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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을 연출한 조현철, 이태안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동기다. 한예종 재학 시절부터 시작된 인연은 조현철 감독이 이따금 “시나리오 쓰는 것 있느냐”고 연락하며 이태안 감독이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하루는 내게 요리를 해주면서 우주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거다. 당시 내가 생각하던 바와 맞물리면서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게 <부스럭>이었다.”(이태안) 조현철 감독의 첫 장편영화 <너와 나>를 미리 감상한 변영주 감독의 추천으로 조현철이 제작진에 연출 제안을 받았고, 그가 이태안 감독에게 협업을 제안하기 일주일 전 타이밍 좋게 <부스럭>의 시나리오가 나왔다.
<부스럭>의 주인공 세영(천우희)은 헤어진 연인의 이별 사유를 파헤치고자 직접 나섰다가 어린 시절 기억과 뒤섞인 이상한 일을 겪는다. 삼각관계로 보이는 이성애 로맨스와 미스터리 요소가 결합되어 하나
'부스럭' 조현철, 이태안 감독: 알 수 없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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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침번>은 류덕환 감독이 실제 군 생활을 할 때 불침번을 서다 남긴 메모에서 시작됐다. 극중 등장하는 ‘나무늘보’, ‘달리기’ 같은 암구호도 6년 전 군 복무 당시 그대로다. <전체관람가+: 숏버스터> 제안을 받았을 때는 트리트먼트 정도만 완성되어 있던 <불침번>은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류덕환의 생각에 아직 그의 군 생활 기억이 남아 있는 지금 빛을 보게 됐다.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최근의 <D.P.>에 이르기까지, 군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군대 시스템의 부조리와 인간성의 파멸을 엮어가는 경우가 많다. <불침번>의 접근은 조금 다르다. 첫 휴가 전날 불침번을 서게 된 이등병 대수(이석형)의 상황으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부대 안에서는 유독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의 상대성을 보여주는 것이 류덕환 감독의 관심사였다. 시나리오상 “영화 <아저씨> 같은 액션”으로 서술된 대목 역시 공
'불침번' 류덕환 감독: 나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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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공기가 그리웠다. 무엇이 되었건 찍고 싶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들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문장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생략되어 있다. 무언가를 열망하는 것과 그걸 실천하는 과정 사이에는 수많은 에너지와 이야기가 잠들어 있다. <우라까이 하루끼>는 목포에 도착한 영화감독 만옥(임선우)의 여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을 패러디했지만 사실 제목은 낚시일 뿐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림자도 나오지 않는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목을 모으고 싶었다.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감독의 여정이니까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시나리오가 잘 안 나와 고민하던 영화감독 만옥은 ‘우라까이’의 유혹에 시달리고 우연한 기회에 목포에 내려가 여명(고경표)과 뜻밖의 만남을 가진다. “주변의 익숙한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편이다. 한창 시나리오 쓰는 일 때문에 답답해하던 상황이었던지라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김초희 감독은 평행 세계라는 쉽지 않은 컨셉을 낯선
'우라까이 하루끼' 김초희 감독: 즐거운 평행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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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포비아>(2014) 이후 무려 8년 만이다. 홍석재 감독이 <전체관람가+: 숏버스터>의 제안이 들어왔을 때 흔쾌히 받아들인 건 현장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다. 동시에 스스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좋은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다. 공교롭게 이번 작업을 제안받고 작업하는 시기와 출산하는 시기가 거의 겹쳤는데, 시나리오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평행관측은 6살부터>는 평행 세계간 교신이 보편화된 세계에서 교육열에 불타는 한 엄마의 사연을 그린다. 아이의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으로 평행 세계의 자신들과 교신하던 엄마는 다른 세계의 자신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여기를 되돌아본다. “공민정 배우의 탄탄한 연기력과 풍성한 표현력 덕분에 무사히 완성됐다. 처음엔 장르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성된 걸 보니 서정적이라는 얘기가 무척 감사했다. 정확한 칭찬인 것 같다.”
