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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스물>은 대화로 옛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그린 멜로드라마이자 카라바조의 그림을 따라 이탈리아 10개 도시를 구석구석 탐방하는 로드무비다. 12억원의 저예산으로 이탈리아 올 로케이션을 완성한 제작자, 살뜰히 현장을 챙긴 조감독, 그리고 미련과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동행을 섬세하게 이어붙인 편집 스탭이 모두 한 사람이라면 믿겠는가. 제작사 민영화사 대표이자 박흥식 감독의 아내이고 30년간 수백편의 영화들을 편집해온 베테랑, 박곡지 편집감독이 그 한 사람이다. <두 번째 스물>은 박흥식 감독의 전작 <경의선>(2006)에 이어 십년 만에 두 사람이 다시 함께 만든 영화다.
“어지간해선 싸우지 않는다”는 잉꼬부부이지만 “편집할 때만큼은 각자 의견을 관철하려다 크게 충돌할 때도 많다”고 한다. 통역가 정임숙씨와 데메트리오 부부의 집 장면은 가장 의견이 팽팽한 지점이었다. “남편은 그 장면의 현장성과 은인인 정임숙씨에 대한 보답으로 최대한 길게 넣
[영화人] <두 번째 스물> 박곡지 편집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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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영수(김주혁)는 애인 민정(이유영)을 안다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더 바람직한 일이 무엇인지 자기가 더 잘 안다고 믿는다. 민정이 그의 통제를 거부하고 등을 돌리자 영수는 목발을 짚고 연락이 두절된 그녀의 자취를 애타게 찾아 헤맨다. 그러는 동안 민정은 어디선가 그녀를 본 적이 있다며 접근하는 다른 두 남자를 만난다. 단 “나는 민정이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이 부정이 환멸 끝에 고안한 전략인지, 아니면 그녀가 말하는 대로 우리는 민정의 도플갱어를 보고 있는 것인지 관객은 100% 확신할 수 없다. 다리의 흉터마저 동일한 걸로 보면 전자가 맞지만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그녀의 대사는 민정의 진실을 다시 앎 너머의 영역으로 보낸다. 그러니까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가장 직접적으로는 <우리 선희>에 이어, 패턴을 좇는 남자와 거기에 포획되지 않는 여자의 이야기이며, 앎과 사랑의 차이에 관한 교훈적인 로맨스다. 영
[씨네 인터뷰] 홍상수 감독이 말하는 열여덟 번째 장편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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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아침, ‘음란마귀’의 영화 낭독 시간이 찾아온다. 개그맨 장도연이 진행을 맡은 채널CGV 영화 소개 프로그램 <아가씨-네>다. 영화 <아가씨>의 히데코(김민희)처럼, 장도연은 초록빛깔 기모노에 잔뜩 부풀린 머리를 하고 매주 영화 한편씩을 소개한다. 평소 장도연이 즐겨온(?) ‘19금 개그’를 십분 활용하고 있기에 적어도 영화를 궁금하게 만드는 데는 적중한 것 같다. 2007년 데뷔한 장도연은 <개그콘서트> <코미디 빅리그> 등의 공개 무대와 <롤러코스터2>(2012), <썰전>(2013) 등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단련한 거침없는 입담과 몸개그로 최근 방송가를 종횡무진하는 중이다. 이날도 장도연은 바삐 라디오를 마치고 인터뷰를 하러 왔다. 여러 방송국이 모여 있는 상암동에서 그를 만나 <아가씨-네> 진행 소감과 희극인으로서의 지난 10년의 삶에 대해 물었다.
-현재까지 2회 방영했다. 주변 반
[trans x cross] “해온 것보다 앞으로 할 게 더 많다” - 채널CGV 영화 프로그램 <아가씨-네> 진행 맡은 개그맨 장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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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겨울. 김주혁은 제주도에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하 <홍반장>, 2004)을 찍고 있었다. 상대역인 엄정화와의 뽀뽀 신(사진)은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라 현장에 취재나온 기자들 앞에서 리허설해 보인 것. 제주도의 매서운 바람에 얼어 있는 김주혁의 ‘무표정’이 그저 풋풋하기만 하다. <홍반장>은 김주혁의 첫 단독 주연작이었다. 넉살과 오지랖이 지나친 만능 재주꾼 혹은 그저 백수 홍두식. 특별해 보이지만 특별할 것 없고, 완벽해 보이지만 허당인 이 남자를 김주혁은 허허실실 잘도 연기해냈다. 정확히 각 잡힌 캐릭터보다 허점이 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김주혁의 인간적 매력은 부각됐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선 다투고 난 뒤 연락이 두절된 여자친구를 찾아다니는 남자 영수를 연기했다.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는 표현으로 홍 감독과의 첫 작업을 설명한 그는 자연스럽게 영화
[메모리] 지질한 매력의 발견 - 김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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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하 <당자당>)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 유난히 밝고 발랄하게 느껴진다면 대부분은 이유영의 공이다. 영화 속 민정은 천연덕스러운 건지 완벽하게 거짓말을 잘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를 혼란스러워하는 건지 알 수 없게 그려진다. 누가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보고 싶어 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이 비어 있는 캐릭터는 한편으론 의뭉스럽고 한편으론 한없이 투명하다. 이유영은 언어로 형용하기 어려운 이 모호한 캐릭터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소화한다. 아니, 배우가 캐릭터를 소화한 건지 배우에게서 캐릭터를 뽑아낸 건지조차 헷갈린다. 개성 넘치는 역할들을 도맡아오던 그녀는 이번엔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여인이 되어 영화 한가운데 서 있다. 발랄함을 풍기면서도 화면 전체를 잠식하고 있는 존재감은 그녀를 배우 이유영이 아니라 <당자당>의 민정으로 만든다. 적어도 20대 여배우 중 이만큼 자신을 지우고 역할로 기억되는
