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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고 또 고치면 설득 못할 관객 있으랴
<가을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렇게 단아하면서 섬세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낯선 곳에서 남녀가 우연히 계속 마주치게 된다는 미스터리 구조도 흥미롭지만 상처받은 낯선 연인의 이야기를 엮어가며 그 속으로 슬픔이 스며들게 하는 자연스러움이 놀라웠다. 20대 후반, 미지의 여성 작가? 그런데 이름은 씩씩한 ‘석’ 자가 들어가는데!
그는 이미 관록의 작가였다. 1999년 영화진흥공사 주최 상반기 시나리오 우수작에 뽑혔고 여러 작품에서 각색과 시나리오를 맡았다. 다만 오래전 준비했던 작품들이 뒤늦게 얼굴을 내밀고 있을 따름이다. 2000년에 작업한 <청풍명월>은 2003년에, 심지어 2001년에 쓰기 시작한 <가을로>는 이제야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에 각색해 2004년에 개봉한 <효자동 이발사>, 지난해에 작업해 올 가을 개봉한 <우리들의 행복한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3] - 장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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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서 얻은 아이디어도 메모해 꿰면 보배
<혈의 누>와 <짝패>를 쓴 이원재 작가(<위대한 유산> 등을 쓴 이원재 작가는 동명이인이며 여러 데이터베이스엔 두 작가의 필모그래피가 뒤죽박죽되어 있다)는 어렸을 적 꿈이 발명가, 만화가, 추리소설작가였다. <혈의 누>에서 묵직한 역사적 상상력을 스릴러 장르와 버무리고 <짝패>에서 부동산 조폭의 흥망을 재기있게 가로지르는 능력을 보면 꿈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중학교 근처에 큰 비디오 가게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작가 대신 발명가를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중2 때부터 가장 재미있는 영화가 자신의 길임을 ‘의심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어머니가 싫어해 연극영화과는 가지 못했다. 대신 영화의 본산인 프랑스, 남들도 영화 유학을 가는 프랑스에 가까운 공부를 하기로 했다. 불문과로 가서 친구 7명과 어울리며 단편영화도 만들고 ‘길거리에서’ 영화를 배웠다. 그러나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2]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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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쁜 영화가 나올 수는 있지만 나쁜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는 나올 수 없다는 게 구로사와 아키라의 격언만은 아니다. 충무로에서는 매일 이 격언을 뼈저리게 각성하고 확인한다. 시나리오라는 영화의 설계도가 튼튼하지 않으면 공사는 부실해진다. 그만큼 시나리오작가는 영화라는 꿈 공장의 핵심 인력이며 꿈 공장의 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충무로는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거나, 아니면 소설과 만화 원작을 사서 각색하면서 시나리오작가가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홀대하고 있다.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차이나타운>의 로버트 타우니의 치밀함, 신화화되고 있는 찰리 카우프만의 천재성, 낮에는 타워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고 밤에는 시나리오를 쓴 끝에 할리우드에 충격을 안긴 <쎄븐>의 앤드루 케빈 워커의 집요함 같은 얘기들이 충무로에선 잘 들리지 않는다. 걸출한 작가를 만드는 건 작가 본인이기도 하지만 환경이기도 하다.
언뜻 보면 감독들만이 빛나 보이는 충무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1] - 최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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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적 장르로 성모 마리아 신화를 깨고 싶었다”
-<네버 포에버>는 어느 정도 완성됐나.
7월 촬영을 시작해서 8월29일 끝마쳤고, 지금은 뉴욕영화의 후반작업을 거의 다 하는 포스트웍스라는 곳에서 편집 중이다.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
원래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여자의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가’다. 그것을 언제나 화두로 생각하고 있자니까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내가 항상 깨고 싶어하는 것이 성모 마리아 신화인데, 여자는 어머니와 창녀가 있다는 것 말이다. 둘 다 남자에게 뭔가(밥과 몸)를 준다는 점에서는 같은데, 굉장히 다른 종류의 존재로 여겨지잖나. 그런데 그게 사실은 같다는 것을 깨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른 한축으로는 멜로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불가능한 것을 원한다는 게 인간의 비극인데, 그게 가장 쓰라린 감정으로 느껴지는 게 멜로인 것 같다. 그런 얘기를 매우 하고 싶었다.
