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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이 16살. 자신을 “궁금한 것이 많은 소녀”라고 소개한 배우 등은희는 요즘 중국에서 반응이 심상찮은 샛별이다. 영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11살에 데뷔해 이와이 슌지 감독의 멜로 <라스트 레터>(2018), 코미디 형사물 <당인가탐안>(2020), 판타지 무협 드라마 <천성지로>(2020) 등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그는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2019)을 통해 주연배우로서 한 걸음 더 성장했다. 엄마의 죽음 이후 사적 복수를 결심하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받는 소녀 자허를 연기한 등은희는 “만화 캐릭터를 즐겨 그리고”, “엑소 백현에 열광한다”는 그 나이다운 활기찬 답변으로 작중 인물의 쓸쓸함과 괴로움을 맑게 씻어냈다.
-엄마를 죽인 소년 유레이가 석방되자 그에게 접근하는 소녀 자허를 연기했다. 또래에게 따돌림을 당하며 오로지 복수에만 집중하는 10대 소녀의 심리를 어떻게 이해했나.
=자허는 참 고집 센 영혼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배우 등은희, 무심한 듯 강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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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은 엄마를 죽인 소년범에게 복수하려는 한 소녀의 이야기로, 미성년의 치열한 성장담과 동시대 중국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일상사를 엿볼 수 있는 독립영화다. 지난해 제22회 서울국제영화제가 주순 감독에게 감독상을, 제23회 상하이국제영화제가 배우 등은희에게 신인여우상을 안겼다. 누구에게나 한번쯤 아로새겨진 열병의 계절, 그 여름 한철 동안 난생처음 느끼는 감정에 취해 배회하는 소녀의 모습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잔상으로 남아 일렁인다. 데뷔작을 만든 주순 감독, 떠오르는 신인배우 등은희의 인터뷰와 함께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에 담긴 사춘기 시절의 방황과 서정을 전한다.
무엇이든 빠르게 흡수하고 적응하는 미성년의 특권은 절망 앞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자기 몫의 불행에 어느새 체념한 것처럼 자허(등은희)의 얼굴은 늘 딱딱하게 굳어 있다. 평범했던 삶은 3년 전 자허의 엄마가 살해당한 후 주저앉았다. 레슬링 선수였던 자허의 아빠는 생계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뜨겁고도 차가운, 성장의 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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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한 화제작 <낫아웃>은 고교 야구 유망주인 광호(정재광)의 여정을 그린다. 광호는 야구를 계속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짜 휘발유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그곳에서 수현(송이재)을 만난다. 야구 하나만 바라보고 달리는 광호와 달리 수현은 언제나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상황을 관망하고, 결정적인 순간 광호가 선을 넘지 않도록 돕는다. “수현이 참 어른스러운 친구라 생각했는데 연기하면서 어깨에 짐이 많을 뿐, 아직 19살 아이라는 걸 실감했다.”
송이재는 비어 있던 수현의 전사를 꼼꼼히 써넣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수현의 이야기까지 더 들여다보고 싶게 만든다. 무용을 전공한 뒤 2017년 <SNL코리아9>의 크루로 연기를 시작한 송이재는 드라마 <퍼퓸> <웰컴2라이프>에 출연하며 차츰 영역을 넓혀왔다. 독립영화를 찍고 싶어 회사에 오디션을 잡아달라고 직접 요청했다는 그는, 그렇게 <낫아웃&g
[WHO ARE YOU] '낫아웃', 송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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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란 무엇일까? 왜 무주산골영화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지속되어야 하는 걸까?’ 조지훈 프로그래머에게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를 준비하는 기간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한다. 6월3일부터 6일까지, 6월11일부터 13일까지 2주간의 주말에 걸쳐 총 7일간 열리는 이번 영화제는 관객수를 제한하고 사전유료예약제를 도입했다. 모든 스크리닝과 이벤트는 오프라인으로 진행된다. 무주의 색을 살린 선택에 관객은 관람권 매진으로 화답했다. 영화제를 앞둔 조지훈 프로그래머에게 어떤 답을 찾았냐고 물었다. 그는 “이런 시기에도 영화는 계속 만들어지기에 영화제가 영화제의 자리에서 관객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 답했다.
-지난해 영화제를 온오프라인 분산 방식으로 개최했는데 올해는 오프라인으로만 진행한다. 선택을 내리기까지 어떤 고민이 있었나.
