. 왕가위 감독이 기획, 제작하고, <동사서독> 제작자였던 유진위가 연출했다.-편집자) 때 프로듀서와 촬영감독으로 함께 작업한 바 있습니다. 촬영 전, 피터 파우 촬영감독과 이 드라마의 룩을 어떻게 표현할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에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20년이 넘는 시간을 아우르는 이 이야기는 일종의 ‘시각 고고학’을 요구했습니다. 피터와 저는 수천장의 아카이브 사진과 다큐멘터리를 면밀히 분석했지만 완벽한 역사적 재현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결국 우리의 진짜 임무는 ‘복제’가 아니라 ‘공명’이었습니다. 향수의 도장을 걷어내고 그 아래 숨겨진 생생한 에너지를 드러내는 것이었죠. 1970년대 장면에서는 땅거미가 깔린 듯한 쑤저우강의 푸른빛과 회색 톤으로 화면을 채웠습니다. 그곳은 조용한 표면 아래 상하이의 회복력이 흐르는 은밀한 동맥과도 같았죠. 반면, 1990년대는 황푸강의 눈부신 광란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큰 도전은 상하이 야간문화의 중심지인 황허루였습니다. 우리는 그 700m 거리 전체를 실제 크기로 재현해냈고, 그곳에서 신흥 부유층이 네온사인 불빛 아래 만찬을 즐기던 장면을 담았습니다. 피터와 저는 홍콩의 밤 에너지에서 영감을 받아 수은등 조명 아래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로 번지는 빛을 활용했습니다. 그 결과, 거리는 액체 루비처럼 흐르는 강물로 변모했고, 이 색채의 교향곡은 곧 홍콩에 대한 시각적 오마주가 되었습니다.

- 말씀대로 감독님의 오랜 팬으로서 홍콩이 아닌 도시를 배경으로 한 감독님의 작품을 감상하는 게 다소 낯설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합니다. 홍콩이 아닌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낯설지는 않았나요.

복원된 황허루를 거닐며 저는 마치 1990년대 홍콩 코즈웨이베이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이 두 도시는 결합된 쌍둥이와도 같습니다. 저의 이전 영화인 <아비정전>(1990)과 <화양연화>(2000)에서는 홍콩을 통해 상하이를 담으려 했습니다. 반면 <번화>에서는 상하이를 통해 홍콩을 찾고자 했습니다. 이 두 도시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고, 한 도시의 부상은 다른 도시의 성장에도 연료가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번화>는 그 두 도시가 공유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1990년대 상하이의 젊은이를 통해 현재 젊은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가요.

이 시리즈 속 인물들에게 생존은 전장이었고, 존엄은 그들의 승리였습니다. 그들의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겨울밤 따뜻한 죽 한 그릇, 주머니 속 믿음직한 동전의 무게, 새해 전야 무도회에 막차로 받은 초대장, 늦은 밤 훠궈집에서 나누는 담배 한 개비. 자신의 운명을 다시 써내려가는 도시 안에서, 이 작은 불꽃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지켜냈습니다. 그 시대는 우리에게 불확실성 속에서 진정한 재창조가 꽃핀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시절의 몽상가들에게는 지도가 없었습니다. 다만, 가슴속에 나침반 하나씩은 품고 있었죠.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마주한 폭풍은 다르겠지만, 방향을 전환할 용기는 언제나 유효한 자산입니다. 1990년대의 상하이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동사(verb)였죠. ‘Be’라는 동사처럼, 살아 움직이는 상태.

- <번화>를 두 시간짜리 영화로 만들 거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두 시간짜리 영화로 압축한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 다음 작품은 무엇인가요.

원작 소설이 제게 가르쳐준 진실은 이것입니다. 말하지 않은 것이 때때로 가장 크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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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제트 톤 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