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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일년도 못 되는 기간을 보냈을 뿐이면서 마치 한 십년 공부하고 온 것처럼 자꾸 프랑스 유학 시절을 들먹거리게 되어 민망한데, 또다시 그때 이야기다. 세상에 나보다 잘난 인간은 없을 것만 같았던 만 스무살 때, 나는 프랑스 연수를 꿈꿨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87년 대선결과를 보고는 “역시 백성들은 무식해. 똑똑한 내가 정계든 관계든 진출해 뭔가 훌륭한 일을 마구 해야지” 하는, 거의 엽기 수준의 방약무인 정신으로 외무고시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외시를 보려면 제2외국어를 해야 하는데 그럼 현지에서 잘 배워오는 게 젤 좋겠지 하는, 형언할 수 없이 단순하고 또 말이 안 되는 논리로 프랑스행을 결정한 것이다. 어떻게 사고의 회로가 그런 비약의 길로 흐를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경이로울 따름이다. 여하튼 학교를 정하고 여권과 비자를 받아놓고는 부모님께 계획을 알렸다. 쉽게 말해 “나 가야겠으니 돈 좀 줘요”였다.자신만만한 척했고 실제로 자신만만하기도 했었으나 막상 비행기를 타고보
난 언제나 네 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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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제작편수만을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1960년대야말로 한국영화의 황금기였다는 주장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60년대 중반에 이미 연간제작편수가 150편을 넘어섰고 해마다 그 기록을 경신하여 1970년에는 무려 231편이 제작되었다고 하니, 안간힘을 써대도 60편 넘기기가 빠듯한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이 ‘좋았던 옛 시절’의 한복판에 우뚝 서서 당대의 관객과 함께 울고 웃으며 자신의 전성기를 보낸 행복한 작가가 김강윤이다. 그는 평생 98편의 시나리오를 영화화해 극장에 올렸는데 그중 57편이 60년대의 10년 동안 완성된 것이었으니 한국영화의 황금기가 바로 그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평안북도 삼풍에서 태어난 김강윤은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로 진학하지만 3학년 때 학업을 작파하고 영화판으로 뛰어든다. 그의 시나리오 데뷔작은 나운규와 더불어 한국영화의 초창기를 개척한 지사감독 윤봉춘의 <승방비곡>. 본래 일제시대에
아름다웠던 시절, 행복했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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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배경,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듀서로 입문, 어떤 작품에 참여했나.코믹 연기를 곧잘 한다는 주위의 격려에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들어가선 곧바로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느라 정작 무대하곤 거리가 멀었다. (웃음) 전대협에서 일하던 마지막 해 92년. 사회단체에 들어갈까 하던 차에 정지우 감독을 만났다. 같은 과 3년 후배였는데, 영화제작소 청년에서 같이 일하자고 했다. <스무살 젊은이에게>라는 대학생 의식화(?) 비디오물을 제작하고 있던 영화제작소 청년은 거대 조직에 몸담았던 내가 배급책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큰 도움은 못줬다. (웃음) 96년이었나. 장편영화를 하자는 이야기가 내부에서 나오면서 다른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 이외의 스탭들에겐 특히 그랬다. 당시 이선미 프로듀서는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 제작부로, 나는 동숭아트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기획, 배급쪽 실무를 맡으면서 관객의 반응을 직접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어 좋은 때였
아름다웠던 80년대, 액션으로 풀어볼까 -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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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배경,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듀서로 입문, 어떤 작품에 참여했나.솔직히 나는 영화광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는 미술에 관심이 있었고 대학교 때는 음악동아리를 했고 대학졸업 뒤엔 죽 무역일을 했다. 그러다 94년 결혼을 하고나니 이게 아니다 싶었다. 무역일이란 게 늘 해외로 나돌게 마련이라 가정을 꾸려나가기엔 적합한 일이 아니었다. 좀더 안정된 일을 찾던 중 음악동아리 선배가 ‘블루캡’이라는 영화사운드 업체에서 음반기획이나 영화관련 일을 해보자 해서 이건 무역보다는 안정적이겠다 싶어 수락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이후 영화 관련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챙겨 보고 신씨네에서 하는 6개월짜리 영상아카데미 프로듀서양성과정을 들었다. 그때 강의를 한 사람들이 심재명, 차승재, 신철, 오정완 대표 등이었고 김승범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원동연(<돈을 들고 튀어라>의 원작자)이 내 동기였다. 거기서 영화인력들을 알현하고 프로듀서가 뭘
