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에 의한, 게임팬들을 위한 영화
크리스토프 강스가 <사일런트 힐>의 영화화를 꿈꾸었던 것은 지난 2001년이었다. 프랑스에서 <늑대의 후예들>을 만들던 강스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순간 영화화 판권을 구매해야만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오랫동안 호러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진정으로 독창적인 이야기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사일런트 힐>을 플레이했을 때, 나는 이것이야말로 스크린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 회사 고나미로부터 판권을 구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스는 수많은 전화와 편지와 이메일을 고나미에 보냈지만 단 한번도 답신을 받을 수 없었다. 곧 두 번째 게임이 발매되었고, 전편보다 향상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게임은 다른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구미를 당기기 시작했다. 파라마운트, 미라맥스, 샘 레이미가 판권을 얻기 위해 달렸고, 톰 크루즈 역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고나미로부터
게임 또는 영화 <사일런트 힐> [2]
-
사일런트 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이제부터 수많은 괴생명체들을 물리치며 복잡한 지하 미로를 지나 잃어버린 딸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러니 지도를 미리 외워두세요. 기억력이 당신의 생명을 구할지도 모릅니다.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장이 팔린 동명 비디오 게임을 영화화한 <사일런트 힐>은 기이한 영상 체험이다. <늑대의 후예들>의 감독 크리스토퍼 강스와 <펄프 픽션>의 각본가 로저 에버리, <네이키드 런치>의 프로덕션디자이너 캐럴 스피어는 마치 게임을 하나하나 뜯어서 옮기듯 새로운 지옥을 창조해냈고, 영화는 전통적인 영화와 비디오 게임의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듯하다. 게임을 닮은 영화, 혹은 영화를 닮은 게임. <사일런트 힐>의 세계를 살펴본다.
“게임 원작 영화를 보는 것은 마치 다른 사람이 게임기를 플레이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는 것과 같다. 내러티브 영화 예술의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한 상징이다.
게임 또는 영화 <사일런트 힐> [1]
-
“이 영화는 자신의 리비도에 충실하라는 교훈극이다”
-재민의 약혼녀로 등장한 김정화를 비롯해서 재민의 어머니로 출연한 김화영은 배두나의 어머니이고, 아버지로 출연한 이승철은 이청아의 아버지다. 여기에 <굿로맨스>의 여주인공이었던 박미현, 임범 <한겨레> 전 기자, 촬영감독이자 영화사 대표인 최두영까지 우정출연해 카메오가 굉장히 많다.
=다들 분량이 많이 잘려서 죄송스럽다. 특별히 유명한 배우의 부모를 캐스팅하려던 건 아니었고, 어떻게 아는 사람을 통해 ‘배우’를 캐스팅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제작부장이 배두나랑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고 그 어머니까지 소개해줬다. 이승철 선생님은 김화영 선생님을 통해서 캐스팅했고. 저예산영화이다 보니 적은 분량으로 잠깐씩 출연하는 역할에 직업배우를 캐스팅해서 출연료를 지불하거나, 무턱대고 부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두영 대표는 사실 출연시켜주면 색보정을 공짜로 해주겠다기에 불렀는데, 바로 색보정 기사를 관두시고. (웃음) 상대적
문제적 퀴어영화 <후회하지 않아> [3]
-
<후회하지 않아>는 독립장편영화?
