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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상념이지만, 1950년에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의 전체 6곡 가운데 2번, 5번만 잠깐 녹음했을 뿐, 데뷔 이후 무려 60여년이 흐른 뒤에야 전곡 녹음을 한 로스트로포비치는 이 장강대하의 굽이굽이를 다음처럼 표현했다. “1번은 가벼움, 2번은 슬픔과 열정, 3번은 빛, 4번은 위엄과 모호함, 5번은 어둠, 6번은 햇빛” 그렇다면 5번만으로 얘기를 해보자.파블로 카잘스(EMI)의 5번은 산맥을 휘감아도는 거친 안개를 연상시킨다. 보잉은 거침없고 걸음 또한 뚜벅뚜벅, 확실하게 밀어붙인다. 이를 교본으로 한다면 폴 토르틀리에(EMI)는 위대한 스승의 길을 유명한 ‘토르틀리에 피크’, 즉 굽은 엔드핀을 사용하여 높은 포지션의 왼손에 자유를 주고 오른손의 활로 거침없이 긁어대는 방식으로 재현한다. 만약 음표 사이의 골을 정확히 짚어내며 무시무시한 악력으로 치닫는 것만으로 어떤 우열을 가늠해도 된다면 사실은 야노스 슈타커(머큐리)가 0순위. 오랫동안 그의 녹음은 카잘스의 반대편에 위치할
두 눈 부릅뜬 러시아의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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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마흔 네 번째(!)’ 앨범이 나왔다. 물론 ‘번안곡’으로 유명한 <Blowin' in the Wind(바람만이 아는 대답)>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역)> <A Hard Rain's A-Gonna Fall(소낙비)> 정도만 아는 사람들에게 이건 별다른 뉴스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새삼스럽게 왜? <롤링 스톤>에서 이 음반에 만점을 주었기 때문에? 요즘 이 잡지가 얼굴 쭈글쭈글한 록 베테랑과 살 탱탱한 소저들에게 홀딱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여기에 동참하기는 꺼림칙하다. 지난 5월 24일 환갑을 맞이하여 딜런이 대중음악에 미친 공적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르네상스에 미친 것”이라는 등의 찬사가 잇다랐지만 그것도 왠지 남의 나라 이야기같다. 사심없이 음악이나 들어보자.음악 형식으로 장르를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은 새 음반에 수록된 음악을 ‘포크’가 아니라 ‘블루스’라고 부를
`시의 부적절`한, 그러나 시간을 초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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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맡은 사기스 시로는 솔직히 말해 한국영화에서 그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던 완성도를 지닌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는 알려져 있다시피 공전의 성공을 거둔 <에반게리온>의 음악을 맡았던 사람이다. 이 만화영화의 음악은 정말 훌륭했다. 만화다웠고, 때로는 그 이상이었다. 어른스러운 음악이었다. 걸작 영화음악을 만든 사람답게 사기스 시로의 음악은 <무사>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깔끔하고 탄탄하다. 그가 속해 있었던 의 퓨전재즈는 오히려 너무 깔끔해서 별게 아니었는데 <무사>의 음악은 완성도 자체가 우리에게 신선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멜로디나 리듬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닐지라도 이만하면 ‘표준’이라는 말을 들을 만한 음악이다. 일본사람들, 기본이 확실한 음악은 우리보다 월등하게 잘 만든다.우선 눈에 띄는 것은 악기나 사운드의 선택에서 군더더기가 전혀 없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브라스 사운드, 피리 소리, 팀파니 소리, 스트링 소리
<무사>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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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워낙 황당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다보니 웬만한 사건은 ‘특보’나 ‘속보’로 취급되지 않는다. 설사 ‘속보’나 ‘특보’라 하더라도,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조차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큰 규모가 아니면 직접적으로 와닿는 심리적 충격의 정도는 그리 크지 않게 마련이다. <CNN>과 뉴스전문채널이 생겨나면서 전쟁조차도 생중계가 되다보니 해외 긴급뉴스도 여간해선 단순한 사건뉴스 정도로밖에 비치지 않을 정도로 자극불감증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9월11일 저녁에 본 ‘미국 동시다발 테러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빌딩이자 최대의 건물 면적을 자랑하는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의 중추인 ‘펜타곤’ 등을 납치된 민간여객기가 들이받는 장면은, <다이 하드>나 <아마겟돈> 같은 할리우드 불록버스터의 특수효과를 방불케 했다. 문제는 이 사건이 1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난 ‘현실’이라는 점이다. 세계경제의 중추라 할 수 있
