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르코프스키와 체호프가 나의 스승”심사위원 대상받은 <우작> 감독 누리 빌게 세일란을 만나다터키 출신의 누리 빌게 세일란이 <작은 마을> 에 이은 세 번째 장편 <우작>을 들고 칸에 나타났을 때 “심상치 않을 것이다”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미지에 강하고 가족과 고향을 즐겨 이야기한다는 이 감독은 제작과 촬영과 편집까지 도맡는 만능 영화인이라고도 알려져 있었다. 누리 빌게 세일란의 <우작>은 그래서 화제작이 드물었던 영화제 초반에 관심의 초점이 됐던 작품.<우작>은 두 남자의 이야기다. 또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이야기다. 공장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시골 총각은 이스탄불에 사는 사촌형 집에 머무른다. 청년이 찾는 이상적인 직업은 마음껏 세상을 돌아다니며, 미국달러도 벌 수 있는 외항 선원. 그러나 선원이 될 길은 요원해 보인다. 한편 사진작가인 사촌형은 이혼한 뒤 줄곧 혼자 살고 있고, 대화를 시도하는 사촌동생을 번번이 내친다
2003 칸 영화제 결산 [5]
-
굶주린 짐승처럼 영화를 탐식하다우아하고 감상적인 정성일의 칸영화제 오디세이, 그 마지막 장칸=정성일/영화평론가…(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이미 수상결과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나는 수상결과에 관심이 없다. 그건 파트리스 셰로와 11명의 심사위원들의 생각이지 내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칸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따라서 칸에 관한 나의 이야기는 수상결과와 상관없는 것이다(상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그 영화가 좋아질 리 없으며 수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결과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는 없다.우선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이 완전히 버림받은 것은 잘못이다. 만일 그가 <어둠 속의 댄서>에서 빈손으로 돌아갔다면, <도그빌>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도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미’ 인터뷰에서 “모든 결과로부터 홀가분하다!”고 대답했다. 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미스틱 리버>
2003 칸 영화제 결산 - 정성일[6]
-
로우예는 상하이의 시간에 씨줄과 날줄을 그리는 중이다. 1928년 만주에서 연인 사이인 일본인 이타미와 중국 처녀 딩후이(장쯔이)가 헤어진다. 그리고 1930년 상하이. 이타미는 중국 독립군들을 소탕하기 위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고, 딩후이는 독립군을 위해 일하는 중이다. 물론 로우예답게 이 영화의 제목인 ‘자줏빛 나비’는 맥거핀이다. 나비 무늬의 옷 장식은 역에서 사람을 오인하게 만들고, 이제 그들 사이에서 추적활극이 벌어진다. 매우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야기가 너무 유치하고 로우예는 이 영화가 지하전영이 되기를 원치 않았던 것 같다. 갑자기 이야기는 중국 독립군의 활약상을 다룬 프로파간다가 된다.어쩌면 로우예는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가 정성을 들이는 것은 30년대 상하이 분위기를 재현하고, 그 안에서 30년대 상하이 통속문학의 전통을 되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리 이 영화에 적대적인 이들조차도 탄식하게 만드는 마지막 장면과 마주해야 한
2003 칸 영화제 결산 - 정성일[7]
-
