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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혁의 필모그래피가 새로이 추가될 수 없다. 그 사실만으로도 안타깝고 슬프다. 영화를, 연기를 사랑했던 배우 김주혁은 우리가 기억해야만 할 좋은 영화들을 남겼다. 다음은 <씨네21> 기자들이 가장 아끼는 김주혁의 장면들이다.
김성훈 기자의 <청연>(2005)
술을 잘 마시지 못해 입에 거의 대지 않는 김주혁은 유독 <청연>에서 만취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그가 연기한 한지혁은 박경원(장진영)의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곯아떨어졌고, 그 다음날 박경원이 모는 택시를 다시 불렀을 때도 만취해 있었다. 박경원이 그에게 “비너스(술집)에 자주 가시나봐요”라고 묻자 그는 “우울할 때마다 가요”라고 대답하고, 박경원은 “매일 우울하신가봐요”라고 말한다. 중의원이 되기 위해 자신을 입대시킨 아버지에 대한 원망,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인한 그의 우울한 얼굴이 영화 내내 아른거린다. 그럼에도 박경원과 함께 있을 때 그의 얼굴은 가장 환하
[김주혁 추모] 우리가 기억하는 김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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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혁은 영화에서 노래를 꽤 불렀다. 기가 막히게 잘 불렀다는 게 아니라 몇번 불렀다는 얘기다. 신기하게도 영화는 그의 노래를 중간에 끊지 않고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줬다. 그의 무덤덤하면서도 담백한 노래는 몇 마디 인상적인 대사보다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전해줬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공교롭게도 그 노래들은,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최호섭의 노래인 <세월이 가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하 홍반장)에서 각각 김광석과 유재하의 노래인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와 <그대 내 품에>다. 어쩜 그리도 떠난 그를 떠올리게 하는 곡들인지. 당연히 원곡보다야 못하지만 이상하게 그의 노래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카메라는 그로 하여금 영화에서 그 노래들을 꼬박 다 부르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꽤 한동안 그 노래들이 입가를 맴돌 것 같다. “세월이 가면
[김주혁 추모] 더없이 든든했던 배우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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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7일, CJ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신진 작가 기획개발 프로그램 스토리업(STOTY UP) 행사의 일환으로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영화로 보는 인공지능’ 특강이 CGV용산에서 열렸다. 장장 3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행사의 1부에서는 정재승 교수가 인공지능 기술의 역사 전반에 대해 개괄적으로 소개했고, 2부에서는 김혜리 기자의 진행으로 참석자들과 함께 실제 인공지능을 영화화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미래의 기술로 인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 것이며, 영화는 달라질 미래 사회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한편, 스토리업 특강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여 신인 스토리텔러 및 예비 창작자의 참신한 스토리 기획과 완성도 높은 스토리 구현에 기여하기 위한 전문토크 프로그램으로, 이후 이수정 교수의 ‘영화로 보는 인격장애’(11월 17일),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의 ‘영화로 보는 강력범죄’(12월 16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인공지능③]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김혜리 기자의 ‘영화로 보는 인공지능’ 토크 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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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CJ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신진 작가 기획개발 프로그램 스토리업(STORY UP) 특강의 첫 번째 시간으로,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영화로 보는 인공지능’ 특강이 CGV용산 아이파크몰 4관에서 열렸다. 장장 3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행사의 1부에서는 정재승 교수가 인공지능 기술의 역사 전반에 대해 개괄적으로 소개했다. <씨네21>에서는 정재승 교수의 강의를 발췌, 요약하여 6가지 질문으로 나눠서 정리했다. 거기에 각 질문을 염두에 두고 보면 좋을 영화도 함께 소개한다. 영화가 상상한 미래이자 인공지능이 영화에 던지는 질문이 여기에 있다. 한편, 스토리업 특강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여 신인 스토리텔러 및 예비 창작자의 참신한 스토리 기획과 완성도 높은 스토리 구현에 기여하기 위한 전문 토크 프로그램으로, 이후 이수정 교수의 ‘영화로 보는 인격장애’(11월 17일),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의 ‘영화로 보는 강력범죄’(12월 16
[인공지능②] 정재승 교수에게 들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부터 <엑스마키나>까지 영화로 보는 인공지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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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진 거다.”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경기에서 내리 5전3선승의 경기에서 3연패를 당한 이세돌 9단은 인터뷰 말미 심경을 묻자 이렇게 밝혔다. 그리고 다음 경기에서 이세돌은 알파고에 1승을 거둔 유일한 사람으로 기록된다(알파고는 이후 커제 9단에게 3판 전승 승리를 거둔 후 공식 은퇴했다). 당시 네티즌들은 이세돌 9단의 발언을 뒤집어 이렇게 평가했다. “인간이 이긴 게 아니다. 내가 이긴 거다.” 농담 같은 패러디지만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로 한껏 부풀려진 이벤트의 본질을 꿰뚫는 한줄인 것 같다.
