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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2%를 채우는 마음으로
영화사에서 꺼려하는 시나리오작가들의 부류는 대개 이렇다. 먼저, 함흥차사형. 정해진 날에 시나리오를 토해내기로 하고서 감감무소식이다. 또 하나는 멋대로형. 작업 포인트에 합의해놓고서 정작 가져오는 결과물은 완전히 딴판이다. 시나리오작가는 킬러와 비슷하다. 목표를 앞에 두고 미적대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덤벼드는 킬러에게 의뢰가 쏟아질 리 없다. 이숙연이 충무로에서 인정받는 건 ‘감성이 뛰어난 멜로 전문 작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와 함께 작업한 한 영화인은 “말처럼 쉽지 않은 약속을 어김없이 지켜왔다는 점에서 신뢰가 가는 파트너”라고 전한다.
성실은 청취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라디오 방송작가로서 15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방송 일을 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뭔가 쓰는 게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그는 지금도 아침 6시30분이면 일어나 <유열의 음악앨범> 대본을 쓴다. 시나리오를 집중해서 쓸 수 있는 건 방송이 끝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7] - 이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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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된 벽돌공처럼 튼튼한 이야기를 쌓는다
강제규 감독과 함께 쓴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김성수 감독의 20페이지짜리 트리트먼트를 기초로 했던 <야수>의 시나리오는 무엇보다 뜨겁다. 전쟁으로 상처입는 뜨거운 형제애가 있고 사회의 부조리함 또는 악함과 싸우려는 뜨거운 정의가 있다. 이 두편을 쓴 한지훈 작가는 실제로 호수 표면처럼 잠잠한 사람이다. 그는 시나리오작가를 기능공에 비유했다. “기획영화가 많아지면서 그런 측면이 더 강화되는 것도 있지만, 제작사의 성향과 감독의 의도라는 게 있다. 그런 것에 최대한 맞추려고 하는 편이다. 작가 혼자 작업할 때조차 기능공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런 현실적인 태도 때문인지 그는 “스타일이 잘 맞는” 감독과 함께했던 <야수>에 대해서도 스스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다. “유강진(손병호)의 캐릭터가 다소 진부하지 않았나 싶다. 악의 화신으로만 그려졌던 것이 아쉽다. 피의자 사망사건으로 형사 장도영(권상우)과 검사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6] - 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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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저리 사람들을 희곡에, 시나리오에 담는다
조범구 감독의 장편영화 두편 <양아치어조>와 <뚝방전설>의 시나리오를 작업한 박수진 작가는 감독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한살 터울인 친형의 친구이기도 해서 중학교 때부터 알아왔고, 근 20년을 본 사이라 이제는 같이 술을 마셔도 2시간만 지나면 할 얘기가 없을 만큼 서로를 많이 안다. <뚝방전설>은 제작사 싸이더스FNH와 먼저 계약을 맺은 조범구 감독이 “남자 이야기를 해보자”는 권유를 받고 박수진 작가에게 각본을 맡긴 경우다. “감자탕에 소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우리 고등학교 때 얘기나 해볼까 해서 쓰게 됐다. 경희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때 있었던 노타치파, 물레방아파에다가 친구들 실명까지 다 끌어왔다.”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20일 만에 써내려간 <뚝방전설>의 시나리오는 비록 주인공의 실패를 담고 있어도 덧칠된 추억 덕에 따뜻하다. “양아치 청춘과 양아치 같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인 &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5] -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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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은 접어두고, 끝없이 달리고 달린다
정서경 작가는 4년 전 예비 감독으로 <씨네21>과 인터뷰를 했다. 영상원 시나리오과 3학년 때 쓴 <전기공들>이 코닥 단편영화 제작지원 선정작으로 뽑혀서다. 필름 맛을 봤으니 지금쯤 충무로에서 감독 데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터인데 전업 시나리오작가라니. 작가 출신 감독들이 속속 데뷔하는 걸 보면, 잠시 택한 우회로인가. “감독은 애초 생각이 없었다. 사실 학제가 바뀌어서 영화를 만들어야 졸업이 가능했다. 그래서 낸 건데 덜컥 됐다. 촬영 첫날 어떻게 슛을 부르는지, 언제 컷하는지도 몰라서 스탭들한테 눈총받았다. 한컷 찍고 20분 쉬다가 촬영감독한테 욕먹고, 화장실에 갔는데 목 매달고 싶더라. 정말이지 돈 주고 감독을 사고 싶었다.”