적어도 2005년 12월 초 방문한 촬영현장의 상황으로는 그랬다. 애초의 제목이었던 <야만의 밤>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처절함이 거기 있었다. 연일 최저기온을 경신하던 겨울의 혹독한 초입이었고, 해가 지고 나면 사방에 불빛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야산에서 배우며 스탭들이 주섬주섬 땔감을 찾아 피워올린 모닥불이 유일한 난방도구였다. 늦여름 혹은 초가을의 태풍을 배경으로 하는 그날의 촬영분량은 영화의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었지만, 수십명의 ‘강풍기 후원단’의 모금으로 마련한 강풍기는 드넓은 프레임에 광기어린 바람을 불어넣기엔 역부족이었다. 일주일은 족히 찍어야 하는 장면을 이틀 만에 마쳐야 했는데, 마지막 날에는 거짓말 같은 폭설이 온 산을 뒤덮었다. 필사적으로 눈을 치우던 끝에 결국은 전날 찍은 장면을 다시 찍어야 했다. 정상적인 사고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컷 수를 줄이고 악천후를 극복하느라 고심하던 제작진은 아래 위로 대여섯겹씩 중무
문제적 퀴어영화 <후회하지 않아> [2]
-
-
동성애는, 아니,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는 난감하다. 비유하자면 사회가 금지한 마약과 같다. 경험한 사람은 그것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고, 알고 있지만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말이 거짓말처럼 들릴까 두려워 발언을 삼가거나 에둘러 표현한다. 물론 존재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들도 다수다. 그래서 이송희일 감독은 꽤나 오랫동안 외로웠다. 1999년 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커밍아웃하고 첫 번째 단편 <언제나 일요일 같이>(1998)가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에서 상영된 지 8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게이감독’의 대표주자다. 그런데 그의 첫 번째 장편 <후회하지 않아>는 조금 다를 것 같다. 11월16일 개봉을 앞두고 미리 관객을 만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200석 규모의 상영관에서 3회에 걸쳐 상영되는 동안 평범한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고, 열렬하게 애정을 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난감한 소재를 둘러싼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좋은 의미
문제적 퀴어영화 <후회하지 않아> [1]
-
마이클 케인과 동년배라 해도, 숀 코너리나 알 파치노가 집사로 출연하는 모습을 떠올리기란 백조가 닭이 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상상이다. 주드 로가 40년 뒤에 집사로 출연하는 것은 또 어떤가. 단순히 역할의 경중을 떠나, 주인공 옆에서 묵묵히 그림자처럼 존재하면서도 없어서는 곤란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는 사람’의 분위기를, 숀 코너리나 알 파치노, 주드 로가 풍길 수 있을까. <프레스티지>에서 마술기술자로, <배트맨 리턴즈>에서 집사로, 이름보다는 인물의 역할로 기억되는 마이클 케인이지만, 그는 주드 로가 출연한 <알피>의 1966년 원작에서 알피로, 마크 월버그가 출연한 <이탈리안 잡>의 1969년 원작에서 찰리 크로커로 출연했던 배우다. 포효하는 연기 없이도, 나이를 숨기는 촬영술이 없이도 73살이라는 나이와 은근한 역할들로 다시 전성기를 맞은 마이클 케인의 비밀은 무엇일까.
“새벽 2시에 방영되는 TV영화에 출연했
바람둥이 알피부터 집사 역할까지, 마이클 케인의 연기인생
-
3. 그 배우가 아니네~
<엑스맨> <맨 인 블랙> <에이리언>의 공통점은? 속편 성공의 둘째 기준, 즉 같은 배우가 출연했다는 것이다. 관객은 감독보다 배우에 더 민감하다. 키아누 리브스, 엘리야 우드,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빠진 <매트릭스>나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시리즈를 상상이나 해보았는가? 키아누 리브스와 박중훈이 하차해 김 빠진 맥주나 다름없었던 <스피드2>와 <투캅스3>에 관객이 등을 돌린 이유다. 김 빠진 맥주는 만취한 손님에게나 팔아야 한다. 정신 멀쩡한데다가 여자친구 팔짱까지 끼고 스크린을 응시할 평균적인 관객이 바라보는 건 산드라가 아니라 키아누다(키아누와 결별한 산드라는 더더욱 아니다).