=지난해 무주는 특정 OTT 플랫폼과 연계해서 스크리닝하지 않고 관객의 실시간 관람이 가능하도록 온라인 상영관을 운
조지훈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 - 화제의 독립예술영화,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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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은 장르색을 구분하기 힘든 드라마다. 유품정리사라는 낯선 직업을 가진 이들의 작업은 단순한 ‘청소업체’가 행하는 물리적 행위 이상의 의미를 획득한다. 극중 유품 정리를 ‘마지막 이사’라고 표현하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듯 유품정리사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인들의 삶과 공간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을 유족들에게 전하는 일까지 한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에겐 여러 가지 장르적 재미 혹은 휴먼 다큐멘터리를 볼 때의 감동이 복합적으로 전해진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을 설계한 윤지련 작가와 사연에 의미를 더하는 연출 작업을 한 김성호 감독에게서 에피소드 곳곳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설정 뒤에 숨은 의미를 들어봤다. 드라마를 더욱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유품정리사 이야기의 출발
어느 날, <꽃보다 남자>(2009), <엔젤아이즈>(2014) 등을
윤지련 작가와 김성호 감독이 말하는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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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의 얼굴 근육은 쉴 틈이 없다. 그가 연기한 인물들이 생각에 잠길 때나 누군가를 비웃거나 화를 낼 때나 박장대소할 때도 그는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보다 몇배는 더 자주 눈썹을 들썩이고 입꼬리를 달싹거린다. 드라마 <시그널>(2016)의 박해영 경위를 연기할 때는 이런 그의 부지런한 표정이 인물의 감정보다 종종 앞설 때가 있었다. 하나 <박열>(2017)의 아나키스트 박열을 연기할 때 그의 얼굴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한결 가벼워 보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이하 <무브 투 헤븐>)에서 그가 연기하는 전직 복서 상구는 이제 막 출소한 전과자로, 더럽고 우중충하고 비관적이기까지 해서 가까이하기 싫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상구의 얼굴에선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니로를 꿈꾸며 절박하고 괴로운 마음을 쏟아내던 <파수꾼>(2010)의 기태, <사냥의 시
[인터뷰]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이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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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덕션> 전까지만 해도 홍상수 감독이 제자를 주연배우로 발탁한 적은 없었다. 이전 영화에 출연한 제자들이 있었지만, 극을 온전히 이끄는 역할까지는 아니었다. <인트로덕션>의 주연배우 신석호는 무엇이 달랐을까. 확실한 건 훌쩍 큰 키에 동그랗고 큰 눈을 가진 신석호를 극의 중심에 놓자,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중년의 허위의식’이 아닌 ‘상대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순수’에 대한 이야기로 변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홍 감독도 그에게 자세한 주문을 하기보다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냥 너를 보여줘”라고 말했단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인트로덕션>은 영호(신석호)가 3장에 걸쳐 아버지와 연인, 대배우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신석호는 점점 투명하고 간결해지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세계에 걸맞은 사람이었다.
영호 관계를 주도해나가는 인물이라기보다 관계에 순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남에게 의지가 되는 사람이고 싶다.
[WHO ARE YOU] '인트로덕션', 신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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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엘라>는 내 커리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영화다. 엠마 스톤을 위한 코스튬만 47벌 만들었다. 하지만 내 커리어에서 가장 거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도전이었다. 그 이후 많은 기회가 열렸다.
사람들도 빅토리아 시대물을 주로 맡았던 내가 디스토피아 영화의 의상을 만든다고 하니 놀라워했다. 하지만 <크루엘라>는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시대를 다룬다.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은 준비하는 데 많은 영감을 주었다. 내가 경험한 시기라서 당시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었고 유행했던 디자인이 시대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아 탄생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크루엘라>를 준비하면서 1970년대 잡지를 많이 봤다. 요즘은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다. <보그> 같은 패션지는 남작 부인(엠마 톰슨)의 하이패션을 위해 참고했다. 에스텔라/크루엘라는 당시 독립적으로 활동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나 존 갈리아노 스타일을
[스페셜] '크루엘라' 제니 비반 의상감독 코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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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런던, 펑크록. <크루엘라>의 감독 크레이그 길레스피는 이 세 키워드만 가지고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디즈니 영화를 인디영화처럼 찍었다는 감독의 말이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는데, 인터뷰를 마칠 때쯤 되자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4월 19일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과 진행한 일대일 비디오 인터뷰를 정리해 전한다.
-처음 <크루엘라>의 감독을 제안받았을 때, 어떤 이미지로 크루엘라를 떠올렸나.
=제일 먼저 떠올린 건 펑크록 밴드 블론디였다. 물론 이들은 런던 출신은 아니지만, 블론디의 1976년 앨범이 생각났다. 1970년대, 런던, 펑크록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으로 사용될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세팅에 엠마 스톤을 대입하고 보니 아이코닉한 블론디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1970년, 런던, 펑크록. 영화의 세팅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나왔다. 영화의 룩에도 이 키워드들이 중요했을
[스페셜] '크루엘라'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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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빌런의 등장이다. <크루엘라>는 <101마리 달마시안>의 악역 크루엘라를 주인공으로 하되 197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그를 새롭게 재창조한 영화다. 패션에 대한 재능은 뛰어나지만 이를 발휘하지 못하던 ‘에스텔라’가 런던 패션계의 1인자 바로네스 남작 부인을 만난 뒤 ‘크루엘라’로 변화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조명한다. <크루엘라>는 2021년 5월 26일 전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영화를 관람하기 전, <크루엘라>의 기대 포인트를 몇 가지 소개한다. 영화를 연출한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과 의상을 담당한 제니 비반 의상감독의 인터뷰도 함께 전한다.