기계의 등장 이래 사람들은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밀어낼 거라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인간이 직접 해야 할 일들을 기계가 하나씩 대체하는 순간마다 언젠가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공포에 빠진다. 재미있는 상상이다. 말이 인간보다 빨리 달린다고 해서 말이 인류를 지배할 거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기계는 두려워한다. 인간의 것을
[인공지능①] 영화 속 인공지능의 변화, 현실의 인공지능 발전상,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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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가 그리는 미래 사회의 풍경은 예술가의 세계관이 담긴 상상력의 산물이자 지금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1982년에 만들어진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35년 전에 상상했던 2019년 LA 풍경 속에서 당시 세계 정세와 미국인들의 근심을 읽어낼 수 있듯이 말이다. 2017년 현재, 영화에 담길 미래 사회의 풍경에 대해 고민하는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가장 뜨거운 화두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일 것이다. 사람이 인공지능과 바둑을 두고 또 그 인공지능의 바둑 실력이 신의 영역을 들먹일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하고, 심지어 인공지능 로봇이 시민권까지 얻게 된 분위기에서 창작자들은 인공지능의 어떤 점에 주목하고 그것을 영화에 담아내려 할까. 그렇게 만들어진 지금의 SF영화는 우리의 어떤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게 될까. 이번호에서는 최근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뜨겁게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전문가의 강연을 통해 기존의 묘사방식과 다르게
정재승 교수와 함께하는 ‘영화로 보는 인공지능’ ① ~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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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의 모험>(1977) 스토리보드 작가
“꽤 많은 캐릭터를 그려왔지만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위니 더 푸’(Winnie-the-Pooh)의 곰돌이 푸다. 스스로 가끔 뇌가 작은 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웃음) <로빈 후드>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곰돌이 푸의 모험>의 스토리보드 작가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2011년 디즈니에서 <곰돌이 푸>를 리메이크할 때 스토리보드를 다시 그려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곰돌이 푸 목소리까지 연기해가며 발표를 했고 승낙을 받았다. 목소리 하나, 캐릭터 동작 하나까지 직접 해보면서 그리는 건 푸가 유일한 것 같다. 1977년 <곰돌이 푸의 모험>을 그릴 때 아내가 곰돌이 푸의 인형을 만든 적이 있다. 실제로 오프닝에 실사 인형이 등장하는 장면까지 찍었는데 볼프강 라이테르만이 최종적으로는 삭제해 쓰지 못했다. 그때 만든 인형을 다락방에서 꺼내어 다
버니 매틴슨의 대표작들 - 유명한 이야기를 ‘재창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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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입사 후 올해로 64년째 한해도 거르지 않고 출근 중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최장수 애니메이터 버니 매틴슨이 제19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고교 졸업 후 무작정 디즈니에 입사해 사내 우편배달부부터 경력을 시작한 버니 매틴슨은 보조 애니메이터, 스토리 작가를 거쳐 감독과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설립자 월트 디즈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13년간 함께 근무했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현역 애니메이터로 활약 중인 디즈니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2008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큰 기여를 한 아티스트로서 ‘디즈니 레전드’에 선정되었고, 2013년 60년 근속상을 받았다. 걸어온 길이 곧 역사가 된 거장이지만, 그는 스스로 무언가 되고자 의식했다면 지금의 위치에 다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저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지내며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전부라는 그는 내일도 출근 도장을 찍고 책상에 앉아 손으로 그림을 그릴 것이다. 버디 매
디즈니의 살아 있는 전설, 버니 매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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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가득 채운 눈동자가 우리를 바라본다. 아니, 우리가 거대하게 찍은 눈동자를 목격하는 걸까. 두 문장은 같지만 전혀 다르다.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이하 <2049>)와 1982년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의 관계가 정확히 이러하다. <2049>는 리들리 스콧이 스크린에 붙들어 맨 세계의 형태에 경배를 바치며 충실한 복제를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블레이드 러너>의 오프닝을 먼저 떠올려보자. 칠흑 같은 암흑에 별처럼 박힌 건물의 불빛들과 간헐적으로 솟아오르는 불기둥이 익스트림 롱숏으로 펼쳐진다. 이윽고 클로즈업된 눈동자가 화면을 메우는데 녹색의 눈동자에는 불빛과 화염들이 거울처럼 반사되고 있다. <2049>의 경우 시작과 함께 화면을 메우는 건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포착한 눈동자다. 영화는 눈동자를 한참 바라본 뒤에야 익스트림 롱숏으로 하얀 바닥에 점처럼 박힌 단백질 농장의 전경을 천천히
