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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3: 지축을 뒤흔드는 아찔한 혜성 충돌 견디기
6월24일 토요일 오전 4시33분
G조 예선 6차전 스위스 VS 한국
토네이도가 서울 시내를 휩쓸고 간 며칠 뒤,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이라는 뉴스가 터져나왔다. “1년 전 발견된 이 혜성은 현재 지구와 충돌궤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직경 1.5마일, 길이 6마일로 뉴욕시 크기에 무게는 5천억톤입니다. 충돌 예상일은 6월26일, 지점은 대서양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나사에서 발표한 이 뉴스는 전세계 유수 언론을 통해 “독일월드컵 중단 위기”라는 헤드카피로 연일 보도됐다.
광화문 앞 광장이 개박살난 까닭에 붉은 악마의 집결지는 양재동 시민의 숲으로 정해졌다. 야외음악당 주변의 나무를 100여그루 잘라내고 전광판을 세우는 대형 공사가 4일 만에 끝났다. 월드컵 응원에 대한 집착은 광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P씨에게는 자신이 속한 붉은 악마의 파시즘이 혜성 충돌 뉴스보다 소름끼쳤다.
참, 프랑스전은 1 대 1로 비겼다. 프랑
붉은 악마, 가공할 재난에서 생존하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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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 만들어진 재난영화의 걸작 <포세이돈 어드벤쳐>가 볼프강 페터슨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호화 여객선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뒤집어진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 <포세이돈 어드벤쳐>는 위기가 가중되고 인물들의 심리가 격해지는 과정을 치밀하게 엮어낸 재난드라마다. 이 영화를 제작한 어윈 앨런은 영화의 엄청난 흥행에 힘입어 2년 뒤 또 다른 재난영화 <타워링>을 제작했다. 그가 제작한 두편의 영화는 1970년대 최고의 재난영화가 되었으며, 이견의 여지없이 영화사에도 길이 남을 작품들이 됐다.
페터슨의 리메이크작 <포세이돈>의 개봉을 계기로 가상 시나리오를 구상해보았다. 2006년 독일월드컵이 한창인 6월, 할리우드영화들에 등장했던 각종 재난의 소재들이 대한민국에 한데 덮쳤다는 가상 재난기이다. 엄청난 재난들 속에서 붉은 악마 회원인 P씨가 용케 살아남았다는 믿을 수 없는 생존기이기도 하다. 재난영화가 그렇다. 살아남아서 햇빛을 보는 자가 있
붉은 악마, 가공할 재난에서 생존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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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집 앞 튀김가게 벽에 동네 극장의 영화 포스터가 걸렸다. 하얀 모자에 하얀 양복, 그리고 하얀 백 구두를 신은 사나이가 검은 가죽장갑을 끼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고, 사나이의 백 구두 아래에는 피처럼 붉은 글씨로 <실록 김두한>이라고 써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나는 버스 정류장의 가판대에 진열되어 있던 ‘나는 참회한다. 주먹 천하 유지광’이나 ‘주먹 황제 시라소니’ 같은 성인 극화들을 통해 일제시대의 조선 주먹사를 어느 정도 꽤 뚫고 있었고, 외로운 늑대, 시라소니의 팬이 되어 있었던 터라 일주일간 그 포스터 앞을 오가면서도 영화를 꼭 보리라는 생각은 안 하고 있었다. 영화가 상영되고 며칠이 지나자,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실록 김두한>을 보고 골목길에서 주먹질 흉내를 내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나쁜 놈들이 허장강을 죽이는데 펜치로 살을 뜯어서 죽인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펜치로 뜯어서 죽이다니!
컴백 이대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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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이 돌아왔다. 한국 영화사 속에서 걸출한 액션 스타로, 그리고 고전 해학극의 달인으로 남아 있는 그가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쓰기 위해 영화 현장으로 컴백한 것이다. 현재 <이대근, 이 댁은> <무림 여대생> <아내의 편지> 등 세편의 영화를 찍거나 찍을 예정인 이대근을 만나 신작과 화려한 과거에 대해 들어봤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이대근의 액션영화에 심취했던 영화감독 오승욱이 그에 관한 아주 개인적인 글을 보내왔다.
1. “나 이대로 끝나지 않아∼!”
