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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 감독의 전작이 그러했듯 <프렌치 디스패치>는 독특한 촬영 현장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미장센을 구축했다. 주요 촬영지를 베이스캠프로 활용하고 미묘한 차이를 잡아내기 위해 같은 장면을 수십번 촬영하는 등 감독의 집념 덕분에 프레임에 담기지 않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생겨났다. ‘블라제’라는 영화 속 가상의 도시부터 미치광이 예술가 모시스 로젠탈러의 ‘콘크리트 걸작’까지, 극에 재미를 더할 <프렌치 디스패치>의 공간과 미술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한다.
01. 웨스 앤더슨 감독은 프랑스 전역을 상징하는 가상의 도시 블라제를 설정했다. 마땅한 지역을 찾지 못해 고심하던 제작진은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오래된 도시 앙굴렘에서 우연히 블라제의 모습을 발견했다. 앙굴렘에는 다양한 경사로와 계단, 고가교와 교차로 등 독특하게 쌓아올린 수직 공간과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많아 영상에 예쁘게 담겼고 한편으론 리옹, 파리와 같은 도시의 느낌도 들어 촬영을 진행하기에
잡지처럼,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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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지면 LOCAL COLOR (3~4p)
오언 윌슨 ┃저널리스트┃ 허브세인트 새저랙
고대 성당 뒤에 위치한, 언덕 뒤의 오래된 도시 엔누이쉬르-블라제의 구석구석을 취재하는 기자다. 좁은 골목 사이로 보이는 도시 주민들의 일상, 유흥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밤거리, 하층민의 생활, 도시의 쇠락 등을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 누빈다. <판타스틱 Mr. 폭스> <다즐링 주식회사> 등에서 웨스 앤더슨과 합을 맞춘 오언 윌슨이 연기한다.
담당 지면 Arts and Artists (5~34p)
틸다 스윈튼 ┃저널리스트┃ J. K. L. 베렌슨
J. K. L. 베렌슨은 현대미술 분야를 취재하는 문화예술 전문 기자이자 현대미술 평론가다. 그는 켄자스 아트센터의 강단에서 예술가 모시스 로젠탈러의 ‘콘크리트 걸작’에 관해 소개한다. 모시스가 살인죄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계기와 그의 뮤즈 시몬과 함께한 작업 과정, 모시스의 천재성을 알아본 큐레이터 줄리안 카다지오에 관한 일화를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를 만든 사람들: 캐릭터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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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디스패치>는 20세기 초 프랑스에 위치한 가상의 도시 블라제를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에 영감을 준 실제 매체와 저널리스트들이 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고등학교 때부터 <뉴요커>를 즐겨 읽으며 잡지가 인도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웨스 앤더슨이 사랑했던 <뉴요커>와 멋진 저널리스트들 그리고 타국의 문화(특히 프랑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프렌치 디스패치>는 잡지 제작 시스템과 당시 시대상을 이해할 때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미리 알아두면 좋을 내용들을 정리해보았다.
헤밍웨이, 샐린저, 하루키가 글을 쓰는 잡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앤드리아 삭스(앤 해서웨이)가 궁극적으로 입사하고 싶었던 곳 역시 <뉴요커>였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뉴요커>는 1925년 창간 이래 매해 47권의 잡지를 만드는 미국의 주간지다. 처음엔 맨해튼을 중심으로 한 15센트짜
힙과 전통 사이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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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 시사회가 열리던 날, CGV용산에 도착하자마자 깨달았다. 볼펜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것을. 근처 편의점에서 300원짜리 모나미 볼펜을 사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왜 항상 볼펜을 빠뜨리는가. 영화 기자는 눈으론 영화를 보며 손으론 스크린에서 쏟아져 나오는 각종 정보를 수첩에 메모한다. 리뷰를 쓸 때 종종 주인공 이름 철자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메모는 필수다. 특히 <프렌치 디스패치>처럼 온갖 지명과 인명, 인물의 사연을 소개하는 내레이션을 정신없이 따라가야 하는 영화를 볼 땐 더더욱 그렇다.
