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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세계를 사랑하는 아시아영화 전도사
사토 다다오는 일본의 아시아영화 전도사다. 140권이 넘는 그의 저서 중에는 일본 감독에 대한 책, <아메리카 영화> <유럽영화> 등 1세계 영화를 다룬 책 이외에도 <중국영화 100년> <아시아영화> 등 아시아 각국의 영화를 쉬운 화법으로 소개하는 책이 많다. 아시아 국가 여러 곳에서 많은 감독들이 그를 형님이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신의 저서 <영화로서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가>의 제목에 대해 그는 평생 긍정을 표해온 셈이다.
-일본 외의 아시아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문화대혁명 직후, 중국 사람들에게 세계영화에 대해 이야기해줄 일본 영화인으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중국영화에 흥미가 있었다기보다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무렵 만들어진, 일본에 저항하는 내용의 영화가 궁금해서 옛날 중국영화를 보여달라고 부탁했죠. 그런데 그 영화들이 단순한
일본의 영화평론가 사토 다다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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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에 속하는 영화광이며 영화평론가인 사토 다다오(佐藤忠男)는 1930년생이다. 지난 9월25일, 일본영화학교 교장으로 요코하마 학생영화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그를 만났다. 시대와 취향을 막론한 방대한 저술을 자랑해서인지 지금도 특정 일본영화나 감독에 대해 말하기 위해 그의 글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각종 기사와 논문에서 마주했던 노장에게서 영화와의 인연과 영화를 통해 그가 만나게 된 세계에 대해 물었다. 사토 다다오와 알고 지낸 한국 감독 3인에게서 그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을 함께 청해들었다.
“요즘도 강단에 서십니다. 좋아하는 감독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내죠.” 일본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에 속하는 영화광이며 영화평론가인 사토 다다오(佐藤忠男)는 1930년생이다. 영화감독을 키우는 실무 위주의 일본영화학교 교장으로 10년째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그의 건강에 대해 묻자, 통역을 맡은 일본영화학교 학생이 대뜸 대답한다. “지
일본의 영화평론가 사토 다다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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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 감독의 일곱 번째 영화 <후회하지 않아>
넌 부자여서 도망할 곳이 있겠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어. 수민이 재민을 향해 나지막이 내뱉는 순간, <후회하지 않아>의 목소리는 명백해진다. 이송희일 감독이 카프 작가 강경의 <인간 조건>에서 빌려온 이 대사는 <후회하지 않아>가 소년들의 달짝찌근한 로맨스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후회하지 않아>가 관객을 데려가는 곳 역시 종로 구석의 음침한 호스트바. 열여덟 순정의 게이가 아니라 가난한 남창들이 손님들의 몸을 핥으며 삶을 영위하는, 비루한 서울의 구석이다.
수민(이영훈)은 주간에는 공장에서, 야간에는 대리운전기사로 일하며 살아가는 고아다. 수민의 인생이 또 다른 악장으로 접어드는 것은 공장 부사장의 아들 재민(이한)을 만나면서부터다. 수민과 재민은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계급의 차이는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회사에 반기
부산의 한국영화 7편 [7] - <후회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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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훈 감독의 세번째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
<벌이 날다>로 데뷔한 민병훈 감독은 모스크바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 영화감독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생가를 찾아 아르메니아로 떠난 적이 있다. 집만 한채 덩그러니 있는 파라자노프의 생가를 보고 아르메니아의 수도로 돌아오던 민병훈 감독은 도중에 트럭을 얻어 탔고, 운전사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하룻밤 숙소를 마련했다. 그날 밤 운전사의 가족이 찾아와 그가 아프다며 민병훈 감독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민병훈 감독을 만난 남자는 아르메니아어와 러시아어를 섞어가며 너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다, 고 말했다. “나는 신비주의자는 아니지만 이상한 두려움을 느꼈다. 20, 30년 뒤의 내 모습이 내 앞에 현존해 있다면, 그리고 그가 민병훈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 기이한 경험이 수년이 지나 <포도나무를 베어라>의 씨앗이 되었다.
