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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갑부 청년에게 찾아온 첫사랑을 그린 유쾌한 멜로영화다. 고등학생 재경(현빈)은 갑부 할아버지의 10억원의 유산을 물려받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진지한 인생의 목표 따위 뒷전으로 제쳐두고 사는 문제아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인간성 교육을 위해 산골에 처박힌 고등학교로 전학가 졸업장을 따오라고 한다. 교장에게 돈을 찔러줘도 먹히지 않는 시골 촌구석에서 재경은 생활력 강하고 순수한 소녀 은환(이연희)에게 점점 빠져든다. <백만장자의 첫사랑>의 주인공 재경은 성격 빼고 모든 것이 완벽한 재벌 2세로 태어나 사랑을 통해 성격 개조를 당함으로써 진정 완벽한 인간이 되는, 드라마에서 흔히 봐온 남자형 캐릭터다.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을 쓴 김은숙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고, <아일랜드>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스타덤에 오른 현빈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TV는 사랑을 싣고>의 작가로 일하는 수진은 노교수
2006 한국영화 기상도 [5] - 멜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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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영화제 등에서 주목받은 <사과>(감독 강이관·출연 문소리)는 자신에게 이별을 고한 남자와 사랑을 고백한 남자 사이에 서 있는 한 여성을 그리는 영화로,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의 삶을 쫓는 남자의 이야기 <8월의 일요일들>(감독 이진우·출연 양은용, 오정세)도 완성돼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됐다.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갈등을 그리는 <데이지>(감독 유위강· 출연 전지현, 정우성, 이성재), 강력반 형사와 명망가 며느리의 벼랑 끝 사랑 이야기 <로망스>(감독 문승욱·출연 조재현, 김지수), 대학 시절 친구로 지내다 10여년 뒤 다시 만난 남녀의 이야기 <사랑을 놓치다>(감독 추창민·출연 설경구, 송윤아), 바람난 아내를 가진 한 남자의 질투담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감독 김태식·출연 박광정, 정보석)는 촬영을 끝마치고 후반작업 중이다. <건축학 개론>(감독
2006 한국영화 기상도 [4] - 멜로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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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의 인터넷 포르노사이트 운영진을 배경으로 음모와 배신을 그리는 누아르 스타일 영화 <러브 하우스>(감독 김판수·출연 박상욱)는 LA 촬영을 마치고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컴퓨터 전문가가 사업가의 꾐에 빠져 범죄의 세계를 경험한다는 이야기 <모노폴리>(감독 이항배·출연 양동근, 김성수)는 현재 촬영 중이며, 세상의 ‘예의없는 것들’을 상대하는 한 농아 킬러의 이야기 <예의없는 것들>(감독 박철희·출연 신하균)과 통일 1년 뒤 일어난 쿠데타를 그리는 <9시뉴스>(감독 김두영·출연 최윤영, 김정욱)는 캐스팅을 마치고 촬영에 돌입할 채비를 하고 있다. 허영만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노름에 빠지면서 음모와 배신 속에 휘말리는 주인공을 그리는 <타짜>(감독 최동훈)와 진정한 고수가 되기 위해 전국을 누비는 두 청년의 이야기 <무림고수>(감독 임순례)는 시나리오를 다지고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오는 것인
2006 한국영화 기상도 [3] - 액션·스릴러·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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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산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대작의 제작비 규모도 올라가고 있다. 이젠 순제작비 기준으로 80억원은 넘어야 대작으로 분류되는 분위기다. <괴물> <중천> <한반도>는 공히 100억원에 가까운 순제작비를 들이는 영화들이다. 세편 모두 단순히 규모와 스펙터클을 나열하기 위해 그 엄청난 돈을 쓰는 건 아니다. <괴물>은 CG로 만들어진 판타지를 통해 한국사회의 리얼리티를 드러내며, <중천>은 중국 로케이션과 다양한 미술작업으로 중간계라는 신비의 공간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하고, <한반도>는 대규모 로케이션을 통해 가상의 역사를 재현함으로써 현재의 국제 질서와 한반도의 운명을 보여준다. 2006년의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은 선해외판매나 해외마케팅 요소를 영화 속에 포함시켜놓아 엄청난 리스크를 피해가려 노력하고 있다.
