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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은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인 프랑스의 영화평론가 샤를 테송 칼럼을 시작합니다. 이 프랑스 영화평론가는 범람하는 영상속에서“중요한 영화를 고르고 미래의 영화를 발견하는 것”을 비평의 중요한 몫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 시선을 아시아 영화와 그안의 한국영화까지꾸준히 확장해왔습니다. 이제, 테송의 `선택과 옹호'를 부정기적으로 중계합니다.편집자저무는 한해한해는 우리에게 그에 준하는 의식들을 강요한다. 우선 그해 상영된 작품들 가운데 가장 우수했던 영화 10편을 선정해야 한다.이 목록을 작성하면서 우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는데 그것은 영화애호가들이 가장 진지하게 고민하는 순간에 느끼는 유아적 환희에 가깝다.우리는 많은 영화를 본다. 그리고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물론 글을 쓰고 싶거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의글을 읽어보고 싶은 욕구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든 공통되게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거기엔
아시아가 할리우드를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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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댄서>를 보고나서 좌석에 붙박혀 있던 내 육체를 그물처럼 얽었던 정서는 ‘외로움’이었다. 막판까지 폐부에서 솟아올라오는 우툴두툴한목소리로 통곡 같은 노래들을 쏟아내는 비욕을 그대로 급전직하의 사형대에 매단 이놈의 감독. 차마 소리내어 울 수가 없어서 그냥 줄줄 흘러내리던눈물이 극장의 불이 밝혀지자 훤히 본색을 드러내었다.튀는 비욕, 정교한 뮤지컬의 기하학을 파괴하다<어둠 속의 댄서>에서 비욕은 혼자 튄다. 그렇게 잦은 클로즈업에다 그렇게 튀는 목소리를 가졌으니 누가 그녀와 감정적으로 동일시하지 않을수 없겠냐마는. 그녀의 목소리는 체질적으로 백 코러스와 부드럽게 믹스되는 실키한 맛을 지닌 주디 갤런드 유의 여주인공과 애당초 거리가 멀다.비욕은 줄리 앤드루스가 성대수술로 맛이 간 듯한 목소리를 내면서 주위의 합창에서 따로 떨어져 논다. 주변과 섞이지 못하는 그녀의 춤과 노래는<어둠 속의 댄서>에서 살아 돌아가는 몸으로 그어대는 유일한 움직임처
누가 뮤지컬을 행복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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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의 열병을 앓던 무렵, 고1때던가, 어느 헌책방에서 계간 <세계의 문학> 창간호를 읽다가 유종호, 백낙청 선생 등과 함께 좌담을나누던 김우창 선생의 낡은 흑백 사진에 잠깐 매혹된 적이 있다. 시든 꽃잎조차, 서툴지만 강렬한 시심을 작렬시키던 나이였으므로, 시인 황지우의표현대로 ‘한 마리 고고한 학’과 같은 선생의 풍모에서 나는 언뜻 선지자의 인상을 받았는지 모른다. 곧바로 선생의 책을 구하러 나섰다.당시만 해도 보기 힘든 하드커버 양장본이라서 꽤 값이 나갔는데, 오직 그 이유만으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은 헌책방에서 사고 <지상의 척도>는교보문고에서 훔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틈 나면, 경전을 보듯 두 책을 펼치거니와 기억하건대 그때의 인상이 뚜렷해서언제나 ‘궁핍한 시대의 척도’를 밝히는 중후한 주제와 그 장려한 문체를 특히 가려 읽었음이 틀림없다. 두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시인 황동규의지식산업사판 선집의 해설 또한 내게
너에게 <작은 것들의 세계>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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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어느날 시내 한 극장에서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영화를 봤다. 내용 중 시골 천막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단발 머리를 한 여자 아이가 칠판에 적힌 산수 문제를 못 풀어 꿇어 앉아 벌받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자 누군가 그 여자아이가 지저분한 거 하며, 띨빵한 거, 또 얼굴 작은 것 등이 영락없이 나와 꼭 같다고 놀렸다. 그 얘기를 떠올리면 어느 덧 기억은 철암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속초에서 전학가 중학교 3학년 봉화로 옮겨가기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기에 늘 아련한 그리움이 있는 곳이다.
