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초 필름을 지배하라
배우 8인을 중심으로 살펴본 CF 속 스타 이미지와 흡입력
CF와 배우의 관계에 대한 가장 파다한 소문은, CF가 배우의 사치스러운 부업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라는 질문에서 이 기사는 출발했다. CF는 물론 상업적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냉정하고 예민하다. 광고 대행사 컴온21의 이원흥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하 CD)는 “욕망의 이유를 따질 줄은 모르지만 욕망의 유형에는 민감하다”는 말로 광고의 습성을 요약한다. 다르게 말하면 TV CF는 스타와 장르를 고도로 증류해서 사용하는 15초 길이의 필름이다. 광고의 창작자들은 스타가 지닌 대중성의 핵심을 보존하면서 매번 새로운 타점(打點)을 모색하는 전위다. 따라서 배우를 모델로 기용한 CF는 지금 그가 대중적 감수성의 어떤 부위를 건드리는지 계산한 결과를 반영하는 배우 이미지의 최종 심급이기도 하다. CF와 배우에 관한 또 다른 소문은 CF가 연기력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
CF로 배우를 엿보다 [1]
-
병두는 황 회장을 괴롭히던 현직 검사를 살해하고, 그 일로 황 회장의 신임을 얻는다. 황 회장의 재개발 사업을 돕게 되고, 또 민호를 통해 첫사랑 현주(이보영)와도 재회하는 등 병두의 삶에 볕이 드는 것 같지만 그것도 잠시. 현주는 병두의 극악함에 질리고, 재개발 사업 또한 독사파의 방해로 순탄치 않다. 결국 병두는 어머니와 두 동생들을 위협하기까지 하는 독사파에 린치를 당한다.
“내 영화의 액션은 스타일리시한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다. 날것이 주는 쾌감은 있을지 몰라도 근사한 합으로 액션이 이뤄져 있지 않다.” 유하 감독은 액션보다 드라마를 중요시한다. 액션은 부차적이고 기능적인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이어 <비열한 거리> 또한 ‘돋보이는’ 액션보다 ‘묻어나는’ 액션에 중점을 둔 영화다. 최선중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유하 감독의 액션 연출은 박노식, 장동휘 등이 출연한 1960, 70년대 ‘짠짠바라’(액션 스타들이 대결을 앞두고 맞서면 어김없이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 액션노트 [2]
-
<비열한 거리>를 액션영화라고 분류할 순 없다. 액션, 그 자체의 쾌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유하 감독 또한 촬영 중에 “이 영화 속 모든 액션은 드라마에 복무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열한 거리>를 액션영화라고 부르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그러했듯이, <비열한 거리>에서도 유하 감독은 액션보다 감정의 흐름을 우선했다고 한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온 최선중 프로듀서는 “평소 좋아하는 무협영화를 만든다면 또 모르겠지만”이라면서, “그의 영화에는 액션을 위한 수사가 없다. 그가 취하는 액션은 철저하게 드라마에 복속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배우들에게 멋있는 발차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개각도 촬영은 물론이고 심지어 흔한 고속촬영도 좀처럼 안 한다. 촬영 때 합이 맞지 않아서 ‘삑사리’가 나더라도 그게 진짜 싸움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한다. <비열한 거리>를 액션영화라고 부를 순 없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 액션노트 [1]
-
순간적 충동의 예술관 보여주는 김기덕의 작품세계
김기덕 감독에 관한 오해가 있다. 그는 아마 최근 몇년간 상을 많이 받은 감독 중 한명일 것이다. 그런데 수상 경력은 관객의 머릿속에서 작품을 고립시키는 경향이 있으면서 일종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김기덕 감독의 어떤 작품도 본성상 완결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의 영화 전편은 손에 손을 맞잡고 추는 길들여지지 않은 춤의 하나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이를테면 각각의 작품은 솟구쳐 오르면서, 그 속에서 다른 작품들을 이끄는 손에 손을 잡고 맞물려 있다.