<블레이드 러너 2049> 세계의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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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마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더!>를 보다 떠오른 건 즈비뉴 립친스키의 단편 <탱고>(1981)였다. 미국 아카데미에서 단편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했고 어느덧 고전이 된 이 작품은 보통 ‘반복과 단절’의 주제로 읽힌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작지만 단정하게 정리된 방이 배경이다. 앞쪽으로 침대가 놓여 있고, 반대쪽으로는 문과 창이 보인다. 문은 좌우 벽에 하나씩 더 있으며, 오른쪽 벽으로는 아기 침대가, 왼쪽 벽으로는 옷장이, 가운데엔 원탁과 의자 두개가 배치되어 있다. 반복되는 탱고 음악이 흐르고 제목이 제시된 다음, 창을 통해 공이 튀어 들어오고 한 아이가 뒤따라와 공을 들고 나간다. 아이의 행동이 반복될 동안, 두 번째 인물인 여성이 뒤쪽 문을 통해 들어와 원탁에 앉아 아이에게 젖을 물린 다음 침대에 누인다. 세 번째 인물인 검은 선글라스의 남자가 몰래 침입해 옷장 위에 놓인 꾸러미를 훔쳐 달아
<마더!> 여기서 파라다이스를 꿈꾸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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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과 이견이 분분하다고 좋은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좋은 영화는 반드시 영화를 둘러싼 말이 넘쳐난다.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와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마더!>는 흥행과 별개로 어떤 방식으로든 좀더 이야기되어야 할 영화들이다. 누군가는 그 앞에 문제작이라는 팻말을 붙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걸작이라며 칭송해 마지않을 것이다. 이것은 평가가 아니라 논의의 시작이다. 몇 마디 말과 몇편의 글로 전부를 갈음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이어질 이야기에 물꼬를 틔우는 심정으로, 송경원 기자와 이용철 평론가의 글을 부친다.
<블레이드 러너 2049> <마더!> 문제작 심층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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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웃긴 영화를 봤나.’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 권해효가 심사 후 내내 <밤치기>의 장점을 말하느라 바쁘다.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뉴 커런츠 부문 등 심각한 사회 반영으로 ‘몸살’을 앓는 영화의 한가운데에서 ‘하루에 자위 두번 해본 적 있어요?’ 같은 말을 진지하고 집요하게 물어대는 <밤치기>는 한마디로 ‘골 때리는’ 영화였다. 감독 이름은 볼 것도 없이 정가영이다. 전작 <비치온더비치>(2016)의 독특한 대사와 화법은 그대로. 사비를 털어 만든 전작들과 달리 이번엔 레진엔터테인먼트가 투자자로 나서 ‘300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열배로 뛰었다. 어디 제작 규모의 확장뿐일까. 속속 내놓는 단편에 이어 두편의 장편으로 정가영의 세계는 보다 또렷하게 관객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밤치기’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말이다. 시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쓰려고 했다. 가영이 하룻밤 사이에 진혁(박종환)과 진
[한국영화감독 7인⑦] <밤치기> 정가영 감독 -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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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도 이 영화가 영화 제작사 ‘광화문시네마’의 작품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족구왕>(2014)과 <범죄의 여왕>(2016)의 배우들이 대거 주·조연을 맡은 이 작품은 광화문시네마의 일원 전고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소공녀>의 미소(이솜)는 집이 없다는 점에서 광화문시네마의 이전 작품 속 캐릭터보다 상황은 더 나쁘지만, 담배와 위스키와 남자친구만 있으면 이대로도 괜찮다고 말하는 낙천성은 좀더 뚜렷하다. <소공녀>가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하기 며칠 전 전고운 감독을 만나 영화와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소공녀>는 어떻게 시작한 작품인가.
=택시비가 100원, 200원만 올라도 뉴스에서 난리가 나는데 담뱃값이 2천원이나 오른 것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더라. 담배가 아주 나쁜 것처럼 사회에서 격리시킨다. 하지만 담배는 돈 없는 노동자도 많이
[한국영화감독 7인⑥] <소공녀> 전고운 감독, "미소는 내가 생각하는 용기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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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최고의 영화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해 영화제에서 만난 영화 중 절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영화를 꼽으라면 <박화영>의 자리는 제일 앞줄이 될 것이 틀림없다. <박화영>은 엄마에게 버림받고 누군가에게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소녀 박화영에 대한 영화다. 제목 그대로 박화영이라는 한 인물에 집중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건 소녀의 주변을 둘러싼 폭력적인 환경이다. 상영시간 내내 쏟아지는 욕의 홍수를 견뎌야 하는 이 영화를 두고 이환 감독은 사실적인 재현임을 강조한다. “의도적으로 과장하거나 영화적 수사를 더한 건 하나도 없다. 배경이나 상황은 요즘 고등학생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그들의 말투를 배우기 위해 취재도 부지런히 했다. 수사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영화는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이환 감독은 장편 데뷔작 <박화영>을 들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문을 두드렸다. 장편 연출 데뷔작이라고 하지만 이환 감독에게 부산국제
[한국영화감독 7인⑤] <박화영> 이환 감독 - 과장이 아니다, 하이퍼 리얼리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