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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번째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앞서 15편의 추천작을 소개했던 <씨네21>은 휴일에도 열심히 영화를 보며 15편의 추천작을 추가로 추렸다. 더불어 중견감독들의 신작이 두루 포진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경향에 대한 글을 남동철 프로그래머가 전해왔고, 특별전 ‘사하 시네마: 추운 땅에서 날아온 미지의 영화들’에 대한 소개글을 박진형 프로그래머가 보내왔다. 또 다른 특별전 ‘스즈키 세이준: 경계를 넘나든 방랑자’와 올해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인 배우 신성일의 주요 작품 소개도 함께 싣는다. 10월의 부산은 여전히 영화로 풍요롭다.
예매창 앞에서 이 영화들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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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는 고무 성기가 달린 가죽끈을 허리에 묶었다. 그러고는 그 성기를 주물럭거리면서 말했다. “요코하마에서 건너온 스틸리 댄 3호.” 그러더니 우유가 품어져 나와 방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윌리엄 S. 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 중에서
스틸리 댄. 이 음란하며 고약하고 짓궂은 이름. 하지만 그 출처를 파헤치기 전에는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이름. 동시에 그 이름처럼 모호하고 이상야릇하지만 빈틈없이 완벽한 음악을 지난 45년간 구사해온 록밴드 이름.
팬들은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지난 9월 3일 그룹 스틸리 댄의 ‘절반’이었던 기타리스트 겸 베이시스트 월터 베커가 하와이주 마우이에서 67살의 일기로 눈을 감았다. 밴드의 또 다른 반쪽이면서 보컬과 건반악기를 맡았던 도널드 페이건은 추도문에서 “스틸리 댄이란 이름으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살면서, 월터와 함께 만든 음악이 계속 나오길 원했다”고 심정을 밝혔다.
베커와 페이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황덕호 재즈평론가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뮤지션 월터 베커의 음악 세계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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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결코 놓쳐선 안 될 이름들이 있다. 이 이름들 앞에 세계적인 거장이란 수식어는 어딘가 식상하다. 영화제가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을 믿고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영화의 축제라는 전제하에 차라리 관객을 편안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인 문제적 감독들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마더!>는 단연 올해의 화제작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평화롭던 부부의 집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연이어 방문하고 아내는 이들의 무례한 행동이 불편하다. 그럼에도 손님들의 눈치를 보며 극진히 대접하는 남편의 모습에 아내의 불안은 점점 커져간다. 제니퍼 로렌스가 아내 역을 맡아 신경쇠약 직전의 캐릭터를 그려냈다. 인물의 불안한 심리를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북미에서 평단과 관객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호불호가
[부산국제영화제]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마더!>부터 오우삼의 <맨헌트>까지 거장들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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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君の膵臓をたべたい
쓰키카와 쇼 / 일본 / 2017년 / 115분 / 오픈 시네마
호러영화가 아니다. 어쩌면 근래 일본영화 중 도드라지게 예쁘고 애잔한 청춘 드라마일지도 모른다. 2015년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200만부 넘는 발간을 기록한 스미노 요루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고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영화의 경우 오구리 , 기타가와 게이코 등의 캐스팅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독서를 좋아하고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소년은 어느 날 병원에서 학급 최고의 인기 소녀 사쿠라(하마베 미나미)의 일기를 발견한다. 췌장암에 걸린 시한부 환자인 사쿠라는 자신이 병에 걸린 사실을 둘만의 비밀로 하자고 말한다. 소년은 심각한 병에 걸렸지만 내색 한번 하지 않고 항상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쿠라에게 조금식 마음을 뺏기고 둘만의 추억을 하나둘 쌓아 나간다. 이 영화는 진한 로맨스라기보다는 가슴 아픈 성장담에 가깝다. ‘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⑥]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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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Close-knit
오기가미 나오코 / 일본 / 2017년 / 127분 / 아시아영화의 창
오기가미 나오코의 맑은 영화가 돌아왔다. 현대인의 보편적인 공허 속에서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카모메 식당>(2006), <안경>(2007) 같은 작품과 달리 대안가족과 성소수자 이슈를 중심부로 끌어왔다는 것에서 새로운 변화와 도전 의식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집 나간 엄마로 인해 삼촌과 함께 살게 된 소녀 토모(가키하라 린카)가 삼촌의 연인이자 트랜스젠더인 린코(이쿠타 도마)와 조우하면서 겪는 생활의 변화를 그린다. 타인을 보살피는 마음이 강한 린코는 토모에게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돌려주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노력한다. 가족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편견 앞에서 그녀는 뜨개질을 통해 내면을 다스린다. 차별을 몸소 겪으면서 토모 역시 뜨개질 의식에 동참하고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결합’(knit)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비올레타, 결국은> <조니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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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매너스> Good Manners