-이야기는 어떻게 떠올렸나.
하버드대학 초청교수를
충무로 미국 공략 [5] - 김진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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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아메리칸이 한국 문화를 탐험한다는 데 끌렸다”
-현재 미국에서 활약 중인 한국계 배우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샌드라 오가 가장 떠오르고 있고, 김윤진도 그렇다. 내가 처음 LA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이 산업에 한국인들은 별로 없었지만, 지난 10년간 굉장히 많은 젊은 아시아계 배우들이 이 비즈니스로 뛰어들었다. 촉망받는 한국계 젊은 배우들을 보고 있는 건 즐겁다.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다. 미국 주류사회는 우리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저들은 누구야, 어디서 온 거야라고 물으면서.
-<웨스트 32번가>는 한국계 감독과 한국계 배우가 나올뿐더러 한국 기업이 투자, 제작하고 있다. 특별한 느낌은 없나.
그동안 아시아인들과 아시안 아메리칸 사이의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아시아 영화산업도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산업과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번 협업에 흥분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충무로 미국 공략 [4] - 배우 존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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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관객에게 한국영화의 미학을 보여주고 싶다”
-이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애초의 이야기는 아시아 이민자의 범죄문제를 돕고 있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친구 에드먼드 리가 살인사건에 연루된 한 한국인 소년의 사건을 맡으면서 시작된다. 그는 몇년간 뉴욕 한인타운의 갱들을 만나면서 취재를 했다. 그리고 그는 내게 글을 보여줬고, 나는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나리오 작업은 몇년 전 끝냈고, 이를 테디 지에게 보냈다. 테디는 다시 이것을 CJ엔터테인먼트 미국법인의 테디 김에게 보냈다. 그리고 바로 얼마 뒤 우리는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나는 이게 모두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CJ엔터테인먼트와 작업하는 것이 유리한가.
이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한국 회사와 일하는 것이 좀더 편하기는 하다. 한국 문화와 관련된 많은 부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할리우드 경향으로 봤을 때, 최소한 한명 이상의 캐릭터가 백인이기를
충무로 미국 공략 [3] - 마이클 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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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충무로의 새로운 돌파구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흐름이 충무로의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수년 동안 한국영화의 제작비는 꾸준히 상승해왔으며, 100억원대의 대형 프로젝트가 1년에 여러 편 만들어질 정도로 규모도 커졌다. 하지만 시장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게다가 한때 한국영화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메워줬던 일본시장마저 찬바람이 불고 있으니 탈출구가 거의 없는 셈이다. “제작비의 덩치는 자꾸 커지는데 시장은 빤하기 때문에 옷이 튿어질 지경”이라고 한국 영화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아직 중국시장이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영화의 야망을 실현해줄 유일한 곳은 미국”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이 유럽, 남미 등 다른 대륙으로 진입하는 데 있어 통로 구실을 한다는 사실 또한 충무로의 ‘아메리칸 드림’을 자극하는 요소다.
이렇게 충무로가 미국 진출을 공언할 수 있는 것은 급상승한 한국영화의 위상이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이승재 LJ필름 대표는 “과
충무로 미국 공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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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는 아메리카 대륙을 향한 항로를 개척 중이다. 최근 들어 한국과 미국의 합작영화가 미국 땅에서 본격적으로 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영화계가 드넓은 태평양을 건너가 얻으려는 것은 미국시장이다. 한국 영화인들에게 미국은 ‘꿈의 시장’ 혹은 ‘궁극의 시장’이자, 일본에서의 한국영화 침체로 인해 불가피하게 개척해야 할 해외시장이기도 하다. 결국 지금 충무로는 미국시장의 문을 열기 위해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규모로 세계 최대이며, 세계 영화유통의 중심이기도 한 미국시장을 향한 충무로의 도전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웨스트 32번가>(가제)의 뉴욕 촬영장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해본다.