예외 <양들의 침묵>을 본 사람들은 렉터 박사(앤서니 홉킨스)만 기억하지 않는다. 스탈링 요원(조디 포스터)이 없었다면 렉터 박사의 존재도 그렇게 강하게 각인되지 않았을
속편의 패망 공식과 예외 사례들 [2]
-
세상엔 수많은 징크스가 있다. 손톱을 자르지 않아야 시험을 잘 본다든가, 녹음실에서 귀신을 봐야 음반이 대박난다거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편만한 속편 없다’는 것보다 더 정확한 징크스가 또 있을까? 속편이라 함은 전편에 이어진 이야기를 뜻한다. <캐리비안의 해적>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다음 이 시간에’ 작전을 써서 영화가 새로 나올 때마다 기억력 테스트를 하게 만드는 게 속편이 할 일이다. 그런데 전편과 인과구조나 내용이 전혀 달라 과연 속편이 맞는지 의심되는 영화들이 있었고 더 말할 것도 없이 흥행과 비평에서 참패했다. <그루지2>의 개봉과 <마파도2> <동갑내기 과외하기2> <흡혈형사 나도열2>의 제작 소식만 듣고도 실패의 어두운 그림자를 느낀 관객도 있을 것이다. <데스티네이션>에서 어떻게 해도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처럼 속편은 언제나 망하게 돼
속편의 패망 공식과 예외 사례들 [1]
-
남자로 크기 위해 조폭으로 변신하다
“꽃미남은 부담스럽고 그냥 멋있는 놈이 되고 싶었다.” 조한선의 고백에도 고개를 내젓는 건 순전히 출연작 때문이다. 카메라폰 세례를 받는 학교짱 반해원(<늑대의 유혹>), 연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던 전직 바람둥이 민수(<연리지>) 모두 순도 100% 꽃미남이 아니던가. 멋진 마스크의 소유자답게 조한선의 출발점은 서글서글한 성격의 동명 대학생(시트콤 <논스톱3>)이었다. 별다른 고민이 없어 보이던 유유자적한 청춘은 여고생들의 비명을 음악 삼아 스크린에 이식됐다. 순정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불량학생 반해원은 서늘한 미남자 정태성(강동원)과 더불어 흥행돌풍을 일궈냈고 조한선은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안착하는 듯했다. 병든 여인을 사랑하는 민수(<연리지>)는 쉽게 예측 가능한 선택이다. ‘지우히메’ 최지우와 동반출연했음에도, 한층 길어진 머리를 드리운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은, 그러나 사랑을 지키는 데도
거친 두 남자의 스크린 성장 본능 [2] - 조한선
-
진구와 조한선의 공통분모는? 고집스레 꽉 다문 입술과 담백한 눈매 정도? 이번 가을, 맹렬하게 성장 중인 두 남자의 교집합은 어느 때보다 눈에 띈다. <비열한 거리> <아이스케키>의 연이은 도착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던 진구는 2006년의 마지막을 장식할 최신작 <사랑따윈 필요없어>의 개봉을 기다리는 상태. 애정에 굶주린 남녀의 사랑담인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진구는 김주혁이 연기하는 ‘넘버 원 호스트’의 추종자 미키를 향해 갑작스레 방향을 틀었다. “쬐끄만 기집애 하나 땜에 맛이 갔구나, 완전히. 아주 환장을 하셨어! 돌았어? 여기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씨발. 죽고 싶지 않으면 정신 좀 차려!” 사랑에 비틀거리는 줄리앙을 향해 울먹이는 미키는 또 어떤 감흥을 일으킬까?