이후 메가폰을 다시 들지 못했지만, 그는 이제 꽤 유명한 시나리오작가다. <모두들, 괜찮아요?>로 충무로에 발디딘 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4] - 정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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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고 또 고치면 설득 못할 관객 있으랴
<가을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렇게 단아하면서 섬세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낯선 곳에서 남녀가 우연히 계속 마주치게 된다는 미스터리 구조도 흥미롭지만 상처받은 낯선 연인의 이야기를 엮어가며 그 속으로 슬픔이 스며들게 하는 자연스러움이 놀라웠다. 20대 후반, 미지의 여성 작가? 그런데 이름은 씩씩한 ‘석’ 자가 들어가는데!
그는 이미 관록의 작가였다. 1999년 영화진흥공사 주최 상반기 시나리오 우수작에 뽑혔고 여러 작품에서 각색과 시나리오를 맡았다. 다만 오래전 준비했던 작품들이 뒤늦게 얼굴을 내밀고 있을 따름이다. 2000년에 작업한 <청풍명월>은 2003년에, 심지어 2001년에 쓰기 시작한 <가을로>는 이제야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에 각색해 2004년에 개봉한 <효자동 이발사>, 지난해에 작업해 올 가을 개봉한 <우리들의 행복한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3] - 장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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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서 얻은 아이디어도 메모해 꿰면 보배
<혈의 누>와 <짝패>를 쓴 이원재 작가(<위대한 유산> 등을 쓴 이원재 작가는 동명이인이며 여러 데이터베이스엔 두 작가의 필모그래피가 뒤죽박죽되어 있다)는 어렸을 적 꿈이 발명가, 만화가, 추리소설작가였다. <혈의 누>에서 묵직한 역사적 상상력을 스릴러 장르와 버무리고 <짝패>에서 부동산 조폭의 흥망을 재기있게 가로지르는 능력을 보면 꿈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중학교 근처에 큰 비디오 가게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작가 대신 발명가를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중2 때부터 가장 재미있는 영화가 자신의 길임을 ‘의심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어머니가 싫어해 연극영화과는 가지 못했다. 대신 영화의 본산인 프랑스, 남들도 영화 유학을 가는 프랑스에 가까운 공부를 하기로 했다. 불문과로 가서 친구 7명과 어울리며 단편영화도 만들고 ‘길거리에서’ 영화를 배웠다. 그러나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2]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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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쁜 영화가 나올 수는 있지만 나쁜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는 나올 수 없다는 게 구로사와 아키라의 격언만은 아니다. 충무로에서는 매일 이 격언을 뼈저리게 각성하고 확인한다. 시나리오라는 영화의 설계도가 튼튼하지 않으면 공사는 부실해진다. 그만큼 시나리오작가는 영화라는 꿈 공장의 핵심 인력이며 꿈 공장의 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충무로는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거나, 아니면 소설과 만화 원작을 사서 각색하면서 시나리오작가가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홀대하고 있다.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차이나타운>의 로버트 타우니의 치밀함, 신화화되고 있는 찰리 카우프만의 천재성, 낮에는 타워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고 밤에는 시나리오를 쓴 끝에 할리우드에 충격을 안긴 <쎄븐>의 앤드루 케빈 워커의 집요함 같은 얘기들이 충무로에선 잘 들리지 않는다. 걸출한 작가를 만드는 건 작가 본인이기도 하지만 환경이기도 하다.