모두 깜짝 놀랐다. 이제 호호할아버지가 됐을 ‘왕년의 스타’를 기다리던 기자들과 영화사 직원들 앞에 나타난 건 팽팽한 얼굴과 단단한 근육의 사나이였다. 호적 나이로 예순넷, 그리고 본인에 따르면 “그보다 꽤 더 먹은” 이대근은 많아야 5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6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한국 마초의 아이콘’으로 불릴 정도로 진한 남성성을 뚜렷하게 각인시켜왔던 인물답게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컴백 이대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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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회 칸영화제 중간보고 [8] - 화보
제59회 칸영화제 중간보고 [8] -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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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8일 칸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사소한 몸싸움이 일어났다. 프랑스 경찰이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촛불시위를 단속하면서 홍보대사인 최민식과 시위대를 밀친 것이 발단이었다. 양기환 대책위원장은 며칠 뒤에 영화제 개막작 <다빈치 코드> 제작진이 100명 넘게 칸에 초대되었다는 사실과 그 시위를 비교하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티에리 프리모가 예술감독으로 영입되면서 할리우드와 거리를 좁히고 있던 칸영화제는 올해 <엑스맨3: 최후의 전쟁> <헷지> 등 유독 많은 할리우드영화를 불러왔고, 그만큼 시위대의 마음은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21일 연례이사회를 소집한 칸영화제는 20명 만장일치로 대책위와 스크린쿼터 사수를 지지하겠다고 밝혀 때마침 심포지엄을 준비하기 위해 모여 있던 시위대에 커다란 선물을 안겨주었다. 최민식 또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하면서도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스크린쿼터는 문화
제59회 칸영화제 중간보고 [7] - 스크린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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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0일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데일리는 “황금종려는 뜨겁게 젖어 있다”는 선정적인 제목의 에디토리얼을 실었다. <다빈치 코드>를 신성모독이라고 공격하는 세력은 표적을 잘못 찾았는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이 기사는 자세한 논평을 삼갔지만 올해 칸영화제에서 벌어진 육체의 향연이 정당한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들이 근심하는 대로 평이한 올해 칸영화제에서 이슈를 찾아보고자 노력한다면 단 하나 섹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스크린>에서 발행한 데일리도 지적했듯 칸영화제는 빈센트 갈로의 <빈센트 버니>와 클레어 드니의 <트러블 에브리 데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크래쉬> 등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켜왔다. 그러나 올해는 그 양상이 다르다. 올해의 영화들을 보고 섹스신의 강도와 의미와 존재이유를 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2006년 칸의 섹스는 공허하다.
섹스의 강도와 빈도, 화제를 모은 정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영화는 <헤드윅>의 존
제59회 칸영화제 중간보고 [6] - 섹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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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는 지리적인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재능을 발굴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도니 다코>의 리처드 켈리가 연출한 <사우스랜드 이야기>는 높았던 기대만큼이나 경이로운 실망을 퍼뜨렸고, 맥도널드를 긴장하게 했다는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패스트 푸드 네이션>도 <스크린 칸 데일리> 데일리 평점 1.7점으로 <사우스랜드 이야기>와 꼴찌를 다투고 있다. 보석은 스포트라이트 아래가 아니라 먼지 속에 있었다. 경쟁부문의 레드 카펫은 밟지 못했지만 충격과 재미와 감정의 파장을 전해주었던 자그마한 영화들이 그것이다.
<하마카 파라과이> _ 가치있는 침묵의 세계
<하마카 파라과이>는 1978년 독재정권의 지원을 받은 영화 <세로 코라>가 개봉한 이후 파라과이에서 처음으로 제작된 35mm 장편영화다. 아르헨티나에서 영화를 공부한 감독 파즈 엔시나는 외국에서 장비를 빌리고 스탭 25명을 모아 한없는 침묵을
제59회 칸영화제 중간보고 [5] - 비경쟁 부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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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하게 파고드는 한 남자의 마음
누리 빌게 세일란의 <기후>
대학교수 이사(누리 빌게 세일란)는 방송국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는 연인 바하(에브루 세일란)와 여행을 하다가 갑자기 이별을 통고한다. 그가 내세우는 이유란 바하가 자신에 비해 너무 젊다는 것뿐이다. 이스탄불로 돌아와서 홀로 한 계절을 보낸 이사는 지금은 자신의 친구와 사귀고 있는 옛날 여자친구 세랍을 찾아가 정사를 가진다. 겨울을 맞은 이사는 바하가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는 터키 동부로 휴가를 떠나고, 자신이 변했다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지겠으니, 다시 만나달라고 애원한다.
<우작>으로 2003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던 누리 빌게 세일란은 <기후>에서 아내와 함께 주연을 맡았다. 오랫동안 일해온 <우작>의 배우 에민 토프락이 사고로 죽은데다가 터키 전역을 돌아야 하는 촬영에 참여하겠다는 배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사진작가였던 세일란처럼 카메라로 유
제59회 칸영화제 중간보고 [4] - 작가 4인의 신작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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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여전히 살아있다
켄 로치의 <보리를 흔드는 바람>
아일랜드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영국 대령 버나드 몽고메리는 “반군이 스스로 붕괴하도록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 자치를 허용할 필요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1920년대 게릴라 전술로 영국군을 공격했던 아일랜드 반군은 그의 말처럼 분열하여 동지를 향해 총을 들었고, 아일랜드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켄 로치의 신작 <보리를 흔드는 바람>는 그 시절 자신을 버리고 전쟁터에 뛰어들었던 젊은이들의 투쟁과 상처와 선택을 조용하게 응시하는 영화다.
