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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사랑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
금성무 인터뷰
-지엔은 감정기복이 큰 역할인데,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나.
=지엔은 10년간 한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한다. 그는 손나를 너무 미워해서 포기하지 못한다. 아마 누구나 그런 경험은 있을 것이다. 1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랑하다 미워해서 포기하지 못한 적 말이다. 나도 그런 감정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을 참고했다. 촬영 중에는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주신의 연기도 도움이 됐다.
-지진희와 함께 연기한 소감은 어떤가.
=각 나라마다, 배우마다 감정표현하는 방법이나 연기법이 다르다. 중국만도 워낙 크다보니까 지역별로 연기하는 방법이 다르다. 그러나 감정을 소유하는 방식은 공통적이라고 느꼈다. 지진희와는 2∼3장면을 같이했을 뿐이라 대화를 별로 못했다. 하지만 옆에서 봤을 때 중국어를 모르는 배우가 중국어로 연기하는 것이 매우 힘든 작업일 텐데, 거기에 춤과 노래까지 다 완성해야 했으니 대단하다.
-영화 안에서 왜 춤
<퍼햅스 러브> 홍콩 프리미어 [2] - 배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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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첫인상은 차라리 거대한 영화세트장이었다. 비좁은 도로, 낡은 고층건물, 하늘을 어지럽게 가리고 있는 간판들, 그리고 분주히 오가며 목청을 높이고 있는 사람들까지, 이 모두가 어떤 영화에서라도 봤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캔톤로드에 서면 장만옥을 뒤에 태운 여명의 자전거가 달려올 것 같고, 비계로 둘러싸인 건물에선 크리스 터커와 성룡이 승강이를 벌일 듯하며, 허름한 국수집에서는 유덕화와 장학우가 국물을 들이켜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 여긴 정말 홍콩영화 속인 것이다. 하지만 ‘쇠락’이나 ‘침체’같은 단어를 쓰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 요즘 홍콩영화의 위상 탓인지, 이곳의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 또한 세피아 톤 필터가 끼어 있는 듯 갑갑하다.
12월6일 홍콩에서 프리미어 행사를 가진 진가신 감독의 신작 <퍼햅스 러브>는 이처럼 기억의 동굴 안에서 점점 희미해져가는 홍콩영화의 옛 영화(榮華)를 되살리기 위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퍼햅스 러브> 홍콩 프리미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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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상명대, 아주대 등에 출강하고 있는 황보성진씨는 그동안 틈틈이 남양주종합촬영소의 영상캠프 강사로 일하다 올해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지난해에 인천에 있는 한 청소년수련관에서 영상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독거노인들이 많은 동네였는데 아이들과 무엇을 찍을까 고민하다가,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대신해 고향의 풍경을 찍어다 드리면 어떨까 싶었다. 제대로 진행하진 못했지만, 지난해 말에 영진위의 나하나씨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라면서 영상편지 같은 것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참여하게 됐다.
-영상편지 쓰기는 반응이 어땠나.
=별로. 생각했던 것보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자주하더라. 빈의자기법 같은 심리치료를 가미한 건 그런 이유도 있다.
-결혼식 때도 보니까 언어 소통이 쉽지 않던데.