동일한 주제와 장면이 맞물려 연결되는 작품들
주제들을 열거하고, 똑같은 장면들을 재현하고, 삭제하고, 지우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예를 들어 <해안선>은 여러 면에서 <수취인불명>의 연결선상에 있다. 이 작품들은 6·25 전쟁과 군대의 토대에 관한 반자전적인 닮음꼴 2부작을 구성한다. 무언가에 쫓기고, 미쳐버린 미
김기덕과 <시간> [3]
-
-
벌어진 틈새 위에 존재하는 김기덕의 작품세계
“김기덕 시스템”은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김기덕은 이렇게 대답한다. “시스템 같은 것은 없다. 나는 물이다… 나는 단지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김기덕 영화의 힘은 특유의 내러티브와 그것을 이미지화하는 회화적 “물방울”에 있다. 그 안에서 인물들은 이름과 얼굴은 바뀌지만, 동일한 정체성을 갖는다. ‘김기덕 워터 시스템’(김기덕이 “나는 물”이라고 말한 것에 빗대어 “물방울”과 “water system”이라는 표현을 썼다)은 테마적인, 그리고 시각적인 두개의 층으로 짜여진 조직이다. 첫 번째 층은 김기덕 영화의 이야기와 인물을 형상화하는 혼돈스러운 배경을 의미한다.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몇개의 강력한 핵심들은 언제나 변증법적이고 상호 대립하는 두 요소들간의 관계로 쪼개어진다. 그의 영화세계는 많은 방들- 수많은 프레임들이 영화를 채우듯 각각 수많은 그림들로 가득 찬-로 구성된 하나의 회화적 집합체이다.
성적 행위와 폭력으로
김기덕과 <시간> [2]
-
김기덕의 열세 번째 영화 <시간>의 최초 시사회가 지난 5월25일 <씨네21>과 KT&G 공동 주최로 열렸다. <시간>의 개봉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영화를 개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씨네21>은 개봉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시간>에 대해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미리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여기에는 김기덕 영화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해외 필자들의 소중한 글을 같이 실었다. 한국영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피력하고 있는 프랑스 영화잡지 <포지티프> 기자인 아드리앙 공보의 글과 이탈리아의 영화평론가 안드레아 벨라비타의 글이 그것이다. 두 필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각각 자국어로 김기덕 감독에 관한 책을 낸 저자들이다(유럽에서 한 한국감독에 관한 책이 두 권씩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검은 화면에 두번 연거푸 쓰인 <시간>이라는 제목이 뜬다. 마치 찌그러진 데칼코마니인 양 양편으
김기덕과 <시간> [1]
-
칸영화제가 끝난 것을 알았던 것일까.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두번 받았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80)이, 지난 5월30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간암으로 별세했다. 이번 칸영화제에서는 켄 로치 감독이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거장의 건재함을 알렸지만,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죽음은 일본영화의 한 시대가 막이 내렸음을 알린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 이후 일본영화의 거장을 꼽는다면 가장 먼저 오시마 나기사와 이마무라 쇼헤이가 떠오른다. 오시마 나기사는 성과 정치의 최전선에서 투쟁했고, 이마무라 쇼헤이는 인간의 생명력 그 자체를 탐구하며, 일본영화의 거친 60년대를 대표했다. 서로 다른 길이었지만, 이마무라 쇼헤이와 오시마 나기사는 각자 일본이라고 하는 사회 혹은 세계의 근원을 치열하게 파고들었던 문제적 감독이었다. 두 감독은 90년대까지 꾸준히 작품을 내놓았지만, 오시마 나기사는 1999년 <고하토>를 연출한 뒤 건강문제로 활동중단 상태였다. 21세기
추모, 이마무라 쇼헤이
-
소피아 코폴라의 <마리 앙투아네트>
혁명은 부족하나 너무 화사한