화이트, 블랙, 레드. 크루엘라는 정확히 세 가지 색으로 그려낼 수 있는 인물이다. 창백한 피부에 머리의 반은 화이트, 반은 블랙으로 물들이고 레드 립을 고수하는 크루엘라는, 다채로운 색감의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외형에서부터 완전히 차별화된 인물이다. 크루엘라는 애니
[스페셜] '크루엘라' 미리 보기, 새 시대의 디즈니 악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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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서형, 이보영의 조합으로 일찍이 화제를 모은 드라마 <마인>엔 시선을 잡아끄는 배우가 한명 더 있다. 화려한 장미의 전쟁 사이에서 자기만의 푸릇함과 청초함을 각인시키고 있는 신예 정이서다. 재벌가 집안에 입성한 가난한 다둥이 집안의 장녀인 유연(정이서)은 착실한 메이드로 성장하면서 재벌 그룹의 장손 수혁(차학연)과의 사랑도 쟁취해나가는 인물. 김기영 감독의 클래식에서 학습한 대로 언젠가 부잣집의 조용한 게임체인저로 활약하리라 기대되는 신세대 하녀의 등장이다.
또래 배우들 사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고전적이고 서늘한 생김새 덕분에 정이서의 무표정은 범접할 수 없는 기묘한 기운을 종종 뿜어낸다. 그 남다름을 일찍이 알아본 봉준호 감독의 안목에 힘입어 <기생충>에서 피자 사장 역할로 시동을 걸었던 정이서는 이제 <마인>에서 자기만의 리듬과 속도로 뻗어나간다.
신세대 메이드 감독님이 <마인>의 김유연은 가난한 집안의 딸이지만 전형적인
[WHO ARE YOU] 드라마 '마인', 정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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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으로는 대단히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굉장히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사이. 아파트 옆집에 사는 사이가 그렇다. 진아(공승연)의 옆집으로 이사 온 성훈(서현우)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제 안면을 튼 진아에게 ‘옆집’이라 부르며 살갑게 대하고, 고독사한 앞선 세입자를 위해 제사를 지내기까지 한다. 성훈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진아에게 부담스럽지 않고 유연하게 다른 방식의 삶을 보여준다.
이런 성훈만의 질감을 만들어낸 배우 서현우는 요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령>(감독 이해영) 촬영을 마무리하고, 라이브 더빙쇼 <이국정원> 공연을 돌고 있으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모럴센스>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혼자 사는 사람들>로 대화를 나눈 건 <이국정원> 서울 공연과 부산 공연 사이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대본 읽을 때 어떤 이야기로 다가왔나.
=처음엔 굉장히 쓸쓸하게 느껴졌다. 성훈은 진아와 다른 질감을 가진 캐릭
[인터뷰] '혼자 사는 사람들' 서현우 - 심장이 뛰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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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이 온다’는 전언에 익숙해질 무렵 2000년대생들도 성인이 되었다. 스무살의 콜센터 신입사원 수진을 연기한 배우 정다은도 그렇다. 이제 막 만 20살이 된 그가 일터의 선배들에게 싹싹하게 다가가려 노력했다는 점에서는 진아(공승연)를 따르는 수진을 닮았다. 그러나 모든 게 처음인 수진과 달리 정다은은 2016년 단편 <동물원>으로 데뷔한 이래 <청년경찰> <여중생 A> 등에 출연하며 경험을 쌓았고, <선희와 슬기>로 제56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자배우상 후보에 오른 경력이 있다.
지난해 웹드라마 <연애혁명>에서 양민지 역을 맡아 또래 관객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수진처럼 2002년 월드컵의 열기는 잘 몰랐지만, 수진보다 한층 성숙한 태도로 사회인의 자아를 다져온 배우 정다은을 만났다.
-모든 게 어색하지만 잘해보고 싶은 수진에게서 사회 초년생의 긴장과 설렘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인터뷰] '혼자 사는 사람들' 정다은 - 잘할 수 있는, 잘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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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공승연을 섭외한 건 영화를 준비하며 한 선택 중 가장 잘한 것이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보고 나면 홍성은 감독의 자신감에 곧바로 수긍하게 된다. 공승연이 연기한 진아는 대면 관계엔 서툴지만, 전화 너머의 고객은 능숙하게 응대하는 콜센터의 에이스 직원이다. 신입사원 수진(정다은)과 옆집의 새 이웃 성훈(서현우)을 만난 뒤로 타인과 일절 교류하지 않던 진아의 삶에 균열이 생긴다.
드라마 <너도 인간이니?>의 경호원 소봉, <꽃파당: 조선혼담공작소>의 매파 개똥이 등 대체로 긍정적이고 밝은 인물을 맡아온 공승연에게 진아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차분하면서도 다소 어두운 진아를 이해하는 게 처음엔 어려웠다. 감독님에게 계속 질문하며 진아의 삶을 탐색해나갔다.” 스크린 속 자신이 아직 어색하다던 공승연은 첫 장편 주연작 <혼자 사는 사람들>로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배우상이란 값진 결과를 얻었다.
-처음 작품을 택할 때 고민이
[인터뷰] '혼자 사는 사람들' 공승연 - 새롭게, 또 새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