=시작 전에 가장 두려웠던
이주노동자의 영화만들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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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무비 - 카메라는 어린 영혼을 달래준다
11월24일, 마석 가구공단 한가운데 위치한 녹촌분교. 전교생을 다 합해봤자 20명이 채 되지 않는 자그마한 학교다. 비밀기지처럼 가파른 골목길 아래 숨겨진 이곳을 찾느라 가구공단 주변을 몇번이고 헤맬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들어서자 외곽에선 보이지 않는 가구공장들이 층층이 모여서 연기를 뿜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녹촌분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대개 가구공단에서 밤 늦게까지 일하는 이들이다. 그러다 보니 1학년이라고 해도 오전 수업만 하고 하교하지 않는다. 오후 느지막한 시간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먹고, 놀고, 심지어 자기까지 한다. 이명원 분교장을 비롯해서 3명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겐 부모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정문 바로 앞에 있는 놀이방에 들어섰더니 귀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편의 애니메이션을 본 아이들이 제각각 의견을 내놓느라 목청을 돋우기 시작해서다. 그중 한편이 나비효과에 관한 애니메이션이
이주노동자의 영화만들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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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혼례 촬영 실습 - 오늘만은 전문 결혼식 촬영기사처럼
다들 삼삼오오 모여서 술렁이지만, 로렌스만큼은 예외다. 카메라를 든 그는 좀처럼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필리핀 출신으로 한국에서 돌침대를 만드는 일을 한다는 그에게 “한국 오기 전엔 무슨 일을 했느냐”는 등 몇 가지 잡다한 질문을 늘어놓자 더이상 입을 열지 않는다. 나 홀로 카메라를 든 첫 촬영이기 때문에 신중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 무례한 접근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어쨌든 첫 대면에도 서툰 한국말로 이런저런 사연을 털어놓는 다른 친구들과는 좀 딴판이다. 뻘쭘해져 있는데, 전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황보성진씨가 다가와 로렌스에게 “너무 자기 친구들 위주로만 찍는 거 아냐?”라고 핀잔을 날린다.
대답 대신 신랑, 신부의 운당 앞 행진을 놓칠세라 부리나케 뛰어가는 로렌스. 둘러보니, 로렌스만 카메라를 든 게 아니다. “2명은 강의를 들은 친구들이고, 저기 1명은 그들의 친구인데 집에서 8mm 개인 카메라를 들고
이주노동자의 영화만들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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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에 관한 취재 기획은 올해 여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8월 말이었을 텐데,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에 생전 처음 보는 게시물이 하나 떴다.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외국인 근로자 자녀들을 위한 연극놀이 캠프’를 개최한다는 소식이었다. 알고 보니, 남양주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 수만 5천여명. 그러나 이들을 배려한 복지 환경은 전무했고, 이를 감안한 영진위와 문화관광부가 지역사회단체들과 함께 사회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며칠 동안의 연극캠프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7월부터 이미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영상물 제작 강의를 시작했고, 가을에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영상을 통한 기본적인 심리치료 시간도 계획되어 있었다. 미리 김칫국부터 마신 것일까. 기대와 달리 프로그램 담당자는 취재가 곤란하다고 했다. 정식 허가를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정부가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라 이주노동자들이 노출되는 걸 꺼리는데다
이주노동자의 영화만들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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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조명부가 중심에 선 이유
김수경/ 이번 노조 결성에 이르기까지의 실제 과정과 개인적 소감이 궁금하다.
윤성원/ 2001년 비둘기둥지가 컸다. 이후에 임원진에 대한 논의를 해보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촬영부가 정책연구부를 만들었다. 섣불리 노조를 만들면 찍히니까.
고병철/ 미리 찍히면 노조도 못 만드니까. (웃음)
윤성원/ 그 이후에 최 국장이 참여했다. 촬영부는 본격적으로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최 국장의 실무능력과 노동교육원이나 신문고 사업을 통해 공간을 마련한 부분이 기반이 되었다. 촬영부 노조로 먼저 출발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조명과는 최소한 같이 하자는 신중론이 펼쳐졌다. 그러다가 노조 시기를 못박자는 의견이 도출됐다. 논의 끝에 올해는 넘기지 말자고 추진위원들이 동의했다. 촬영과 조명이 중심이 된 상황에서 조감독 지부가 동참했다. 제작부는 신문고 사업 이후에 약간 저어하다가 얼마 전 화해하고 접점을 찾았다.