이마무라 쇼헤이가 뱀장어에서 인간성의 ‘보편적’ 회복을 본다면(<우나기>), 구로사와 기요시는 해파리에게서 무리를 지어다니는 ‘동시대 도쿄’ 젊은이들의 연대를 본다. 전공투세대가 뱀장어에서 왕성한 생식과 집요한 고향 회귀의 본능을 본다면, 버블경제 세대는 해파리에게서 즉물적인 생존본능과 무조건적인 행진만을 희망한다. 그들에게는 두 가지 사인만이 있을 뿐이다. 가거나, 기다리거나! 계속 기다리라고 말했던 마모루는 죽어가면서 유지에게 둘만이 약속한 사인을 보낸다. “가라!”이제 유지의 행진이 시작된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는 없다. 한 마리의 해파리는 유지의 모이를 먹고 수백 마리가 되어서 도쿄 시내를 가로지른다. 그걸 환희에 차서 바라보는 유지의 얼굴 다음 숏은 체 게바라의 얼굴을 담은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 직장도 없고 목표도 없는 젊은이들, 그들이 좀비처럼 도쿄 시내를 활보하는 롱테이크이다. 그러면 (그렇게 기다려도 알 수 없던, 그래서 거의 지쳐버린 다음에) 이제야
2003 칸 영화제 결산 - 정성일[8]
-
-
매우 단순하게 정리되었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소쿠로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오이디푸스적인 문제로 풀어나가는 것을 거절한다. 차라리 그 둘 사이는 이상하게도 동성애적인 끈으로 칭칭 감겨 있다. <어머니와 아들>에서는 풍경이 중요하다면 <아버지와 아들>에서는 육체, 그 살과 뼈가 만들어내는 힘의 형상이 중요해진다. 종종 그 이미지들은 둘 사이에서 뒤엉키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감정적 긴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육체가 서로 분리될 때, 그 상실의 긴장을 소쿠로프는 아버지와 아들의 방과, 그들의 창문 사이로 이어지는 지붕과, 그리고 지상의 땅으로 나누어 생각한다. 종종 이미지들은 여전히 마음대로 휘어지고, 그 굴곡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내면의 풍경화가 그려진다.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사유는 이미지의 지도에 있다. 소쿠로프는 페테르부르크와 이스탄불, 그리고 리스본을 한 장소로 가정하고 연출한다. 그래서 유럽을 가로지르는
2003 칸 영화제 결산 - 정성일[9]
-
독단과 편견으로 뽑은 ‘칸에서 본’ 2003년 10편의 영화이 순위는 내가 마음대로 정한 것이며, 이것은 영화제 수상결과와 아무 상관이 없다(나는 혹시나 영향받을 것을 두려워해서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뽑았다). 이 명단에서 복원판 상영과 회고전은 모두 제외시켰다. 그러니 아쉽지만 펠리니와 파졸리니, <불타버린 시간의 연대기>, 리처드 브룩스, 사뮈엘 풀러를 모두 제외시켜야 한다. 한 가지 더. 나는 2003년 칸에서 모든 영화를 본 것은 아니다(그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 명단은 내가 본 61편의 목록에서 선정한 것이다.01. <오고, 가며>(호아오 세자르 몬테이로) 비경쟁 공식초대작영화 괴인(怪人)의 레퀴엠. 죽어가는 육체를 이끌고 몬테이로는 다시 한번 우리를 음란한 상상과 피곤한 육신 사이의 논쟁으로 끌고 들어온다. 삶의 마지막을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멈추어선 카메라의 무한정한 시간, 그 안에서 원을 그리면서 마을버스를 타고 거듭 집으로 돌아오는 기상천
2003 칸 영화제 결산 - 정성일[10]
-
직능조합으로 전문성 향상과 처우개선을!한국영화산업 진단시리즈 5편-무로 현장 스탭들의 처우개선운동 현황과 대안스탭처우개선운동 일지2001년 3월14일 비둘기둥지(http://cafe.daum.net/vidulgi) 개설2001년 4월25일 비둘기둥지의 제안으로 대종상 시상식에서 스탭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침묵시위2001년 4월 촬영조수협회 구성2001년 5월 영화인회의, 영화진흥위원회, 비둘기둥지 3자가 스탭처우개선을 위한 연석회의 진행, 프로듀서2001 첫 모임2001년 6월 촬영조수협회 계약안 발표, 조감독협회 준비모임 구성2001년 7월 영화인회의 ‘제작환경개선 및 근로조건개선위원회’ 발족2002년 2월28일 조감독협회 창립총회2002년 7월 영화인회의 제작환경개선을 위한 연구보고 공청회2002년 11월27일 프로듀서2001, 촬영조수, 조명조수, 조감독협회 4부 조수협회 공동사업 확정2003년 2월 4부 조수협회 MT- 경과 보고와 향후 전망 모색2001년 4월
한국영화산업 X-ray 5 - 현장 스탭의 처우개선 [1]
-