“Keepin’ movin’! Keepin’ movin’! Thank you!” 9월9일 오후 8시 뉴욕 맨해튼 서쪽 켠의 32번가, 다양한 얼굴색의 스탭들이 촬영장을 두리번거리는 행인들에게 관심을 끄고 지나쳐달라고 외치고 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술집,
충무로 미국 공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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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니저의 본업-배우 챙기기
9월8일 오후 3시 경기도 장흥 유원지의 한 모텔. 저 언덕 위에서 김혜수가 마구 달려오더니 막 도착한 박성혜 본부장을 덥석 끌어안는다. “아니, 촬영장에 웬일이래? 얼굴 보기 힘들더니.” 매니저 박성혜가 처음 만난 배우는 염정아였지만, 실질적으로 일을 시작한 배우는 김혜수다. 13년째 함께해왔으니 저렇게 반가워할 법하다, 했는데 김혜수가 달려내려온 건 연기의 끝 대목이었다. <바람피기 좋은 날>에서 대학생과 바람 피우다 남편에게 들통나 탈출하던 참이었다. 이윽고, 모니터 앞에 앉은 두 사람, 얼굴을 맞대고 소곤소곤 한참을 이야기한다. 이따금 박장대소들 터뜨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오래된 친구다.
매니저 박성혜와 손잡은 배우는 좀체 그녀 곁을 떠나지 않는다. 비결이 뭘까? 김혜수는 한때 충무로를 들썩였던 ‘장희빈 사건’을 예로 들었다. <바람난 가족> 주연 계약을 맺었던 김혜수가 드라마 <장희빈>의 주연을 맡아 두
[이성욱의 현장기행] 매니저 박성혜가 사는 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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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_ 싸이더스 HQ
타깃_ 본부장 박성혜
취재기간_ 2006년 9월7~11일
취재 중에 만난 사람_ 이명세 감독, 김혜수, 김병철 더 맨 매니지먼트 대표 등
‘사자의 탈을 쓴 여우’일 거야. 멀찌감치서 봤던 매니저 박성혜를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그녀의 머리는 수사자의 갈기처럼 야성적으로 솟아 있다. ‘야성적으로’는 ‘공격적으로’로 바꿔도 무방하다. 시가 총액 3천억원을 웃도는 IHQ의 주력부대 싸이더스HQ 본부장이니 수줍지 않은 머리 스타일조차 괜히 위세가 넘치지 않겠는가. 위세가 허세가 아님은 그녀와 머리를 맞대고 사는 배우를 불러보면 된다. 김혜수, 전도연, 황정민, 임수정, 공효진, 이종혁, 윤진서, 지진희, 염정아, 송혜교, 김성수, 하정우…. 그녀와 13년째 동고동락해왔거나 앞으로 해나가기로 작정한 배우들의 이름이다. 국내 최대 매니지먼트의 본부장은 예서 멈추지 않는다. 정우성, 전지현, 김선아, 이미연, 차태현, 조인성, 성유리…. 이들을 ‘관리’하려면 순간포착
[이성욱의 현장기행] 매니저 박성혜가 사는 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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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영화 프로듀서 조영각
“97년에 이지상 감독이 문화학교 서울을 찾아왔어요. 사무실을 좀 빌려주고 기획을 도와달라고요. 저도 그 당시에 독립영화에 프로듀서 역할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마침 그런 제안이 들어오니까 하게 된 거죠. 크게 걸린 거죠. (웃음)”
<둘 하나 섹스>는 프로듀서 조영각에게 상처를 주었고, 오기를 주었고, 교훈을 주었다. 영화에 들어간 개인 빚 때문에 3년간 은행에 시달려야만 하는 상처를 입었고, 긴 법정 투쟁에서 결국 개봉이라는 피곤한 승리를 얻을 때까지 오기를 쏟았고, 프로듀싱에 관련된 제작 방식의 교훈을 얻었다. 여기저기 손 벌려서 후반작업비를 충당하고도, 한참 뒤에야 개봉했지만, <둘 하나 섹스>의 평은 그다지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지금 <팔월의 일요일들>을 준비하는 그가 하는 말은 이렇다. “안 좋은 영화를 좋게 봐달라는 게 아니에요. 일단 봐달라는 거예요. 이진우 감독과