김
영화노조 포장마차 방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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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난의 족쇄’를 털어버리자
남대문역에서 3호터널 방향으로 걷다 보면 우리은행 근처에 포장마차 두곳이 보인다. 작은 천막에 몸을 밀어넣으니 다섯명의 남자가 앉아 있다. 어느 현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영화 동료들인 그들은 2005년 12월15일 출범할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의 숨은 살림꾼들이다. 닭똥집, 홍합탕, 꼬치 국물을 벗삼아 천천히 이야기는 시작됐다. 노변 포장마차인 탓에 툭하면 울려되는 클랙슨 소리와 광포하게 지나가는 화물차 소리가 10분 간격으로 대화를 막아선다. 어느새 닭똥집도 홍합탕도 식어버렸지만 성긴 이야기의 그물은 밤이 깊어가고 소주병이 비워질수록 촘촘해지고 예리해져간다. 찬바람이 파고드는 포장마차에서 잔을 기울이며 그들이 털어놓은 한국 영화노동자의 차가운 현실과 뜨거운 꿈.
김수경/ 영화하는 사람이 노동자로 인정받는 지난한 과정이 작은 결실을 맺는 분위기다. 그간의 과정부터 이야기해보자.
최진욱/ 영화판에서 전개된 기존 운동은 합의
영화노조 포장마차 방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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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적이고, 단순하고, 표면적이지만 그게 맞다”
지난 6월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았을 때 곽경택 감독은 “이 정도 스탭이면 기술력도 마인드도 최고다”라며 A급 태풍 같은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태풍>의 첫 시사가 열린 지 하루가 지난 12월7일, 쏟아져나온 반응을 탐색 중인 곽경택 감독을 진인사필름 사무실에서 만났다. 거대한 영화의 결과를 기다리는 담력을 캐봤더니 “크게 생각하려고 한다. 좋은 연기자, 좋은 투자·배급사를 만났고, 공들일 만큼 들였고, 고민도 할 만큼 했고, 진인사했으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셈”이라며, 대천명에 대한 믿음을 내비친다.
-<태풍> 역시 감독의 사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작품이지만, 전작들과는 다른 영화로 느껴진다.
=내 작품들 중에서도 감독의 작가적인 간섭이 가장 덜한 영화다.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스탭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감독의 공이 절대적으로 많이 든
<태풍>이 왔다! [5] - 곽경택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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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태풍>은 곽경택의 ‘6번째’ 연출작이다. 굳이 ‘6번째’임을 강조하는 것은, 그간의 그의 연출 순서에 일종의 진자 운동과도 같은 리듬이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편 데뷔작 <억수탕>(1997)을 포함한 그의 ‘홀수’ 영화들(<친구>(2001), <똥개>(2003))의 공통점은 뚜렷하다. 그것들은 아주 강한 의미에서 ‘지역 영화’들이다. 감독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부산-경남을 배경으로 하는 그 영화들에는, 단순히 공간적인 ‘배경’에 머물지 않는 ‘지역성’이 있었다. 그곳에는 진한 경상도 사투리가 있었고, 그 사투리 속에 배어 있는 강한 지역의 정서가 있었고, 그 정서를 바탕으로 밀도있게 그려지는 지역의 문화와 정치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수한 사투리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그 남자, 곽경택이 있었다. 말하자면 그 영화들에는 직접적인 체험과 밀도있는 관찰에 바탕을 둔 흡인력과 설득력이 있었다. 그것이
<태풍>이 왔다! [4] - 감독 곽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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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로 태어나서…
알다시피, 장동건은 대한민국 대표미남에서 대한민국 대표배우로 성장해왔다. 그에게 배우되기란 남자되기의 다름이 아니었다. 1998년 <연풍연가>를 끝으로 꽃미남 시절은 끝났다. 20세기를 전후해서 연풍에서 태풍으로, 그의 이미지는 바뀌었다. 그가 배우로 거듭나기 시작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이후로, 그는 한국 현대사의 혹독한 시련을 남성의 육체로 지독하게 겪어냈다. <아나키스트>(2000)에서 일제시대 허무주의 무정부주의자, <태극기 휘날리며>(2003)에서 남북을 넘나든 전쟁의 희생자, <태풍>(2005)에서 남북에 모두 버림받은 탈북자를 연기했다. 그 사이 만화주인공처럼 늘어뜨린 그의 앞머리가 사라졌다. 대신 얼굴에 군인의 검정칠이 그려졌고(<태극기…> <해안선>), 해적의 칼자국이 새겨졌다(<태풍>). 그리하여 지금, 장동건은 한국에서 가장 터프한 배우다
<태풍>이 왔다! [3] - 배우 장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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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안고 싶지만, 안지 못하는 딜레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결말을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꼭 영화를 보고나서 읽으십시오.
