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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한순간에 수많은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영화는 겉모습에도 인물의 내면과 성격과 처지를 담을 수밖에 없다. 차가운 색조로 냉정한 성품을 드러내고 꼭 조인 코르셋으로 억압된 욕망을 표현한다. 영화 속의 누군가가 옷을 갈아입으면 그는 조금쯤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의상은 단지 아름답기만 해선 안 된다. 단순한 장식물을 넘어 드라마와 감정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면에 소개하는 다섯명의 의상감독들은 그런 점에서 돌멩이 한개를 던져 두 마리 새를 잡는 솜씨를 지닌 장인이라고 할 만하다. 실크와 면직물과 자수를 언어로 사용하는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영화들을 만나야만 했을 것이다.
[세계의 의상감독들] 아름다움을 넘어, 감정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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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2006년 _ 귀향
<할로우맨>의 실패와 그로부터 찾아온 5년간의 공백기.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무산되는 것을 지켜보던 폴 버호벤은 결단을 내렸다. 20년 만에 치즈와 풍차의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 영화는 네덜란드 비평가들에 의해 데카당스하고 변태적이고 얄팍하다는 비난을 들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옮겨왔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미국 비평가들은 내 영화가 데카당스하고 변태적이고 얄팍하다고 비난한다. (웃음) 지난 몇년간 미국에서 일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오리온과 캐롤코의 도산, 소니와 함께 만든 영화들의 연이은 실패는 버호벤을 지치게 만들었고, 9·11 이후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미국 문화계는 버호벤처럼 날이 드센 작가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부시 정부는 스튜디오들에 최대한으로 애국적이 되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크리스천들이 아랍인을 학살하는 <십자군>을 만들기란 애당초 글러 먹었다.”
귀향은 모험이었다.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인생] 귀향,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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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이셔널리스트 폴 버호벤 감독이 돌아왔다. 햇수로 따지면 무려 7년 만의 귀환. <로보캅> <토탈 리콜>로 할리우드의 신전에 올랐던 그는 <쇼걸>과 <할로우맨>의 실패로 할리우드를 떠나 모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그리고 7년 만에 날이 하나도 닳지 않은 폴 버호벤식 영화 <블랙북>을 들고 귀환했다. 성적 호르몬과 폭력의 정치학에 심취한 예순여덟의 예술가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버림받고 치즈와 풍자의 나라로 돌아가 또다시 전성기처럼 생동감 넘치는 영화를 만들어냈을까. 지난 20년간 폴 버호벤이 달려온 할리우드 롤러코스터의 궤적.
# 2006~2007년 _ 귀환
사람들이 폴 버호벤의 이름을 다시 떠올린 것은 지난해 최악의 졸작이었던 <원초적 본능2> 덕분이었다. 전신성형을 받고 돌아온 샤론 스톤은 여전히 아름다웠으나 <원초적 본능>에서의 치명적인 음탕함은 전혀 없었다. 모두가 다리를 벌려젖히는 <원초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인생] 귀환, 지옥, 승승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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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피부색을 언급할 필요가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오스카 수상 여부를 점칠 때나 수상자에 관해 분석할 때나 피부색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영화 속 아시아인들이 주로 인색한 가게 주인이나 공부벌레 학생으로만 그려지는 것처럼 흑인들은 많은 경우 뒷골목에서 어슬렁거리며 행인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단순강도(백인은 지능형 범죄를 주로 저지르는 것으로 묘사)로 등장해왔다. 하지만 이런 할리우드적인 편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폭넓은 연기를 보여주고, 그만큼 인정받은 배우들이 있다. 덴젤 워싱턴, 윌 스미스, 포레스트 휘태커…. 당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 세 배우들에 관한 소사(小史)를 7가지씩 여기 소개한다. 이 세 사람 중 포레스트 휘태커와 윌 스미스는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휘태커는 수상했으며, 덴젤 워싱턴은 이미 2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는 점은 이들의 연기를 수식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시발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할리우드의 아