신학생 수현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부산의 한국영화 7편 [6] - <포도나무를 베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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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석 감독의 두번째 청춘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신이 없어요 그런데.” 서투른 순수함으로 가득한 청춘은 냉혹한 세상의 벽에 부딪혀 신음한다. 장편 데뷔작 <마이 제너레이션>으로 카드빚의 늪에 빠진 청춘을 담담하게 직시했던 노동석 감독은 다시 한번 신열과도 같은 젊음의 시간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낭만의 거품을 걷어낸 청춘의 방황은 여전하지만, 3천만원의 저예산으로 제작됐던 전작과 비교할 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제작 규모가 커졌을 뿐 아니라 연출 또한 한결 안정되고 세련돼졌다. 감독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맨 얼굴”과도 같았던 <마이 제너레이션>에 비해 <우리에게…>는 “화장을 한” 셈이다.
<우리에게…>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기수(김병석)와 그를 친형처럼 따르는 종대(유아인) 이야기다. 기수는 드러머를 꿈꾸지만 현실의 무게 탓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세상을 향
부산의 한국영화 7편 [5]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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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혜 감독의 데뷔작 <여름이 가기 전에>
모진 사랑의 열병 때문에 상처를 입고서 ‘이제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랑은 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맹세란 너무도 쉽고 빨리, 다시금 눈먼 열정에 묻혀버리고 만다는 것을. <여름이 가기 전에>의 주인공 소연(김보경)도 그 부질없는 다짐의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파리에서 유학 중인 그는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왔다가 순수한 남자 재현과 가벼운 만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소연의 마음속에는 한때 파리에서 열렬히 사랑했다 헤어진 이혼남 외교관(이현우)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 소연은 부산에서 출장 중인 그를 만나기 위해 부득불 내려가기도 하고, “파리로 돌아가기 전 우리집에서 함께 지낼까”라는 그의 제안에 솔깃해 짐을 싸갖고 언니네 집을 나오기도 하지만, 남자의 미적지근한 반응 때문에 항상 기대와는 다른 결과를 맞이할 뿐이다. 정작 만나고 나면 그와의 관계가 건조하게 말라붙었다는 사실을 거듭 깨달
부산의 한국영화 7편 [4] - <여름이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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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감독의 세번째 영화 <아주 특별한 손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20대 초반의 착해 보이는 여자 보경(한효주)에게 무섭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건장한 사내 두명이 다가온다. 그리고는 난데없이 취조에 가까운 질문공세가 이어진다. “고명은! 명은이 아냐? 에이 명은이 맞는데….” 자신은 명은이가 아니라고 말한 여자는 사내들의 집요한 착각에 당황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다. 도시 한복판에서 갑자기 다른 이의 이름을 들고 온 남자들에게 동일인이 아니냐고 추궁당하는 것은 짜증나는 일이고, 당하는 사람이 여자일 경우 겁나는 일이다. 그런데도 결국 여자는 남자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겁없이 차를 타고 동행까지 한다. 그녀는 어느 중년의 홀아비가 죽음을 선고받아 의식불명 상태에 놓여 있고, 그의 딸은 집을 나가 몇년째 소식이 없는데, 당신이 그 딸의 모습과 비슷하니 단 하루라도 죽음 앞에 처한 그에게 딸인 양 얼굴을 보여주면 안 되겠느냐는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부산의 한국영화 7편 [3] - <아주 특별한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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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감독의 첫번째 장편 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기사와 승객. 두 남자가 탄 택시가 구불구불한 국도를 나른하게 미끄러져 나간다. 왜소한 손님의 이름은 김태한(박광정). 강원도 양양군 낙산읍에서 도장포를 경영한다. 잘생긴 서울 택시기사 박중식(정보석)은 대문만 나서면 곧장 애인 중 한명과 마주치는 바람둥이다. 전국에 분포한 중식의 숱한 연인 중에 태한의 아내도 있으니, 질투로 속이 곯은 남편은 어제 마침 ‘씨팔’이라는 두 글자를 붉은 낙관에 새겨 내리찍고 떨쳐 일어섰다. 서울까지 달려온 그는 중식의 멱살을 잡는 대신 낙산행 장거리 주행을 주문한다. 밀회를 부추겨 현장을 덮칠 궁리지만 어떤 놈인지 좀 볼까 싶기도 하다. 영화는 심리적인 자승자박 상태에 빠진 태한의 눈에 비친 국도변 풍경을 스케치한다. 두 남자의 낙산행은 슬슬 몽롱한 소풍이 된다.
