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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yl Streep: 메릴 스트립
“미란다 프리슬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악마나 마녀가 아니다. 나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모순되고 정의내리기 힘든 하나의 인간을 창조하는 데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원작의 미란다 프리슬리는 그저 냉혹한 악마의 캐리커처에 불과했다. 하지만 영화 속 미란다 프리슬리는 성공을 위해 버린 것들을 독한 마음속에 다잡은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 숨쉰다. 이는 시나리오작가 알린 브로시 매켄나의 능숙한 각색 덕이기도 하지만, 능숙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메릴 스트립의 능력이기도 하다. “메릴의 미란다 프리슬리는 코미디적인 잔혹함과 진실된 슬픔의 경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진다. 메릴이 지닌 엄청난 재능의 키포인트는 코미디와 드라마를 섞는 절묘한 능력이다.”(데이비드 프랭클 감독)
Numbers: (출판) 기록들
2003년에 출간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6개월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A to Z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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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이 말하길 “패션은 하늘에도 있고, 거리에도 있다. 패션은 인간의 관념이며, 살아가는 방식이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상사다”. 그러나 동대문에서 건진 철 지난 추리닝을 입고 영화관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은 “패션은 도무지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반년마다 한번씩 바꾸어야만 하는 추악함의 한 형태”라던 오스카 와일드의 독설을 더욱 신뢰할 것이 틀림없다. 그런 당신을 위해 ‘A부터 Z까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관람하기 위한 지식검색’을 준비했다. 이 정도면 샤넬과 프라다와 존 갈리아노를 걸친 악마들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는 충분하다.
Anna Wintour: 안나 윈투어
“미란다를 연기하기 위해 안나 윈투어에 대해 조사한 적은 없다”는 메릴 스트립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가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치 않을 것이다. 윈투어는 1970년 영국의 <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A to Z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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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안의 인민’의 외로움을 노래하다
<삼협호인>은 그 외로움이 스산하리만치 쓸쓸하게 영화 안에서 배어나오고 있다. 그것은 꼭 현대 중국을 살아가는 인민만의 외로움이 아니다. 그 감정은 모든 것이 달러로 환원되는 세계화 안에 살아가고 있는 ‘세계 안의 인민’의 외로움이다. 대낮에 UFO를 보는 것 같은 마술적 현실. 한산밍은 거의 말이 없다. 그는 맞을 때조차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셴홍은 권태로운 동작을 반복한다. 그때 그들 곁의 도시는 쉴새없이 부서져내리고 있다. 사람들은 건물을 부수고, 그들은 부서져가는 도시를 떠돈다. 그때 이 부서져가는 건물들은 한산밍의 부서져가는 마음, 혹은 셴홍의 이미 부서져버린 기다림처럼 보인다. 그때 이 부서져가는 건물들은 로셀리니의 <독일 영년>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람들은 건물을 부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부서져가는 건물 안에서 산다. 부수기 안에서 살아가기. 그때 같은 장면이 <동>과 <삼협호인>에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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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 라고 노래하면서 나는 지아장커의 <삼협호인>(三峽好人, Still Life)(과 함께 찍은 다큐멘터리 <동>(東, Dong))이 보고 싶다고 간절하게 하소연하면서 글을 맺었다(<씨네21> 제572호, ‘그래, 지금은 가을이니까’). 그리고 기적이 찾아왔다. 갑자기 소원이 이루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 글은 ‘소원 성취한’ 속편이다. 나는 서울에서 그 두편의 영화를 보았고, 그런 다음 지아장커와 만났다.