덴젤 워싱턴, 윌 스미스, 포레스트 휘태커에 관한 7가지 소사(小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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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23>이 집착한 숫자 23
조엘 슈마허 감독의 <넘버 23>은 처음부터 끝까지 숫자 23의 강박을 보여준다. 주인공 월터 스패로우(짐 캐리)가 아내에게 선물받은 책 <넘버 23>이 그 시작. 책을 읽으면서 숫자 23의 저주에 시달리는 월터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23의 법칙에 지배된다는 망상에 빠진다. 이를테면 인간의 체세포 23쌍, 주요테러사건 발생일의 합 23개 등 과학적·역사적 사실에서부터 자신이 태어난 시간의 합 23, 부인과 처음 만난 나이 23살 등 개인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숫자 23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식이다. 심지어 주연배우 짐 캐리조차 자신의 회사 이름을 ‘JC23’으로 바꾸고 성경의 시편 23장을 삶의 신조로 삼는 등 23의 매력에 빠졌다는 후문이다. 이 밖에도 영화 안팎을 둘러싼 23의 강박은 많다. 영화로 확인하기에 앞서, 몇 가지만 살펴보자.
-셰익스피어는 4월23일에 태어나 4월23일에 사망했다.
-마이클 조
숫자와 관련된 영화계 안팎의 에피소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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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므이> <21그램> <28일후…> <8마일> <PM 11:14> 등 제목에 숫자를 써서 시선을 사로잡는 영화들이 있다. 최근 개봉을 앞둔 <넘버 23>은 감독 조엘 슈마허와 배우 짐 캐리의 이름 글자 수를 합하면 23이라는 식의 숫자 마케팅으로 눈길을 끌었다. 왜 이 같은 숫자 마케팅이 붐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 숫자 마케팅이 흥행에 미친 영향과 성공 사례, 그리고 숫자와 관련된 영화계 안팎의 에피소드를 두루 살펴본다.
1장. 제목에 담긴 메타포
주제의식을 간단한 숫자 몇개로 나타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잘만 쓰면 주제의식도 드러내고 관객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이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300>은 제목만 들어도 호기심을 자아낸다. 300이란 숫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궁금해졌다면 이미 당신은 숫자 마케팅의 그물에 살짝 걸려든 셈이다. 300은 B
숫자 마케팅이 흥행에 미친 영향과 성공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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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적인 아빠의 미래는 일 포기하기?
<아빠는 멋쟁이>의 어여쁘고 부유한 소년이었던 리키 슈로더
한때 그는…
8살에 <챔프>로 데뷔한 리키 슈로더는 두들겨 맞고 있는 권투선수 아빠를 보며 엄청난 눈물을 흘리는 연기로 전세계의 심금을 울렸다. 금발머리 하얀 얼굴의 조그만 꼬마가 머리카락이 헝클어지도록 통곡을 하니 안쓰럽지 않을 수 없었다. 갓난아기 적부터 광고에 출연해왔던 어여쁜 리키는 그렇게 스타가 되었다. 이어진 작품은 TV시트콤 <아빠는 멋쟁이>. 원제가 <Silver Spoon>인 <아빠는 멋쟁이>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다시 말해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리키와 그 아버지의 다감하고 코믹한 관계를 그려 인기를 얻었다. 80년대 TV를 볼 수 있는 나이였다면 모두 기억할 것이다. 오락실에나 있는 줄 알았던 아케이드 게임기를 집에서 가지고 놀던 부유한 소년의 일상을. 다행히 슈로더는 알코올과 마약처럼 아역배우를 망가뜨리
[잊혀진 스타를 찾아서] 리키 슈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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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싸움질이 문제!