줄리아나 호헤스, 마르코 두트라 / 브라질, 프랑스 / 2017년 / 135분 / 월드 시네마
아나와 클라라는 인종부터 살아온 환경, 심지어 성격까지 모든 면에서 다르다.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온 백인 여성 아나가 덜컥 임신을 하고, 일자리가 간절한 흑인 간호사 클라라가 보모로 들어온다. 처음에는 일상의 곳곳에서 갈등을 겪던 두 사람은 점차 서로를 이해해가며 가까워지고, 육체적 관계를 맺으며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아나와 관계를 맺었던 남자는 늑대인간이었고, 아나의 뱃속에 있던 태아는 자신의 어머니의 배를 찢고 세상에 나온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혼자가 된 클라라는 아이를 홀로 키운다. 전반부가 여성간의 연대를 뭉클하게 보여주는 퀴어물에 가깝다면, 후반부는 사춘기 늑대소년이 겪는 혼란스러움과 그를 키우는 방식을 고민하는 클라라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특히 선택의 기로에 선 주인공들이 어떤 행동을 감행하는 강력한 마무리가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④] <굿 매너스> <판타스틱 우먼> <위기의 파리지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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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스트럭> Wonderstruck
토드 헤인즈 / 미국 / 2017년 / 117분 / 월드 시네마
<캐롤>(2016), <아임 낫 데어>(2008) 등을 연출한 토드 헤인즈 감독이 <원더스트럭>에선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더스트럭>에서도 사랑과 정체성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지만 어디까지나 이 작품은 아이들의 성장담이다. 영화는 1920년대와 1970년대, 두 시간대의 이야기를 나란히 들려준다. 1977년의 이야기는 소년 벤(오크스 페글리)의 여정을 따라간다. 벤은 엄마의 유품에서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아빠에 관한 단서를 발견하는데 하필 그날 밤 천둥소리에 의해 청력을 잃는다. 하지만 청력 상실도 벤의 뉴욕행을 막진 못한다. 1927년을 살아가는 로즈(밀리센트 시먼즈) 역시 유명 배우인 엄마(줄리언 무어)를 만나기 위해 홀로 집을 떠나 뉴욕으로 향한다. 로즈는 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하는 소녀다. 이처럼 50년의 시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③] <원더스트럭> <더 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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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리아> Euphoria
리사 랑세트 / 스웨덴, 독일 / 2017년 / 98분 / 월드 시네마
에밀리와 이네스. 오랜만에 조우한 자매는 함께 여행을 떠난다.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로브스터와 샴페인을 즐기면서도 이들의 미소엔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다. 특히 뭔가 숨기고 있는 쪽은 에밀리다. 이네스는 낯선 남자와 함께 춤을 추고, 즐기지 않는 술까지 마시는 에밀리의 모습이 낯설다. 영화는 초반부에 오랜 시간 서로에게 소원했던 자매가 속내와 다른 말을 내뱉을 때, 서로에게 친밀함을 표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어긋날 때의 고요한 긴장을 솜씨 좋게 조율한다.
이튿날 에밀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가자는 말로 이네스를 안내한다. 두 사람이 내린 곳은 외딴 숲의 초입. 에밀리는 자신을 마중 나온 정체불명의 이들과 인사를 건네고, 이들은 자매를 큰 정원이 있는 저택으로 안내한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무리를 따르는 이네스와 함께, 영화도 현실에서 판타지 속으로 걸음을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②] <유포리아> <빛나는>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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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정원> Glass Garden
신수원 / 한국 / 2017년 / 117분 / 개막작
변형세포를 연구하는 생물학도 재연(문근영)은 적혈구와 엽록체를 결합시키면 인간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는 가설을 내세운 미지의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그런데 학계를 상대로 정치나 로비에는 능력도 관심도 없어 오직 연구에만 몰두하던 그녀가 자신을 시기하는 동료들로부터 연구성과를 송두리째 뺏길 위기에 처한다. 설상가상으로 믿고 의지하던 교수(서태화)도 자신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는 걸 깨달은 재연은 비밀 연구공간인 ‘유리정원’으로 들어가버린다. 한때 떠오르는 신인 작가였지만 수년째 데뷔작을 넘어서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소설가 지훈(김태훈)은 우연히 재연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녀가 세상과 단절된 유리정원에서 괴이한 ‘생체실험’에 몰두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재연이 행하는 실험이 자신에게 인생역전을 가져다줄 소설 아이템임을 깨닫고는 그녀 몰래 웹소설을 연재해 인기를 얻기 시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①] <유리정원> <균형>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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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영화의 바다에서 축제가 열린다. 10월 12일부터 21일까지 열흘간 열리는 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는 75개국 298편의 영화가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으로 문을 열고 실비아 창 감독의 <상애상친>으로 문을 닫는 이번 영화제는 그간의 위기가 무색할 만큼 다양하고 풍성한 영화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씨네21>에서는 이를 한번에 전부 설명해버리는 건 아쉽다고 판단하여 2주에 걸쳐 추천작들을 소개하려 한다. 이번주에 우선 소개할 15편의 영화들을 통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추구하는 경향을 어렴풋하게나마 더듬어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이름만으로도 믿을 수 있는 감독들의 화제작도 덧붙였다. 영화의 바다 위 즐거운 항해를 도울 짧지만 알찬 가이드 1부를 공개한다.