<태풍>을 보다가 제임스 모나코의 중얼거림이 떠올랐다. “우리는 점차 열편의 똑같은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보았던 장면들과 액션들과 인물들이 조각조각 분해된 다음 다시 합쳐져서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흥행 요소들을 이리저리 짜깁기하고 있는 <태풍>은 무엇보다 <쉬리>의 변주이다. <쉬리>는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 펼쳐지는 ‘길거리 액션’을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위협인 북한을 끌어들였다. <태풍>의 주인공 씬은 <쉬리>를 답습하면서, 냉전 ‘이후’의 역사성이 부가된 인물이다. 그는 남북한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탈북자로서, 핵무기를 동원하여 한반도 전체를 날려버리려고 한다. 아무것도 새롭지 않은 <태
<태풍>이 왔다! [2] -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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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주인공인 씬(장동건)은 두개의 태풍을 통해 한반도를 공격하려 한다. 두개의 태풍이 동시에 생성되는 경우에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흡수하면서 그 위력과 몸집을 키운다는, 이른바 ‘후지와라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국 영화사상 초유의 프로젝트에 쏟아졌던 충무로 안팎의 관심도 영화적 ‘후지와라 효과’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연 <태풍>은 스펙터클의 쾌락과 곽경택표 드라마의 힘을 함께 지닌 A급 열대풍으로 파괴력을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 질문은 마침내 답변을 얻었다. 지난 12월5일 대규모 기자시사와 VIP시사를 통해 <태풍>의 전모가 공개된 것이다. 촬영기간만 10개월, 총 제작비 150억원에 달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외양은 가히 위협적이다. “한국영화 기술력의 최대치를 보여주겠다”던 감독의 호언처럼, 강종익이 창조한 CG의 바다와 김블장치 위에서 벌어지는 선상 액션은 당대 한국영화의 기술력을 과시한다. 그렇다면 관객석으로의
<태풍>이 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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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괴수의 빅 매치
<킹콩 대 고지라> キングコング口ゴジラ(1962)
거대 괴수의 제왕 킹콩과 일본을 대표하는 괴수 고지라의 대결을 그려 큰 화제를 모았던 오락대작. 일본에서만 120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 <고지라> 시리즈 사상 최대의 흥행기록을 세웠으며 세계적으로도 <고지라> 시리즈의 대표작으로서 높은 지명도를 가진 작품이다. 시각효과 면에서는 오리지널 <킹콩>의 스톱모션 대신 일본 특유의 수트메이션과 미니어처 특촬을 활용한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러나 못생긴 얼굴로 대표되는 킹콩 수트의 조악한 조형과 극중 킹콩이 고압전류를 씹어 대전체질로 변한다는 묘사, 신장 50m의 고지라에 맞추기 위해 터무니없이 거대화된 킹콩의 설정 등은 골수 킹콩 팬들로부터 혹평을 받기도 했다.
킹콩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 영화의 기원은 다름 아닌 윌리스 오브라이언. 슬럼프에 빠져 있던 그가 재기를 준비하면서 기획했던 작
<킹콩> 연대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