언뜻 보면 감독들만이 빛나 보이는 충무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1] - 최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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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적 장르로 성모 마리아 신화를 깨고 싶었다”
-<네버 포에버>는 어느 정도 완성됐나.
7월 촬영을 시작해서 8월29일 끝마쳤고, 지금은 뉴욕영화의 후반작업을 거의 다 하는 포스트웍스라는 곳에서 편집 중이다.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
원래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여자의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가’다. 그것을 언제나 화두로 생각하고 있자니까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내가 항상 깨고 싶어하는 것이 성모 마리아 신화인데, 여자는 어머니와 창녀가 있다는 것 말이다. 둘 다 남자에게 뭔가(밥과 몸)를 준다는 점에서는 같은데, 굉장히 다른 종류의 존재로 여겨지잖나. 그런데 그게 사실은 같다는 것을 깨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른 한축으로는 멜로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불가능한 것을 원한다는 게 인간의 비극인데, 그게 가장 쓰라린 감정으로 느껴지는 게 멜로인 것 같다. 그런 얘기를 매우 하고 싶었다.
-이야기는 어떻게 떠올렸나.
하버드대학 초청교수를
충무로 미국 공략 [5] - 김진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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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아메리칸이 한국 문화를 탐험한다는 데 끌렸다”
-현재 미국에서 활약 중인 한국계 배우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샌드라 오가 가장 떠오르고 있고, 김윤진도 그렇다. 내가 처음 LA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이 산업에 한국인들은 별로 없었지만, 지난 10년간 굉장히 많은 젊은 아시아계 배우들이 이 비즈니스로 뛰어들었다. 촉망받는 한국계 젊은 배우들을 보고 있는 건 즐겁다.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다. 미국 주류사회는 우리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저들은 누구야, 어디서 온 거야라고 물으면서.
-<웨스트 32번가>는 한국계 감독과 한국계 배우가 나올뿐더러 한국 기업이 투자, 제작하고 있다. 특별한 느낌은 없나.
그동안 아시아인들과 아시안 아메리칸 사이의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아시아 영화산업도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산업과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번 협업에 흥분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충무로 미국 공략 [4] - 배우 존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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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관객에게 한국영화의 미학을 보여주고 싶다”
-이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애초의 이야기는 아시아 이민자의 범죄문제를 돕고 있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친구 에드먼드 리가 살인사건에 연루된 한 한국인 소년의 사건을 맡으면서 시작된다. 그는 몇년간 뉴욕 한인타운의 갱들을 만나면서 취재를 했다. 그리고 그는 내게 글을 보여줬고, 나는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나리오 작업은 몇년 전 끝냈고, 이를 테디 지에게 보냈다. 테디는 다시 이것을 CJ엔터테인먼트 미국법인의 테디 김에게 보냈다. 그리고 바로 얼마 뒤 우리는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나는 이게 모두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CJ엔터테인먼트와 작업하는 것이 유리한가.
이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한국 회사와 일하는 것이 좀더 편하기는 하다. 한국 문화와 관련된 많은 부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할리우드 경향으로 봤을 때, 최소한 한명 이상의 캐릭터가 백인이기를
충무로 미국 공략 [3] - 마이클 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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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충무로의 새로운 돌파구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흐름이 충무로의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수년 동안 한국영화의 제작비는 꾸준히 상승해왔으며, 100억원대의 대형 프로젝트가 1년에 여러 편 만들어질 정도로 규모도 커졌다. 하지만 시장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게다가 한때 한국영화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메워줬던 일본시장마저 찬바람이 불고 있으니 탈출구가 거의 없는 셈이다. “제작비의 덩치는 자꾸 커지는데 시장은 빤하기 때문에 옷이 튿어질 지경”이라고 한국 영화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아직 중국시장이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영화의 야망을 실현해줄 유일한 곳은 미국”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이 유럽, 남미 등 다른 대륙으로 진입하는 데 있어 통로 구실을 한다는 사실 또한 충무로의 ‘아메리칸 드림’을 자극하는 요소다.