잡지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프렌치 디스패치>는 한권의 ‘보이는 잡지’를 지향하는 영화다. 이번 영화는 웨스 앤더슨 감독이 어릴 때부터 즐겨봤던 잡지 <뉴요커>와 그가 사랑하는 프랑스에 헌정하듯 만든 작품이다. 이를 알고 있던 편집장은 지난주 편집회의에서 <프렌치 디스패치> 특집을 여는
‘프렌치 디스패치’의 폐간을 막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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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에 대한 변태적인 집착, 엉뚱한 상상력과 인공적인 세트. 웨스 앤더슨은 특정 장면만 잠깐 보는 것만으로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비주얼리스트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개인의 취향을 고집 있게 드러낸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배경인 프랑스의 앙뉘 쉬르 블라제는 가상의 도시이며 ‘더 프렌치 디스패치 오브 리버티, 캔자스 이브닝 선’이란 매거진은 실재하지 않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작품이 ‘68혁명’이 일어났을 즈음 프랑스를 배경으로 했고 잡지 <뉴요커>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웨스 앤더슨은 고등학생 때부터 <뉴요커>를 탐독하며 수백권의 과월호까지 구입할 만큼 잡지의 세계에 매료된 팬이었다. 그는 잡지의 섹션을 나누듯 에피소드를 쪼갠 앤솔러지 형식으로 자신이 사랑했던 매체와 전설적인 저널리스트 그리고 프랑스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매
웨스 앤더슨이 재창조한 아름다웠던 잡지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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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은 자연, 생명, 평온, 재생, 조화, 회복, 부활의 색이다. 붉음과 푸름의 중간 스펙트럼에 위치한 초록은 균형과 내면의 평화, 그리고 넘치는 생명력을 반영한다. 동시에 초록은 우울과 죽음, 붕괴와 질투의 색이기도 하다. 짙은 어둠에 물든 초록은 우리를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초록은 그렇게 탄생과 죽음을 동전의 양면처럼 품고 있다.
윤서진 감독의 <초록밤>은 초록의 조명 아래 잠식된 영화다. 제목만 듣고선 이게 초록의 어떤 얼굴에 가까울지 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초록과 밤의 조합은 어딘지 위태롭게 들린다. 이것은 한 가족의 이야기다.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버지의 하루는 무기력하 다. 살림을 도맡은 어머니는 늘 지쳐 있다. 장애인 활동 보조사인 아들에게 내일을 꿈꾸는 건 사치다. 이들 가족을 잠식한 초록은 어둡고 무겁고 우울해 보인다. 이들의 삶도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결정짓는 순간 영화는 기이한 마력을 발휘한다.
<초록밤>은 매우 단
녹색 광선의 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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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빠가 범죄자가 되었다. 나는 실패한 덕후가 되었다”라는 내레이션이 고백하듯, 오세연 감독은 TV에 출연해 스타에게 러브레터를 낭독한 적도 있는 이른바 성공한 덕후, 성덕이다. 그가 만든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초청작 <성덕>은 가수 정준영의 성범죄 이력이 드러나자 오랜 팬 생활을 접은 오세연 감독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자칭 ‘관종’, 덕후의 DNA를 타고난 그는 정준영으로부터 돌아서는 과정에서 자신을 성장시킨 과거의 긴 시간들이 통째로 ‘흑역사’가 되어버리는 비극을 마주했다.