02. 어떻게 조직력을 만들 것인가?스탭들의 초과된 노동시간에 대한 보상은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촬영이 24시간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도 특별한 수당을 기대하긴 힘들다.(사진은 기사내용과 상관없음)일단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조를 만든다면 조직이 쉽게 힘을 가질 수 있겠지만 분야별 스탭이 모여 단체를 구성한다고 곧바로 노조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노조에 대립항이 돼야 할 사용자가 불명확하고 영화별로 계약하는 스탭을 노동자로 인정할 수 있는지도 법적 문제를 고민해야 할 일이다. 때문에 현재 협회를 준비 중인 사람들은 “당장 노조를 만들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협회가 나갈 길도 직능조합의 형태일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조감독협회 부회장 이상필씨는 “협상테이블에 누가 나올지 생각해보면 막막하다. 어떤 요구를 한다고 해도 협상할 대상, 즉 사용자가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는 조합을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일단 조합은 노조처럼 법률적 검토를 필요로 하지
한국영화산업 X-ray 5 - 현장 스탭의 처우개선 [2]
-
아… 오늘도 악몽을 꾼다
김지운 감독이 쓴 <장화, 홍련>, 그 식은땀의 기록
"바로 이거야!" 무섭게 추웠던 지난해 어느 겨울날 신작 공포영화의 연출 제의를 덥석 받아든 김지운 감독은 참으로 용감무쌍했다. 부임하는 관리마다 영문 모를 시체가 되어 실려나가는 고장에 자청해서 뛰어든 <장화홍련전>의 철원 부사도 그만큼 담대하지는 못했으리라. 안 그래도 인간을 탈진시키기로는 '영혼 소환술' 못지않게 지독한 것이 영화 한편 만드는 작업일진대, <장화,홍련>은 내용마저 공포로 죽어간 원혼의 기억을 목놓아 부르고 있으니 김지운 감독을 기다리고 있는 고역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봄부터 김지운 감독은 악몽에 쫓기기 시작했다. 낮이면 촬영장에서 "피가 모자라"를 외치고 밤이면 "한을 풀려면 제대로 해‥"라고 따라다니는 장화,홍련 자매에게 쫓긴 지 어언 1년 반. 그러나 개봉을 코앞에 둔 김지운 감독의 가위눌림은 아직
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장화,홍련> 제작기 [1]
-
# 2002. 08.25아버지 역에 김갑수 선배를 만나 제의를 했다.연극 <길 떠나는 가족>에서의 너무나도 훌륭한 연기로 감동, 감화받은 나는 언젠가 저분과 꼭 작업을 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던 차였다.시나리오를 읽으시고는 아버지 캐릭터의 어려움을 정확하게 짚어내었다.“시나리오에서 모자란 부분, 선배님께서 채워주세요.”이런 말을 하는 내가 꼭 장사꾼 같았다.# 2002. 09. 07극중에선 항상 반듯한 이미지로 나온 염정아씨를 만나다.“장화 역 때문에 만나자고 하신 거죠?” 하며 혼자 깔깔거리며 웃는다.항상 쾌활하고 털털한 모습이다가 순간순간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흥미로웠다.어쩐지 재밌는 새엄마의 캐릭터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02. 09.09 ∼10. 061차 테스트 촬영 양수리 6세트에서 연기자 한명을 두고 인물, 엠비언스 조명과 벽지를 가지고 테스트 촬영을 함. 밤샘 촬영을 함(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수많은 색깔의 천을 많이 봄
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장화,홍련> 제작기 [2]
-
# 2002. 12. 07<살인의 추억> 현장에 놀러갔다.송강호와 김상경이 취조실에 있는 한컷을 봤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앵글, 연출, 연기의 삼박자가 완벽한 호흡을 이루며 전율을 느끼게 했던 경험은 <복수는 나의 것> 현장 이후 처음이었다.봉준호의 눈빛에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좋은 스탭과 훌륭한 연기자와 호흡을 맞춘 봉준호의 치밀함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이거 분명히 우리랑은 적어도 한달 정도 차이나게 개봉하는 거지?”촬영 전까지만 해도 한달 이상 사이를 두고 서로의 영화를 개봉하는 일정으로 촬영을 하자는 약속을 했던 봉준호.그런데 봉준호의 태도에 싸늘함이 느껴졌다.“글쎄 잘 모르겠네요. 좀더 늦춰질 것 같기도 하고…. 김무령 PD한테 물어보세요.”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이런… 배… 신… 자.”나는 김무령에게 뛰어가(물론 바로 앞에선 여유있는 폼으로 걸어갔다) 개봉일이 우리랑 부딪치는 거 아니겠지? 하고 물었다.“<장화, 홍련>이
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장화,홍련> 제작기 [3]