‘한강에서 괴물이 나온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이 만든다.’ 이 두 문장만으로 많은 사람들을 흥분케
2006 한국영화 기상도 [2] - 대작영화+문제적 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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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와 우려 속에서 시작된 2005년 한국 영화계가 <웰컴 투 동막골>을 기점으로 다시 활력을 찾고 있다. 12월의 <태풍> <야수> <청연> 등 대작을 남겨놓은 상태라 아직 속단하긴 힘들지만, 이렇게 한껏 추켜올라간 한국영화 상승세는 2006년에도 계속될 것인가?
일단 지금 준비 중인 영화들의 목록은 화려하다. 임권택,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등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들의 영화가 모두 선보일 예정인데다가 강우석, 곽지균, 김상진, 김태균, 문승욱, 박광수, 송해성, 양윤호, 유하, 이준익, 임상수, 임순례, 장윤현, 한지승 등 중견 감독들의 신작이 관객을 맞이할 것이며 김대승, 류승완, 봉준호, 이감독(이재용), 장규성, 조근식, 장진, 최동훈 등 젊고 패기있는 감독들의 영화 또한 등장하니 기대를 해볼 만하다. 그리고 첫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려는 신인감독들과 전 작품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감독들까지 가세해 내년 한국영화
2006 한국영화 기상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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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가 명화를 만났을 때
<오로라 공주> B컷
“이런 장르를 굉장히 좋아한다. 악녀의 이미지를 생각했고, 한편으론 렘브란트,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의 명화를 생각했다. 한마디로 ‘악녀를 주인공으로 한 명화 컨셉’인 거다. 실제로 옛 명화의 모델 중에 악녀들이 많았다. 악녀와 명화가 어우러지는 느낌으로 찍은 건데, 좀 모호하다고 해서 B컷이 됐다.”
너무 예쁜 그녀와 너무 촌스런 그들
<나의 결혼원정기> B컷
“사실은 애먹었다. 영화 속에서도 수애만 예쁘게 나오고 유준상, 정재영은 촌놈으로 나오니까 포스터까지 그렇게 더 촌스럽고, 더 망가지는 이미지로 가는 걸 원치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첫 테스트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더니 다들 재미있어했다. 한낮 더위가 50도가 넘는 우즈베키스탄 시장에서 힘들게 찍은 거지만, 그곳의 서민적인 모습과 잘 어우러진 것 같다.”
포스터 사진 작가 이전호 [3] - B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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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는 광고이자, 또하나의 세계
성공 가도에 걸림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제작자, 감독의 뜻과 자신의 뜻이 일치하지 않아 물러서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전호에게 그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순수 사진이 아니라 광고 사진을 전공한 이전호는 영화포스터가 갖고 있는 천성의 제한적 기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습득한 듯싶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으로 많이 본다. 처음에는 작업자의 입장이 훨씬 컸지만, 이제는 내가 관객이라면 저 포스터를 보고, 저 영화를 보러 가고 싶을 것인가를 많이 생각한다. 이 영화가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내가 했다면, 그걸 관객에게도 똑같이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순수 사진을 해야지 뭐 하러 이거 하나.” 천성적으로 광고를 넘어서지 못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표현 세계이고, 영화를 둘러싼 또 하나의 의미 창출인 영화포스터에 대한 이전호 작가의 생각이다.