'평행관측은 6살부터' 홍석재 감독: 세계를 확장하는 멋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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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 콘텐츠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살릴, 믿고 보는 연출자 윤성호 감독이 <전체관람가+: 숏버스터>에 합류했다. “지난 1월 말에 연락을 받고 다른 분 섭외에 실패해서 나에게까지 기회가 왔구나 싶었다. (웃음) 그러잖아도 단편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참이라 흔쾌히 참여했다.” 시작은 쉬웠지만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작업한 경험이 적지 않은지라 주어진 시간이 짧은 건 문제될 게 없었다. 윤성호 감독이 욕심 많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게 도리어 함정이었다. “평행 세계라는 컨셉을 들었을 때 자신 있었다. 예전부터 준비해오던 아이템이 있었는데 평행 우주를 무대로 한 로맨틱 코미디다. 한번 꽂히면 끝까지 공부하는 성격이라 몇년 전에 세계관에 대한 방대한 자료조사를 했다. 그걸 이번 기회에 풀어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미지의세계 시즌투에피원>은 평행 세계간의 소통이 가능해진 시대, 다른 차원에 사는 자신의 배우자와 사랑에 빠진 희극인의 난처한
'미지의세계 시즌투에피원' 윤성호 감독: 재미에 장르를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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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 OTT 매체와 시네마의 속성을 맞붙여 각자의 실험을 추진한 프로젝트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2017년 JTBC에서 방송된 <전체관람가>에 참여한 이명세, 배종, 정윤철, 임필성, 이경미, 이원석, 봉만대, 창감독, 양익준, 오멸 등 영화감독 10인이 12분 내외의 단편영화를 TV를 통해 상영했다면, 이번에는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해 신작을 공개한다. <전체관람가+: 숏버스터>를 통해 곽경택 감독의 <스쿨카스트>, 김곡·김선 감독의 <지뢰>, 윤성호 감독의 <미지의세계 시즌투에피원>, 홍석재 감독의 <평행관측은 6살부터>, 김초희 감독의 <우라까이 하루끼>, 류덕환 감독의 <불침번>, 조현철·이태안 감독의 <부스럭>, 주동민 감독의 등 총 8편의 단편영화와 제작기가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언택트, 뉴노멀 등 동시대 이슈를 직접 소재로 녹여냈고 다큐멘터리,
'전체관람가+: 숏버스터'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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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두분 다 내게 이 장면에 존재하라고, 숨 쉬라고 계속 말씀해주셨다. 다른 세부적인 디렉션보다 숨 쉬라는 그 말이 제일 도움이 됐다.” 1915년부터 1989년까지 4대에 걸친 한 가족의 대서사를 그린 드라마 <파친코>, 그 중심엔 선자가 있다. 김민하가 연기한 젊은 선자는 천진한 소녀로서,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여러 차례 변화를 겪는다. 일제강점기, 파란의 시대에 속절없이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살아내는 다부진 인물이다. <파친코> 공개 이후 배우 김민하의 이름 앞엔 ‘준비된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유창한 영어, 독립영화와 드라마를 거치며 쌓아온 표현력,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이 돋보였기 때문일 테다. 인터뷰로 만난 김민하는 의연함 아래 여전히 꿈의 세계를 선망하는 순수함을 간직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을 올해 목표로 답한 그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마주앉은 김민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선자와 나의 연결고리, '파친코' 김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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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식에게서 이렇게 깨끗한 순애보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던가. 디즈니+에서 4부작 뮤직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선보이는 <사운드트랙 #1>은 그간 배우 박형식이 언제나 타입 캐스팅 저편에서 의외의 필모그래피로 저벅저벅 행군해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체감시킨다. 짝사랑 중인 오랜 친구 옆에서 늘 반 박자 느리게 동행하는 포토그래퍼 한선우는 멜로드라마의 판타지와 노스탤지어를 부르는 배우 본연의 매력을 극대화한 결과물이다.