솔직히 말하면 <세계>를 본 다음 나는 불안했다. 이 영화는 어딘가 부서져 있었다. 베이징에 있는 테마 파크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배신하고, 호소하고, 떠나간 다음,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유릭와이가 HD카메라로 찍은 2.35 사이즈의 시네마스코프 디지털 화면 위에 (말 그대로)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이야기는 산만하게 진행되고, 결말은 음울하고 비관적이다. 지아장커는 세 번째 영화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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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오지 마을에서 열리는 소박하지만 넉넉한 영화축제
아시아영화의 창 상영작 <아주 특별한 축제>
여기 한 영화감독이 있다. ‘영화는 창작자의 고통이 담긴 예술’이라고 굳게 믿는 그는 아직 자신의 영화를 대중 앞에 선보일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고향 마을에 머물고 있다. 그의 딱한 사정을 가엾게 여긴 친구는 “이곳에서 국제영화제를 열어 네 영화를 상영하자”고 제안한다. <아주 특별한 축제>는 보이는 건 사막과 산뿐인 인도의 오지 마을에서 영화제를 열면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사건들을 소박한 풍경과 넉넉한 웃음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감독인 미스는 후원자인 콜라회사 사장(그는 동성애자다)에게 말 그대로 몸을 바쳐가며 영화제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한다. 하지만 미스처럼 후원자를 찾을 수 없었던 <아주 특별한 축제>의 감독 비주 비스나와스는 제작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다. 그는 2001년 이 영화를 기획했지만, 발리우드 뮤지컬도 아니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감독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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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에 휩싸인 현대 중국에 대한 냉정한 풍자
폐막작 <크레이지 스톤>
스물아홉살의 젊은 감독 닝하오는 <향> <몽골리안 핑퐁>으로 외국에 알려졌지만 중국 관객과 만나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담담하고 침착한 시선을 지니고 있던 그가 할리우드영화처럼 잰걸음으로 달려가는 <크레이지 스톤>을 만든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나의 전작 두편은 다소 난해해서 관객이 극장에서 머리를 싸맸다. 이번엔 오락성에 치중하여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다고 하여 <크레이지 스톤>이 지금까지 닝하오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린, 오직 관객만을 추구하는 영화는 아닐 것이다. 값비싼 비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을 담은 <크레이지 스톤>은 가짜 비취와 진짜 비취가 쉴새없이 뒤바뀌며 보석 전시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가는 와중에도 변화와 혼돈에 휩싸인 현대 중국사회를 냉정하게 풍자하곤 한다. <크레이지 스톤>에서 한때 대의와 명분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감독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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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숨결을 담은 세밀화
한국 영화의 오늘 파노라마 상영작 <사과>
20대 후반의 평범한 회사원 현정(문소리)은 오래된 남자친구 민석(이선균)과 여행길에 올랐다가 난데없이 이별 통보를 받는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고, 삶은 끝난 것 같다. 그즈음 상훈(김태우)이라는 같은 빌딩에서 근무하는 순박한 남자가 나타나 현정에게 구애를 하고, 현정은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열어 결혼에 이른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결혼하는 것을 꼭 영화 중간에 넣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남편 상훈과의 결혼생활은 다른 갈등을 위한 시작이다. 상훈이 일 때문에 한 본의 아닌 거짓말이 불씨를 만들고, 아이 낳고 지친 결혼생활을 뒤로하고 현정도 옛 애인 민석을 다시 만난다. 현정에게 세상은 다시 서럽고 미안한 사막이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 삶은 그래도 계속될 태세다.
강이관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출신이며, <나의 일기> <소년의 시> 등의 단편 작업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감독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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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랑을 향한 평화의 메시지
아시아 영화의 창 상영작 <하나>
9·11 테러는 3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 사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세계적 증오심과 복수심에 불을 붙인 결정적 도화선이기도 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곳곳에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던 적의를 향해 발언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꼈다. 옴진리교 사건을 모티브로 한 <디스턴스>, 영아 유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무도 모른다> 등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화두가 그를 자극한 것이지만, 그의 고민은 18세기 도쿠가와 막부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 <하나>로 그 물꼬를 틀었다. “다큐멘터리가 나의 출발점이어서 그런지, 사실적인 느낌의 영화를 선호했다. 하지만 그런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완벽한 픽션을 가볍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만들고자 했다.”
고레에다 감독의 첫 번째 시대극 <하나>는 사무라이극인 동시에 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감독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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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20일 폐막식을 끝으로 9일간의 항해에 마침표를 찍었다. 올해 영화제에는 개막작 <가을로>와 폐막작 <크레이지 스톤>을 포함해 63개국에서 총 264편의 영화가 초청됐다. 초청작 중 월드프리미어가 역대 최다인 64편을 이루며 한층 높아진 부산영화제의 위상을 증명했고, 부산프로모션플랜(PPP)과 부산영상산업박람회(BIFCOM)를 통합해 첫발을 내디딘 아시안필름마켓(AFM)은 40개국 3500명의 참가자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리기도 했다. 새로운 10년의 시작을 여는 올해의 영화제를 결산하며, 남다른 작품으로 부산을 찾은 작가 9명을 꼽았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플랑드르>의 감독이자 뉴커런츠 심사위원 자격으로 내한한 브루노 뒤몽과 시대극 <하나>로 스타일의 변화를 선언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각각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로 현대 중국사회의 이면을 조명한 닝하오와 두하이빈, 여배우에서 감독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감독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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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칼라 송> <네비게이터> 등 몇몇 작품이 빠졌지만 상영작 14개 작품 속엔 켄 로치의 주요 작품들이 거의 다 들어 있다. <케스> <랜드 앤 프리덤> <레이닝 스톤> 등 걸작이 많지만 나머지 작품들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거두면서 이야기의 즐거움과 정치적 예민함을 놓치지 않고 있다.
1. 캐시 컴 홈/ Cathy Come Home/ 1966년
1960년대 TV드라마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작품. 홈리스가 된 가족 이야기로,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해 관료적 복지제도가 어떻게 가족을 해체시키는지를 다뤘다. 훗날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의 문제의식을 연상시킨다.
