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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김기덕 영화에 대한 논쟁이 시작됐다. 김기덕 감독의 7번째 영화 <나쁜 남자>에 대한 엇갈린 반응이 뜻하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에 관해선 여전히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수취인불명>과 달리 <나쁜 남자>에는 정치사회적 배경이 거세되어 있다. 남한사회의 역사와 개인의 운명을 포개놓은 전작에서 벗어나 <나쁜 남자>는 <악어>에서 <섬>까지 이어진 폭력과 사랑과 성적 에너지의 묘한 결합을 주시한다. 어찌 보면 그간 김기덕 영화에 등장한 남녀관계의 원초적 뿌리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찬반논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비판이든 지지이든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어떤 거울을 들이미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상이 맺힌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씨네21>은 두 가지 상반된 상을 보여주는 거울로서 유운성씨와 주유신씨의 글을 싣는다. 서로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보면 한발 더 가까이 진실에
나는 왜 김기덕을 지지하는가 / 반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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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김기덕은 다루기 쉬운 동물이다. 그의 영화에 격렬한 비난을 쏟아붓는 이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얼마간 호의를 내비치는 이들까지도 그를 마치 동물처럼 다룬다. 이런 경우에 찬사와 비난은 결국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 된다. <수취인불명>과 <나쁜 남자>에 대해 얼마간의 만족감을 내비치면서도 거기에서 이른바 ‘길들여진’ 야수성을 지적하며 김기덕 고유의 색깔이 엷어져가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사실 절반의 찬사가 아닌 우회적인 비난일 뿐이다. 차라리 의연히 분석가를 자처하며 그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이들이야말로 좀더 그를 잘 대접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듯싶다. 동물에게는 무의식이 없다고 말한 게 누구였을까?그러니까 아무도 김기덕에게서 무언가 배우려 들지 않는다. 그는 감싸주고, 경멸하고, 지켜보고, 비난하고, 분석할 대상은 될지언정 결코 말을 경청할 만한 인간은 못되는 것이다. 일곱 번째 영화를 만든 지금에 와서도 그의 전언은 여전히 ‘수취인불명’이
내가 김기덕 영화를 지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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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영화라는 시각장치와 대중매체는 성별관계를 둘러싼 억압과 무의식의 기제가 어떻게 형성되고 또 작동하는가를 가장 두르러지게 가시화시키는 영역 중 하나이다. 영화 속에서 사랑과 섹스를 포함하여 여남간의 관계를 둘러싼 모티브들은 불안, 거부, 왜곡과 같은 여러 가지 ‘증후들’을 펼쳐보임으로써 우리 사회의 성적심리상에 존재하는 심층적인 ‘난점들’을 드러내게 되기 때문이다.킬러, 디아스포라, 엽기녀, 조폭, 총을 든 여성, 여성 버디 등 요즈음 한국영화의 여성에 대한 재현은 센세이셔널한 소재적 확장을 보여주고 있고, 그들에게는 종종 상당한 공간적 가동성과 물리적 위협력, 자율적인 관계성이 허용되기도 한다. 반면 <친구>에서 시작된 ‘조폭영화’의 행진은 마초적인 남성성과 남성 연대에 대한 찬미, 성공과 패배라는 신화에의 몰두, 공격적인 액션과 정서들의 난무를 통해서 완강하게 ‘남성적 서사’를 펼쳐보인다.이러한 두 가지 경향은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성별관계 및 역
내가 김기덕을 비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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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 Fever제목대로 디스코의 열기를 전하는 히트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Boggie Wonderland>, 도나 서머의 <Hot Stuff>, 빌리지 피플의 <Y.M.C.A.> 같은 전형적인 디스코 메들리는 물론, 제임스 브라운의 <(Get Up I Feel Like Being A) Sex Machine> 같은 솔 분위기 물씬한 경쾌함, 아바의 <Dancing Queen> 등 팝스타들의 댄스곡까지, 디스코와 영향을 주고받은 풍부한 리듬의 22곡을 담았다.Unconditional 케이 린치헉스뮤직 발매사라 브라이트먼, 안드레아 보첼리의 뒤를 이어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접목을 꾀하는 아일랜드의 신성 케이 린치의 데뷔음반. 케이 린치는 아일랜드 번래티합창단을 거쳐 세계적인 히트 뮤지컬 <리버 댄스>의 리드 보컬리스트로 주목받은 여가수다. 타이틀곡 <Unconditional>에서
