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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간의 매력을 편집하고 있었다, <풍류일대> 지아장커 감독
조현나 사진 백종헌 2024-10-18

신작 <풍류일대>와 함께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지아장커 감독이 부산을 찾았다. <풍류일대>는 20년의 세월을 바탕으로 반복해 엇갈리는 두 남녀의 운명을, 급격한 경제성장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진 중국의 풍경을 돌아본다. 지아장커 감독은 26년 전 <소무>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시절을 상기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 코로나19 팬데믹이 <풍류일대>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정확하게는 2001년 시작한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란 기획이 <풍류일대>의 바탕이 됐다. 카메라로 수시로 촬영하는 컨셉이었고 처음엔 2~3년 정도만 진행하려 했지만 틈틈이 찍다보니 팬데믹 때까지 이어졌다. 촬영 여건이 안 좋아지면서 예전 촬영본을 꺼내 봤는데 오랜만에 보니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난 느낌이었다. 과거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한쪽 발은 과거에, 다른 한편은 미지의 세계에 담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과정을 편집하기로 결심했다. 팬데믹은 과거를 공유하고 새 시대를 여는 하나의 터닝포인트에 가깝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인공지능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편집의 마지막 단계에 당시의 상황, 팬데믹 시기를 넣으려고 했다. 과거 영상이 영화의 2/3 정도를 차지하는데 대부분의 영상이 목적을 갖고 찍은 게 아니라서 이 영상들을 다시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떻게 편집하고 배치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오래 가졌다. 선입견이나 설정 없이 편집할 수 있어 무척 자유롭고 재밌었다. 아주 매력적인 시간을 편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풍류일대> 외에도 <강호아녀> <산하고인>에서 십수년의 시간을 압축해 그리는 방식을 취한다.

단계적인 스타일의 변화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천주정>을 찍고 40대가 되면서 경험과 경력이 쌓이고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도 변화했다. 긴 시간을 통과하면서 사회 혹은 과학기술,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이 크게 변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해도 아무런 경험 없던 20대 신인감독에서 중견감독이 됐으니 말이다. 그 무렵부터 긴 시간에 인물을 투여해 그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내게 시간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모든 결과와 모든 답은 전부 시간 속에 있다고 여긴다. <산하고인>을 찍고 나서 <강호아녀>를 기획할 때는 망설였다. 이미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를 찍었는데 또 이런 영화를 찍어도 되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이 고민이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때 당시 이 작품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에 <강호아녀>를 찍었고, 지금의 <풍류일대>까지 오게 되었다. 이 작품들에선 긴 시간에 걸친 여성의 변화를 주목했다.

- <임소요> <스틸라이프> <강호아녀>에 나왔던 빈과 차오차오가 <풍류일대>에서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여러 작품에 걸쳐 이들의 헤어짐과 재화를 다루는 이유는 무엇인가.

말한대로 빈과 차오차오는 내 영화에 벌써 4번이나 나왔다. 특히 이번에는 두 인물이 <임소요>에서 입은 의상을 그대로 입었다. 하지만 빈과 차오차오 둘 다 이름만 같고 전부 다른 캐릭터다. 예를 들면 차오차오는 <강호아녀>에서는 지하 세계에 몸담은 조직폭력배 여성이었고 <임소요>에서는 어떠한 성장 서사 없이 그저 그의 젊음의 순간만을 담았다. <풍류일대>에서는 다른 영화에서와 다르게 차오차오의 성장 서사를 볼 수 있다. 두 연인이 다투고 이별하는 사랑 이야기를 반복해 다루고 있지만, <풍류일대>에 와서는 차오차오가 헤어지고 나서 어디로 갔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후반부에 마트에서 일하는 차오차오에겐 로봇만이 유일한 친구다. 하지만 그녀는 대세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세상에 사는 존재다. 사랑에 의존하는 전작의 여성상을 탈피해 아주 생동적인 방법으로 자기만의 길을 걷고 있다고, 그런 성장한 여성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다.

- 자오타오 배우와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하고 있다. 그가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주나. 그리고 작업할 때 서로 얼마나 의견을 주고받나.

작품마다 다른데 대표적인 것은 2004년에 작업한 <세계>다. 이 작품을 찍기 전까진 세계 공원의 존재도 몰랐고 거기서 공연하는 배우들의 삶에 관해서도 전혀 몰랐다. 하지만 자오타오 배우가 실제로 배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오로지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를 찍게 됐다. 그 외에 다른 영화들은 내가 다른 곳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었는데 이를테면 <스틸라이프>는 시아샤에 있을 때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천주정>은 실제 뉴스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때문에 이 영화의 여자주인공들은 자오타오 배우 자체와는 무관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 사실 영화를 준비할 때 큰 틀만 잡고 작품을 준비하는 편인데 자오타오 배우가 디테일한 질문들을 많이 던져주면서 여성 인물들의 형상을 최종적으로 만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가령 <풍류일대>에서는 차오차오의 대사가 거의 없는데 이러한 설정을 하게 된 건 장강에서 차오차오가 도시락을 사는 신을 촬영할 때였다. 배에서 도시락을구매하는 곳이 배의 모터와 가까이 있었는데 소음이 엄청나서 대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녹음기사도 이 신의 모든 사운드는 사용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때 자오타오가 실제로 물건을 살 때 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니 말없이 구매해보겠다고 제안했고, 그 제안을 수락했다. 최종적으로 자오타오가 눈빛과 몸짓으로만 연기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좋은 방법이었다. 그래서 이 신을 기점으로 편집 과정에서 전·후반부 차오차오의 대사들을 전부 없애버렸다. 새로 각본을 써서 촬영한 팬데믹 촬영분에도 아예 대사를 넣지 않았다.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으며 “AI영화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차기작에 관해 좀더 설명해준다면.

중국 역사에 관한 영화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이 작품에선 1900~ 1910년 청나라 말기의 모습을 반영하고자 한다. 10년 정도 준비를 해온 작품인데, 이 시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이 시대에 무척 많은 혁명가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AI와 관련된 영화는 5분 정도의 단편영화가 될 예정이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AI 소프트웨어 회사, AI 엔지니어와 협력해 만들고 있는데 이 시도는 내게도 처음이다.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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