5월24일에 있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상영은 야유와 박수소리의 불협화음으로 요란했다. 한편 5월26일자 <필름 프랑세>와 <스크린 인터내셔널>에는 그때까지 상영된 그 어떤 영화들에 주어진 것보다(게다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의 영화에 쏟아진 것보다) 많은 최고점이 <마리 앙투아네트>에 쏟아졌다. 평점은 최고가 아니었지만 최고점을 준 사람은 가장 많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바닥난 국고, 무의미한 해외에서의 전쟁, 극심한 가난 등으로 성난 군중에게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지”(한국에는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로 알려진 바로 그 말)를 했다는 일화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진 사치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이었던 민중 봉기의 합당한 대의명분하에서 참수형을 당한 프랑스의 왕비였다. 영화는 프랑스 역
제59회 칸영화제 총결산 [3]
-
전쟁과 요정이 함께하는 슬픈 연민의 영화
아이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부모가 살해당하고 집이 무너지고 친구가 사라지는데도 이유를 묻지 못한 채 그저 살아남아야만 한다. 옛날이야기로 시작되는 <판의 미로>는 잔인하고 거대한 세상의 한복판에 던져진 그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전쟁을 견디었는지 기억해주는 영화다. 겁먹지 않고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어린아이. 2001년 <악마의 등뼈>에서 죄없이 죽은 소년과 보호받지 못하는 고아들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그 영화의 “거울 이미지이자 쌍동이 같은” <판의 미로>에서도 차가운 돌바닥에 누운 소녀를 위해 서글픈 자장가를 불러준다.
<판의 미로>는 스페인 내전이 끝난 1939년이 배경이었던 <악마의 등뼈>와 비슷한 시대의 이야기다. 1944년 스페인, 몇몇 게릴라들은 내전이 끝났는데도 산속에 숨어 독재자 프랑코 정권에 저항하고 있다. 오펠리아는 어머니와
제59회 칸영화제 총결산 [2]
-
제59회 칸영화제가 5월28일 막을 내렸다. 개막작 <다빈치 코드>로 불길하게 시작했던 칸영화제는 유럽의 거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켄 로치, 아키 카우리스마키, 난니 모레티의 영화를 중반 이전에 공개하고도 약세를 만회하지 못했다. 고른 호평을 받았던 켄 로치의 <보리를 흔드는 바람>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많은 이들이 그럴 바엔 켄 로치의 이전 영화들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불평하고 있다. 눈에 띄는 걸작이 없는 가운데 최대한 공감을 얻으려 애쓴 것처럼 보이는 칸영화제를 되돌아보고,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칸영화제의 취향을 넓혀주었다고 할 만한 수작 세편을 소개한다. 어둡고 아름다운 지하 미궁을 창조한 판타지영화 <판의 미로>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떼어놓고 탐구하여 찬반 격론에 휩싸인 <마리 앙투아네트>, 정치영화의 선동성과 탈옥영화의 긴장감을 함께 지닌 <부에노스아이레스 1977>이 그것이다. 축제는
제59회 칸영화제 총결산 [1]
-
미스틱은 일을 하려면 철저히 한다는 주의다. 다른 존재로 둔갑할라치면 아예 성문, 지문, 망막까지 복사하고 무술, 총검술, 컴퓨터 정보처리 기술도 완벽하다. 요컨대 007보다 유능하고 본드걸보다 섹시하니 인간 스파이들이 비공개 팬카페를 결성했다는 소문이 돌 만도 하다. 그러나 누구의 모습을 훔치더라도 미스틱은 미스틱이다. 미스틱은 타인의 외모는 그대로 베껴내지만 능력은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미스틱을 정의하는 것은 오직 변신 능력 자체다. 미스틱도 매그니토처럼 오래전 인간들에게 혹독한 짓을 당한 모양이지만 과거에 대해 입을 여는 법이 없다. 과거를 꽤나 찾아해매는 울버린을 상당히 비웃는 눈치다. (※비록 냉소의 형식으로라도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 그녀로서는 특기할 만하다.)
