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킹 아이스>는 우리가 기억하는 주동우의 대표적인 이미지, 이를테면 슬픔이 체화되어 있지만 이에 매몰되지 않는 조용한 강인함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문법으로 보여준다. 영화 속 세 남녀는 백두산 여행을 통해 각자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서로를 이해해간다. 중국 배우들이 싱가포르 감독과 작업한 다국적 프로젝트이며 형식 면에서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쥴 앤 짐> 같은 누벨바그를 지향하고 있다. 때문에 <브레이킹 아이스> 속 주동우는 우리가 알던 얼굴 너머의 새로운 이미지, 즉 장르와 국가와 스타일적으로 낯선 순간들을 인상적으로 포착해낸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 심사위원으로 선정돼 한국을 찾았던 주동우와 <브레이킹 아이스>에 관해 미리 나눴던 이야기를 한국 정식 개봉에 맞춰 정리했다.
-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섹션 심사위원으로 초청돼 한국을 찾았다. 배우가 아닌 심사위원으로서 상영작의 면면을 살펴보니 어떤가.
= 원래 배우로서 시나리오나 캐릭터에 훨씬 집중해서 접근했는데, 지금은 심사위원으로 영화를 보고 있기 때문에 좀더 넓은 시야로 영화를 보려고 하고 있다. 영화가 다들 새롭고 신선하다. 이런 자리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받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장이머 감독의 <산사나무 아래>로 부산을 찾은 적이 있다. 당시 <씨네21>와 인터뷰를 하고 영화제 공식 데일리 표지도 장식했는데 혹시 기억하나.
= 물론이다. 원래 연기 경험이 전무했었다. <산사나무 아래>가 첫 작품이라서 잔뜩 긴장했던 상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표지 촬영을 할 때 파란 원피스를 입고 해운대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었다. 굉장히 웃긴 앞머리 스타일링을 하고 있었다. (웃음) 다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다양한 배우들과 교류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 어떤 배우들과 만났나.= 정말 훌륭하고 매력적인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재밌게 본 <헤어질 결심> <아가씨>를 쓴 정서경 작가와도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쳐 연락처를 주고받았는데 그 장면 자체가 무척 영화 같았다. 개막식 날 대기 장소에서는 심은경, 류승룡, 소녀시대 유리, 송중기 등 정말 많은 배우들과 교류했다. 어렸을 때 <늑대의 유혹>이란 영화가 무척 화제였다. 지금도 중국에서 정말 인기가 많은 강동원 배우와도 인사를 나눴다. 나의 팬이라며 언젠가 함께 연기하고 싶다는 말을 전해주신 분들도 있었다. 이런 꿈이 언젠가 실현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배우와 감독들과 함께 영화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영화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영화제에 온 팬들을 보면서 영화가 사람을 정말 행복하게 만드는 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먼 훗날 우리>가 한국에서 리메이크됐다. 주동우의 영화를 좋아하는 한국 관객이 정말 많다. 최근에 <소년시절의 너>가 재개봉했는데 2020년 개봉 당시보다 세배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 관객이 주동우의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 것 같나.
= 나보다는 리더로서 전체를 이끌어가는 감독님이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소년시절의 너>의 증국상 감독을 무척 존경한다. <소년시절의 너>가 다루는 엄중한 학교폭력 문제는 국경을 초월해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현실은 영화보다 더 잔혹하다. 영화에 나오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학교폭력 문제에 모두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고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거나 법적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 한국 관객이 주동우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당신의 존재가 주는 임파워링 때문인 듯하다. 특히 실제보다 스크린에서 훨씬 커 보이는 당신을 보며 힘을 받는 여성 관객이 많다.
= 배우는 현실과 허구의 캐릭터를 연결하는 사람이다. 나는 일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여성 중 하나를 연기한다. 내가 모든 여성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캐릭터를 통해 여성의 삶에 드리운 그늘을 보여줄 수 있다.
- <브레이킹 아이스>의 나나는 연길에서 가이드 일을 한다. 그는 원래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연길을 찾았던 허오펑(류호연)과 서로 호감을 느낀다. 두 사람은 나나의 가장 친한 친구 샤오(굴초소)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 함께한다. 나나의 심리와 두 남자 캐릭터와의 미묘한 관계는 어떻게 이해하며 연기했나.
= 원래 운동선수였던 나나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상처를 안고 있다. 여행 가이드 일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자 한다. 허오펑, 샤오와 만나면서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고 자유를 찾아간다. 앤서니 첸 감독이 촬영 전 배우들에게 10편의 영화를 보고 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프랑스 누벨바그 시대 작품들이 많았다. 감독님은 배우들이 누벨바그 시절의 분위기와 형식을 좀더 이해하기를 바라셨다. 사실 <브레이킹 아이스> 자체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쥴 앤 짐>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었다. 그다음에는 개별적으로 다른 영화를 몇편 더 보라는 과제를 내줬다.
- <쥴 앤 짐> 같은 스타일의 연기는 주동우에게도 처음 아니었나. 어떤 경험이었나.
= 예전에도 아트하우스 영화 작업을 했기 때문에 크게 다르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 작품들처럼 <브레이킹 아이스> 자체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극적인 갈등이나 모순이 아닌 고요함 속의 충돌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 연기적 영감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