2010년에 아이돌 그룹 제국의아이들로 데뷔해 성인식을 마친 박형식은 드라마 <시리우스>(2013), <나인: 아홉번의 시간여행>(2013, 이하 <나인>)의 아역을 맡아 배우로는 처음 눈도장을 찍었다. 청춘 드라마나 학원물에 어울릴 법한 이미지에 반항하듯 53부작 주말연속극 <가족끼리 왜 이래>(2014)로 들어간 그는 아버지로부터 졸지에 ‘불효 소송’을 당한 삼남매의 애환을 나눠가지면서 아이돌의 배우 전향
재미와 야심 사이에서, 오늘도 '놀이' 중: '사운드트랙#1' 박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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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정 배우 / <멜랑꼴리아>
이도현은 좋은 배우다. 말해 뭐해. 재능이 많다.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해석한다. 매우 좋은 눈빛과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 감정 표현이 정확하다. 시공간과 나이를 뛰어넘은 깊은 감성이 참 특별하다. 어떤 것도 돌파해서 교류가 가능하게 만드는데 그것이 진실된 것임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 특히 감동이다. 도현과 연기를 하면서 선후배와 성별을 떠나 배우 대 배우로서 내가 가장 특별하게 느꼈던 것은, 진정으로 호흡하고 감정을 상승시키는 연기를 하는 순간들이었다. 경력이 많지 않은 배우들 중에는 간혹 상대배우와 호흡하는 것보다 본인 연기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는데, 도현은 그렇지 않다. 뇌와 심장이 모두 열려 있어서 내 연기를 필터 없이 흡수하고 본인 연기에 깊게 더해서 내게 다시 준다. 그렇게 하나씩 감정을 상승시켜 신을 완성했던 순간들이 참 많았다. 그 과정들은 마치 무대 위에서 노래를 아름답게 부르는 듀엣과 같았다. 배우로서 그 짜릿했던 경험과 기
함께 작업했던 이들이 말하는 '배우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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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함부터 장르적 섬뜩함까지, 다양한 연기 컬러를 가진 배우.” “20대 남자배우 중 가장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준다.” “시리즈에서만 보여주었던 젊은 배우의 안정적인 연기를 영화에서도 보고 싶다.” 매년 <씨네21>은 한국 영상 콘텐츠 산업을 이끄는 결정권자들을 대상으로 트렌드를 점치는 설문 조사를 진행한다. 이도현은 ‘주목할 만한 신인 남자배우’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특정 배우가 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것은 그가 유일하다. 플랫폼이 다변화되고 업계에서 눈여겨보는 뉴 페이스의 이름 역시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모하는 시기, 이도현은 <호텔 델루나>의 청명으로 화제를 모은 2019년부터 최고의 유망주 자리를 진득하게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송혜교가 주연을 맡은 김은숙 작가의 신작 드라마 <더 글로리>를 촬영 중이다. 자신의 롤모델이 이병헌이라고 꾸준히 고백해온 이도현은 정말로 이병헌의 길을 지향할 법한 배우다. 안정적인 발성과 발음이 주는
소년에서 배우로: 창간 27주년 맞은 '씨네21'이 주목한 신인 남자배우, 이도현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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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라면 청명한 기운을 내뿜는 청춘 드라마를 흔히 떠올리지만, <소년비행>은 마약 및 범죄가 등장하는 누아르물이다. 부모에게 마약 운반 수단으로 이용되던 18살 소녀 다정(원지안)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후 쫓기듯 시골로 내려간다. 다정은 혼자 모든 것을 감내하려는 촌놈 윤탁(윤찬영)에게 그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대마 밭의 존재를 알려주고, 주변 친구들까지 뛰어들며 청소년들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대마를 키우는 위험천만한 일에 발을 담근다. 하지만 10대에게는 아직 어리기에 가능한 순수한 감정이, 어떤 유혹에도 무너지지 않는 선의가 있다. 다정과 윤탁을 연기한 원지안과 윤찬영은 청춘물과 누아르라는 이색적인 조합을 현실화할 수 있는 최적의 캐스팅이다.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스케줄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두 배우는 신중하게 질문을 곱씹으며 차분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 두 배우 모두 고등학교 시절을 거쳐왔지만 <소년비행>