솔직히 미스틱은 내 도움이 필요없다. 그녀만큼 자아정체감이 확실한 돌연변이는 본 적이 없으니까. 오래전,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나이트크롤러가 미스틱에게 “누구든지 다른 사람 모습이 될 수 있다면 왜
<엑스맨> 카운슬러의 임상 노트 [2]
-
내 이름은 프시케. 슈퍼히어로들의 정신적 문제를 상담한다. 원래는 뉴욕에서 개업하여 일반인을 치료했지만 찜질방 드나들듯 뻔질나게 드나들던 우디 앨런이라는 환자한테 거꾸로 불안장애를 얻은 뒤 심각한 회의를 느껴 좀 더 한가하고 흥미로운 일을 궁리하게 됐다. 나는 운이 좋았다. 마침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는 심사가 뒤틀려 며칠씩 호출에 답하지 않는 슈퍼히어로들 때문에 고심 중이었고 나는 비밀 엄수를 조건으로 특별한 고객들에게 명함을 돌릴 수 있었다.
예상대로 1980년대는 내내 한가했다. 이따금 슈퍼맨/클라크 켄트 기자가 마감 스트레스를 호소해왔지만, 그쯤이야. 하지만 1989년 팀 버튼이라는 감독이 고객들의 클럽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계기로 내 일은 급증했다. 주인공 브루스 웨인의 다중인격장애만 해도 일이 한 보따리였는데 그의 적수인 노출광 조커(잭 니콜슨)와 부모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펭귄(대니 드 비토)에다가, 열등감과 사도마조히즘 사이를 왕복하는 캣우먼까지 대기
<엑스맨> 카운슬러의 임상 노트 [1]
-
말죽거리에서 자란 그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유하 감독의 2003년 작 <말죽거리 잔혹사>는 지식은 주입식으로, 폭력은 산교육으로 가르치던 ‘대한민국 학교’를 보여주었다. 힘으로 모든 걸 제압하려던 선도부장과 정정당당함을 잃고 비겁하게 상대의 뒤통수를 날리던 현수는 모두 프랑켄슈타인의 연구실에서 탄생한 괴물이었던 것이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신작인 <비열한 거리>는 “쌍절곤을 비겁하게 휘두르며 탄생한 조폭이 결국 어떻게 소비되고 기능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말죽거리’에서 잔혹하게 자란 괴물은 결국 ‘비열한 거리’로 흘러갔다.
서른이 코앞에 다가온 병두(조인성)는 조직의 보스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틈에서 기회 한번 제대로 잡지 못한 조직의 2인자다. 하는 일이라곤 고함치고 난장판을 벌여가며 떼인 돈을 받아주는 게 전부. 하지만 병든 어머니와 두 동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그에게 남은 것은 쓰러져가는 철거촌 집 한채뿐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살아남을 수
비열한 남자에 대한 거친 동정, 조인성 주연의 <비열한 거리>
-
*본지 <ME>와 천국의 시사 프로그램 <웰컴 투 시사 헤븐>의 논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비슷할 이유도 없음을 미리 밝힌다.
앵커하리: 천국행 비자 얻으려 애쓰시는 시청자 여러분, 이미 천국행 비자 얻어 기쁜 시청자 여러분 가끔 안녕하시죠. <웰컴 투 시사 헤븐>의 앵커, 앵커하리입니다. 오늘도 첫 소식은 꽃미남 마초무 기자가 준비했습니다.
마초무: 최근 급증하고 있는 나쁜 여자들의 천국행 러시 소식인데요.
앵커하리: 듣는 나쁜 여자 기분 나쁘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요. 쿨한 여자로 통일하죠. 쿨한 여자들이 천국도 접수한다는 풍문이 증권가에 도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닌데 말이죠.
마초무: 천국의 문호 개방이라는 측면에서 환영하는 게 대세지만 이로 인해 천국 쿼터가 상대적으로 더욱 좁아진 마초들 반발이 거셉니다. 한편 원조급 ‘쿨녀’인 ‘마녀’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최근의 천국 문호 개방을 소급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항의하고 나섰습니다.
쿨한 여자가 천국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