좋은 나이 마흔, 늦게 핀 영화인생 - 최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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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배경,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듀서가 됐나.‘무식한 놈.’ 대학 졸업작품을 만들 때 네거필름이 뭔지 모른다고 했다가 선배에게 들은 말이다. 그런 말을 들어도 쌌다. 83년, 재수를 해서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간 건 순전히 충동의 산물이었고, 연극연출 전공이었다가 4학년 때 영화로 전공을 바꿨으니까. 그것도 영화를 원해서라기보다 졸업공연을 해야 한다는 게 엄두가 안 나서였으니까. 신방과 대학원을 마치고 MBC에서 FD생활을 6, 7개월 했다. 출퇴근, ‘내 멋대로 해라’라는 점이 좋았다. 사실 영화는 그전부터 좋아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을 밟았다. 영화에 대해 발언하고 싶다, 직접 만들고 싶다. 당연한 수순 아닌가. 93년 <영화, 이렇게 보면 두배로 재미있다>란 나 홀로 평론집 비슷한 책도 한권 냈다. 94년 <그 섬에 가고 싶다> 연출부 제의를 받았다. 솔깃했다. 단호하게 “하겠다” 했다. 그러나 언제나 내 인생의 갈림길에 훌륭한 이정표를 제시해 주곤
영화, 이렇게 만들면 두배로 재미있다 - 김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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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배경,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듀서가 됐나.대학 졸업하고 광고회사에서 광고기획을 했고, 그뒤엔 매니지먼트사에서 배우 매니저로 일했다. 언니(심재명)의 권유로 명필름에 입사해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이 93년. 입사해서 <그 여자 그 남자> <닥터 봉> <게임의 법칙>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등의 마케팅 일부터 배웠다. 명필름에서 <코르셋> 제작을 준비하는 동안, 경상비를 벌어볼 요량으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홍보했다. 서른살이 되던 해에 <접속>을 준비했고, 프로듀서로 데뷔했다. 명필름은 언제나 이은 감독과 심 대표, 그리고 나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역할을 나눠 공동 진행하는 식이다. <해피엔드>의 경우 크레딧은 기획으로 올랐지만, 캐스팅과 마케팅 등을 진행하기도 했고, 부제작을 맡았던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이은 감독이 외적인 시스템 가이드를 하고, 내가 시나리오 등 제작
십대영화 욕심난다 - 심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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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멘데스의 신작 <지옥으로 가는 길>에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조지아> 등의 제니퍼 제이슨 리가 동참한다. 그녀는 톰 행크스, 폴 뉴먼, 주드 로, 톰 시즈모어 등이 출연하는 이 작품에서 ‘죽음의 천사’로 불리는 해결사 톰 행크스의 아내로 출연한다. 리는 최근 앨런 커밍과 함께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기네스 팰트로 주연 영화 <기념일>을 끝마쳤고 지난해엔 <왕은 살아 있다>에 출연, 도쿄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지옥으로 가는 길>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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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배경,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듀서로 입문, 어떤 작품에 참여했나.국문과를 나온 나는 어느 날 카피라이터를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공채시험을 봐 화천공사에 들어갔다. 거기서 <구로아리랑> 카피라이터를 한 게 영화 일의 시작이었다. 1년간 기획실 일을 배웠는데, 영화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생소하고 어색하고 힘들었다. 관두고 사보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 글을 썼다. 그런데 영화 일은 마약과 같더라. 동아수출공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영화 홍보 일을 시작했다. <천국의 계단> <원초적 본능> <늑대와 함께 춤을>…. 한국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외화가 훨씬 많았다. 3년 넘게 일하니 지겨웠다. 배급 일이 하고 싶어졌다. 다시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을 타서 그 돈으로 일본에 갔다. 배급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대학에 창작쪽 과만 있더라. 3개월 만에 돌아와 1년간 프리랜서로 일했다. 기회는 그무렵 찾아왔다. 이춘연 대표가 강우석 프로덕션에 사람이
울리거나, 혹은 웃기거나 - 김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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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브러더스사에 기반을 둔 스티븐 소더버그와 조지 클루니의 영화제작프로덕션 ‘섹션 에이트’가 소설 <착한 독일사람>의 저작권을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사들여 화제다. 조셉 캐넌이 쓴 <착한 독일사람>은 버리고 떠난 여인을 다시 찾기 위해 돌아온 한 저널리스트가 살인미스터리에 연루되는 내용을 담은 로맨틱 스릴러. 주인공은 조지 클루니가 연기할 예정이다. 섹션 에이트는 파업 시즌이 오기 전에 세편의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워너브러더스사의 타이틀을 걸고 만드는 두편의 영화, 소더버그 연출의 <오션 일레븐>은 제작중이고, 크리스토퍼 놀란 연출, 알 파치노 주연의 <불면증>은 4월에 크랭크인한다. 그리고 프로파간다 필름과 제휴하여 만드는 <웰컴 투 콜린우드>는 4월9일로 크랭크인 날짜가 잡혀 있다.