[음반] Disco Fever / Unconditional 케이 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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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테너 슬라바 내한공연거장 레너드 번스타인이 생전에 높이 평가했던 벨로루시 태생의 카운터테너 슬라바의 내한공연. <타임>이 ‘모든 목소리들 중의 다이아몬드’라고 칭찬했던 섬세하고 열정적인 힘을 가진 목소리로 바흐, 비제,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엔니오 모리코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거슈윈의 <서머타임>,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 등을 들려준다.SUBWAY 콘서트대학로 라이브 극장/ 1월24∼27일 평일·목·금 7시30분, 토·일 4시·7시30분/ (주)라이브 엔터테인먼트/ 02-2166-2777, 1588-15554인조 모던록 그룹 서브웨이의 첫 앨범 <SUBWAY> 발매 기념 콘서트. 공일오비, 레드 플러스 출신 조성민이 리드보컬을 맡고, 베이스의 이혁준, 드럼의 이한성, 기타의 오승규가 모였다. 애잔하고 서사적인 타이틀곡 <September>에서 빠른 템포의 곡까지 다
[공연] 카운터테너 슬라바 내한공연 / SUBWAY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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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앤 더 시티뉴욕의 엘리트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들의 성생활은 어떨까? 다소 야비하면서도, 솔직한 이 질문에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와 친구들은 당당하게 답한다. 맨해튼에 와보라고. <뉴욕 옵저버>에 <섹스 앤 더 시티> 칼럼을 연재했던 지은이 캔디스 부쉬넬은 뉴욕 독신녀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스캔들을 ‘저널리스틱한 접근’으로 까발렸다. 가장 은밀한 이야기를, 가장 노골적인 시선으로 화끈하게 담아내서 더욱 충격적이고 그만큼 재미있는 책이다.마리이야기권대웅 글·이성강 그림/ 이레 펴냄/ 9천원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를 재구성한 그림동화집. 이별과 죽음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소년의 삶과 꿈을 남우의 시점으로 그려냈던 영화와 달리, 환상의 소녀 마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화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마리에게 목소리를 갖게 해준 책 <마리이야기>는 영화에서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와 느
[책] 섹스 앤 더 시티 / 마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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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많은 이들에게 힙합이 댄스의 다른 이름처럼 여겨지던 시절, “노래 좀 띄워보려 RAP을 남용하지 마/(중략) 제발 부탁이니 랩을 모욕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중략) 그 수많은 RAP맹들을 우리가 깨우칠 거야”라며 날선 출사표를 내뱉던 무서운 아이들이 있었다. 댄스 리듬 사이에 추임새처럼 끼어든 랩이나 박스티에 힙합바지 같은 스타일이 아니라, 삶과 현실을 비판적으로 곱씹는 태도의 힙합을 얘기하던 듀오 갱톨릭.97년 국내 인디레이블 강아지문화예술에서 발매된 컴필레이션 <원데이 투어즈>에서 <변기 속 세상>을 발표하며 데뷔한 이들의 첫 목소리는 그랬다. 스무살 즈음 눈에 비친 변기 속 같은 요지경 세상에 대한 갑갑증을 터뜨리고, 어줍잖은 힙합 패션이 유행하는 천편일률적인 대중음악계에 냉소를 던지는 당당함, 혹은 당돌함. 담백하면서도 위협적인 당당함이 묻어나는 래핑과 거기서 만들어지는 리듬의 맛을 살리며, 갱스터랩을 선호하는 취향답게 자신들을 둘러싼 사회와 일상에