원주, 제천, 태백시를 지나 한참을 들어가면 철암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지금은 석탄산업이 사향길이라 마을 전체가 썰렁하기 그지 없지만 예전에는 ‘지나가던 개도 1만원권을 물고 간다’는 말이 나올 만큼 번성하던 곳이었다. 내가 전학을 간 해도 한창이었던 때라 그 작은 마을에 극장이 있었다. 그 때 우리집에는 어
분홍색 공짜 극장표 2장, <아름다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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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호러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버나드 로즈의 <페이퍼하우스>(출시제는 <종이로 만든 집>이었던 모양입니다)를꼽는 걸 좋아합니다. 정말로 가장 인상적인 호러영화였냐고요? 모르겠군요. 어떻게 개인적인 감흥을 하나하나 숫자로 매겨 일괄 정리할 수 있겠어요?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캐치원에서 우연히 이 영화를 접했을 때 받았던 인상이 아주 강렬했다는 것입니다.제가 이 영화를 인상적인 호러영화로 뽑는 이유는 이 작품이 아주 예외적인 영화여서 질문한 사람의 반응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원작과 주연배우들,내용만 본다면 <페이퍼하우스>는 호러영화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의 원작은 캐서린 스토가 쓴 <마리안의 꿈>이라는 동화입니다. 마리안이라는소녀가 병을 앓는 동안 침대에 누워 집 그림을 낙서하기 시작하는데, 서서히 그러다 자기가 낙서한 그림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자기가 그린집 안에 사는 소년과 친구가 된다는 것이지요
동화, 악몽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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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trot-enka ultracomic version) :: “옆나라 일본에 20개의 정치사단(파벌) 중 가장 작은사단에 속해 도저히 수상이 될 정치기반을 갖지 못한 분인 나카소네 전 총리는 인고의 노력과 불굴의 정신으로 급기야 수상이 돼 5년간 손꼽히는업적을 남겼다…. 그분이 나더러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뜻있는 곳에 길이 열리고 모두가 행복을 나눠 가지는 광장이 제공된다’고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김종필의 발언, <조선일보>, 2001. 2. 11). Take1: 한국의 정치세력들은 100일 앞으로다가온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빅뱅을 맞이하고 있다. 5년 전 선거에서 당시의 대통령은 뚜렷한 레임 덕 현상을 보였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5월로예정된 여당의 대통령후보 지명은 ‘마땅한 후보자가 없다’는 이유로 몇 차례 연기되더니 마침내 DJ는 자민련과의 완전 합당과 후보 단일화를‘전향적으로 생각하겠다’고 선언했다. JP는 특유의 양다리 전술을 구
가상 서바이벌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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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겨울날씨는 정말이지 견디기 어려웠다. 우리나라처럼 쨍하고 추운 게 아니고 한기가 으슬으슬 뼛속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에서하는 판타스 포르투 영화제와 프랑스 노르망디지역의 도빌 아시아영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나는 구름이 낮게 드리운 파리의 드골 공항에 내렸다.파리에서 맞는 겨울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며칠 못 버티고 바로 포르투갈로 도망갔다, 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포르투갈에서 가장 큰 국제영화제인 판타스 포르투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로 포트와인으로 유명한 포르투에서 열린다. 일년 내내 온화한 날씨로유명한 이곳도 우기가 가까워서인지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가위>의 안병기 감독, <자귀모>의 이광훈 감독,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감독, <킬리만자로>의 오승욱 감독과 같이 참가한 이 영화제에서 건진 최고의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카메론 크로의 <올모스트 페이머스>였다.한 감독이 전작과 비교해 이렇게 놀라운 비약을 할 수
판타스 포르투, 그곳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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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스 베티단조롭게 사는 베티의 유일한 낙은 TV연속극을 보는 것. 어느 날 두 킬러가 남편을 살해하는 광경을 목격하는 데 충격을 받은 베티는 보고있던 연속극이 진짜 현실이라 믿게 된다.닐 라뷰트 감독, 르네 젤뤼거, 모건 프리먼 출연, 게일 무트룩스 제작, 미라신코리아 수입, 신도필름 배급, 상영시간 110분박평식 미디어의 미혹에 묻혀 세월이 가네. 케 세라 세라 ★★★스내치다이아몬드를 훔쳐낸 네 손가락 프랭키는 보스에게 보석을 전달해야 한다. 깡패 보리스는 프랭키를 불법 권투 도박판으로 끌어들인 뒤 보석이든 가방을 강탈할 계획을 짠다.가이 리치 감독, 브래드 피트, 베네치오 델 토로 출연, 매튜 본 제작, 컬럼비아 트라이스타 수입·배급, 상영시간 102분김봉석 시끄러운 빈 수레, 브래드 피트만 빛난다 ★★홍성남 정교한 퍼즐이라기보다는 요란하기만 한 난장판 ★★천국의 아이들알리는 동생의 구두를 잃어버린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아는 둘은 알리의 운동화를 번갈아 신어가며 학교에 간다.