<베벌리힐스 90210>의 반듯한 학생이였던 섀넌 도허티
한때 그녀는…
9살에 연기를 시작한 섀넌 도허티는 <베벌리힐스 90210>으로 하이틴 스타가 되었다. 어두운 갈색머리와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사치스럽고 허영심이 강한 금발의 캘리포니아 소녀들과는 달라 보였고, 반듯한 딸이자 여동생으로 사랑받았다. 돌이켜보면 도허티가 열네살 때 출연한 TV시리즈 <할아버지는 멋쟁이>의 크리스도 전 과목 A학점을 받는 우등생이었다. 그러니 사람은 겉만 보고는 모르는 법이다. 도허티는 난폭한 행동과 스캔들로 인해 타블로이드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동료들과 자주 다투고 촬영장에도 늦게 나타나 4년 만에 <베벌리힐스 90210>에서 도중하차한 도허티는 질풍노도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맥주병으로 자동차 유리창을 부수고, 음주운전을 하고, 6개월 만에 이혼하고, <플레이보이>에 누드사진을 실었다. 케빈 스미스의 <
[잊혀진 스타를 찾아서] 섀넌 도허티, 루크 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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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성형수술이 개성을 앗아갔군요!
<더티댄싱>의 사랑스러운 ’베이비’였던 제니퍼 그레이
한때 그녀는…
먼 옛날 사람들은 제니퍼 그레이가 스타가 될 거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영화 <카바레>에 출연하기도 했던 브로드웨이 배우이자 댄서인 조엘 그레이의 딸로 태어난 그레이는 <카튼클럽> <붉은 새벽> 등으로 순조롭게 출발했고, 연기와 춤에 모두 능했다. “나는 연기 말고 다른 일을 꿈꾸어본 적이 없다. 어릴 적부터 나는 연습실과 무대를 보며 자랐고, 연기는 특별한 일이 아닌 그저 일상이었다.” 그리고 <더티 댄싱>이 찾아왔다. <붉은 새벽>에도 함께 출연했던 패트릭 스웨이지와 파트너가 된 그레이는 그때 스물여섯이었는데도 ‘베이비’라는 애칭이 너무도 어울리는 앳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깜짝 놀랄 만큼 예쁘지는 않았지만 매우 귀여웠고, 조명을 받으며 춤을 추고 있노라면 빛이 나는 듯 아름다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잊혀진 스타를 찾아서] 제니퍼 그레이, 패트릭 스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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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혹은 20년 전을 생각하다보면 그 무렵 노래가 다시 들리고 영화 포스터가 보이곤 한다. 그리고 티파니, 데비 깁슨, 주윤발, 패트릭 스웨이지, 뉴 키즈 온 더 블록, 알리사 밀라노 등이 비닐코팅된 책받침이나 돌돌 말린 브로마이드 판형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짧은 시간 우상이었고 문화였으나 곧바로 추억이 되어버렸고 지금은 잊혀진 이들. 그들은 젊은 시절 어떤 모습으로 빛났었고 지금은 어떻게 늙어가고 있을까. 사라져버린 많고 많은 스타들 중에서 일곱명을 골라 다시 추억해본다. 8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이들이라면 이들을 모를 수도 있겠지만, 다만 이렇게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이 일곱명의 배우는 한때 동방신기 같은 존재였다고.
마른 몸에 쏟아지는 에로틱한 관심 탓!
<연인>의 어린 요정이었던 제인 마치
한때 그녀는…
장 자크 아노는 잡지 <저스트 세븐틴> 표지만 보고 곧바로 제인 마치를 <연인>의 오디션에 초대했다.