이렇게 충무로가 미국 진출을 공언할 수 있는 것은 급상승한 한국영화의 위상이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이승재 LJ필름 대표는 “과
충무로 미국 공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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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는 아메리카 대륙을 향한 항로를 개척 중이다. 최근 들어 한국과 미국의 합작영화가 미국 땅에서 본격적으로 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영화계가 드넓은 태평양을 건너가 얻으려는 것은 미국시장이다. 한국 영화인들에게 미국은 ‘꿈의 시장’ 혹은 ‘궁극의 시장’이자, 일본에서의 한국영화 침체로 인해 불가피하게 개척해야 할 해외시장이기도 하다. 결국 지금 충무로는 미국시장의 문을 열기 위해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규모로 세계 최대이며, 세계 영화유통의 중심이기도 한 미국시장을 향한 충무로의 도전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웨스트 32번가>(가제)의 뉴욕 촬영장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해본다.
“Keepin’ movin’! Keepin’ movin’! Thank you!” 9월9일 오후 8시 뉴욕 맨해튼 서쪽 켠의 32번가, 다양한 얼굴색의 스탭들이 촬영장을 두리번거리는 행인들에게 관심을 끄고 지나쳐달라고 외치고 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술집,
충무로 미국 공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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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니저의 본업-배우 챙기기
9월8일 오후 3시 경기도 장흥 유원지의 한 모텔. 저 언덕 위에서 김혜수가 마구 달려오더니 막 도착한 박성혜 본부장을 덥석 끌어안는다. “아니, 촬영장에 웬일이래? 얼굴 보기 힘들더니.” 매니저 박성혜가 처음 만난 배우는 염정아였지만, 실질적으로 일을 시작한 배우는 김혜수다. 13년째 함께해왔으니 저렇게 반가워할 법하다, 했는데 김혜수가 달려내려온 건 연기의 끝 대목이었다. <바람피기 좋은 날>에서 대학생과 바람 피우다 남편에게 들통나 탈출하던 참이었다. 이윽고, 모니터 앞에 앉은 두 사람, 얼굴을 맞대고 소곤소곤 한참을 이야기한다. 이따금 박장대소들 터뜨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오래된 친구다.
매니저 박성혜와 손잡은 배우는 좀체 그녀 곁을 떠나지 않는다. 비결이 뭘까? 김혜수는 한때 충무로를 들썩였던 ‘장희빈 사건’을 예로 들었다. <바람난 가족> 주연 계약을 맺었던 김혜수가 드라마 <장희빈>의 주연을 맡아 두
[이성욱의 현장기행] 매니저 박성혜가 사는 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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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_ 싸이더스 HQ
타깃_ 본부장 박성혜
취재기간_ 2006년 9월7~11일
취재 중에 만난 사람_ 이명세 감독, 김혜수, 김병철 더 맨 매니지먼트 대표 등
‘사자의 탈을 쓴 여우’일 거야. 멀찌감치서 봤던 매니저 박성혜를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그녀의 머리는 수사자의 갈기처럼 야성적으로 솟아 있다. ‘야성적으로’는 ‘공격적으로’로 바꿔도 무방하다. 시가 총액 3천억원을 웃도는 IHQ의 주력부대 싸이더스HQ 본부장이니 수줍지 않은 머리 스타일조차 괜히 위세가 넘치지 않겠는가. 위세가 허세가 아님은 그녀와 머리를 맞대고 사는 배우를 불러보면 된다. 김혜수, 전도연, 황정민, 임수정, 공효진, 이종혁, 윤진서, 지진희, 염정아, 송혜교, 김성수, 하정우…. 그녀와 13년째 동고동락해왔거나 앞으로 해나가기로 작정한 배우들의 이름이다. 국내 최대 매니지먼트의 본부장은 예서 멈추지 않는다. 정우성, 전지현, 김선아, 이미연, 차태현, 조인성, 성유리…. 이들을 ‘관리’하려면 순간포착
[이성욱의 현장기행] 매니저 박성혜가 사는 법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