[액터/액트리스] "맡은 역할로만 기억되는 배우였으면 한다" -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이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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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넌 진짜 이상해. 힙합하는 빌리 엘리어트 같아.” 방 안에서 신시사이저 음악을 틀어놓고 허우적대며 근본 모를 춤을 추는 동생 콘래드를 보며 형 조나(제시 아이젠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라우더 댄 밤즈>에서 콘래드는 종종 ‘이상한 애’로 불린다. 늘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해 살아가는 소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엄마(이자벨 위페르)의 무덤을 찾지 못하자 누군가의 무덤 앞에 누워보는 엉뚱함을 지닌 소년. 그런 그에게도 빛나는 재능이 있다. 격앙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콘래드는 종군 사진기자였던 엄마의 예술적 피를 이어받아 누구와도 같지 않은 글을 쓴다. 죽음에 대해, 가족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폭탄보다 더 거대한’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은 어쩌면 콘래드가 내면에 담고 있는 강력한 에너지의 크기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를 연기하는 배우는 미국 버지니아주 출신의 열아홉살 신인 데빈 드루이드다. 이자벨 위페르와 가브리엘 번
[who are you] 어디로 튈지 모르는 - <라우더 댄 밤즈> 데빈 드루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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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 피칭 행사에서 만난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피칭 준비 과정이 알찼다”며 신도형 피칭 디렉터의 지도에 만족해했다. 영화제 피칭은 창작자들이 제작·투자자들 앞에서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작품을 매력적으로 소개해 비즈니스 미팅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자리다. 다년간의 피칭 경험이 있는 신도형 피칭 디렉터의 꼼꼼한 지도가 참가자들에게 꼭 필요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마켓의 신화창조 프로젝트 피칭, 북투필름, E-IP(지적재산권) 피칭 참가자들에게 사전 피칭 강의와 멘토링을 진행했다. 2013년 CJ 프로젝트 S의 피칭 강의가 시작이었다. 그 행사를 본 전주국제영화제쪽에서 연락을 줬다. 이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등의 피칭을 해오고 있다.” 일이 몰리면서 어느새 그는 “영화제 피칭 시기를 기준으로 휴가 등 1년 계획표를 짠다”고 할 정도다.
그는 “일대일 맞춤형” 피칭 연습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작품별, 참가자의 성향
[영화人] 신도형 영화제 피칭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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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 주연의 <럭키>가 개봉 2주 만에 5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10월27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이계벽 감독은 지금의 흥행에 감사해하면서도 정작 “<럭키> 전과 후, 삶의 변화는 없다. 아직 영화 개봉 2주가 지났을 뿐”이라며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럭키>는 이계벽 감독이 신민아, 류승범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야수와 미녀>(2005)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장편영화다. 무명배우와 킬러의 운명이 목욕탕에서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이계벽 감독은 억지 감동 없는 저자극 코미디로 그려낸다. 유해진의 힘, 착한 코미디의 힘 거기에 배급 시기의 운까지 더해져 승승장구하고 있는 <럭키>는 이계벽 감독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싶다. <럭키>에 대하여, 코미디 장르에 대한 애정에 관하여 이계벽 감독과 얘기를 나눴다.
-코미디영화로는 최단기간 흥행기록을 써내려가는 중이다
[씨네 인터뷰]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성장 드라마로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 <럭키> 이계벽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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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마카오를 방문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제1회 마카오국제영화제(International Film Festival & Awards Macao, IFFAM)가 오는 12월8일부터 13일까지 마카오 일대에서 열린다. 마카오국제영화제는 동서양 문화가 혼합된 국제도시 마카오의 지역색을 살려 중국어권영화뿐 아니라 동아시아, 그리고 서구영화까지 그해의 화제작을 소개하는 영화제다. 베니스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마르코 뮐러가 집행위원장으로, 두기봉, 허안화, 최동훈 등 아시아 지역에서 잘 알려진 감독들을 영화제 홍보대사로 영입하여 보다 대중 친화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마카오국제영화제는 마카오관광청(MGTO)과 마카오 필름&TV프로덕션, 문화연합회(MFTPA)가 주관하는 행사로 지난 5월 말에 공식적으로 영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영화제 준비를 위해 열심히 달려온 마카오국제영화제 총괄국장 로나 티를 만나 영화제에 관해 들었다.