[잊혀진 스타를 찾아서] 제인 마치, 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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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 소재를 어디에서 수혈받는가. 더 새롭고 더 독창적인 상상력을 갈구하던 충무로는 소설, 만화, 그리고 일본을 비롯한 타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끊임없이 호흡했다. 공지영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허영만의 동명 만화를 토대로 한 <타짜>, 일본 드라마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의 리메이크작인 <사랑따윈 필요없어>, 이현수의 로맨스 소설 <키아누 리브스 꼬시기>를 각색한 <Mr. 로빈 꼬시기> 등. 2006년 개봉작만 하더라도 적지 않은 영화들이 책, 만화 혹은 타국의 영상물을 뿌리 삼았다. 그리고 상상력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발돋움하던 한국영화는 이윽고 한국 TV드라마, 나아가 다양한 TV콘텐츠와 마주했다.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부터 <안녕, 프란체스카> <거침없이 하이킥> <M> <수사반장> <가을동화> <겨울연가&
TV드라마, 스크린을 향해 행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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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쌈싸름한 초콜릿
미야자키 아오이 みやざき あおい (1985~)
귀여운 얼굴을 배반하는 도전정신? 큰 눈망울과 도톰한 볼, 밝게 웃는 미소와, 4살에 데뷔한 뒤 지금까지 20편에 가까운 영화로 채워놓은 필모그래피를 보면 미야자키 아오이는 ‘소녀 이상의 배우’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함께 작업한 감독과 배우들의 이력을 보면 그 예감은 더욱 강해진다. <유레카>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의 아오야마 신지 감독, <해충>의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 <유레카>의 배우 야쿠쇼 고지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의 아사노 다다노부 등. 올해 개봉예정인 영화 <새드 베케이션>은 아오야마 신지 감독과 재회하는 작품이다. 2006년 다마키 히로시와 함께 출연한 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에서의 모습은 미야자키 아오이가 ‘단지 어둠 속에서 고민만 하는 여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안경을 쓰고, 어깨에 가방을
[일본의 소녀스타 열전] 미야자키 아오이, 아오이 유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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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나라의 앨리스
힐러리 더프 Hilary Duff (1987~)
아름다움의 기준이나 선호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그런 점에서 힐러리 더프는 가장 미국적인 아이돌 스타일 것이다. 전형적인 금발미녀에 곱게 자란 부자집 아가씨 같은 이미지. 어찌 보면 순진한 패리스 힐튼 같다고 하면 억지표현이려나? 일찌감치 얼짱 스타로 입지를 굳힌 힐러리 더프는, 현재 2살 위인 언니 헤일리 더프와 함께 소녀들의 판타지를 충실하게 충족시켜주고 있다(비록 두 자매가 <머테리얼 걸스>로 올해 골든 라즈베리상 최악의 여배우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힐러리 더프가 10대의 우상으로 떠오른 계기는 13살에 출연한 디즈니 TV시리즈 <리지의 사춘기>. 이후 <리지의 사춘기>를 스크린으로 옮긴 <리지 맥과이어>(2003)에서 로마를 핑크빛으로 물들인 미국 소녀로 나와, 발랄한 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 밖에도 <열두명의 웬수들>(2003)의 사랑스러운 딸
[미국의 소녀스타 열전] 힐러리 더프, 맨디 무어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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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소녀배우 시대를 맞이한 일본에서 비롯됐다. 나라마다 정서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본영화가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8590세대 즉, 소녀배우들의 힘이 컸다. 아오이 유우가 없었다면 <훌라걸스>의 훌라춤이 그렇게 황홀할 수 있었을까? <나나>를 기분좋게 볼 수 있었던 데는 분명 미야자키 아오이의 ‘초가와이’한 매력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한국과 미국의 소녀배우들도 한번 짚어보고 싶다는 얄팍한 욕심으로 번졌다. 나이는 비슷해도 재능도 매력도 제각각인 이들. 소녀에서 여인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3개국 청춘스타들을 여기 소개한다. 혹여 제외된 배우들이 있다 해도 너무 노여워마시라. 그저 이들의 눈부신 이팔청춘과 가능성에 한표 던지며,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시길(일본 소녀배우들에 대한 자세한 기사는 이 곳 참고).
물음표가 느낌표가 될 때까지
황보라 (1983~)
<좋지 아니한가>에서 아버지 창수(천호진)는 딸 용선(
[한국의 소녀스타 열전] 황보라, 고아성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