어둠을 연기하기: '소년비행' 원지안, 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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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심이었습니다. 전 제가 빨랐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안게임 펜싱 결승전에서 상대 선수이자 라이벌 나희도(김태리)와 단 1점을 놓고 대치하던 고유림(보나)은 심판 판정에 불복하며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7화의 긴장감 넘치는 한 장면으로 라이벌인 희도와의 경쟁에서 결코 지기 싫어하는 펜싱 금메달리스트 고유림의 캐릭터를 단박에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캐스팅 당시엔 “국가 대표에 어울리는 체형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지금은 “고유림이란 이름마저도 잘 어울리는, 누가 봐도 국가 대표”라는 칭찬을 듣게 된 건 7년차 걸 그룹 우주소녀의 멤버로서 연기의 재미에 눈뜨기 시작한 보나가 얻게 된 금메달 같은 칭찬이다. 극중 오심 판정 이후 기자회견장을 찾은 기자의 심정으로 7화 방영이 끝난 일요일 오후, 그녀와 만나 고유림을 연기하면서 얻게 된 것들에 관해 물었다.
고유림 차가워 보이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은 캐릭터다. 대본을 읽자마자
[WHO ARE YOU] '스물다섯 스물하나'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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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성이 배우에게 장애물이 될 수 있다면, 채정안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무정>을 부르는 테크노 여전사에서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전설적인 ‘구여친’으로 탈바꿈하고, 2000년대 트렌디 드라마에 ‘차도녀’라는 새 전형을 심기까지 채정안이라는 고유명사는 자주 아이콘으로만 풀이됐다. 그 매력은 지금도 여전해서 채정안은 이제 ‘채소’라 불리는 구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유튜브 채널 <채정안 TV>의 주인으로 뉴미디어 플랫폼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씨네21>이 배우 채정안을 다시 만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티빙의 첫 오리지널 시리즈이자 채정안의 첫 OTT 주연작인 <돼지의 왕>은 그런 의미에서 산뜻하다. 부스스한 중단발에 낡은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강력 범죄 현장에서 안광을 빛내는 형사 강진아(채정안)는 모로 보아도 처음 만나는 채정안임이 분명하다. 흥미로운 점은 그 모습이 파격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친근하
'돼지의 왕' 채정안, 준비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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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은 대체로 법과 제도권에서 벗어나 있다. <범죄도시>의 행동대장 양태에서 <악인전>의 연쇄살인마 K까지, 야생의 눈빛으로 작품에 뜨거운 온도를 더하던 그가 <돼지의 왕>에서 이전에 연기했던 인물들을 쫓는 정반대의 역할을 맡았다. 정종석은 뛰어난 실력으로 젊은 나이에 차기 광역수사대 팀장직을 예정할 만큼 유능한 형사다. 20년 동안 만난 적 없는 중학생 시절 친구 경민(김동욱)이 남긴 메시지를 보고 또 다른 살인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그에게도 사실 숨겨진 과거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던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많진 않았다”는 부담감도 물론 있었지만, 평소 생각이 많은 배우답게 정종석의 소우주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단다. 그에게 <돼지의 왕>은 “작품은 물론 배우라는 일 자체가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현장이었지만, 극 후반으로 갈수록 드러나는 종석의 다면성은 김성규 본연의 에너지와 만나
'돼지의 왕' 김성규, 선택의 괴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