젊은 의사 데미안(실리언 머피)은 런던의 병원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영국 군대의 횡포를 목격하고 고향에 남기로 결정한다. 반군이 된 데미안은 그의 형 테디와 친구이자 연인인 시니드 등과 함께 아일랜드의 독립을 얻기 위한 싸움을 계속한다. 그러나 영국이 아일랜드 일부 지역을 제외한 자치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하자 피가 섞인 형제와도 같았던 군대는 내부 분열로 무너지기
제59회 칸영화제 중간보고 [3] - 작가 4인의 신작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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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서 성황리에 상영된 <괴물>, 열광적인 호응 얻어
상상한 것과 다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칸영화제에서 두번에 걸친 상영을 성황리에 마친 <괴물>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의 괴물영화다.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의 규모에만 집착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다른 길을 선택한 <괴물>은 감독주간 상영관인 800석 규모의 노가 크로와제를 두번 다 가득 채웠고, 매번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상영이 끝난 뒤에도 많은 사람들이 극장 앞에 모여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영화에 대한 반응 역시 호의적이었다. 5월23일에는 <버라이어티> 칸 데일리와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이 <괴물>에 대한 리뷰 기사를 크게 실었으며, 같은 날 발행된 <할리우드 리포터>에서는 사람이 몰린 마켓 시사에 참석하지 못한 마켓 관계자들의 요청으로 <괴물>의 마켓 시사가 24일에
제59회 칸영화제 중간보고 [2] - 봉준호 감독의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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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7일에 개막한 제59회 칸영화제는 같은 영화제의 감독주간과 비평가주간 개막식에서도 비웃음을 받은 개막작 <다빈치 코드>를 시작으로 불길한 징조를 보여왔다. 기대작이었던 <사우스랜드 이야기> <패스트 푸드 네이션>이 혹평을 받았고 주목할 만한 시선도 이렇다 할 수작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시작된 지 반세기가 넘은 세계 최대 영화제가 실망만 안겨주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켄 로치를 비롯한 유럽의 작가들은 건재한 신작을 선보였고 때로 젊은 감독과 낯선 국적의 보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감독주간에서 상영된 봉준호 감독의 <괴물>도 경쟁부문 영화보다 낫다는 호평을 받으며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영화제가 폐막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기대에 걸맞은 재능을 보여준 기성 감독들의 신작과 발견이라 할 만한 낯선 영화들을 소개한다. 베일에 싸여 있다가 마침내 공개된 <괴물>의 정체와 언론의 평가, 봉준호 감
제59회 칸영화제 중간보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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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를 씻고 새로운 경지에 서다
그리고 <카포티>는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어디에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조연배우의 한계를 벗어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당도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정점에 도달했다. 패배자이건 드랙퀸이건 자유로운 영혼이건 악당이건, 과거의 호프먼은 언제나 호프먼이었다. 심지어 관객의 속을 고통스레 뒤집어놓는 토드 솔론즈의 <해피니스>에서도 호프먼의 비루하고 처참한 캐릭터는 등을 토닥거려주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놈이었다. <카포티>는 그런 욕망과는 조금 다른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호프먼은 주책없을 정도로 명성과 재능에 눈이 먼 천재 작가의 초상에 인간적인 약점을 덧붙이고,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카포티를 존경하는 동시에 경멸하고, 사랑하는 동시에 미워하도록 만든다. 이를테면 호프먼은 <카포티>로 카포티 같은 괴물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호프먼이 이제 할리우드식 휘황찬란한 카리스마를 갖게 되었다는 의미
호프먼과 카포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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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오랜 팬이라면 <카포티>와 <미션 임파서블3>를 동시에 보며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두 작품에서 호프먼은 지난 14년간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이미지와 페르소나를 격렬하게 휘두른다. 도대체 어떻게 그는 여기까지 온 것일까. 과거의 그는 토드 솔론즈, 폴 토머스 앤더슨과 같은 명징한 재능의 신인들의 숨은 조력자였고, 앤서니 밍겔라와 스파이크 리와 데이비드 마멧의 사랑을 받는 재간둥이였다. 하지만 호프먼은 ‘누구나 얼굴은 알지만 누구나 이름을 아는 것은 아닌’ 배우였다. 스스로를 역할 속에 철저하게 숨기는 캐릭터 배우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포티>로 호프먼은 또 다른 경지에 접어들었고, 오스카의 후광은 그를 할리우드의 반짝이는 스타의 신전에 올려놓았다. 호프먼은 어떻게 37편의 영화를 거쳐 여기에 도달했는가. 그는 어떻게 근심하는 것을 그만두고 트루먼 카포티와 사랑에 빠졌는가. 우리 시대 위대한 젊은 배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과 카포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