-마카오국제영화제는 어떻게 시작된 행사
[people] 마카오국제영화제 총괄국장 로나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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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하며 ‘이영앓이’를 양산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이 최근 종영됐다. 이 드라마에서 단연 돋보인 것은 이영 세자(박보검)와 라온(김유정)의 아름다운 자태와 감성적인 연기다. 이진희 의상감독은 배우들에게 색색의 고운 한복을 지어 입히며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는 <성균관 스캔들> 속 아름다운 4인방 유생들을 통해 한복이 더이상 고루하고 촌스러운 것이 아님을 보여준 장본인으로, 디자인평론가 최범은 “<성균관 스캔들> 등의 사극을 보고 자란 세대가 지금의 한복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드라마 <바람의 나라>, <성균관 스캔들>, 영화 <간신> 그리고 <구르미 그린 달빛>에 이르기까지 사극 속 의상을 담당해온 이진희 의상감독을 만나 이영과 라온 의상의 A to Z, 최근 불고 있는 한복 열풍에 대한 생각까지 세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
[trans x cross] “한복이 계속 현대인들과 소통하며 그 가치를 이어갔으면” - <구르미 그린 달빛> 의상감독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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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도 척척, 묻는 말에 대답도 척척, 신은수는 똘똘하다. 연기 경력이 전혀 없는 생짜 신인이라는 사실을 깜빡할 정도다. 지난겨울, 남양주촬영소 촬영장에서 <가려진 시간>을 찍는 엄태화 감독을 잠깐 만난적 있다. 그는 자신의 히든카드인 신은수를 두고 “강심장”이라고 표현했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긴장을 전혀 하지 않는 모습이 신인답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어른 같다는 얘기가 아니다.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인가보다. 그런데 인터뷰는 해본 적이 없어서 전날 밤에 매니저 언니와 예상 질문을 만들어 연습했다”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나 “운동하기 싫어하고 TV 앞에 앉아 <짱구는 못 말려> 시리즈를 즐겨”보기 때문에 스스로를 “게으름형”에 속한다고 소개하는 모습은 또 영락없는 14살 소녀다. 어쩌면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한달 동안 진행된 오디션을 3차까지 모두 통과해 300 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수린 역을 꿰찰 수 있었던 비결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연
[커버스타] 연기의 맛 - 신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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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였더라면 선택이 더 빨랐을 거다.” 강동원이 말했다. 영화 <가려진 시간>은 작품에 대한 취향이 명확한 그에게도 쉬운 선택지가 아니었다. 우선 ‘물리적 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시간 속에 오랫동안 갇혔던 소년이 홀로 어른이 되어 또래 소녀 앞에 나타난다는 설정이다보니, 아무래도 더 젊은 20대 배우가 연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다.” 하지만 엄태화 감독은 <검사외전>의 촬영지였던 부산까지 내려가 강동원을 설득했다. 엄태화 감독이 아닌 다른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고, 소년과 어른이 경험하는 시간대를 폭 넓게 보여주어야 하며, 진실을 말하는 순간에도 모호함을 잃지 않는 인물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를 떠올렸을 때, 강동원은 여전히 가장 먼저 생각나는 선택지다. <M>(2007)과 <전우치>(2009), <초능력자>(2010)와 <검은 사제들>(2015) 등 강동원이
[커버스타] 정지된 시간 -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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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사라지고 소녀는 그를 기다린다. 엄태화 감독의 신작 <가려진 시간>이 11월1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숲속 어스름한 동굴에서의 믿을 수 없는 사건으로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 같았던 단짝 친구는 서로 다른 시간의 타래에 갇히게 된다. 불현듯 어른이 되어 나타난 소년을 소녀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비련의 소년 소녀를 연기하는 두 배우에 주목할 만하다. 올해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자신의 시간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배우 강동원과 지금 막, 배우로서의 시간을 시작한 신인배우 신은수의 현재를 들여다보자.
[커버스타] 영화의 시간 속으로 - <가려진 시간> 강동원과 신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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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같은 얼굴 뒤로 결연한 저항의 의지가 꿈틀댄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맥스>)에서 임모탄의 노예 중 한명인 덱 역으로 출연한 그녀는 5명의 여성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었다. 단지 사막에 어울리지 않는 하얀 피부와 백발의 머리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때론 화면에 서 있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하는 배역들이 있는데 <매드맥스> 속 임모탄의 여인들이 그렇다. 하지만 애비 리는 첫 연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을 해냈다. 슈퍼모델 출신의 각기 다른 개성의 여성들 사이에서 관객의 시선을 한번 더 사로잡은 건 이미 연기의 영역이라 할 만하다. 1987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태어난 애비 리는 어린 시절부터 앓아온 뇌수막염 탓에 곧잘 뼈가 부러지곤 했던 소녀였다. 하지만 건강을 되찾은 뒤 수줍음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모델 대회에서 상을 휩쓸기 시작한 지고작 4년 만에 2008년 뉴욕 패션 위크까지 진출하며 타고난 재능을 뽐낸다. 이후 밀라
[who are you] 시선을 사로잡는 힘 - <네온 데몬> 애비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