긴 우회로를 거친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첫 장편인 김태식(47) 감독은 스스로
부산의 한국영화 7편 [2] -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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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부산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영화는 윤종빈 감독의 졸업작품 <용서받지 못한 자>였다. 허문영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는 2006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았던 이 영화로 인해 “초저예산으로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신선하게만 느껴졌던 한국영화의 새로운 경향은 올해 더욱 거센 물줄기를 타고 되돌아왔다. 부산영화제는 ‘한국영화의 오늘’ 부문에 저예산과 독립영화만을 모은 섹션 ‘비전’을 신설했고, ‘새로운 물결’ 부문에 초청받은 한국영화 두편도 10억원 미만의 예산을 가진 저예산영화다. <역전의 명수>로 씁쓸한 데뷔전을 치렀던 박흥식 감독은 상업적인 성공에의 강박을 버리고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이야기 <경의선>으로 돌아왔고, 먼 길을 돌아 지천명을 앞둔 나이에 데뷔작을 만든 김태식 감독은 중년 사내의 황당하고도 쓸쓸한 여정을 희비극으로 엮어낸 <아내의 애인을
부산의 한국영화 7편 [1] - <경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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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게, 단순하게, 수다스럽게, 즐겁게
무심한 듯 흘러가는 일상에서 건져지는 온기는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선경이 노래한다. 경석이 구슬을 달아준 드레스를 입고 있다. 동작에 따라 구슬이 반짝반짝 빛난다. (중략) 옷이 계속해서 화려한 색깔로 변한다. 갑자기 선경이 선녀처럼 펼쳐져 하늘로 오른다. 와- 함성, 박수갈채. (중략) 하늘에 폭죽 터진다.’ <가족의 탄생>에서 선경(공효진)이 합창하던 중 공중부양하는 장면의 묘사는 시나리오를 들추면 이렇다. 김태용 감독과 함께 쓴 <가족의 탄생> 시나리오는 공기처럼 일상 주위를 흐르다가 식상할 수도 있는 진심을 이렇게 재치있게 표현한다. 그러나 세개의 이야기가 별도로 진행되다가 만나는 구조를 만드는 과정은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다. “감독님이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내 얘기는 채현(정유미)과 경식(봉태규)에게서 시작했다. 너희들 사랑이 새롭고 예뻐 보이지만 결국 너희 부모님도 그런 사랑을 했었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8] - 성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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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2%를 채우는 마음으로
영화사에서 꺼려하는 시나리오작가들의 부류는 대개 이렇다. 먼저, 함흥차사형. 정해진 날에 시나리오를 토해내기로 하고서 감감무소식이다. 또 하나는 멋대로형. 작업 포인트에 합의해놓고서 정작 가져오는 결과물은 완전히 딴판이다. 시나리오작가는 킬러와 비슷하다. 목표를 앞에 두고 미적대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덤벼드는 킬러에게 의뢰가 쏟아질 리 없다. 이숙연이 충무로에서 인정받는 건 ‘감성이 뛰어난 멜로 전문 작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와 함께 작업한 한 영화인은 “말처럼 쉽지 않은 약속을 어김없이 지켜왔다는 점에서 신뢰가 가는 파트너”라고 전한다.