바꿔 말하면, 영화가 뛰어나야 영화포스터의 표현
포스터 사진 작가 이전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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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 혹 누군가는 극장 앞에서 이런 고민에 빠져 영화의 포스터를 관심있게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그 경험이 최근이라면, 그는 사실 포스터 사진 작가 이전호의 작품‘들’ 앞에서 망설였을 가능성이 크다. 근래 들어 그는 그만큼이나 작품 수가 많고 활발하다. 남아 있는 후반기를 포함하여 올해 상당수의 한국영화 포스터를 작업한 이전호 작가를 만나 그와 그의 포스터 작업기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전호 작가는 ‘내가 소개하고 싶은 포스터 B컷’으로 <오로라공주>와 <나의 결혼원정기>를 직접 골라 보내주기도 했다. 자, 그의 포스터 세계로 들어가보자.
“표정도 그때하고 똑같이 지어야 하나요? 사실 포인트는 손에 있었는데….” 조명 아래 서서 깍지 낀 양손가락을 조금씩 꼼지락거리면서 그가 말한다. 처음에는 좀 겸연쩍어하더니, 이내 표정이 다양해지고 동작도 익숙해진다. 매번 배우들을 불러 세웠던 그 자리에 자신이 서 있으니 이상할 법도 하지만, 몇분 지
포스터 사진 작가 이전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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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와 미녀>의 구동건은 괴상한 직업을 갖고 있으니, 이름하여 ‘애니메이션 괴물 소리 전문 성우’다. 영화에 나온 이런 황당한 직업이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등장했다 하면 뻔한 도식이 따라다니는 대표 직업들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예컨대 ‘형사’ 하면, 일단 한국에서는, 지저분한 점퍼를 입고 다니며 백이면 백 다 무식하고, 입에 육두문자를 달고 살며 사람을 예사로 패고 다닌다. 마약을 보면, 손가락으로 꾹 찍어 맛을 본 뒤 “이거 진짠데요” 따위의 멘트를 날리지 않고서는 그냥 넘어가질 못한다. 미국 형사들은 보통 둘씩 짝 지어 다니는데 하나는 졸라 떠들고 다른 하나는 몸으로 말한다. 일당 백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여, 특공대도 제압하지 못하는 테러리스트를 맨몸으로 소탕하는 은혜로운 존재들이다. 어어이, 자꾸 이러시면 영미·유미더러 “우우~ 정말 식상한데요~”를 백번은 외쳐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진다구.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직업군과 그 클리셰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뻔한 직업 & 별난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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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선생님, 감독들의 선생님
모함마디 아흐마디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다. 정치를 몰랐던 아흐마디는 <가베>의 스틸사진을 찍기 위해 모흐센 마흐말바프를 만났고, 그에게서 영화와 세상을 배웠으며, 또한 사진을 가르쳤다. 그리고 9년이 지나 아흐마디는 영화감독이 되었다. “나는 마흐말바프의 학생이었고 그와 같은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사람을 변화시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면서 나는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영화와 삶을 공유해온 두 감독은 며칠 간격을 두고 부산영화제를 찾아와 나란히 같은 의자에 앉았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마흐말바프는 “우리는 좋은 선생과 좋은 학생”이라는 아흐마디의 설명을 “우리는 좋은 친구”라고 고쳐주었다.