<성덕>에서 오세연 감독은 자신의 혼란을 주변 친구들의 얼굴, 엄마의 얼굴에서도 찾아낸다. 누구에게나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는 있기 마련. 그렇게 <성덕>의 카메라는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박사모)까지 찾아가기에 이른다. 불편한 존재들을 응시하고 복잡한 내면을 끌어안은 결과, 범죄 앞에서 서로를 지
흑역사라는 공감대 - <성덕> 오세연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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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걸그룹, K/DA의 탄생
게임과 관련해 다양한 테마송, 뮤직비디오 등을 공개해온 라이엇 게임즈의 음악 히스토리에서 손에 꼽히는 몇번의 큰 정점이 있었다. 2014년 세계적인 록밴드 이매진 드래곤스의 첫 방한을 이끌어낸 롤드컵 테마송 <Warriors>가 그러하며, 2018년 월드 챔피언십을 기념하기 위해 K팝 스킨을 출시하면서 가상 걸그룹 K/DA를 선보인 시점 또한 세계 음악 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경우다. Kill/ Death/ Assist의 약자인 K/DA는 게임 속 아리, 아칼리, 이블린, 카이사라는 4명의 챔피언들로 구성된 가상 그룹으로 그야말로 '메타버스'다. 게임 속 기존 이야기와 또 다르게, 걸그룹으로 도전한 챔피언들의 모습과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고 이들의 타이틀곡 <POP/STARS>는 실제 이 곡에 참여한 4명의 아티스트들이 4명의 챔피언과 함께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된 2018 롤드컵 결승전 오프닝 세리머니 무대 이후 폭발적
'리그 오브 레전드'와 라이엇 게임즈, 게임에서 문화콘텐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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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중심의 콘텐츠가 될 것이다. 만화나 짧은 시네마틱 혹은 서사 중심의 콘텐츠, 중편 더 나아가 장편소설까지 개발해 여러분에게 세계관을 보여드리겠다.” 미디어 종합 그룹의 프랜차이즈 콘텐츠에 대한 발표가 아니다. 게임 <LoL>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설명이다. 라이엇 게임즈의 공동 창업자 브랜든 벡은 <LoL>이 스토리라인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이렇게 세계관을 마련해놓으면 어떤 것이 여러분의 마음을 울렸는지, 다음엔 무엇이 더 보고 싶은지 알려주시리라 생각한다.” 자신들이 뛰어놀고 싶은 무대를 직접 만들 수 있는 세계. 함께 쌓아올려가는 이야기. 요약하면 플레이어가 주인이 되는 플레이어 중심의 게임. 참신한 아이디어에 이상적인 목표지만 실제로 이걸 실행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도전이다. 라이엇 게임즈의 성공 비결은 단순하다. 이 심플한 아이디어와 분명한 목표를 행동에 옮긴 것이다. 게임 덕후가 직접 만든 놀이터 <LoL>
게임 덕후가 만든 놀이터, 끝나지 않을 확장과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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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엇 게임즈가 2019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이하 <LoL>) 10주년 기념 행사에서 <LoL>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한다고 발표했을 때 전세계 게이머들은 흥분과 기대로 가득 찼다. 그리고 2년 뒤 드디어 새로운 전설의 서막이 열린다. 라이엇 게임즈의 첫 번째 애니메이션 시리즈 <아케인>이 오는 11월7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190개국에 동시 공개된다. 총 3막으로 구성된 <아케인>은 1막당 3편, 총 9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11월7일 첫 방영 이후 13일, 20일에 각각 2막과 3막이 공개될 예정이다. 팬들의 기대는 이미 폭발적이다. 지난 9월 선보인 2분30초 분량의 공식 트레일러는 단 3시간 만에 100만 조회수를 넘겼고 10월20일 기준 공개 한달 여 만에 1500만 조회수를 넘겼다. 라이엇 게임즈의 도전은 디즈니를 비롯한 미디어 그룹의 IP 비즈니스 모델과도
모든 전설에는 시작이 있다: 라이엇 게임즈의 첫 번째 애니메이션 시리즈 '아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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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RE YOU