성실은 청취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라디오 방송작가로서 15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방송 일을 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뭔가 쓰는 게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그는 지금도 아침 6시30분이면 일어나 <유열의 음악앨범> 대본을 쓴다. 시나리오를 집중해서 쓸 수 있는 건 방송이 끝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7] - 이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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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된 벽돌공처럼 튼튼한 이야기를 쌓는다
강제규 감독과 함께 쓴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김성수 감독의 20페이지짜리 트리트먼트를 기초로 했던 <야수>의 시나리오는 무엇보다 뜨겁다. 전쟁으로 상처입는 뜨거운 형제애가 있고 사회의 부조리함 또는 악함과 싸우려는 뜨거운 정의가 있다. 이 두편을 쓴 한지훈 작가는 실제로 호수 표면처럼 잠잠한 사람이다. 그는 시나리오작가를 기능공에 비유했다. “기획영화가 많아지면서 그런 측면이 더 강화되는 것도 있지만, 제작사의 성향과 감독의 의도라는 게 있다. 그런 것에 최대한 맞추려고 하는 편이다. 작가 혼자 작업할 때조차 기능공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런 현실적인 태도 때문인지 그는 “스타일이 잘 맞는” 감독과 함께했던 <야수>에 대해서도 스스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다. “유강진(손병호)의 캐릭터가 다소 진부하지 않았나 싶다. 악의 화신으로만 그려졌던 것이 아쉽다. 피의자 사망사건으로 형사 장도영(권상우)과 검사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6] - 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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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저리 사람들을 희곡에, 시나리오에 담는다
조범구 감독의 장편영화 두편 <양아치어조>와 <뚝방전설>의 시나리오를 작업한 박수진 작가는 감독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한살 터울인 친형의 친구이기도 해서 중학교 때부터 알아왔고, 근 20년을 본 사이라 이제는 같이 술을 마셔도 2시간만 지나면 할 얘기가 없을 만큼 서로를 많이 안다. <뚝방전설>은 제작사 싸이더스FNH와 먼저 계약을 맺은 조범구 감독이 “남자 이야기를 해보자”는 권유를 받고 박수진 작가에게 각본을 맡긴 경우다. “감자탕에 소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우리 고등학교 때 얘기나 해볼까 해서 쓰게 됐다. 경희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때 있었던 노타치파, 물레방아파에다가 친구들 실명까지 다 끌어왔다.”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20일 만에 써내려간 <뚝방전설>의 시나리오는 비록 주인공의 실패를 담고 있어도 덧칠된 추억 덕에 따뜻하다. “양아치 청춘과 양아치 같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인 &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5] -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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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은 접어두고, 끝없이 달리고 달린다
정서경 작가는 4년 전 예비 감독으로 <씨네21>과 인터뷰를 했다. 영상원 시나리오과 3학년 때 쓴 <전기공들>이 코닥 단편영화 제작지원 선정작으로 뽑혀서다. 필름 맛을 봤으니 지금쯤 충무로에서 감독 데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터인데 전업 시나리오작가라니. 작가 출신 감독들이 속속 데뷔하는 걸 보면, 잠시 택한 우회로인가. “감독은 애초 생각이 없었다. 사실 학제가 바뀌어서 영화를 만들어야 졸업이 가능했다. 그래서 낸 건데 덜컥 됐다. 촬영 첫날 어떻게 슛을 부르는지, 언제 컷하는지도 몰라서 스탭들한테 눈총받았다. 한컷 찍고 20분 쉬다가 촬영감독한테 욕먹고, 화장실에 갔는데 목 매달고 싶더라. 정말이지 돈 주고 감독을 사고 싶었다.”
이후 메가폰을 다시 들지 못했지만, 그는 이제 꽤 유명한 시나리오작가다. <모두들, 괜찮아요?>로 충무로에 발디딘 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4] - 정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