너스베티 / 스내치 / 천국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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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5월25일 서울 효자동에서 부친 홍한표와 모친 이기련의 3남2녀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홍성기는 충북 충주의 명문세도의 자손이다. 그는 철도국 설계부문 고위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 부산 등지를거쳐 일찍이 만주에서 성장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탓에 계모 밑에서 자란 그지만 남매간에 유달리 화목하고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이 없어대체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에겐 두 형과 두 누나가 있었는데, 유난히 고집이 세고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막내를 오히려 가엽게 여겨다정다감하게 감싸주고 떠받들어주었다.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훗날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사랑의 메시지가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부산에서 봉래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따라 만주에 간 그는 당시 한국인으로선거의 입학이 불가능하던 중국 안동의 제일 고등보통학교(중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재학 시절에는 수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학업성적이 우수했고, 특히 글솜씨와 어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메가폰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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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방송가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프로는 단연 MBC 창사특집 드라마 <허준>이었다.민족의학에 대한 허준의 우직하고 곧은 집념과 병들어 고통받고 있는 민초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켜 시청자들을 TV앞에 꽁꽁 묶어두었던 것이다. TV로 방영되는 허준을 보면서 1990년의 밀리언셀러 장편소설 <동의보감>(창작과 비평사)을 떠올린 것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동의보감>이야말로 <허준>의 원작인가? 그렇지 않다. 1976년에도 동일한 스토리라인의 영화가 만들어진 적이있다. 이순재와 김창숙이 열연을 펼쳤던 최인현 감독의 영화 <집념>이다. 작품상과 각본상을 비롯하여 그해의 대종상을 거의 싹쓸이했던 이작품은 그러나 같은 해 MBC TV의 일일드라마로 크게 히트했던 <집념>의 영화적 축약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오리지널이야?헷갈릴 것 없다. <동의보감>의 소설가이자 &
드라마 <허준>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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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이나 국경과 다르게 아무도 열심히 입에 올리지 않지만 인간사회를 강력하게 분리시키고 있는 경계. 취향의 차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실상 몹시 중대한 인생살이의 이슈 중 하나다. 매너에 관한 코미디 <타인의 취향>은 끝말잇기처럼 엮인 관계의 사슬을 타고 흘러간다.
모든 일의 시작은 돈은 많지만 지성이 부족한 기업체 사장 카스텔라가 영어교사인 여배우 클라라에게 반하면서부터. 클라라는 바텐더 마니와 친구 사이고, 바텐더는 경호원과 사귀고, 경호원은 운전기사와 함께 일하고, 기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위해 핸들을 잡고, 그 디자이너는 다름 아닌 미세스 카스텔라다. 클라라와 그녀의 보헤미안 예술가 친구들 틈에 끼어들고픈 카스텔라의 순진한 바람은 그로 하여금 느닷없이 콧수염을 밀고 서툰 영어로 연시를 쓰게 만들지만 클라라는 무덤덤하다. 그런가하면 고지식한 경호원 모레노는 그의 마음을 빼앗은 바텐더 마니가 마리화나를 거래하는 사실을 알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생생한 인간관계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취향, <타인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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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빛을 허용하지 않는 컴컴한 스튜디오 안, 조용한 숨소리만 터질듯이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감독의 슛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한 움직임이꿈결처럼 흘러다닌다. 한창 감정이입에 몰입한 배우의 얼굴 위로 음산한 그늘이 드리워지는 순간 “OK” 한마디가 시원스레 떨어진다. 허름한아파트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그 배후의 암울한 기억을 파헤치는 영화 <소름>은 멜로의 러시 속에서 오랜만에 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영화.죽은 연인에 대한 기억을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덧댄 <플레이백>, 불현듯 찾아온 운명의 그림자를 다룬 <메멘토>, 과거의 기억 속에서 서성이는두 인물의 쓸쓸한 심리를 담아낸 <풍경> 등 일련의 단편영화로 단박에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윤종찬 감독이 다시 운명과 과거의 기억에 얽힌가슴 서늘한 사랑이야기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시나리오의 모태는 LA 빈민가 아파트에서 실제로 일어난 한인부부 실종사건과 그로 인해 고아가된 어린아이 이야기다.전례없
운명은 안개처럼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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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할린 감독의 SF스릴러 <천둥소리>가 할리우드 파업사태의 첫 희생양이 될 전망이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연으로 출연하게 될 이 영화는 애초 4월16일 캐나다에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급작스레 시나리오를 수정하게 돼 예정대로 촬영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것. 관계자들은 이 영화가 뒤늦게 촬영에 들어간다 해도 파업이 예정돼 있는 7월1일까지 촬영을 마칠 수 없고, 브로스넌은 파업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007 시리즈를 찍기로 돼 있으므로 자연스레 제작이 연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프로듀서 니콜라스 클레르몽은 이 영화가 제작될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레니 할린, 파업 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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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트래볼타 주연의 스릴러영화 <도메스틱 디스터번스>가 촬영에 들어갔다. <맬리스> <시티홀> 등을 만든 해럴드 베커 감독이 연출하는 이 영화는 전 부인과 결혼한 새 남편의 정체가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 남자가 그 비밀을 파헤친다는 이야기. 이 영화에는 빈스 본, 스티브 부세미, 그리고 <미트 페어런츠>의 테리 폴로 등이 출연한다.
존 트래볼타 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