-
인디포럼의 어처구니들 새로운 길을 걷다.확실히, 우린 수식어에 약하다. ‘영화’를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고 숭배해 마지않는 시네필조차도 그 앞에 ‘독립’이란 수사가 붙으면 표정이 일그러지곤 한다. 그런 사정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닌 것이, 그동안 독립영화는 뭔가 비어 있고, 어딘가 부실하고, 왠지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6월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인디포럼 2003은 그런 고정관념을 일거에 불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더라도 저마다의 색깔을 다채롭게 입어가고 알맞게 숙성돼가는 독립영화의 싱싱한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올해 <씨네21>이 발견한 인디포럼의 감독들은 오늘의 독립영화라는 지형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3명의 감독이 모두 인디포럼에 처음 얼굴을 선보이며, 그중 두명은 독립영화로서도 ‘데뷔작’을 내놓고 있다. 그러니까, 이들은 충무로의 비주류인 독립영화계에서도 비주류인 셈이다. 물론 그들의 ‘비주류
인디포럼 2003에서 발견한 감독들 [1]
-
복수는 그의 것, 이야기는 나의 것___<미안합니다>의 박명랑 감독복수를 결심해본 적이 있는가. 잠깐, 너무 비장해질 필요는 없다. 주인공 K의 복수극은 지극히 사소한 데서 출발한다. 그는 버스에서 별 이유도 없이 한 고등학생으로부터 욕설을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때 꼬맹이에게 저항하지 못한 게 억울했는지 K는 복수를 결심한다. 이제부터 30대 남성의 철부지 10대를 향한 집요한 스토킹이 시작된다. 섬뜩하냐고? 이상하리만치 그의 복수극은 폭소를 자아낸다. “너의 잘못을 기억하는가?”하는 말투도 웃기고, 단지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 생업까지 포기하는 그의 태도도 코믹하다. 하지만, 하지만, 그 누구도 마지막 장면에선 히히덕거릴 수 없을 거다. 편집증, 강박증, 결벽증을 가진 이들이라면 절대 놓쳐선 안되는 영화.명랑 청년의 ‘비디오를 둘러싼 모험’ 어린 시절부터 박명랑 감독에겐 이상한 증상이 있었다. 그는 소설책을 읽으면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 못했고, 대신 그
인디포럼 2003에서 발견한 감독들 [2]
-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꾼___<제목없는 이야기>의 김진곤 감독쉿! 지금부터 김진곤 감독이 속사포처럼 늘어놓는 이야기에 주목하시길. “김구선생의안경은원래다른사람의것이었는데이토히로부미가쓰던것이었다안중근의사가하얼빈에서이토히로부미를암살할때김구선생이그자리에있었다는사실을알고있었나그때이토히로부미가떨어뜨린안경을김구선생이주웠다(…이하 생략).” 이후의 출연진도 빵빵하다. 이시영 선생, 이종찬, 헤겔, 후쿠자와 유키치, 구텐베르크, 정약용 등등등. 아차, 이 영화를 <역사스페셜>로 오해하면 안된다. <제목없는 이야기>는 역사를 빙자해 크게 ‘뻥’을 치는 영화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대반전은 가히 <유주얼 서스펙트>급이다. 믿거나 말거나….역사, 거짓말, 그리고 내러티브 역사 마니아이거나 능청맞은 이야기꾼, 분명히 둘 중 하나일 거라는 예상은 들어맞았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실(史實)들의 진위 여부를 묻는 질문에 김진곤 감독은 태연하게, 그리고 이상하다는 눈빛
인디포럼 2003에서 발견한 감독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