2집 (방풍) 발매한 힙합 그룹 갱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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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주회를 좀체 가지 않는다. 서구보다 엄격한 분위기에 서구보다 천박한 시청문화가 합쳐 있는 까닭이다. 두 시간짜리 클래식 음악 생방송을 진행했지만 그때도, 방송에 출연해준 것에 대한 답례로 두번‘밖에’ 가지 않았다. 그런 내가 연말연시를 전후해서 두번‘이나’ 김수연 독주회를 간 것은 순전히 딴 일 때문이었다.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이 하필 그곳에 있거나 그곳으로 가야 했던 것.첫 공연은 별로였다. 음악 때문이 아니라 역시 공연장 분위기 때문이었다. 성공회 대성당을 가득 메운 1천여명의 청중 중 애들이 한 300명. 아이들이 떠들어서가 아니라, 그 정반대라서, 즉 너무 엄숙해서 나는 기분이 팍 상했다. 애들은 공연장에서 비비적대고 소란스러우니 애들 아닌가…. 모종의 극성스런 치맛바람을 난 감지했다. 자기 애는 다 신동인 줄 아는군. 그러니 클래식 교육 시킨답시고 어릴 때부터 팝송 못 듣게 하고 애들은 클래식에 흥미를 못 느끼고, 결국 대한민국 음대생들 태반이 연주 기교만 알 뿐 클
김수연 바이올린 독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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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이 아주 싫어하는 음악가인 바그너는 파렴치한 인간이었다고 한다. 그에게 돈을 빌려줘서 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바그너는 돈을 떼먹고도 미안한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김현과 함께 한국 최고의 산문가라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기꺼이 존경을 바치고 싶은 시인 김수영도 돈에 관해선 쫀쫀하기 이를데 없었다고 한다. 여름날 그의 와이셔츠 주머니에 들어있는 지폐가 밖에서 환히 보이는데도(경험해본 사람은 알지만 거기에 돈 넣으면 아주 잘 보인다), 김수영은 커피값이나 술값을 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돈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예인 혹은 장인의 가치는 일상적 도덕성이나 상식적인 의미의 인간성과는 무관하다. 유태인인 우디 앨런이 바그너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의 인간성 때문이 아니라 나치스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였기 때문이다. 말난 김에 좀더 하자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에 미쳐서 집안을 거덜낸 인간이며, 발자크는 귀족임을 가장하기 위해 귀족이 쓰는 ‘드’를 자기
차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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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을 지나 하늘을 날아 설원을 넘어 지하동굴을 빠져나와 불기둥을 피해 강을 건너는 3시간 가까운 악몽을 꾼 것일까. 아니면 ‘반지를 품은 자’(the ring bearer)를 중심으로 구성된 롤플레잉 게임을 한 것일까. 아니면 그냥 톨킨의 판타지 소설이 그림으로 구현된, 상상 속의 것들이 출몰하는 환영을 본 것일까. 그 무엇이든 이 판타지는 가히 압도적이다. 지난주에도 써먹은 말이나, 이 영화 역시 ‘얼얼하다’. 얼얼한 정도로 치자면 내가 본 것들 중에서 최고다. 너무 굉장한 이미지와 사운드 속에서 나는 펀치드렁크에 걸린다. 그래서 나의 감각은 나중엔 이 환상의 길을 그저 멍하니 따라간다. 영화가 끝나고 길거리에 나왔을 때, 나는 다시 멍하다. 이 환한, 구차한 곳….음악이야기에 앞서 사운드이야길 좀 해보자. 이 영화의 사운드는 놀랄 만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5.1채널’의 돌비서라운드 시스템은 전후좌우 모든 곳에 사운드를 배치함으로써 예전보다 훨씬 압도적으로 관객의 감각
<반지의 제왕>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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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마케팅 방법의 하나로 굳어진 가수들의 은퇴발표와 달리 작가의 절필 선언을 접하는 마음은 무겁고 우울하다. 글을 써서, 그림을 그려서 자신을 표현하는 작가들의 절필 선언은 그동안 작품을 통해 유지해온 커뮤니케이션의 단절로 이어지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는 순간, 대화의 상대로 존재하던 나의 상실감 역시 작가의 상실감만큼이나 커지게 된다. 이를테면 1996년 1월6일 이후 다시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는 그런 상실감 말이다. 이정애의 홈페이지에서, 그리고 몇몇 만화 사이트의 게시판에서 발견한 “안녕하세요. 독자여러분”으로 시작되는 이정애의 글은 나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주었다.이정애는 대학 재학 시절 황미나의 문하생이 된 뒤 1986년 <보물섬>에 단편을 발표한 뒤 첫 장편 <헤르티아의 일곱기둥>을 발표한다. 이정애의 매력은 잡지에 연재한 단편들을 통해 발산되었다. 그의 첫 단편집인 <일요일의 손님>에 실린 여러 단편들은 현실과 환상