가을의 전설, 부산으로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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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드>의 기획 배경이 궁금하다.
=1월쯤 <메소드>의 배급사인 엣나잇필름의 정상진 대표가 “1억원대 저예산 ‘핑크무비’를 만들어보자”며 제안을 해왔다. 여기에 채널CGV까지 함께하게 되면서 완성된 영화를 이 채널을 통해 방영해보는 방식까지 논의가 됐다.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감독 데뷔한 사람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제작과 상영을 해본다면 신인감독들에게도 이러한 방식의 제작 기회가 주어질 수 있겠더라. 물론 내가 멜로 감성이 부족한지라 ‘핑크무비’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올해 12월 대학로 연극무대에 오르는 <언체인>이라는 연극의 연출을 제안받았다. 연극 연출은 내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었고 대신 그 연극의 내용을 영화 속 연극으로 가져가보면 어떨까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메소드>는 배우의 연기의 한 방식인 메소드 연기와 그 방식으로 배우가 연기를 할 때 느끼는 감정 상태에 관한 영화로 안다.
=연극
<메소드> 방은진 감독, “어려우니까 영화를 더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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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거꾸로 말하면? 웅성웅성! (일동 웃음)” 6월 25일 배우 박성웅이 대학로의 한 연극 무대에 올라 객석을 들었다 놨다 한다. 조금 후에 박성웅은 무대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하는 연기를 해 보일 예정이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관객은 놀라며 ‘웅성대는’ 리액션을 해야 하는데 그 분위기를 자연스레 만들어내기 위해 배우가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한다. 그 덕분에 공연장의 온도는 기분 좋은 웃음으로 예열됐고 배우와 관객 모두 극에 빠져들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이 연극은 실제 연극이 아니다. 방은진 감독의 신작 <메소드>의 극중 주인공들이 출연하는 연극의 한 장면이다. <메소드>는 제목 그대로 배우로 사는 인물들이 연기에 몰입해갈수록 극중 배역과 실제의 자신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강렬한 드라마다. 배우이기도 한 방은진 감독이 연기의 한 방법론인 메소드 연기에 대한 자신의 오랜 질문을 영화로 옮긴 것이기도 하다. 연기 경력이 상당
<메소드> 촬영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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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촬영의 관건은 무엇인가.
=조진웅_ 이 선생을 잡으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맞닥뜨린 위기에 대처하는 원호의 노련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김주혁_ 연기할 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감독의 의도대로 연출하는 영화가 나오길 바라는 쪽이다. 오늘 촬영 장면도 마찬가지인데 액션 신이다보니 하림이 화를 내고 총을 겨누는 방식이나 싸우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했다.
=류준열_ 진웅 선배와 주혁 선배가 대립하는 장면이다. 나는 큰 움직임이 없다. 매 장면 존재감을 드러내시는 선배들과 함께할 수 있어 감동적이고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캐릭터가 어떻게 다가왔나.
조진웅_ 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원호의 심리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지독히 이기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원호가 가진 이 선생에 대한 집착 또한 어떤 트라우마에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한 원호를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한 고민으로 괴로웠지만 어느
<독전>(가제) 배우 조진웅·류준열·김주혁, “어느 순간 끌리듯 도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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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가 사뭇 터프하게 변한 것 같다. (웃음)
=현장에선 전혀 안 그렇다. 얼마 전 모니터를 보다가 자그마한 걸 하나 놓쳐서 무전기로 “그거, 다시 체크해봐”라고 얘기했더니 옆에서 지켜본 (조)진웅씨가 “그럴 때는 ‘야, 똑바로 못해’라고 하는 거야” 그러더라. (일동 폭소) (귀여운 말투로) “난 그런 거 못해” 이랬지.
-허명행 무술감독과 함께 총기 액션을 연출하는 모습을 보니 다소 낯설던데. (웃음)
=현장에서 특별히 낯선 건 없는데 시나리오를 쓸 때 전작과 다른 느낌은 있었다.
-처음 시도하는 장르라서 그런가.
=장르보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 때문인 것 같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시나리오를 썼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영화는 제도판 위에 모눈종이를 올려놓고 자로 선을 그어가며 만들어가는 작업이었다. 이 작품을 하기 전에는 내 취향이나 감성적인 촉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면 이번에는 아귀가 잘 맞아야 해서 좀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게 많았던
<독전>(가제) 이해영 감독, “영화적인 영화에 대한 동경이 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