2. 케스/ Kes/ 1969년
가정도 포기하고, 학교생활에도 관심이 없는 소년들이 어떻게 영국 노동계급으로 편입되는지 탁월하게 묘사했지만 무엇보다 빌리가 매(황조롱이)와 가까워지면서 스스로를 발견해가는 과정이 압권이
켄 로치의 영화세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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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페이소스를 듬뿍 친 유머-켄 로치 드라마의 웃음
켄 로치의 드라마는 유머로 가득하다. 직장도 없고, 있다 해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며, 정부나 직장의 보호권 밖으로 밀려난 이들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 켄 로치는 유머를 건져낸다. 설령 영화 속 배경이 실직과 절망으로 얼룩졌다 하더라도 캐릭터들은 웃음을 잃는 법이 없다.
켄 로치의 하층민들을 공격하는 건 무한질주하는 자본의 무자비함인데, 그것은 보통 똥으로 인격화되어 나타난다. <하층민들>에서 건설노동자 래리는 일터에서 화장실을 찾아 헤매다가 모델하우스에 몰래 들어가 해결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근사한 화장실 안에서 모처럼 목욕을 하던(여기 노동자들은 집이 없어 빈집에 들어가 산다) 래리는 집을 보러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히잡 쓴 여인들을 보고 혼비백산한다(감독은 아랍 여성이 들어갈 거란 얘기를 하지 않았다, 물론!). <네비게이터>에서 백발이 성성한 철도노동자 제리는 작업 중 달려가는 기차
켄 로치의 영화세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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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칼라의 시인, 좌파영화의 십자군이라 불리는 켄 로치의 열네 작품이 한국을 찾는다. 올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부터 초기 걸작 <케스>, 그를 문제적 감독으로 주목하게 한 TV영화 <캐시 컴 홈>을 아우르는 열네 작품이다. 동숭아트센터(10월27일∼11월9일)와 시네마테크 부산(11월10∼26일)에서 한달간 이어서 상영한다. 70이 된 오늘까지 40여년, 줄기차게 정의와 평등에 관해 발언해온 켄 로치의 거의 모든 것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다.
‘바리케이드를 향해.’ 일명 바르샤바 혁명 행진곡이 낡은 흑백영화에서 흘러나온다. ‘혁명의 깃발을 높이 들자… 바리케이드를 향해.’ 아무런 무기도 없이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만으로 팔을 휘두르는 스페인 젊은이들의 모습이 비친다. <랜드 앤 프리덤>(1995, 이하 필모그래피 참조) 첫머리다. 켄 로치의 영화 40년은 바리케이드를 향한 40년이기도 하다. 억압받는 민중의
켄 로치의 영화세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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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0일/ 10월2일 오후 4시 웨이브랩 스튜디오
본믹싱을 앞두고 그 준비단계라 할 프리믹싱을 하는 날이다. 스튜디오 문을 열자마자 비명소리가 가득하다. 스크립터, 홍보팀 등을 동원해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터져나오는 행인들의 비명소리를 녹음하는 중이다. 마침내, 모니터에는 미니어처 촬영과 CG가 결합된 붕괴장면이 흘러나오고 있다. 붕괴, 아수라장이 된 현장, 매몰 지역에 가득한 구조요원 등이 스쳐지나간다. 스크린으로 봐야 분명해지겠지만, 저 정도라면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닌 듯싶다. 조영욱 음악감독이 보인다. “오늘 믹싱 못하는데 오셨네요. (바이올린 켜는 흉내를 내면서) 연주 녹음 중이거든요.” 음악에 대한 구상과 작곡 프로듀싱을 거쳐 연주를 녹음하는 단계에 이르러서인지 홀가분해 보인다. 다만 계약이 늦어지면서 예고편과 홈페이지에 들어갈 음악을 못한 것이 아쉽다는 표정이다. 6월에 <비열한 거리>를 끝내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음악을 대체로 마무리지은
[이성욱의 현장기행] <가을로> 후반작업 현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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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1일/ 9월1일 오후 5시 인사이트 비주얼 회의실
CG 1차 컨펌하는 날이다. 개봉이 10월26일로 확정됐다. 그러나 여전히 정해지지 않은 게 있다. 음악감독. 의아스러운 상황이다. 편집이 끝났는데 음악감독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니. <혈의 누> 때 김대승 감독을 감탄시켰던 조영욱 감독과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어떤 음악이 좋을지 의견 조율을 해온 모양인데, 제작자가 최종 승인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역시 제작비가 문제다.
김대승 감독이 CG팀에 대한 격려품을 들고 들어오자 곧바로 회의가 시작된다. 강종익 대표의 인사이트 비주얼과는 임권택 감독의 조감독 시절인 <축제> 때부터 줄곧 손발을 맞춰왔던 터라 상당히 익숙한 분위기로 본론에 빠져든다. 김상범 편집기사가 주문했던 민주의 사진 찍는 장면을 놓고 제법 긴 시간이 흘러간다. CG팀이 안을 만들어오기로 정리됐다. 김대승 감독의 디테일 챙기기는 편집실에서 이미 봤지만 CG팀이 효과를 입힌 장면들의 수정보
[이성욱의 현장기행] <가을로> 후반작업 현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