<사일런트 리밋>의 이정애 절필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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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년째 지속돼온 한·일 만화가 연하엽서 교류전이 1월15일부터 24일까지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아연홀(광화문 흥국생명빌딩 3층)에서 열린다. 이 연하엽서전은 한·일 두 나라 작가가 참여하는 보기 드문 전시로 조그마한 엽서에 표현된 작가와 나라의 특징이 매력적이다. 이번에 출품한 작품은 김수정, 김동화, 신문수, 강경옥, 이두호, 김진태 등 국내 작가 55명과 <크레용신짱>의 우스이 요시히토와 우에다 마사시, 다시로 신타로 등 일본 작가 66명의 작품, 총 129점이 전시된다. 한국만화가협회, 일본국제교류기금, 부천만화정보센터가 공동 주최하고 2월에는 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 전시회를 갖고 사이버 전시도 진행중이다(사이버 전시 http://www.cartooncity.co.kr/postcard/index.html).<슬램덩크>를 통해 보는 성공학 <슬램덩크>는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크게 히트한 만화다. 최근에는 완전판이라는 이름으로 재출판되
한·일 만화가 연하엽서 교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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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사를 잊는 방법 하나! 단순한 설정 속으로 빠져드는 것. 선남선녀가 사랑을 이루고 영웅이 세계를 지켜내는 이야기는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 <넷보이>(Net Boy)는 단순함에 유치찬란함까지 표방하는 26부작 TV시리즈다. 세상사의 애매함과 복잡함은 쏙 제거한 2D 애니메이션.<영혼기병 라젠카>와 <붐이담이 부릉부릉>의 이성진 프로듀서가 이끄는 이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컴퓨터를 소재로 하고 있다. 21세기에 걸맞게 컴퓨터를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 자주 등장하는 요즘이지만, <넷보이>는 ‘도스’라는 용어조차 생경했던 시절부터 기획됐다.지난해 2월이었던가, 이윽고 독립한 이성진 프로듀서가 누렇게 바랜 연습장 한권을 불쑥 내밀었다. <…라젠카> 시절부터 구상해왔다는 <넷보이>가 거기 있었다. 그때는 이미 <넷보이> 프로모션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얼룩지고 색바랜 연습장은 감동적이었다. 오랜 담금
TV 방영 앞둔 시리즈물 <넷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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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한때 애니메이션계에 몸담은 적이 있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제목만 들어도 ‘아 그 작품, 실패작 아니었던가?’ 하는 반응이 쉽게 나오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프로듀서를 한 적이 있었던 것. 물론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중 <이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을 제외하면 성공작이라고 불릴 만한 작품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그 실패가 그리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은 않다. 그래서인지 애니메이션계를 떠난 이후로는 우리 애니메이션들이 개봉될 때마다 애써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다른 이유보다 관객동원 측면에서 실패할 것이 명백한 작품들이 연달아 나오는 상황을 보고 있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상황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제작진들의 모습은,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다.그런 의미에서 <원더풀 데이즈>와 함께 우리 애니메이션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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