마흐말바프는 아흐마디의 첫 번째 극영화 <청소부 시인>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다. 민주적인 마흐말바프는 자신의 아이들을 포함한 다른 감독들에게 시나리오를 써주더라도 원형을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9] - 마흐말바프와 아흐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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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적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상실의 시대를 그리는 두 남자가 만났다. 제10회 부산영화제가 중반을 향해가던 10월9일 아침, 두 번째 작품 <러브토크>를 들고 부산을 찾은 이윤기 감독과 <흔들리는 구름>으로 언제나처럼 부산에 머무르고 있는 차이밍량 감독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독한 인간의 생채기를 포착할 만큼 섬세한 눈의 소유자라는 공통점 외에, 그들은 또 어떤 공통점을 지니고 있을까. 무엇에 아파하고,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슬퍼하며, 카메라 뒤의 고독을 무심히 즐기고 있을까. 대담은 아시아라는 땅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했고, 영화를 향한 애정의 고백으로 막을 내렸다. 서울과 타이베이의 공기를 동시에 머금고 있는 이른 아침의 대담을 여기에 싣는다. 길지 않은 이야기가 끝난 뒤 “궁금하지만 물어보지 못한 것이 너무도 많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윤기 감독에게 차이밍량은 따스한 포옹을 전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우리, 다음에 꼭 다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8] - 차이밍량과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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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악마성을 섬세하게 고찰하는 연구자
<로버트 카마이클의 엑스터시>는 잔혹한 신에게 지배당한 소년의 며칠간을 따르는 영화다. 로버트 카마이클은 방과활동으로 첼로를 켜고, 중산층 홀어머니와 살며, 사드의 책을 읽으면서 자위행위를 하는 소년. “강간범의 눈을 가졌다”고 급우들에게 놀림받는 그는 금세 마약과 폭력의 세계 속으로 발을 들인다. 그리고 친구들과 교외의 부유한 저택으로 잠입해 끔찍한 살육을 행한다. <로버트…>를 보자마자 영화를 되감아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마지막 20분의 학살극이 던져주는 시각적 테러가 지나칠 정도로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를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뮤직비디오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버라이어티>의 평처럼, <로버트…>는 확실히 튼튼한 심장을 요한다.
위험천만한 데뷔작을 내놓은 26살의 영국 청년 토머스 클레이는, 그러나 폭력을 타란티노처럼 가지고 노는 악동은 아니다.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7] - 부산의 발견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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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루저들을 연민하는 카메라
“여덟살이 최고야. 12살 이후에 겪는 일들은 죄다 모욕이지.”(8 is great. Everything after 12 is an insult) 열두살을 갓 넘긴 소년에게, 열두살을 오래전에 넘긴 젊은이가 말하자 소년은 입을 다문다. 그 소년의 집은 뉴욕 도심 밖 구질한 동네에서 모텔을 운영한다. 어니스트가 방과후 숙제보다 먼저 할 일은 모텔방 청소다. 그는 집나간 아빠 대신 두 남매를 억척스럽게 키운 엄마와 마음을 닫고 글쓰기에 취미를 붙였다. 뚱뚱하고 쪼다 같아서 좋아하는 소녀에게 남자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모텔의 장기투숙자로 찾아든 한국계 청년 샘으로부터 소년은 남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한국계 미국이주민 2세인 마이클 강 감독의 <모텔>은 못난 소년의 성장영화다. 누구나 겪는 사춘기의 예민한 순간을 드러내기에 열등감만큼 좋은 도구는 없다. 중국계인 어니스트는 가정환경, 신체적 조건, 성격 중 어느 한 가지에서도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6] - 부산의 발견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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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기억을 찬란하게 빚어내는 마술사
자그마한 몸집에 눈동자만 커다란 야마시타 노부히로는 1976년에 태어난 젊은 감독이다. 부끄러워지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하는 야마시타는 “여자들과 말도 잘 못하고, 주로 남자와 여행을 테마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런데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 그의 신작 <린다 린다 린다>는 소녀들의 마음이 조그맣게 빛나는 순간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곤 한다. 아무도 오지 않는 옥상에 혼자 만화카페를 차려놓고, 풀장을 떠다니고, 함께 장을 봐 밥을 해먹는, 지극히 사소한 기억. 프로듀서가 기획했다고는 해도 <린다 린다 린다>는 공기 속의 물방울처럼, 그순간 알아보지 않는다면 사라져버릴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는 영화다.
영화는 여고생밴드 ‘파란마음’이 위기에 처하면서 시작된다. 멤버 한명은 기타리스트 케이와 심하게 다투었고 또 다른 한명은 손을 다쳐 연주를 할 수 없다. 어찌할까 고민하던 케이는 지나가던 한국인 유학생 송(배두나)을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5] - 부산의 발견 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