“제가 낯을 많이 가리거든요.” 차분하게 스튜디오에 들어선 장률은 드라마 <마이 네임>의 도강재를 보며 상상해본 모습과 전혀 달랐다. 해사하게 웃는 그가 얼굴의 흉터를 매만지며 복수의 칼을 가는 강재가 되기까지, 얼마나 깊이 인물을 탐구했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계원예술고등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프라이드> <킬롤로지> 등 수많은 연극 무대에 올랐던 장률은, <마이 네임>에서 그의 “어머니도 무서워할 정도로” 날카로운 킬러 도강재가 되어 질주한다. 차기작인 연극 <마우스피스>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를 만나 작품 안팎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장률 배우의 인터뷰 영상은 <씨네21>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감과 확신 사실 오디션 때는 감독님에게 확신을 못 드렸던 것 같다. 그 뒤로 공연 무대에 올라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오늘 왠지 감독님이 오실 것 같다는 예
'마이 네임' 장률, 장률이 보여줄 놀라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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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건 누아르인데 어쩜 이렇게 멜로적이니?” 현(류승룡)과 이혼 후, 그의 친구이자 출판사 사장인 순모(김희원)와 사랑에 빠진 미애(오나라)는 말한다. 느닷없이 순모의 거친 얼굴에 선크림을 쓱싹 발라주고, 순모가 짜온 살인적인 데이트 스케줄을 꿋꿋이 따르면서. 그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골칫거리인 전 배우자와 사춘기 아들도 잊는다. 전남편 친구와의 연애, 친구의 전 부인과의 연애에 놓인 두 사람 사이의 ‘멜로적’ 순간을 사랑스럽게 연기해낸 배우 오나라와 김희원은 “아마 이런 커플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며 우리를 설득한다. 영화를 찍으며 서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촬영장 밖에서도 술 한잔 없이 깊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는 두 사람은 영락없는 남매 케미를 선보이며 <장르만 로맨스>였던 여름날을 회상했다.
귀엽고 유쾌한 영화다. 처음 시나리오는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하다.
김희원 프랑스 예술영화 같았달까? 시나리오에 철학적인 구석도 있고, 사회적인 메시지도 있었다.
'장르만 로맨스' 오나라, 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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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과 성유빈은 <장르만 로맨스>에서 각기 다른 도전을 했다. <최종병기 활> <명량> <고지전> 등 장르영화에서 선 굵은 캐릭터를 연기한 류승룡은 슬럼프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 ‘현’으로 생활 연기에 도전했고, <살아남은 아이> <봉오동 전투> 등에서 삶의 무게를 짊어진 10대를 연기했던 성유빈은 “처음 받아본 코미디영화 대본” 속 고3 수험생 ‘성경’으로 변신했다. 극중 두 사람의 관계는 부자. 현의 이혼으로 따로 살고 있으나 두 배우가 함께한 첫 촬영이 부자의 말싸움 신일 정도로 왕래가 잦은 친밀한 사이다. 첫 촬영을 두고 류승룡은 “아들이 둘이라 생활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회고했고, 성유빈은 선배와의 첫 촬영을 “생각을 많이 안 하려고 했다. 생각을 하면 더 굳는다”라고 떠올렸다. “생각 많이 한 배우와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가 만났을 때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공기” (류
'장르만 로맨스' 류승룡, 성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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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장르는 없었다. 이것은 로맨스인가,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인가. 베스트셀러 소설가 현(류승룡)이 슬럼프에 빠진 사이 전 부인 미애(오나라)는 현의 친구 순모(김희원)와 비밀연애 중이고, 아들 성경(성유빈)은 이웃사촌 정원(이유영)에게 빠져 학교를 빼먹기 일쑤다. 무작정 현을 쫓아다니는 대학생 제자 유진(무진성)은 소설을 한 자도 쓰지 못해 괴로운 현 앞에 번뜩이는 습작을 들고 나타나 현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조은지 감독의 <장르만 로맨스>는 멀리서 보면 각자의 로맨스, 자세히 보면 관계의 복합성에 대해 말하는 코미디영화다. 한국판 <미스 리틀 선샤인> 같다면 이해하기 쉬우려나. 어쨌든 이곳에 모질고 모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그렇다고 인물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 간단하지만은 않다. 창작력이 시든 소설가, 전남편을 배려하기 위해 비밀연애 중인 전 부인, 괜히 이혼한 부모 탓을 하고 싶은 고3 수험생 등 누구 한명 인생을 쉽게 살아가는 이
'장르만 로맨스' 류승룡, 오나라, 김희원, 성유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