복수에도, 연민에도 뜨겁게 반응하는 이 남자는 시트콤 <논스톱3>로 이름을 알린 쿨한 조한선과 확연히 다른 느낌이라고? 소녀의 주먹질에도 강제로 입을
거친 두 남자의 스크린 성장 본능 [1] - 진구
-
당신들…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
이름 지수 국적 한국 나이와 성별 30대 여성 직업 없음 비고 <얼굴없는 미녀>는 <분홍신>을 신는다
‘경계선 장애’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정신증에 계속 시달리는 건 아닌데, 어느 순간 현실적 사고에 이상을 보이면서, 충동적인 행동을 하거나 감정 조절을 못하게 되는 정신장애죠. 이를테면 이런 경우를 봅시다. A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심하게 애정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사근사근하고 친절하게 대하죠. 자신이 할 일이 아닌데도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하거나, 정도에 넘치는 관심과 친절을 베풀기도 합니다. 더 많은 관심을 받으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죠. 그러다 상황이 꼬였다고 합시다. A의 과도한 친절에 사람들이 부담을 느꼈거나, A가 나서서 한 일이 잘못되거나, 거짓말이 들통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A는 모두가 자신을 욕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현실이 실제로 그런지와는 별개로요). 예민해진 A는
애정결핍이 뭇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 [2]
-
여러분 하이룽~ 방가방가! 정신과 전문의 한니발 렉터예요. 여러분의 쫀득쫀득하고 유쾌한 정신건강을 위해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밥도 먹다 말고 달려온 참입니다. 뭘 먹었는지는 묻지마세요.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으니까요. 뭐, 제가 기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병적 심리 분야에선 전문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걍 믿으세요.
오늘 강의 주제는 ‘애정결핍에서 비롯된 병리적 증상에 대한 사례 연구’입니다. 8개 케이스를 통해 애정결핍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살펴볼 거예요. 강의 전에 한 가지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게 있는데, ‘애정결핍’은 말 그대로 ‘애정이 결핍된 상태’를 말하는 것일 뿐 그 자체로는 절대 병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여러 환경적 요인이나 개인적 특성으로 인해 애정결핍이, 경미하거나 심각한 병적 상상 및 행동을 유발하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물론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애정결핍이 병으로 발전됐다고 말할 수만도 없는 일입니다. 육체의 병이 그렇듯, 마음의 병도
애정결핍이 뭇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 [1]
-
한류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자국 중심적인 시선에서 시작된다. 욘사마로 인해 국가의 이미지가 상승했고, 문화상품의 수출이 늘었다는 것이다. 결과에 집중된 외피적인 이야기가 자화자찬의 로맨스를 만들어낸다. <겨울연가>의 순수, 욘사마의 상냥함은 때늦게 금의환향을 했다. 하지만 한류는 팬들의 흐름을 의미하기도 한다. 스타를 보기 위해 공항까지 마중 나오는 일본 아줌마들이 한류의 실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류는, 곧 새로운 팬덤의 양상이다. 베트남과 중국, 대만과 일본은 문화상품의 수출국이기에 앞서 새롭게 등장한 팬층이다. 특히, 30대 이상의 여성들이 주를 이루는 일본의 국내 스타 팬층은 꽤 생소하다. 한류는 이제 무엇보다 팬질로서 이해돼야 한다. 팬질은 곧 팬심(fan心)이고, 팬질은 팬질로서만 이해할 수 있다. 좀더 다양하고 많은 사례가 팬심을 구성한다. 여기선 한류와 함께 가장 부각됐던 일본 아줌마들의 팬질을 소개한다.
욘사마의 공간을 체험하다
일본인들은 팬사이트에
팬클럽과 팬문화 [4]
-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때 ‘다모 폐인’, ‘미사 폐인’, ‘왕남 폐인’으로 자타 일컬어지며 영화 또는 드라마를 향한 무한한 애정을 쏟았던 사람들 말이다. 드라마는 종영됐고 영화는 극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DVD란 형태로 여전히 팬들 곁에 남는다고 해도 그것들의 이야기와 그 속의 인물들은 지속되는 스타와 달리 종결된 존재다.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도,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그 이후 ‘폐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뒤져보니 팬카페들이 아직 존재하고 있고 활동도 이어지고 있었다. 매혹적인 세계 하나가 대중에게 처음 공개되어 붐을 일으켰던 그 시절 이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와 <미안하다, 사랑한다>, 영화 <형사 Duelist>와 <왕의 남자>의 팬카페 마스터들에게서 들었다. 구구절절한 행사들의 자취가 흥미로울 줄 알았건만 정작 듣는 이의 마음을 혹하게 한 건 그때 그 드라마가, 그
팬클럽과 팬문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