섹션 에이트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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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배경,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듀서로 입문했나.국문과를 졸업한 뒤 영등포 노동자문학회 활동을 하다가 광고회사에 들어가 카피라이터 일을 했다. 글 쓰겠다는 생각으로 쉬던 중 어느 날 친구가 ‘영화 안 해 볼래’ 하고 제안을 했다. 해서 기획, 홍보사였던 영화기획정보센터에 들어가 마케팅을 담당했다. 당시가 90년이었을 것이다. <퐁네프의 연인들>을 마지막으로 이화예술필름으로 자리를 옮겼고, 다시 기획시대에 들어가게 됐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청바지처럼 꽉 끼는 포르노그라피’라는 카피를 뽑아 성공적으로 마케팅을 한 뒤 유인택 대표에게 제작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케팅은 너무 무시당하는 분위기였고, 내가 영화에 대해 기술적으로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꼬리치는 남자>의 제작 총지휘를 맡게 됐지만 흥행과 비평에서 실패했다. 당시 충무로의 풍토를 너무 몰라 제작과정에 지나치게 개입했고 감독과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도 만들지 못했다.
단군신화를 꿈꾼 적 있나 - 조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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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멀티플렉스 업체 로이스 시네플렉스가 최근 2억5천만 달러에 상당한 지분을 내놓게 됐다. 현금을 내 준 대신 무시하지 못할 지분을 차지한 북미 지역의 기업은 오넥스, 퍼시픽 캐피털, 오크트리 캐피털 등이다. AFP는 이들 관계자의 말을 빌어 앞으로 이들 복합기업들의 로이스 지분 잠식 속도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비대한 몸집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로이스는 올해 초 2,965개의 스크린 중 연내에 675개의 스크린을 폐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조만간 북미지역에 있는 46개 스크린을 내릴 예정이다.
로이스 지분 잠식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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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트래볼타가 출연한 <배틀필드>가 ‘안티 아카데미상’인 골든 래즈베리상을 ‘석권’할 조짐이다. <배틀필드>는 최악의 작품 부문을 비롯, 최악의 감독, 시나리오, 남우주연, 극중 커플, 남녀조연 부문에서 후보로 올랐다. 게다가 <배틀필드>는 503명의 영화 관계자들로 이뤄진 골든 래즈베리상 심사위원단 중 96%에 의해 한번 이상 언급돼, <쇼걸>의 7개 부문 수상기록과 동률을 이룰지 관심을 모은다. 또 <리틀 니키> <블레어윗치2> <넥스트 빅 싱>은 각각 5개 부문에서 후보로 지명됐다. 한해 만들어진 영화 중 최악의 작품을 꼽는 이 상은 오스카 시상식이 열리기 전날인 3월24일 개최될 예정이다.
<배틀필드> 최악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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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배경,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듀서로 입문, 어떤 작품에 참여했나.옛날 이야긴 하기 싫은데(웃음)…. 오랫동안 노문연(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에서 활동하다가 92년 김동원, 변영주 감독 등과 함께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는 푸른영상 창립멤버로 들어갔고, 장산곶매에도 잠깐 머물렀다. 유의미한 시간들이었지만 극영화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삼호필름과 LIM에 들어갔는데 두곳 모두 한국영화 제작에 의지가 없어 때려치웠다. 이후 첫 작품으로 기획시대에서 문승욱 감독과 <이방인>을 만들었다. 폴란드에서 찍으면서 그곳의 안정된 시스템, 스탭들의 연륜 등에 놀랬었다. 98년엔 박기형 감독과 함께 씨네2000에서 <여고괴담>을 만들었다. 예상보다 크게 잘돼 흥행 PD, 호러 PD라고 불렸지만, 별로 달갑지 않았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민규동, 김태용 감독과는 다른 영화에서 만날 요량이었는데, 원래 염두에 뒀던 감독과 뜻이 맞지 않아 포기하고 연락했다. 그러
일상은 NO, 주변은 YES! - 오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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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개봉한 스릴러영화 <한니발>의 주연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평론가들의 비판에 불만을 터뜨렸다. 이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베를린영화제에 들른 그는 <한니발>이 “별 근거도 없이 역겨운 폭력 장면으로 가득하다”며 영화의 유해성을 주장한 미국 평론가들에 대해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불쾌하고 무서워했다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 점은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 모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91년작 <양들의 침묵>의 속편인 이 영화에서 10년 만에 다시 렉터 박사 역할을 맡아 관객의 뒷덜미를 섬뜩하게 한 그는 이어 “당신은 극장에 편히 앉아 몇분 동안 다른 누군가의 악몽을 경험할 수 있다. 영화를 찍으면서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둠과 그림자, 악마성에 매료됐다”며 자신의 캐릭터가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한편 그는 토머스 해리스의 <렉터 박사 3부작> 중 첫 번째에
렉터, `<한니발>은 무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