일본 경시청 테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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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찾아가는 세계만화의 23개 보물섬이라는 부제를 달고 <성완경의 세계만화탐사>가 출간되었다. 인하대 교수이며 2002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 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이며 미술 및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그동안 우리나라에 체계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는 서구와 제3세계의 만화를 소개하는 저작을 발표했다.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괄에 해당하는 만화의 세계, 그리고 서구만화의 역사를 토픽을 중심으로 그림과 함께 서술한 세계만화사를 통해 책의 전체를 간단하게 발제하고, 이어 세계의 만화가라는 섹션을 통해 <엘로 키드>의 리처드 펠튼 아웃콜트에서 <애크미 노벨티 라이브러리>의 크리스 웨어에 이르기까지 주요 작가와 작품을 개별적으로 서술한다.물론 우리가 보는 만화들이 아닌 전혀 낯선 새로운 세계의 만화이지만 최근 몇년 동안 열풍처럼 계속된 유럽만화 출판은 23명의 작가와 작품 중 낯익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놓았다. 고시니와 우데르조의 <아스테릭
성완경의 세계만화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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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펴면 추억이 밀려온다. 섬세한 펜, 수채물감의 미묘한 농담, 화려한 컬러, 꽉 짜여진 화면의 일러스트들은 1993년 처음 만날 때부터 박희정의 만화를 대표해온 기호다. 데뷔 이후 지금까지 그의 일러스트는 자신이 연재하는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고, 잡지의 창간을 알리는 브로슈어가 되었고, 캘린더가 되었으며, 전화카드로 탄생했다. 박희정의 일러스트는 주인공들에게 컬러를 선사하는 단순한 수공에서 벗어나 배경과 소품, 캐릭터의 표정을 통해 작품 전체를 대표했다. <호텔 아프리카>의 일러스트가 보여준 황무지와 도로, 푸른 하늘 그리고 낡은 소파의 이미지는 그대로 작품의 의미를 드러내는 기호였다. 자연과 도회를 넘나들며, 잡지와 술잔이 뒹구는 일상과 거대한 달과 앙상한 나뭇가지와 금붕어가 존재하는 환상이 함께하며, 실존적 슬픔을 보여주는 캐릭터의 표정까지. 박희정의 일러스트는 일러스트를 넘어서는 독자와의 의미공감을 끌어내는 작품의 하나였다.박희정 만화 기호의 모든 것2001년
달콤한 낮잠 속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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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열리는 게임쇼 ECTS는 한때 미국의 E3, 일본의 도쿄게임쇼와 함께 국제 게임산업의 대표적인 행사였다. 그러나 최근 몇년 유럽 게임산업의 쇠퇴와 함께 ECTS의 위상도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 올해 9월 초 열린 ECTS만 해도 메이저급 게임회사는 대부분 빠진 조금은 김빠진 축제가 될 판이었다. 그런데 게임업계의 지각을 흔들 중대 사건이 일어났다. <디아블로>와 <스타크래프트>의 제작사 블리자드의 신작 발표다.블리자드는 2004년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출시할 예정이다. 오늘날의 블리자드가 있기까지 결정적 역할을 했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고전 <워크래프트>의 세계를 베이스로 한 매시브 멀티 온라인 롤플레잉게임(MMORPG)이다. 쉽게 말해 <리니지> 같은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을 만든다는 얘기다. 블리자드의 성공은 배틀넷 등 네트워크 플레이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하지만 MMORPG에 진출하는 건 완전히 새로운 도전
블리자드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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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뉴욕에 갔을 때, 세계무역센터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루종일 건물 구경을 하고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길 건너편에 있는 세계금융센터(World Financial Center)의 겨울 정원(Winter Garden)이라는 실내광장을 한가롭게 거닐며 보냈었다. 물론 <킹콩>에서 킹콩이 매달려 올라가는 장면만으로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던 세계무역센터에 직접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대단히 흥분된 상태였던 것 같다. 여하튼 그뒤 약 1년9개월이 지나 내가 다시 세계무역센터를 보게 된 것은, 실물로도, 영화에서도 아닌 TV 화면을 통해서였다. 충격적인 것은 무의식적으로 보게 된 그 TV 화면 속의 세계무역센터가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는 점이다. 잠시 멈칫하다가 그것이 미국 <CNN>의 한 장면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나서 나는 거의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다.아마도 대부분의 전세계인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것은 영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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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허진호 감독의 두 번째 작품 <봄날은 간다>의 홈페이지가 문을 열었다.