독립영화인, 조영각 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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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영각. 독립영화에 관한 한 이 사람을 통하면 가장 신속하고 믿을 만한 정보와 해석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된 지 거의 10여년이 다 되어간다. 언론 지상에서는 물론이고 집회와 세미나 등 각종 독립영화 행사에 가면 언제나 그를 볼 수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은 그를 보고 독립영화의 마당발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의 당당한 판단과 행동은 그동안 몇몇 이슈를 낳았고, 더 중요하게는 그것들이 진보된 결과를 낳았다. 그가 9월29일 개봉하는 독립장편영화 <팔월의 일요일들>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이것도 진보적 이슈의 조짐일까? 독립영화의 마당발이자 <팔월의 일요일들>의 프로듀서 조영각의 스토리를 풀어보았다.
“뭐야, 이번에는 ‘조영각 화보집’ 나오는 거야?” 40여분째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조영각씨를 두고 친한 지인들이 먼 발치에 서서 자기들끼리 한마디씩 농담을 주고받는다. 안 그래도 “내가 아니라 감독이 나가는
독립영화인, 조영각 스토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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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25: 레이첼 칼슨
레이첼 칼슨은 잘나가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녀의 삶은 외동아들이 익사한 뒤 완전히 틀어진다. 레이첼은 과도한 충격과 스트레스, 자기 비하로 인한 일종의 신경증을 앓고 있었다. 그녀가 간간이 아들의 귀신과 목도한 것은 결국 이와 같은 신경증적 증상에서 빚어진 결과였다. 자신의 무관심과 방기로 아들이 죽게 됐다는 죄책감은 환상 내지는 망상을 보는 데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약까지 복용했지만 증상이 워낙 심각했던 터라 쉽게 차도가 나타나지 않았다.
레이첼이 신경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남자와의 연애다. 탄탄한 몸매 그리고 훌륭한 패션 감각을 뽐내는 레이첼은 척 봐도 남자에게 인기가 많을 타입이었다(기억의심클럽 회원인 그녀는 동호회 남자 절반 이상에게 한번 이상 고백을 받은 신기록의 소유자다). 외딴 해안 마을에서 만난 앵거스는 로맨틱한 바다 사나이로 (연하였음이 분명하지만) 누구보다 진지하고 어른스러운 남
불완전한 기억을 다룬 영화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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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레너드 쉘비. 단기기억상실증이란 희귀병을 앓고 있다. 아내가 살해당한 뒤 온갖 불행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잠깐이면 까무룩히 정신을 잃는 이 병 때문에 생각만큼 쉽진 않지만 말이다.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난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중에는 기억의 불완전함으로 고통받는 사람 역시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나는 그들의 증상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자연스레 관심을 기울이기 됐다. 각각의 경우에 번호를 붙인 다음 병명에 대해 짧게 기술하는 노트도 하나 마련했다. 아내를 찾는 와중에도 이런 작업에 신경을 쏟은 이유는 그들이 내 증상의 정도를 가늠할 일종의 좌표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기억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그들의 증상을 집요하게 추적해나갔다.
이렇게 이 노트가 탄생했다. 사실 노트의 공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나를 포함해 100여명의 정보를 담은 이 물건은 내게 삶의 의미나 다름없
불완전한 기억을 다룬 영화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