영화처럼 차분한 면 분할과 튀지 않는 플래시가 미덕인 홈페이지. 사이트 전체에 흐르는 배경음악과 간간이 터져나오는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의 목소리는 조용한 텍스트에 애틋함을 더하기에 충분하다.
영화소개, 제작노트, 캐릭터, 감독, 스탭 등 전반적인 영화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About Movie 코너와 시놉시스가 준비된 Story 코너, 스틸컷, 포스터, 동영상, O.S.T로 꾸며진 Gallery 코너 외에 특별한 코너 하나가 준비되어 있는데 대나무숲 바람소리, 바닷가 파도소리, 보리밭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는 Sound Trip 코너가 그것. 스틸컷과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코너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할 수 있냐는 상우의 질문에 대한 답은 홈페이지를 보는 동안엔 잠시 보류해두고, 9월28일 영화개봉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http://www.springday.co.kr/
<봄날은 간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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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감독 이만희 출연 김진규 <EBS> 9월23일(일) 밤 10시“이만희 감독이 좀더 살았더라면 1980년대의 한국영화는 더욱 화려했을 거다.” 어느 평자의 언급은 엉뚱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이미 타계한 감독에 대해 ‘가정형’을 붙인다는 건 아무래도 적절한 비유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공중파 방송을 통해 꾸준히 방영되는 이만희 감독의 영화를 보노라면 이같은 언급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공감할 만하다. 1960년대 이만희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그야말로 한편의 ‘미스터리’다. 예컨대 1967년에 그는 10여편이 넘는 영화를 단 일년에 찍으면서 왕성한 다작을 과시했다. 영화 장르를 거론하더라도 멜로와 전쟁영화는 물론이고, 스릴러와 액션영화에 이르기까지 손대지 않은 장르가 거의 없을 정도다.작업 수준은 그런 대로 평균작을 꾸준히 유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마의 계단>(1964)은 이만희 감독이 만든 미스터리 스릴러다. 남자에게서 버림받은 여인의 한이
이만희 감독의 스릴러<마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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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모슬리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 <하인>(1963)을 만든 조셉 로지 감독작으로 등장인물의 심리묘사가 탁월하다.사제의 관계, 그리고 이들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은 여성을 통해 집착과 욕망의 주제를 풀어간다. 대학교수인 스티븐은 우연하게 차사고를 목격한다. 차 안에 있던 학생 중에서 윌리엄은 즉사하고 애나는 쇼크상태에 빠진다.
TV영화... <사랑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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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통속 코미디의 일인자인 필립 드 브로카 감독작. 어느 남성의 여성편력을 다룬 작품이다. 에두아르는 주변에 여성들을 거느리고 살면서 바람둥이 생활을 즐기고 있다. 음악 매니저와 조금 수다스러운 처녀, 그리고 현재의 부인 등이 그들이다. 에두아르의 부인은 결국 남편의 바람기를 견디다 못해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전 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딸 퐁퐁은 평소 에두아르를 친구처럼 대한다. 심지어는 남자친구에 관한 고민까지 털어놓는 것. 임신을 하게 된 퐁퐁은 에두아르에게 조언을 구한다.
TV영화... <바람둥이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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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영화의 적자로 평가되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작. 폐쇄공간에서 벌어지는 두뇌게임을 등장인물들 시점을 경유하면서 신선하게 풀어내고 있다. 특히 영화 초반부에서 긴박하게 전개되는 상황들은 드 팔마 감독의 ‘테크니션’으로서의 재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부패한 경찰 릭은 도박을 위해 복싱 경기장에 나타난다.총성이 울리면서 국방장관이 암살당하고 경기장은 폐쇄된다.
TV영화... <스네이크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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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하드2>(1990)와 <클리프행어>(1993) 등을 만든 레니 할린 감독의 액션 대작. 한때 감독과 부부 사이였던 지나 데이비스가 여전사로 분하고 있다. 유치원 교사 사만다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는 상태다. 교통사고로 지난날의 기억을 희미하게나마 되찾은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찰리였음을 기억한다. 사립탐정 미치를 고용한 사만다는 자신의 과거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TV영화... <롱키스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